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8년 7월 31일 대구은행과 경남은행의 합병을 통하여 설립된 일반은행. 경상합동은행은 경상남북도의 대표적 한국인 은행인 대구은행과 경남은행이 은행의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합병한 일반은행이었다....
-
일제 강점기에 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에 있던 영화관. 대구구락부(大邱俱樂部)는 1911년 쓰지소노 지로[辻園次郞]가 지금의 경상감영공원 서편, 중구 대안동 79번지 대구중부교회 자리에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개관하였다....
-
개항기 일제가 한국의 농업과 공업을 금융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대구에 설립한 은행. 대구농공은행(大邱農工銀行)은 1906년 일제가 금융 경색 해결과 재정 기초 확립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대한제국의 농업과 공업의 개량 및 발달을 표면적 이유로 내세워 설립하였다....
-
1908년 대구에서 일본인이 창간한 신문. 1900년대 말 대구 지역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대구일일신문사와 대구신보사가 있었다. 1908년 9월 대구일일신문사와 대구신보사가 통합하여 대구부 경정 2정목[현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2가]에 대구신문사조합을 설립하고 『대구신문(大邱新聞)』을 창간하였다. 가와이 아사오[河井朝雄]는 대구일일신문사, 가토 이치로[加藤一郞]는 대구신보사의 이사가...
-
1930년 가와이 아사오가 쓴 책을 번역하여 1998년 대구중구문화원에서 펴낸 책. 『대구 이야기』의 일본어 원제는 1930년에 조선민보사(朝鮮民報社)를 경영하던 가와이 아사오[河井朝雄]가 간행한 『대구 모노가타리[大邱物語]』이다. 『대구 이야기』는 1998년 대구중구문화원에서 『대구 모노가타리』를 손필헌이 번역하여 출간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
개항기 대구에서 결성된 대구 거주 일본인들의 자치단체. 대구일본거류민단(大邱日本居留民團)은 1906년 11월 대구에서 거주 중이던 일본인들이 결성한 자치단체이다....
-
개항기 대구에서 결성된 대구 거주 일본인들의 자치단체. 대구일본거류민회는 부산 주재 일본 영사관의 감독 아래 대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자치단체의 기초를 확립하고, 부산 주재 일본 영사관의 감독 아래에서 일본인들의 행복을 도모할 목적으로 결성하였다....
-
개항기 대구 거주 일본인들의 자치단체. 대구일본동포회는 1904년 6월 부산 일본영사의 감독 아래 대구 거주 일본인들의 자치를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
개항기 대구에서 결성된 대구 최초의 일본인 자치 조직. 대구일본인회(大邱日本人會)는 1900년 11월 부산영사관 서기 이쿠다[生田端正平]가 대구를 방문하여 대구 거주 일본인과 함께 일본인 단체 결성에 대하여 상의를 한 뒤 일본인의 친목 도모와 정착 안정에 목적을 두고 결성되었다....
-
1906년 12월 대구에서 일본인 발행의 『대구신보』의 제호를 변경하여 발행된 일본어 신문. 『대구신보(大邱新報)』는 1906년 1월 경영난에 빠져 휴간한 『대구실업신보(大邱實業新報)』의 제호를 변경한 신문이며, 격일 발행에 한국어판도 발행하다가 한국어판을 없애고, 매일 발행으로 바뀌었다. 1906년 12월 다시 『대구일일신문(大邱日日新聞)』으로 제호를 바꾼 뒤에도 신문을 발행하였...
-
개항기 대구의 일본인 사회 내부에서 인두세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만든 단체. 쇄신파(刷新派)는 1905년 8월 대구 거류 일본인 사회 내부에서 대구일본거류민회에 맞서 인두세 폐지를 주장하기 위하여 만든 단체이다. 쇄신파는 대구 일본인 사회를 장악하기 위하여 1905년 8월 대구일본거류민회의 보궐선거에 오키다[冲田棄次郞], 마치타[町田久吾], 오카모토[岡本宇一], 카와이 아사오[...
-
일제 강점기에 재담, 만담, 야담 등을 들려주던 대중적 연예장. 대구광역시에 처음 등장한 요세[寄席]는 1912년 무렵 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에 개관한 낭화관(浪花舘)[나니와칸]으로, 활동사진 상설관이던 대구구락부를 요세로 전환한 것이다. 1928년 이마모토 시미즈[今本善造]가 개관한 영락좌(永樂座)[에이라쿠자]도 요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