-
충청남도 당진에서 대대로 살았던 광주 안씨 주부공파 여섯 사람의 글을 엮어 1907년에 펴낸 문집. 『광릉세고(廣陵世稿)』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신평면 일대에 대대로 살아온 광주 안씨(廣州安氏) 주부공파(主尃公波) 출신 6인의 글을 묶은 문집이다. 안성(安省)[?~1421]은 관향(貫鄕)이 광주(廣州)로 기(器)의 아들이며 시호(諡號)는 사간(...
-
충청남도 당진시에 살았던 개항기의 시인 안기원의 시 등을 묶은 개인 문집. 조선 후기와 개항기의 시인 안기원(安基遠)[1825~1896]은 말년에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고대리 113번지에 내려와 살면서 많은 시를 남겼다. 시 316수 등을 묶어 엮은 것이 『방산집(方山集)』이다. 『방산집』은 전 3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표지에 ‘병신 중동 신전(丙申仲冬新鐫)’이라 하였...
-
개항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역사. 조선은 1876년 일본과 조·일 수호 조규[강화도 조약]를 체결하고 문호를 개방하였다. 당시 조선의 최대 과제는 지배층의 강력한 개혁과 피지배층인 농민층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배층의 개혁은 성리학을 앞세운 전통적 양반층과의 갈등을 통합하지 못하였고, 청과 일본의 침략적 간섭을 배제하지 못하였다. 지배층의 혼돈이 가중되는...
-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갈산리에 있는 윤병표의 아내 경주김씨의 열행비. 경주김씨(慶州金氏)[1880~1907]는 칠원 윤씨(漆原尹氏)[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윤병표(尹炳杓)[1879~1907]의 아내다. 남편이 1907년 2월 29일, 28세의 젊은 나이에 질병으로 사망하자 예법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경주김씨는 남편이 사망한 지 불과 13일 만인 3월 13...
-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갈산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김재기의 효자 정려. 김재기 효자문은 순성면 갈산리에 있는 효자 정려이다. 효자문 현판에는 효자 김재기 정려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추증된 벼슬이 종사랑 중학교 교관임을 알 수 있다. 김재기 효자문은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갈산리에 있다. 당진 시내에서 순성 방향으로 가다가 갈산 주유소를 지나 갈산리...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소난지도에 조성된 근대 개항기 항일 의병총. 한말 의병 항쟁은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고, 1907년 광무 황제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면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당진시 석문면 소난지도는 조선 시대 조운로의 중간 기착지(寄着地)로 식량을 탈취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의병들은 소난지도를 근거지로 삼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
-
1894년 당진 지역에서 일어났던 동학 농민 전쟁의 전개 과정. 내포 지역의 동학은 1880년대 초에 전파되고 1880년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확산되었으나 1894년 5월 홍주 목사 이승우(李勝宇)가 부임하면서는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이승우는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동학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였고 관군을 동원하여 체포와 처형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였다....
-
근대 개항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항일 의병. 도중삼(都仲三)[1878~1907]은 1907년 10월 항일 의병에 투신하여 항쟁하다가 1907년 11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충청남도 면천군 승선면 가재동[현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에서 태어난 도중삼은 고종 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의병에 투신하였다. 일제는 1907년 7월에...
-
1894년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전개한 혁명적 농민 운동. 동학농민전쟁은 안으로 정치와 사회 개혁을 이루고, 밖으로는 외세의 침략을 막으려 했던 혁명적 농민 운동이다. 동학은 최제우(崔濟愚)가 1860년에 창도한 이래, 1870년대 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이 조직화하고 교세를 확대시켰다. 이 과정에서 동학은 당진 지역에도 유입되었고, 많은 주민들이 동학을 믿...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서 봉기한 구한말 항일 의병. 대한 제국 시기 충청남도 면천군에서 일제 침략에 항쟁하는 의병이 크게 일어났다. 이들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계기로 대한 제국의 외교권이 피탈된 데 항의하여 거병하였다. 또한 1907년 대한 제국의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더욱 치열하게 항쟁하였다. 대표적인 면천 의병장으로는 최구현(崔九鉉)·이만식(李晩植)·도중삼...
-
병인박해 시기에 순교한 충청남도 당진시 신리 성지 일대 천주교 순교자들의 묘.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신리의 신리 성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1.5㎞에 있는 무명 순교자 묘[합덕읍 대전리]는 신리를 중심으로 한 주변의 순교 역사와 관련이 있는 무덤들이다.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전리 산21번지 시립 공동묘지 내에 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기 직전 신리는...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산성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문인환의 효자 정려. 문인환(文仁煥)[1846~1886]은 문익점의 후손으로, 1846년 2월 12일 문영휘의 아들로 태어났다. 문인환은 태어난 지 몇 해 안 되어 큰집인 정미면 산성리에 사는 문영철의 양자로 들어갔다. 여덟 살이 된 어느 날 갑자기 양아버지 문영철이 큰병이 들자 문인환은 지극한 병간호로 낫게...
-
근대 개항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학자. 문종구(文鍾龜)[1853~1897]는 한학자로 매우 청빈하게 살면서도 많은 문하생을 배출하였다. 문종구의 본관은 남평(南平)이며, 호는 수은(睡隱)이다. 아버지는 문인배(文仁培), 어머니는 현풍 곽씨(玄風郭氏)이다. 문종구는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거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라...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문충식의 효자 정려. 문충식(文忠植)은 남평 문씨 후손으로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에서 태어났다. 직업이 한의사였던 문충식은 어머니가 병이 들어 자리에 눕자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였다. 하지만 어머니 병환이 별다른 차도가 없이 악화되어 사경을 헤매자 손가락을 잘라 어머니 입에 피를 흘려 넣었으며, 수저에 피를 받아...
-
충청남도 당진에 묘소가 있는 근대 개항기 항일 의병장. 성재한(成載翰)[1860~1906]은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을사늑약 강제 체결에 항쟁하여 일어난 홍주성 의병 항쟁에서 활약하였다. 성재한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운거(雲擧)이다. 성재평(成載平)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성재한은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원당리에서 태어났...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를 근거지로 1906년에서 1908년 사이에 활동한 항일 의병. 의병 항쟁은 1895년 명성 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의 공포로 시작되었고,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면서 다시 재연되었다. 그리고 1907년 광무 황제의 강제 퇴위와 대한 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면서 의병 전쟁으로 격화되었다. 당진시 석문면에 있는 소난지도는 당진 지역 의병...
-
근대 개항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항일 의병. 손응현(孫應鉉)[1880~1950]은 1908년 정주원 의병장 막하에서 활동하였고, 당진시 고대면과 석문면에서 항일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0년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손응현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아버지는 손덕홍(孫德弘), 어머니는 경주 최씨(慶州崔氏), 부인은 연안 차씨(延安...
-
1894년 10월 24일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 승전곡에서 내포의 동학 농민군과 이들의 진압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 1894년 7월 일본군들의 경복궁 불법 점령 이후 내정 간섭이 심화되자, 이른바 동학 농민 전쟁의 2차 봉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내포의 동학 농민군들도 여미벌에서 총기포(總起包)를 준비하고 계획하고 있었다. 이때 이들을 진압하기 위하여 아카마츠[赤松國封...
-
충청남도 당진에 묘소가 있는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 윤곤강(尹崑崗)[1911~1950]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이다. 당진에 낙향하여 시작 활동에 매진하였다. 윤곤강의 본관은 칠원(漆原)이며, 본래 이름은 윤붕원(尹朋遠)이다. 호가 곤강이다. 아버지는 윤병규(尹炳奎), 어머니는 광산 김씨(光山金氏)이며, 부인은 온양 예안 이씨 가...
-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옥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성규·이희천·이희창의 효자 정려. 이성규(李聖規)와 아들 이희천, 이희창의 효자문은 순성면 옥호리에 있다. 이성규는 어려서부터 늘 부모 곁에서 식사를 했는데 항상 먼저 맛보고 음식을 드렸으며, 때때로 이웃 마을에 가서 과일과 고기를 따뜻한 가슴에 품고 돌아와 부모님께 드렸다고 한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위독하자...
-
충청남도 당진시에서 내포 동학 농민군을 이끈 동학 대접주. 동학 농민 혁명은 조선 말인 1894년 국가적 위기와 신분적 불평등으로 고통받던 조선 민중들이 항거하면서 벌어진 대 사건이었다. 내포 지방의 동학 농민군도 대대적으로 봉기하였는데 면천의 대접주 이창구(李昌九)[?~1894]는 지금의 당진시 송악읍 월곡리에서 봉기하였다. 이창구는 내포 지방을 대표하는 동학 대접주였...
-
근대 개항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애국지사. 임예상(林禮相)[1861~1941]은 당진시 석문면 삼봉리에 거주하면서, 부근에서 활동하던 의병장 최동식에게 군자금을 헌납한 애국지사이다. 임예상의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아버지는 임증수(林曾洙), 어머니는 한산 이씨(韓山李氏)다. 임예상은 1861년 충청남도 당진군 내맹면 고대리[현 당진시 석문면 삼봉...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임호영의 효자 정려. 임호영(林鎬榮)의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화주(化主)이다.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의 뜻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 간호에 온 정성을 다했고, 4년간이나 천지신명께 어머니의 쾌유를 빌었다. 임호영은 어머니의 임종이 다가오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
-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있었던 자연 마을. 옛날 질그릇을 굽던 옹기점이 있던 점말은 당진 지역에 3곳이 있다. 사기소리 점말[店村], 채운리(彩雲里) 운곡 점말, 구룡리(九龍里)의 도동(道洞) 마을[점말]이 있다. 점토로 만드는 질그릇을 굽던 옹기점이 있었던 곳이라 ‘점말’이라 부른다. 채운리는 본래 당진군 군내면(郡內面) 지역으로 채운교(彩雲橋)가 있으므로 채...
-
충청남도 당진시 출신의 항일의병장. 정주원(鄭周源)[1870~1925]은 1907년 군대 해산 후 일제 침략에 항쟁한 항일 의병장이다. 충청도와 경기도를 통합하는 13진도 총대장에 올랐고, 수백 명에 달하는 의병을 지휘하였다. 정주원은 치열한 항쟁 중이던 1908년 대호지면 적서리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복역 후 송악면 가학리에서 살다가 1925년에 사망...
-
근대 개항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항일 의병장. 최구현(崔九鉉)[1866~1906]은 1887년 무과에 급제하고 군부 참서관을 역임하던 중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하였다. 그는 당진시 송악면 기지시리에 창의도소를 설치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의병을 이끌고 면천읍성을 공격하였고, 석문면 소난지도를 근거지로 활발한 항쟁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화력의...
-
1905년부터1910년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발발하거나 활동한 항일 의병. 한말 항일 의병은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략에 우리의 국권을 지키기 위해 무력 항쟁한 민족 운동을 말한다. 갑오년[1894] 일본군의 경복궁 무력 점령에서 비롯된 항일 의병은 을미년[1895] 명성 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의 실시를 계기로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의병은 양반 유생들이 주도하였고, 농...
-
1894년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서 발발한 농민 항쟁. 합덕농민항쟁은 1894년 1월,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이정규(李廷珪)의 탐학에 대항하여 발발한 합덕제 주변 6개리 농민의 항쟁이다. 이들은 이정규의 악행을 정리한 『혈원록(血怨錄)』을 작성하여 관할 관청인 홍주 목사에게 제출하며 선처를 호소하였으나, 오히려 이정규는 이들을 살해하고자 하였다. 이에 격...
-
1900~1906년경 충청남도 당진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민중의 무장 투쟁. 조선 후기 이래 농민층이 분화되면서 많은 몰락 농민이 토지로부터 이탈되었고, 그중 일부는 화적 집단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1900년경 충청도 내포 지방인 당진 지역에도 다수 출몰하면서 활빈당(活貧黨)을 자칭하였다. 이들은 양반과 부호를 협박하였고 5일장과 관아를 습격하면서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종종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