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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강신규(姜信圭)[?~?]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상주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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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강영주(姜永周)[?~?]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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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 인사들이 설립한 교육운동 단체.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는 영남 지역의 교육 진흥을 위하여 서울에 거주하는 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 인사들이 설립한 교육운동 단체이자 애국 계몽 단체였다. 1개 면에 1개 학교를 설립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설립된 교남교육회는 ‘교남학회’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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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영해(權永海)[1885~1947]는 1885년 8월 12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에서 태어났다. 경상북도 칠곡군 인평면 진평동[현 구미시 진평동]의 진평교회 목사로 재직 중이던 1919년 3월 14일 진평동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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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무열(金武烈)[1887~1929]은 1887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계산동1가·계산동2가]에서 태어났다. 중국 만주에서 대공단(大公團)을 조직하고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김성열(金聖烈)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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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방우(金邦佑)[1914~?]는 1914년 11월 3일 대구 동운정[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에서 태어났다. 중국 망명 후 항일 비밀결사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하여 활동하였다. 옥수산(玉秀山)·이수산(李秀山)·김광호(金光湖)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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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김병순(金炳淳)[?~?]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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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호(金容鎬)[1853~1924]는 1853년 8월 28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호는 일암(一菴)이며, 김용우(金容又)·김용순(金容淳)·김용문(金容文)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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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김우근(金遇根)[?~?]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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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종구(金種耉)[1907~1964]는 중국 상하이에서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였으며, 이후 대구에서 일본군의 정보를 수집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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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효배(金孝培)[1908~1967]는 1908년 1월 1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에서 태어났다. 일본에 거주하며 노동운동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임희일(林喜一)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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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중국 베이징에서 대구 등 영남 출신 인물들로 결성된 항일 비밀 운동 단체. 다물단(多勿團)은 친일파와 친일 밀정 처단, 독립군 자금 모금, 친일파 처단 선언문 배포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단원 대부분이 대구를 비롯한 영남 출신이었고 결성 초기에는 40명~50명의 청년들로 구성되었다. 다물단의 ‘다물(多勿)’은 고려 말로 ‘옛땅을 찾는다’는 뜻으로 용감, 전진, 쾌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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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6월 대구에서 여성들이 국채보상운동을 펼치기 위하여 결성한 애국계몽운동 단체. 대한제국 시기 일본으로부터 빌려 쓴 1300만 원을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기 위하여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인 국채보상운동에는 여성들도 적극 참여하였다. 대구에서는 중구 남일동에서 1907년 2월 23일 패물폐지부인회(佩物廢止婦人會)가 결성되었고, 1907년 6월에는 중구 남산동에서 대구남산국채보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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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설립되어 활동하였던 애국계몽운동 단체. 대한협회는 일제의 고종 강제 퇴위 강요에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 통감부에 의하여 해산당한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 간부들과 천도교의 주요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애국계몽운동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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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류상준(柳相駿)[1890~1951]은 1890년 2월 2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검사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신흥종교 흠치교(吽哆敎)에 입교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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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기수(朴基秀)[1924~1987]는 1924년 6월 9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 중 한인 유학생들을 규합하여 항일 비밀결사 조직을 결성하고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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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박병옥(朴炳鋈)[?~?]은 교남교육회 대구지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대구 지역 교육 진흥에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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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순호(朴純鎬)[1873~1934]는 1873년 1월 8일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양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호는 덕암(德巖)이며, 박왕호(朴汪鎬)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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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재근(朴再根)[1881~1950]은 1881년 4월 1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도원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호는 후암(後菴)이며, 박재근(朴在根)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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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출신의 의병. 박화준(朴華俊)[1881~1911]은 1881년경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동문동에서 태어났다. 1907년 신돌석(申乭石) 의병 부대에서 활동하였다. 박화식(朴華植)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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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천택(裵天澤)[1892~?]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서 태어났다.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결성하고 구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중국으로 망명하여 부민단(扶民團)·다물단(多勿團)·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 등 여러 단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배병현(裵炳鉉)·배달무(裵達武)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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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남규(白南圭)[1888~?]는 1888년 4월 23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고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내는 등 1910년대 중국과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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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건수(徐健洙)[1874~1953]는 1874년 1월 1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호는 성암(性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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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동일(徐東日)[1893~1965]은 1893년 12월 2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공평동에서 태어났다.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망명하여 국민당(國民黨)과 다물단(多勿團)에 가입하였으며, 1924년 국내로 잠입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서동일(徐東一)로도 알려졌으며, 호는 천구(天球)·춘파(春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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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출신의 서화가이자 민족운동가. 서병오(徐丙五)[1862~1936]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대구 지역 서화계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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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병철(徐丙哲)[1892~1970]은 1892년 8월 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와 경상북도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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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보인(徐輔仁)[1895~1960]은 1895년 5월 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경 보천교(普天敎)에 가입하여 교단 내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신인동맹(神人同盟)에서 활동하였다. 서정(徐政)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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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서주원(徐周媛)[?~?]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대구 지역 여성들을 규합하여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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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인식(孫仁植)[1894~1975]은 1894년 5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현 광주광역시]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고, 이후 신간회 대구지회에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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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심정섭(沈廷燮)[?~?]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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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염복은(廉卜恩)[?~?]은 애국계몽운동 단체인 대구애국부인회(大邱愛國婦人會)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하였다. 남편은 구연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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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학선(吳學善)[1925~2010]은 1925년 7월 2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강림리에서 태어났다.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중국 전선에서 복무하던 중 부대를 탈출하여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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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경동(禹涇東)[1876~1960]은 1876년 9월 21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우경동(禹經東)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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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병기(禹丙基)[1903~1944]는 1903년 11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에서 조선문제시국연구회(朝鮮問題時局硏究會)를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호는 월해(月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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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성동(禹成東)[1861~1920]은 1861년 1월 12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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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승기(禹升基)[1875~1948]는 1875년 4월 8일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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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찬기(禹瓚基)[1861~1921]는 1861년 9월 2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 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본관은 단양(丹陽)이며, 호는 성암(誠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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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 세워진 근대 교육기관이자 도서관. 우현서루(友弦書樓)는 1904년 대구 지역의 부자인 금남(錦南) 이동진(李東珍)이 개인 재산을 투자하여 설립한 근대 교육기관이자 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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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근성(柳根成)[1884~1945]은 1884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검사동에서 태어났다. 신흥종교 흠치교(吽哆敎)에 입교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유성대(柳成大)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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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대구 지역 출신 유림 13명이 참여한 유림단의 독립청원운동. 일제는 1919년 2월 이완용을 정당 대표로, 김윤식과 이용직을 유림 대표로 하여 일왕에게 한국 유림은 독립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합방 절대 지지 한일 불리 청원서(合邦絶對支持韓日不離請願書)’[일명 ‘독립불원서’] 를 보냈다. 독립불원서는 일제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며, 김윤식과 이용직은 일본이 자진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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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일본의 침략에 맞서서 대구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민병. 대구 지역은 경상감영이 설치된 경상도의 중심 도시여서 대구를 기반으로 의병 부대가 만들어지거나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대구 출신 의병들은 주로 다른 지방의 의병 부대에 소속되어 항일 의병전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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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갑상(李甲相)[1924~2017]은 1924년 3월 16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입석동에서 태어났다. 1944년 일본군으로 징병되었으나 중국군에 투신하여 항일전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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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경도(李敬燾)[1917~1998]는 1917년 4월 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공평동에서 태어났다. 중국 이주 후 중국군에 입대하여 항일전쟁을 치르다가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호는 해암(海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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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이근영(李根泳)[?~?]은 1908년 교남교육회(嶠南敎育學會)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교남교육회는 서울에 거주하는 영남 출신 인사들이 영남 지역의 교육 진흥을 위하여 1908년 3월 15일에 설립한 교육 계몽 단체였다. 교남교육회는 학교 설립과 교육 진흥을 목적으로 대구와 안동을 비롯한 경상북도 각 지역에 지방조직인 지회를 설립하고 권유위원을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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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관료이자 친일파. 이근호(李根澔)[1861~1923]는 1861년 7월 13일에 태어났다. 자는 문옥(文玉), 호는 송은(松隱), 규재(奎齋)이다. 이근호의 동생은 이근택(李根澤), 이근상(李根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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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기양(李起陽)[?~?]은 1888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수동에서 태어났다. 1925년 의열단에 가입한 뒤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구로 잠입한 이종암(李鍾巖)[이명 양건호(梁健浩)]과 함께 의열투쟁을 전개하였다. 호는 나봉(那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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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이만집(李萬集)[1876~1944]은 대구 남성정교회 목사로 재임 중이던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주도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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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도(李相度)[1897~1944]는 1897년 2월 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 중국에 머물며 베이징조선유학생회·상하이청년동맹·베이징한인청년회에서 활동하였다. 호는 보천(普天)이고, 이상도(李相道)·이상응(李相應)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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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정(李相定)[1896~1947]은 1896년 6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문로 2가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계성학교 교사와 용진단(勇進團)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25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군 장성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연호(李然晧)·이연호(李然浩)·이직(李直)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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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시영(李始榮)[1882~1919]은 1882년 1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조선국권회복단] 결성에 참여하여 교통부장을 맡았고, 서울에서 3·1운동에 참가한 뒤 중국으로 망명하여 흥업단(興業團) 특파원으로 활동하였다. 이시영(李時榮)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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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정호(李貞浩)[1913~1990]는 1913년 3월 1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에서 태어났다. 중국에서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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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출신의 의병. 이춘화(李春花)[1857-?]는 185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상북도 동부 지방에서 활동하던 산남의진(山南義陣)에 가담하여 일제 침략에 맞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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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출신의 민족운동가. 이현주(李玄澍)[?~?]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주도하였고, 대한협회 대구지회에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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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임용한(林容漢)[1897~1977]은 1897년 10월 3일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에서 태어나 대구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임석백(林碩佰)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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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출신의 의병. 임한조(林漢祚)[1881~?]는 1881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신돌석(申乭石) 의병 부대에 투신하여 영덕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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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대윤(丁大允)[1924~1994]은 1924년 10월 16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1944년 말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중국 충칭[重慶]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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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민영(鄭敏英)[1899~1932]은 1899년 10월 2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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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일수(鄭一洙)[1924~2008]는 1924년 9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에서 태어났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중국군에 입대하여 항일전쟁에 참가하였으며, 이후 한국광복군 제1지대에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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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준수(鄭駿秀)[1888~1957]는 1888년 6월 10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1910년대 중국 동북지방으로 이주하여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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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학이(鄭鶴伊)[1913~1934]는 1913년 8월 2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오사카[大阪]에 거주하며 재일한인 인권 보호와 노동운동, 항일 문건을 배포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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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기홍(趙氣虹)[1883~1945]은 1883년 7월 2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고, 이후 항일 비밀결사 조직을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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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석하(曺錫河)[1883~1955]는 1883년 2월 22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도원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파리장서운동이 전개될 때 유림 대표로 참여하였다. 호는 학단(學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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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추교정(秋敎廷)[?~?]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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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대구에서 결성된 최초의 국채보상운동 여성단체. 대한제국 시기 일본으로부터 빌려 쓴 1,300만 원을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기 위하여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인 국채보상운동에는 여성들도 적극 참여하였다. 대구에서는 중구 남일동 109에서 1907년 2월 23일 패물폐지부인회(佩物廢止婦人會)가 결성되었고, 1907년 6월에는 중구 남산동에서 대구남산국채보상부인회가 결성되었다. 이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