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역에 있던 조선 후기 유기장 마을. 조선 시대의 소외 계층인 백정(白丁)은 고려 시대의 양수척(楊水尺)이 재인(才人)과 화척(禾尺)으로 분화되었다가 1423년(세종 5)에 개칭된 것이다. 백정으로 개칭된 이후에도 백정들은 성(姓)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저기 떠돌면서 구걸, 사냥, 도살 및 고리·가죽 제품 제조와 판매, 공연[창우(倡優)] 등을 업으로 삼아...
조선 후기 대구읍성 남문 밖 저지대에 있었던 갖바치 백정 마을. 조선시대에는 가죽제품인 피물(皮物)을 만드는 장인을 피장(皮匠), 갖바치, 피쟁이로 불렀는데, 신분적으로 양인이지만 대대로 천역인 소 도축과 가죽제품 생산에 종사하면서 천인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다. 『대구부 호적대장』을 보면, 대구부 서상면 노하리는 1738년부터 1876년까지 140여 년 동안 피쟁이마을이었다. 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