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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자강(子强), 호는 약봉(藥峰). 고려시대 태사(太師) 유차달(柳車達)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유몽정(柳夢鼎)이고, 아들은 사어(司禦) 유시량(柳時亮)이며, 손자는 유송제(柳松齊)·유계제(柳桂齊)·유회제(柳檜齊)이다. 조선 광해군 때의 효자로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광해군 때 벼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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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자겸(子謙)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칭송되었다. 영조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 있다가 통정대부거창도호부사 겸 진주진영병마첨절제사를 지내고 수안(遂安)·제주부(濟州府)에도 있었다. 어버이의 병환이 위독해지자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도를 하니 효험이 있었다. 또한 어버이가 한겨울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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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경(子敬)이며 호는 영옥헌(永玉軒). 증조할아버지는 벽상삼한삼중대광영경운전사전성부원군(壁上三韓三重大匡領景雲殿事全城府院君) 이사안(李思安)이고, 할아버지는 철원대부의부사로 추증된 이작(李作)이며, 아버지는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한 이의흡(李宜洽)이며, 어머니는 총제(摠制) 문계종(文繼宗)의 딸 남평문씨(南平文氏)로서 정부인(貞夫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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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 소설가 염재만이 방황하는 청년들의 자아세계를 다룬 단편소설. 「반노」의 작가로 알려져 있는 소설가 염재만은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작가이다. 「자기 상실」은 발표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그의 단편소설이다. 대표작인 「반노」는 한국문학사상 최초로 성(性) 묘사 수위에 대한 검열 논란에 휘말려 한때 화젯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작가는 이에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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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토기나 자기를 굽던 가마터. 일반적으로 토기나 자기, 기와를 굽거나 숯을 만들고 철을 녹이던 시설을 통칭하여 가마[窯址]라고 한다. 도요지는 그 가운데 토기나 자기를 굽던 가마에 한정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연질 토기는 노천요(露天窯)라고 하는 원시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노천요는 연료실과 적재실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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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남북국시대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우두(牛頭) 혹은 자두(字頭). 석탈해왕(昔脫解王)의 18세손으로 아버지는 육두품 11관등 내마(柰麻) 석체(昔諦)이다. 강수의 조상은 경상남도 고령의 대가야 출신으로 대가야가 멸망하면서 신라에 귀화한 것으로 보인다. 강수는 중원경(현 충주시) 출신으로 어머니가 꿈에 머리에 뿔이 난 사람을 보고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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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자린고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자린고비 이야기」는 인색한 사람을 지칭하는 자린고비를 내세워 그의 행위를 다룬 과장된 전설이다. 조선 인조(仁祖)[1595~1649] 때 태어난 자린고비 조륵(趙肋)의 묘가 신니면 대화리 화치마을에 있다. 충주 지역에는 ‘자린고비’와 관련된 전설이 많다. 자린고비의 출생지는 오늘날 음성군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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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주목사와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 또는 동포(東浦). 아버지는 수문전제학(修文殿提學) 희도(希道)이고, 최영(崔瑩)의 손자사위이다. 1386년(우왕 12)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춘추관검열을 거쳐 전의사승·기거랑·사인·우헌납 등을 역임했으며, 수원판관에 이어 내사사안이 되었다. 조선이 건국되자 예조의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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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감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자미(子美). 증조부는 최렬(崔洌), 조부는 최옥(崔沃), 아버지는 최중청(崔仲淸)이다. 처부는 이은(李誾)이다. 태조 1년(1392)에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하였다. 태조(太祖) 5년(1396)에는 병자(丙子)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3위로 문과에 급제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 동도총제(同都摠制)·사간원대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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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자선(子先), 호는 취헌(翠軒).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한 유홍(兪泓)이며, 오위도총부부총관을 역임한 유대일(兪大逸)이며,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인 풍산군(豊山君) 이종린(李宗麟)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유백증은 1612년(광해군4) 진사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615년에 승문원부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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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자성(子省), 호는 남악(南岳)·추담(秋潭). 고려 때의 제학(提學) 최원유(崔原儒)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감찰(監察) 최사공(崔士恭)이며, 아버지는 호조참판 최분(崔汾)이다. 최개국은 이약빙(李若氷)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38년(중종 3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자(正字)를 거쳐 15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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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이란 말을 들을 때에는 후덕한 인심이 풍기는 뉘앙스가 있다. 단순히 저가의 숙박 제공이 아닌 그 지역의 고유문화와 풍습, 인심을 맛보는 곳이란 선입견도 이젠 옛말일 듯하다. 이상정 씨가 부인 오혜련 씨와 함께 운영하는 송림민박도 처음 건축하였을 때는 새집이어서 많은(?) 손님들이 찾는 곳이었으나 지금은 건물의 노후 뿐 아니라 새로운 서양식 펜션이라는 주택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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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자실(自實). 정숙공 박안신(朴安信)의 후손이다. 박효인은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병이 나면 대변을 맛보고 그 상태를 알아 간호했고, 병세가 위독해지면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병을 치료했다. 또한 박효인의 처 원씨도 효심이 지극하여 부부가 모두 주위로부터 칭송을 들었다.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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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기상 현상과 자연 현상 등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재해. 충주 지방은 자연재해 중 한해·냉해·설해 등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주로 여름철 집중 호우와 태풍에 의한 피해가 대부분이다. 충주는 풍수해가 많은 한강 유역 중부에 위치하여 대홍수와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잦은 편이지만, 면밀히 기록된 것은 많지 않다. 현재까지의 기록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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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지질, 지형, 기후 등의 지리적 조건. 충주는 우리나라의 중앙부를 차지하며 북동쪽으로는 제천시, 서로 음성군, 남으로 괴산군과 경상북도에 면하고, 북으로 경기도와 강원도에 면한다. 충청북도에서는 북동부에 치우쳐 위치해 있다. 또한 남동쪽으로 소백산맥의 여맥인 계명산·남산·대림산·월악산, 서쪽으로 국망산, 북쪽으로 천등산 등 비교적 높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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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김조근의 글씨를 모은 서첩. 김조근[1793~1844]은 조선 후기의 외척으로,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백술(伯述), 호는 자오이다. 할아버지는 김이소(金履素)이고 아버지는 김지순(金芝淳)이다. 음보(蔭補)로 판관·승지를 지냈으며, 영돈녕부사(領敦寧 府使)에 이어 어영대장·호위대장·주사대장 등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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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자유(子游). 시호는 정장(貞莊). 아버지는 광주목사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어득해(漁得海)이다. 어유소(漁有沼)는 1451년(문종 1) 내금위에 선발되고 1456년(세조 2)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사복시직장, 사헌부감찰을 역임하였다. 1460년 두만강을 건너 조선 백성들의 재산을 약탈하던 여진, 알타이, 골간, 올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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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충인동과 충의동 일원에 있는 재래시장. 충주자유시장은 옛날의 5일장에서 발전해 도시의 형성과 함께 자연스럽게 충주시 충인동과 충의동 지역에 정착된 시장이다. 충주자유시장은 구 중앙파출소를 기점으로 시작되는데, 이곳은 과거 충주읍성의 북문이 있던 곳으로 ‘북문거리’로 불리던 곳이다. 예전의 장이 성문 밖을 중심으로 열렸던 것을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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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태종의 아들인 경녕군의 자손들이 들어와 양반의 법도를 지키며 살았던 마을이라 하여 법동리라고 하였다. 일찍이 전주이씨 경영군파 후손들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고 세거하였다. 1757~1765년에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법동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1898년(대한제국 고종 2)에 편찬된 『충청북도 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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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태종의 아들인 경녕군의 자손들이 들어와 양반의 법도를 지키며 살았던 마을이라 하여 법동리라고 하였다. 일찍이 전주이씨 경영군파 후손들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고 세거하였다. 1757~1765년에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법동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1898년(대한제국 고종 2)에 편찬된 『충청북도 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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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암행어사로 활약한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자장(子章), 호는 학당(鶴塘). 증조할아버지는 풍안군(豊安君) 조흡(趙潝)이며, 아버지는 도정(都正)을 지낸 조도보(趙道輔)이다. 1710년(숙종 36) 사마시를 거쳐, 1712년 29세로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설서(設書)·정언(正言)·지평(持平)을 지냈다. 1717년(숙종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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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심원(深源), 호는 자재(字齋)이다. 세조 때 무신 권언(權躽)의 현손이다. 증조부는 어모장군 권팽(權伻)이며 조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어모장군 권사직(權司直),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첨지중추부사 권형, 어머니는 사인(舍人) 보성(輔誠)의 딸 진원윤씨이다. 통훈대부(通訓大夫) 증(贈) 사복시정(司僕寺正)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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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자점(子漸). 아버지는 안숙손(安叔孫)이다. 안홍은 사칠논쟁(四七論爭)의 발단이 된 『천명도설(天命圖說)』을 지은 추만(秋蠻) 정지운(鄭之雲) 문하에서 공부했다. 1535년(중종30)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낸 뒤 사성(司成)이 되었다. 1566년(명종21) 청주목사로 나아가 봄에 흉년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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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삼청리에서 자점방죽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주덕읍 신양리에서 음성 쪽으로 국도를 따라 약 1㎞ 지점에 좌측으로 삼청리 농말로 들어가는 국도변 입구에 저수지가 있는데, 이것을 자점방죽이라고 한다. 조선조 인조 때 문신인 김자점 때문에 생긴 방죽이라고 한다. 「자점방죽」 전설은 김자점이 이곳에 호화별장을 짓고 왕래했는데 김자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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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효령대군의 후손이다. 1623년(인조 1) 학행(學行)으로 발탁되어 6품직을 받고, 여러 군현의 수령직을 역임하면서 명성과 치적을 쌓았다. 1645년(인조 23) 사헌부장령이 되었을 때, 음관(蔭官)에게 사헌부의 직을 제수하는 것은 학식이 있거나 재행이 있어야 하는데 이유양의 학식과 재행이 모두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여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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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 정착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 시언(時言), 자는 자중(子中), 호는 하담(荷潭), 시호는 충익(忠翼). 할아버지는 영상공 김석(金錫), 아버지는 비안현감을 지낸 김인갑(金仁甲), 어머니는 남양홍씨이다. 1605년(선조 38)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로 벼슬길에 나아갔다. 1607년 승정원주서, 1609년(광해군 1) 예조좌랑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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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영일(迎日). 증조부는 증좌찬성 정직(鄭稷), 조부는 청안현감 정경연(鄭慶演), 아버지는 통덕랑 정린(鄭潾), 어머니는 양주최씨이다. 권상하의 문인으로 기품이 단아하고 은덕이 있었으며,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효우도 돈독하고 청렴결백한 가풍을 이루었다. 유학 경전과 『근사록(近思錄)』을 읽으며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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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자한(子漢), 호는 화은(華隱). 세종 대에 직제학을 지낸 남간(南簡)의 후손으로 생육신(生六臣)의 한명인 남효온(南孝溫)의 조카이다. 명종 대에 여러 관직을 거친 황삼성(黃三省)이 사위이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낙향하여 오랫동안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1540년(중종 35) 호조참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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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화천리와 괴산군 연풍면을 연결하는 고개. 말 그대로 ‘작은 새재’이다. 새재의 한자 표기인 조령(鳥嶺)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나오는데,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험한 고개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신선봉[967m]과 586.5m 고지 사이의 낮은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동쪽에 소백산지 본줄기에 해당하는 마역봉[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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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잠병이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가차면(加次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잠리(中岑里)·사천리(沙川里)·사랑리(沙浪里)·하담리(荷潭里)·상잠리(上岑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잠병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게 되었고,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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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있던 조선시대 초가. 18세기 말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중부 지방의 전형적인 민가 형식의 가옥이다. 3칸 전퇴의 목조 초가집으로 민가의 구로조서는 오래된 구조 기법을 보이고 있다. 충주시 탄금호 조정지댐을 건너 원주 방향으로 가는 국도 38호선을 따라 3.6㎞를 간 뒤 축동마을 고개 못 미쳐 왼쪽 싸리골마을로 들어가면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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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있는 조선시대 민묘로 추정되는 유적. 1998년 충주시 문화 유적 분포 지표 조사 당시 확인된 민묘로 추정되는 유적이다. 이후 더 이상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현지 조사 결과 관리되지 않는 민묘가 능선을 따라 다수 분포하고 있다. 금가초등학교에서 서쪽으로 500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새로 조성한 문화 마을이 나타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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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금가면 일대는 완만한 구릉지대가 많고, 남한강을 바라보는 남사면에 해당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곳으로 알려져 왔다. 잠병리는 금가면의 북쪽 지역으로 엄정면과 접하고 있는 마을로 장호원·앙성면·산척면·백운면을 잇는 국도 19호선이 지나간다.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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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와 하구암리, 용전리를 연결하는 고개. 충주 장미산성과 이웃하고 있어, ‘성(城)’을 뜻하는 우리말 ‘잣’을 붙여 고개 이름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절골산[341m]과 장미산[337m] 사이에 있는 고개로 남한강 서쪽에 이웃한 을궁산[394m]·장미산[337m]에 이르는 동서 산줄기에 남북 방향의 구조선이 지나가면서 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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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콩을 발효시켜 만든 저장 식품. 우리나라는 농업 국가로서 예부터 곡물로 조미료를 많이 만들어 먹었다. 이 곡물 조미료가 곧 장이다. 충주에는 된장·고추장·간장 외에 막장·박치기장이 있는데, 특히 충주의 특산물인 사과를 이용한 사과고추장이 유명하다. 충주사과고추장은 찹쌀을 불려서 엿기름에 삭힌 뒤 사과조청·고춧가루·메주가루·소금을 섞어 만드는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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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장계원의 영세불망비. 장계원은 대한제국 시기에 시종원 시종, 충청남도 사검위원(忠淸南道査檢委員)을 역임하였고, 1901년 11월 23일 충청북도 봉세관으로 임명되었다. 장계원은 1901년 흉년으로 인하여 농민들이 파종할 씨앗마저 없게 되자 관찰부를 통해 역둔토의 세조(稅租)를 균등히 나누어주어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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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와 율능리를 연결하는 고개. 미내리 장터(일명 장대, 또는 시장)은 미내리뿐만 아리라 엄정면의 소재지로서 옛날부터 3일과 8일에 개장되는 내창장으로 유명하였다. 율능리는 엄정면 최남단 지역인데 바마루(일명 율리)는 율능리의 으뜸 마을로서 국도 변에 위치하고 있다. 과거에 미내리와 율능리 주민들이 서로 시장을 앗아가려고 쟁탈전을 벌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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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이류면 만정리와 두정리 사이에 있는 터널. 중부내륙고속도로의 경상남도 마산시 내서읍~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간의 길이 203.6㎞의 도로로서 이 노선은 2001년 5월 24일 지정되었다. 중부내륙고속도로의 앙성면 지당리~이류면 문주리 간은 길이 36,461m, 폭원 22.4m 등으로 이루어진 4차선 도로로서 이 노선은 2004년에 준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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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향토사학자. 장기덕은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서 태어나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육계에 투신하였으며, 충주미덕중학교와 충주상업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생물 과목을 가르치면서 식물과 곤충채집을 하러 향리에 다니다가 지역의 전설과 문화 유적 등에 매력을 느끼고 향토사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문화재보호협회 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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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장길(長吉), 호는 탄수(灘叟)·용탄자(龍灘子). 증조할아버지는 광성군 이극감(李克堪)이고, 할아버지는 판중추부사를 지낸 이세좌(李世佐)이다. 아버지는 봉사를 지낸 이수원(李守元), 어머니는 사용(司勇)을 지낸 방의문(房毅文)의 딸 남양방씨이다. 1484년(성종 15) 충주에서 태어난 이연경(李延慶)은 1504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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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 요도천 변에 넓은 들판이 있어 방죽안의 서방모랭이에서 보면 모래가 희게 보인다고 하여 흰모루라고 불렀다. 또한 들 가운데에 마을이 길게 이어졌다고 하여 장록개라고도 불렀다 한다. 본래 충주군 덕면(德面) 지역으로 장록개 또는 장록포(長彔浦)라고 하였는데,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의하면, 이 지역은 덕면(德面)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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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과 주덕읍, 이류면에 걸쳐 있는 평야. 주덕들이라는 명칭은 1914년 충주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주덕면이 만들어지면서 생겨났다. 그 전까지 이 지역은 통합된 명칭 없이 지역에 따라 버드내들, 장록개들, 계막들, 망청개들, 음버들 등으로 불렸다. 주덕들은 신니면 문락리 수레의산[678m]에서 발원하는 요도천이 주덕읍 지역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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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 요도천 변에 넓은 들판이 있어 방죽안의 서방모랭이에서 보면 모래가 희게 보인다고 하여 흰모루라고 불렀다. 또한 들 가운데에 마을이 길게 이어졌다고 하여 장록개라고도 불렀다 한다. 본래 충주군 덕면(德面) 지역으로 장록개 또는 장록포(長彔浦)라고 하였는데,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의하면, 이 지역은 덕면(德面)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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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 요도천 변에 넓은 들판이 있어 방죽안의 서방모랭이에서 보면 모래가 희게 보인다고 하여 흰모루라고 불렀다. 또한 들 가운데에 마을이 길게 이어졌다고 하여 장록개라고도 불렀다 한다. 본래 충주군 덕면(德面) 지역으로 장록개 또는 장록포(長彔浦)라고 하였는데,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의하면, 이 지역은 덕면(德面)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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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 있는 조선 말기에 지어진 사찰. 충주 장미산성의 동쪽 입구에 위치한 절로, 원래 봉루암(鳳樓菴)이라 부르다 현재는 봉학사라 불리고 있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장미산(薔薇山)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봉학사는 1895년에 비구니 임광제가 봉루암을 창건한 이후 근대에 중창된 산사이다. 1921년에 임광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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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와 장천리에 걸쳐 있는 산. 전설에 따르면 삼국시대에 장미와 보련 남매가 성 쌓기 내기를 하였는데, 이때 남동생인 장미가 성을 쌓았다고 하여 유래한 이름이다. 실제로 긴 꼬리처럼 남한강 가를 감싸는 산이라 하여 장미산(長尾山)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산 북쪽 기슭에 장미산동이라는 마을도 있다. 300m 약간 넘는 낮은 산이라 산성을 쌓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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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와 장천리에 걸쳐 있는 산. 전설에 따르면 삼국시대에 장미와 보련 남매가 성 쌓기 내기를 하였는데, 이때 남동생인 장미가 성을 쌓았다고 하여 유래한 이름이다. 실제로 긴 꼬리처럼 남한강 가를 감싸는 산이라 하여 장미산(長尾山)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산 북쪽 기슭에 장미산동이라는 마을도 있다. 300m 약간 넘는 낮은 산이라 산성을 쌓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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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서 장미산에 있는 산성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중앙탑면 장천리 잣고개의 뒷산 1㎞ 지점에 ‘장미산’으로 불리는 산이 있으며, 이곳에 ‘장미산성’이 있다. 「장미산성 전설」은 아들 장미와 딸 보련이라는 남매 장수가 생사를 건 성 쌓기 내기를 하는 과정에서 축성한 성이라는 축성유래담이다. 1982년 충청북도에서 간행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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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와 신만리에 걸쳐 있는 산. 산의 형태가 마치 병풍처럼 웅장하게 생긴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해발고도 408.8m의 저산성 산지로서, 엄정면과 산척면의 경계를 이루는 남~북 방향 산줄기의 일부를 이룬다. 중생대 쥐라기 흑운모화강암이 해체되지 않고 남은 지대로서, 정상부 부근에는 병풍바위, 서쪽에는 붉은바위가 있는 등 고도는 낮지만 산세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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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장재동과 성종리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장성리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1898년에 나온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 보면 이안면은 9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하나가 성종이다. 1912년 『구한국 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 보면 이안면 19개 리에 성종리, 부연동, 장재리가 나온다. 이들 3개 마을이 191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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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먼학이골에 있는 고려시대 추정 야철지 유적. 대소원면 장성리에는 먼학이골을 비롯하여 성안들 야철지, 갈거리고개 야철지, 갈가실 야철지, 능골1 야철지, 능골2 야철지, 양장고개 야철지 등 쇠똥이 발견되는 야철 유적 추정지가 많다. 충주에서 주덕 방면으로 가는 국도 3호선을 따라가다가 효신산업을 지나면 왼쪽으로 성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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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부연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장성리 부연마을에는 유학사(遊鶴寺)라 전하는 사찰의 터가 있는데, 여기에는 삼층석탑, 석조여래불상 등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인적이 드문 곳이라 도난이 염려되어 1994년 중원민속자료전시관(현 충주박물관)으로 옮겨 야외 전시를 하고 있다. 유학사라는 이름은 절 터가 있는 산이 유학산 자락이었기 때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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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고려 전기 삼층석탑.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부연에는 오래전부터 유학사지(遊鶴寺址)로 전해지는 사지가 있었다. 사지에는 한가운데 석탑이 붕괴된 채로 남아 있었는데, 이 석탑이 유학사지 삼층석탑이다. 또한 절 터에서는 불두(佛頭)가 절단된 석불좌상 1구를 비롯하여 다량의 자기편과 기와편들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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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여래좌상. 장성리 석불좌상은 원래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부연마을의 유학사지(遊鶴寺址)에서 석탑 1기와 함께 전해 내려온 것으로, 현재 충주박물관 야외 전시실에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머리 부분만 결실되고 불신의 나머지 부분은 온전하다. 대의는 통견으로 옷주름이 왼쪽 가슴에서 오른쪽으로 평행곡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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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물류창고 부지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일대는 말 그대로 긴 토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던 지역이고, 인근에 야철 흔적이 확인되고 있어 주목되었던 지역이다. 이곳은 중부내륙고속국도 충주나들목 부근이라 아성기업에서 물류창고를 만들기로 계획하였다. 이에 2005년에 중원문화재연구원에서 지표조사를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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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부연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장성리 부연마을에는 유학사(遊鶴寺)라 전하는 사찰의 터가 있는데, 여기에는 삼층석탑, 석조여래불상 등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인적이 드문 곳이라 도난이 염려되어 1994년 중원민속자료전시관(현 충주박물관)으로 옮겨 야외 전시를 하고 있다. 유학사라는 이름은 절 터가 있는 산이 유학산 자락이었기 때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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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고려 전기 삼층석탑.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부연에는 오래전부터 유학사지(遊鶴寺址)로 전해지는 사지가 있었다. 사지에는 한가운데 석탑이 붕괴된 채로 남아 있었는데, 이 석탑이 유학사지 삼층석탑이다. 또한 절 터에서는 불두(佛頭)가 절단된 석불좌상 1구를 비롯하여 다량의 자기편과 기와편들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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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2리에 있는 장수황씨 집성촌. 가신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흥동(新興洞), 주동(注洞), 가정리(佳亭里), 안락일리(安樂一里), 문암리(文岩里) 각 일부를 병합하면서 가정리의 ‘가’와 신흥리의 ‘신’을 합쳐 가신리(佳新里)로 명명했다. 법정리인 가신리는 3개의 행정리(가신1리·가신2리·가신3리)로 구성되는데 이중 장수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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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고갯길, 사랑하는 이들이 가볍게 손잡고 하늘로 오르는 호젓한 오솔길, 청량한 바람이 언제든 머물고 있는 길, 수안보면 미륵리에서 문경읍 관음리로 가는 길, 가는 길머리에 서면 ‘오랜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하늘재’라는 표식을 무겁게 깔고 앉은 표지석이 있다. 그를 보노라면 언덕 위에 새초롬하게 올라 앉아 있는 삼층석탑이 보이고 잡목과 긴 풀이 자란 틈새로 부처님 머리가 뻐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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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충청북도 충주에서 5일마다 열리는 사설 시장. 고려시대에 주현 관아 부근에서 낮에만 열렸던 정기 시장은 조선시대에 상업을 억제하는 정책을 펴면서 사라졌다. 그러나 생산의 지역적 불균형과 흉년과 같은 자연 재해의 영향으로 15세기 말부터 장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현했으며, 16세기 이래 급속히 확산되어 18세기 중엽에는 1,000개를 넘어섰다. 장문은 양적으로 확산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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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조선시대에서는 유현(儒賢)을 받드는 한편 가문의식이 형성되면서 존조경종(尊祖敬宗)의 정신이 강화되어 묘소 인근에 사당을 건립하여 조상을 제사하였는데, 장암사당 역시 이러한 사당에 해당한다. 본래 장암사당은 1695년(숙종 21)에 창건되어 1702년(숙종 28)에 사액받은 서원이었다. 그러나 흥선 대원군에 의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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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중순(仲淳), 호는 장암(丈巖). 고조부는 좌의정 송강 정철(鄭澈)이고, 증조부는 강릉부사 정종명(鄭宗溟)이다. 할아버지는 생원 정직(鄭溭), 아버지는 청안현감 정경연(鄭慶演), 어머니는 여흥민씨이다. 장암 정호는 병자호란을 피해 충주로 낙향한 정경연의 아들로 1648년(인조 26) 충주의 노은 고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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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누암서원은 1695년(숙종 21) 지방 유림의 공의로 송시열, 민정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되었고, 1702년(숙종 28) 사액서원이 되었다. 1724년(경종 4)에는 소론의 공격으로 사액이 취소되었다가 1725년(영조 1) 회복되었다. 이듬해 권상하를 추향하였다. 1795년(정조 19)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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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조선시대에서는 유현(儒賢)을 받드는 한편 가문의식이 형성되면서 존조경종(尊祖敬宗)의 정신이 강화되어 묘소 인근에 사당을 건립하여 조상을 제사하였는데, 장암사당 역시 이러한 사당에 해당한다. 본래 장암사당은 1695년(숙종 21)에 창건되어 1702년(숙종 28)에 사액받은 서원이었다. 그러나 흥선 대원군에 의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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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 있는 조선 말기에 지어진 사찰. 충주 장미산성의 동쪽 입구에 위치한 절로, 원래 봉루암(鳳樓菴)이라 부르다 현재는 봉학사라 불리고 있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장미산(薔薇山)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봉학사는 1895년에 비구니 임광제가 봉루암을 창건한 이후 근대에 중창된 산사이다. 1921년에 임광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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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양리에 있는 대한불교 법화종 소속 사찰. 장왕사는 1983년에 창건되었는데, 절이 위치한 주덕읍의 북쪽은 노은면과 중앙탑면, 서쪽은 신니면, 동쪽은 대소원면, 남쪽은 음성군 소이면과 괴산군 불정면에 접한다. 북쪽 노은면과의 경계 지점은 우리재, 소고개, 질마루재 등이 솟아 있는 높은 산지를 이루고, 계곡에는 덕련리의 벌미못, 발자널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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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서 장자늪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주시중앙탑면 장천리 장미산 동에서 동남쪽 사이로 완만한 ㄱ자를 없어 놓은 것 같은 늪이 있는데 이것이 ‘장자늪’이다. 「장자늪」 이야기는 이곳에 살던 천석꾼의 집이었는데 시주 온 노승을 학대하여 집이 함몰되어 늪이 되었다고 하는 장자못 유형의 전설이다. 1982년 충청북도에서 간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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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미리, 형천리, 부도동 일부가 새로운 법정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때 큰 마을인 장미와 형천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장천리라는 명칭이 만들어졌다. 가흥면에서는 남한강쪽 상류에 있었기 때문에 상동이라 불렀다. 장천리 지역은 옛날부터 여름에 수해가 잦았기 때문에 물길이 남북으로 길게 뻗쳤고 그 때문에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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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장천리 고분군은 남한강에 의해 형성된 장자늪 서쪽, 장미산성 북동쪽 구릉 말단부에 위치한다. 장미산성 북동 산록으로부터 옛 가금중학교 자리까지 이어져 있다. 장천리 고분군은 1998년 문화유적분포지도 작성을 위한 지표 조사 과정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을 뿐 정식으로 발굴 조사되지 않았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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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 있는 반공투사 여섯 명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 6·25전쟁 중 목숨을 바쳐 싸운 이선규(李善圭), 권중대(權重大), 홍선식(洪善植), 김용기(金容琪), 변용출(卞龍出), 박삼수(朴三壽) 등의 넋을 위로하고 이들의 반공 정신과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6월 25일 대한노인회 목계노인회 회장 우태원 등의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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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 있는 선사시대 토기산포지. 중앙탑면 장천리는 남한강을 경계로 엄정면 목계리와 마주하고 있다. 남한강변에 발달한 늪지와 충적대지를 이용하여 대규모 무 단지를 이루어 단무지용 무를 생산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장미산성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가흥쪽으로 200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장천리 형천마을로 가는 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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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산줄기를 이루는 봉우리들 사이의 낮은 능선부. 한반도는 오랜 기간 동안 변성을 받거나 마그마의 관입으로 더욱 단단한 지각으로 구성된 안정 지괴에 속한다. 게다가 남동에서 북서로 미는 태평양판을 비롯하여 남쪽에서 밀려오는 필리핀판, 동쪽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온 동해 지각의 확장 등 다양한 방향의 횡압력을 직간접적으로 받아 왔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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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신효리 재앙골에 있는 고려시대 토기와 자기 산포지. 충주시 노은면과 주덕읍을 연결하는 지방도 599호선은 신효리 신대마을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주덕의 덕련리·장록리·제내리를 거쳐 주덕읍 소재지인 신양리까지 연결된다. 신대마을에서 한포천을 건너는 신효교를 지나면 바로 중부내륙고속국도가 지난다. 그 아래로 통과해야 주덕으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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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재오개리에서 재오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주시 살미면 면소재지인 세성리·재오개리를 지나 충주시 목벌동로 향하는 약 4㎞ 지점에 재고개라는 고개가 있다. 이 고개로 인해 재오개리라는 마을이 생겼으며, 재오개는 상재오개와 하재오개 두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1982년 충청북도에서 간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는데, 이는 당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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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재오개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초기 재오개 전설에서 유래한다. 재오개라는 한자말은 다섯 살짜리 왕자라는 뜻이다. 이 곳 재오개마을에 왕기를 타고난 아이가 있어, 다섯 살에 이미 문무에 걸쳐 신기를 보여 주었다. 이러한 소문은 당시 조정에 알려졌고, 그 아이가 새로운 왕조를 세울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퍼졌다. 이에 조정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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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재오개리 하재오개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1967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구 밖 길옆에 서낭당이 있었다. 키 15m, 둘레 5.5m가량의 느티나무 둘레에 토석 제단을 마련하고 제사를 올렸는데,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되어 충주호에 수몰되면서 폐지되었다. 현재는 하재오개 산기슭에 있는 서낭당만 보존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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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재오개리 하재오개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1967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구 밖 길옆에 서낭당이 있었다. 키 15m, 둘레 5.5m가량의 느티나무 둘레에 토석 제단을 마련하고 제사를 올렸는데,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되어 충주호에 수몰되면서 폐지되었다. 현재는 하재오개 산기슭에 있는 서낭당만 보존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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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재오개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초기 재오개 전설에서 유래한다. 재오개라는 한자말은 다섯 살짜리 왕자라는 뜻이다. 이 곳 재오개마을에 왕기를 타고난 아이가 있어, 다섯 살에 이미 문무에 걸쳐 신기를 보여 주었다. 이러한 소문은 당시 조정에 알려졌고, 그 아이가 새로운 왕조를 세울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퍼졌다. 이에 조정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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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인공 저수 시설. 통합 충주시 소재의 저수지는 한국농촌공사 충주·제천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는 저수지와 충주시청 농업정책국 농정과에서 관리하고 있는 저수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 중 한국농촌공사 충주·제천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는 저수지는 18개이고, 충주시청 농업정책국 농정과에서 관리하고 있는 저수지는 56개로 충주시에는 총 74개의 저수지가 운영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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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양여(養汝). 모당 홍이상(洪履祥)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첨지중추부사 홍만최(洪萬最), 조부는 홍문관교리 홍중현(洪重鉉), 아버지는 홍인보(洪寅輔)이고, 어머니는 수원최씨이다. 홍차기(洪此奇)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 홍인보는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 수원최씨는 홍차기가 열 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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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 온천리, 고운리, 중산리에 걸쳐 있는 산. 적보산은 일명 직포산, 적포산(積抱山), 첩보산, 첩푸산, 구봉산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산 중턱에 약 100m 간격으로 아홉 개의 소봉이 등고선을 따라 솟아 있어 구봉산(九峰山)이라고도 하는데 구봉 아래에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활만인지지(活萬人之地)의 명당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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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살미면 세성리에서 수안보면 수회리에서 적보산에 있는 명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수안보면 수회리의 동남쪽에 높이 698m의 적보산이 있다. 지금 이곳에는 중앙경찰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이 산에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 명당이 있다는 전설이 전승되고 있다. 2002년 충주시에서 발행한 『충주의 구비문학』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1994년 이노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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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 온천리, 고운리, 중산리에 걸쳐 있는 산. 적보산은 일명 직포산, 적포산(積抱山), 첩보산, 첩푸산, 구봉산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산 중턱에 약 100m 간격으로 아홉 개의 소봉이 등고선을 따라 솟아 있어 구봉산(九峰山)이라고도 하는데 구봉 아래에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활만인지지(活萬人之地)의 명당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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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고려 전기 삼층석탑.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부연에는 오래전부터 유학사지(遊鶴寺址)로 전해지는 사지가 있었다. 사지에는 한가운데 석탑이 붕괴된 채로 남아 있었는데, 이 석탑이 유학사지 삼층석탑이다. 또한 절 터에서는 불두(佛頭)가 절단된 석불좌상 1구를 비롯하여 다량의 자기편과 기와편들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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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진작가협회 충주지부에서 해마다 열고 있는 전국 사진 촬영대회. 2000년 10월 제30회 우륵문화제와 제3회 충주세계무술축제를 전국적으로 홍보하기 위하여 충주시의 후원을 받아 한국사진작가협회 충주지부 주최로 제1회 충주전국사진촬영대회가 개최되었다. 충주전국사진촬영대회는 우륵문화제와 충주세계무술축제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벌어지는 행사를 자유롭게 촬영하여 시상하는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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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진작가협회 충주지부에서 해마다 개최하는 전국 사진 공모전.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기념하는 제1회 충주전국사진공모전이 개최되어 1,100여 점의 많은 작품이 응모하였다. 충주전국사진공모전은 매년 2월 말 접수를 시작하여 전문가들의 심사를 거쳐 3월 수상자 발표를 하고 있다. 출품 자격은 전국에 거주하는 사진인이며, 작품 내용은 미풍양속에 저해되지 않는 국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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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 호암예술관에서 매년 9월 열리는 전국 규모 가야금 경연대회. 전국탄금대가야금경연대회는 악성 우륵의 얼이 살아 숨 쉬는 탄금대의 고장 충주시에서 전국 제일의 규모로 펼쳐지는 가야금 대회이다. 가야금 연주의 보급과 발전을 위하여 기획되었으며,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주지부에서 개최하는 우륵문화제와 함께 열리는 충주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행사로서 전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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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8월 충청북도 충주시에 설립되었던 전국학생총연맹 충북도연맹 충주지부. 1946년 7월 31일 반탁·반공 학생운동을 목적으로 반탁전국학생연맹(일명 반탁학련)·경성대학동지회·독립학생전선·서북학생원호회·유학생동맹 등의 단체가 통합하여 전국학생총연맹이 결성되었다. 이어, 동년 8월 초 청주에서 충북도연맹이 결성됨에 따라 충주 지역에도 충주지구연맹이 결성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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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8월 충청북도 충주시에 설립되었던 전국학생총연맹 충북도연맹 충주지부. 1946년 7월 31일 반탁·반공 학생운동을 목적으로 반탁전국학생연맹(일명 반탁학련)·경성대학동지회·독립학생전선·서북학생원호회·유학생동맹 등의 단체가 통합하여 전국학생총연맹이 결성되었다. 이어, 동년 8월 초 청주에서 충북도연맹이 결성됨에 따라 충주 지역에도 충주지구연맹이 결성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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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중리에 있는 전국한우협회 산하 충주 지부. 한우 산업의 발전과 회원의 공동 이익 및 권익을 도모하며, 국가의 축산 진흥 시책과 국민 경제 향상에 기여하기 위하여 창립되었다. 1999년 9월 전국한우협회 창립총회를 갖고 출범하였으며, 2001년 9월 제1회 한우인의 날 행사를 개최한 이래 매년 한우인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전국한우협회는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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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20주년이 지난 1965년에 제내리가 농기업 선도 시범 마을에 선정되어 1차연도 사업으로 전기가설이 책정되었다. 전기는 마을 사람들의 꿈이요 희망이었다. 외부의 가설비는 정부 보조였으며, 내선공사비는 자부담으로 하되 200등 이상이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풍덕 구장 이복영이 일본 농업을 견학 중이었으므로 구장을 대신한 이세영이 풍덕에서는 그 숫자를 채울 수 없었으므로 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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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낙향한 무신. 본관은 천안(天安). 초명은 전이(全隬). 전신(全信)의 현손이다. 사위는 박팽년(朴彭年)이다. 전념은 태종 때 대호군(大護軍)으로 있다가 지방관으로 나갔다. 세종 때 용기위상장군(龍驥衛上將軍)·곡산부사(谷山府使) 등을 역임했다. 사위인 박팽년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멸족되자 난을 피하여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면 대곡리로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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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주군수를 역임했던 행정가. 전석영(全錫永)은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서 중추원 부문에 명기되어 있다.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난 전석영(全錫永)은 1921년 중추원이 개편되어 각 지방의 유력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할 때 중추원참의에 임명되었다. 이후 괴산군수와 영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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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주판관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할아버지는 판공주목사(判公州牧使) 이구직(李丘直)이며, 아버지는 중추원사 이정간(李貞幹)이며, 어머니는 순평군(順平君) 문달한(文達漢)의 딸로서 정경부인(貞敬夫人)이다. 이사관은 처음에 중랑장에 보임되었다가 여러 자리를 거쳐 사헌부감찰이 되었다. 1405년(태종 5) 대사헌의 잘못을 나무란 까닭에 좌천되었으나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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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충주 지역의 생활과 습관을 반영한 놀이. 민속놀이는 옛날부터 민간에 전승되어 오는 여러 가지 놀이로서, 향토색을 지니며 전통적으로 해마다 행하여 오는 놀이를 말한다.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어서 전승놀이라고도 하며, 여기에는 유희(遊戱)·오락·경기·예능 등이 모두 포함된다. 민중의 멋과 흥과 해학과 신명을 담고 있으며, 민족의 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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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자겸(子謙)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칭송되었다. 영조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 있다가 통정대부거창도호부사 겸 진주진영병마첨절제사를 지내고 수안(遂安)·제주부(濟州府)에도 있었다. 어버이의 병환이 위독해지자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도를 하니 효험이 있었다. 또한 어버이가 한겨울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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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교육자. 전완근은 아버지 전시명과 어머니 김경순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3년 청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살미국민학교 훈도를 시작으로 교직에 발을 내딛었다. 약 40년간 교단과 교육 관련 업무에 종사하면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학력 신장과 깨끗하고 아름다운 학교 환경 조성에 힘썼다. 부임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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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신효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전의이씨의 시조 이도(李棹)의 본래 이름은 이치(李齒)다. 이도는 후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범람하는 금강을 건너려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공으로 왕건으로부터 도(棹)라는 이름을 하사 받았다. 또한 삼한개국공신에 오르고 전의후에 봉해지면서 전의(현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를 식읍으로 하사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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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낙향한 무신. 본관은 천안(天安). 초명은 전이(全隬). 전신(全信)의 현손이다. 사위는 박팽년(朴彭年)이다. 전념은 태종 때 대호군(大護軍)으로 있다가 지방관으로 나갔다. 세종 때 용기위상장군(龍驥衛上將軍)·곡산부사(谷山府使) 등을 역임했다. 사위인 박팽년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멸족되자 난을 피하여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면 대곡리로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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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습을 시조로 하고 유영길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 세거 성씨. 전주유씨는 유습(柳濕)을 시조로 한다. 유습(柳濕)이 고려 말에 완산백에 추봉되면서 후손들이 유습(柳濕)을 시조로 하여 전주(옛 이름은 완산)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전주유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89명, 재상 1명, 공신 2명, 대제학 4명, 청백리 10명을 배출했다. 충주에 입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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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하곡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문. 전주이씨 사효열각은 전주이씨 문중 인물 4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명정(命旌)되어 건립된 것으로, 이유양(李有養)의 처 풍산홍씨(豊山洪氏)와 장남 이적(李績), 5남 이서(李緖), 그리고 이적의 처 파평윤씨(坡平尹氏)의 효행을 기리고자 합설하여 세워졌다. 전주이씨인 이적과 이서는 이유양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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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법동리에 있는 전주이씨 경녕군파 집성촌. 법동리(法洞里)는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의 8개 법정리 중 하나로 법동이란 이름은 옛날 사찰 법당이 있어서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경녕군 묘가 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응동에 있다. 전주이씨 법동리 집성촌은 경녕군의 7세손 이성(李成)이 임진왜란 전후 위토(성묘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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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하곡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문. 전주이씨 사효열각은 전주이씨 문중 인물 4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명정(命旌)되어 건립된 것으로, 이유양(李有養)의 처 풍산홍씨(豊山洪氏)와 장남 이적(李績), 5남 이서(李緖), 그리고 이적의 처 파평윤씨(坡平尹氏)의 효행을 기리고자 합설하여 세워졌다. 전주이씨인 이적과 이서는 이유양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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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하곡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문. 전주이씨 사효열각은 전주이씨 문중 인물 4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명정(命旌)되어 건립된 것으로, 이유양(李有養)의 처 풍산홍씨(豊山洪氏)와 장남 이적(李績), 5남 이서(李緖), 그리고 이적의 처 파평윤씨(坡平尹氏)의 효행을 기리고자 합설하여 세워졌다. 전주이씨인 이적과 이서는 이유양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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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수견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空)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지만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李安社) 이전의 계보는 전혀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2파로서 거의 대군(정비의 소생)과 군(후궁의 소생)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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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용관동에 있는 전주이씨 한남군파 집성촌. 용관동은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으로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용두원과 관산의 첫 글자를 따서 용관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空)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전주이씨 한남군파의 파조인 한남군(漢南君)[?~1459]은 세종의 12남으로 어머니는 혜빈 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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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희열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空)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지만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李安社) 이전의 계보는 전혀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2파로서 거의 대군(정비의 소생)과 군(후궁의 소생)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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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에 있는 전주이씨 진안대군파 집성촌. 제내리(堤內里)는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속한 법정리이다. 이전에 방죽이 있었으므로 방죽안이라 하였고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제내리다. 제내리는 풍덕·성동·대촌 3개의 행정동(리)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주이씨 제내리 집성촌은 1590년대 중반 조선 태조의 장남 진안대군의 9세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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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건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空)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지만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李安社) 이전의 계보는 전혀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2파로서 거의 대군(정비의 소생)과 군(후궁의 소생)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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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호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功)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지만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李安社) 이전의 계보는 전혀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0여 파로 거의 대군(정비의 소생)과 군(후궁의 소생)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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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호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功)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지만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李安社) 이전의 계보는 전혀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0여 파로 거의 대군(정비의 소생)과 군(후궁의 소생)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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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 맹동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문. 초계정씨 정수동 처 전주이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03년(순조 3) 명정(命旌)되어 건립한 건물이다. 전주이씨는 어느 날 시어머니가 사망하자 마을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의심하여 시아버지를 집 뒤 서당에 은거케 하였는데, 시아버지에게 병이 발병하자 새벽 일찍 약을 달여 남편과 같이 간호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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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 맹동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문. 초계정씨 정수동 처 전주이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03년(순조 3) 명정(命旌)되어 건립한 건물이다. 전주이씨는 어느 날 시어머니가 사망하자 마을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의심하여 시아버지를 집 뒤 서당에 은거케 하였는데, 시아버지에게 병이 발병하자 새벽 일찍 약을 달여 남편과 같이 간호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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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 능말마을 입구에 있는 김성배 처 전주이씨의 효열비. 김성배 처 전주이씨는 1897년(고종 34) 괴산에서 전주군수 이삼응(李參應)의 4녀로 태어나 14세 때 김성배와 결혼하여 시부모를 모시고 9년간 딸 셋을 낳고 살았다. 그러다 남편이 병에 걸리자 3년간 정성껏 간호를 하였고, 시아버지 상을 당하자 제사를 정성껏 치렀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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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전통 가옥.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는 전통 가옥이 별로 남아있지 않으나 대소원면 문주리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문주리의 주거 형식은 민가 형식으로 목조를 근간으로 한 가구 구조를 보이고 있다. 평면은 일반적으로 一자, ㄱ자, 튼ㅁ자 형이 주가 되어 다양한 결합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공간 특성으로 보면 건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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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결혼 예식. 전통 혼례는 크게 의혼(議婚), 대례(大禮), 후례(後禮)의 세 가지 절차로 진행된다. 의혼은 양가가 중매인을 통해 서로의 의사를 조절할 때부터 대례를 거행하기 이전까지를 말한다. 대례는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행하는 모든 의례를 말하는데 전안례, 교배례, 합근례를 포함한다. 후례는 대례가 끝난 뒤 신부가 신랑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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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내리에는 마을에 다음과 같은 풍덕전거(豊德奠居)가 전해지고 있다. 마을 개척자인 이덕량이 방죽안을 개척하여 성동·대촌·풍덕의 세 마을에 터를 닦아 세 아들에게 각기 나누어 장남은 성동에, 차남은 대촌에, 그리고 막내는 자신이 자리 잡은 풍덕에 살게 하였다. 그런데 이덕량은 막내를 제일 귀여워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가장 좋은 터를 잡아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여 풍수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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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 석포마을에 있는 전희철의 공적을 기리는 비. 전희철(全熙喆)은 천안전씨(天安全氏) 곡산공파(谷山公派) 문중의 일에 열과 성을 다하여 족보 발간, 사당 건축, 신도비 건립 등의 공적이 있고 산수국민학교를 세울 당시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열의를 보였다. 또한 성품이 온화하고 양순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검소하므로 천안전씨 곡산공파 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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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고유의 명절에 특별히 만들어 먹는 음식. 한반도의 중심지인 충주 지역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농업이 중심이 되었던 연유로 과거부터 계절마다 세시풍속이 있었다. 이때가 되면 계절에 따른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고 가족과 이웃 간에 골고루 나누어 먹었다. 이는 지루한 생활의 반복을 활력화하고 적당한 행사와 음식으로 변화를 추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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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모를 찌면서 부르는 농업노동요. 「절우자」는 충주 지방에서 봄철에 농군들이 모판에서 모내기 할 논으로 모를 옮겨가기 위하여 모를 찌면서 부르는 노동요인데, 「모내기 소리」, 「모찌기 노래」라고도 부른다. 이 소리를 「절우자」라고 함은 후렴구에 “절우자 절우자”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절우자라는 말은 모를 찐다는 뜻이다. 고정옥은 절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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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백탄(栢灘). 아버지는 한산군(漢山君) 조인옥(趙仁沃)이다. 아들은 조효생(趙孝生)·조순생(趙順生)·조관생(趙觀生)·조덕생(趙德生)이며 딸은 의장궁주로 세종의 후궁이다. 조뢰는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직위를 거쳐 1413년(태종 13)에는 순금사대호군이 되었다. 1418년 수원부사를 거쳐 순성진첨절제사(蓴城鎭僉節制使)로 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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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증조할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홍수(洪脩)이고, 할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홍이상(洪履祥)이다. 아버지는 사헌부장령을 지낸 홍곽(洪㰌), 어머니는 파평윤씨이다. 친아버지는 홍탁이다. 1646년(인조 24) 생원이 되고, 1653년(효종 4) 알성시 문과 을과 1위로 급제하였다. 1655년(효종 6) 사간원정언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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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정경순은 조선 후기 영조 대부터 정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으로, 문장과 덕망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기개를 지닌 선비였다고 전한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시회(時晦), 호는 수정옹(修井翁).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鄭太和)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유생 정석경(鄭錫慶)이다. 형은 정원순(鄭元淳), 동생은 정지순(鄭持淳)이다. 정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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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선여(善餘). 증조할아버지는 송강 정철(鄭澈), 할아버지는 강릉부사를 지낸 정명(鄭溟), 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정직(鄭溭), 어머니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박준(朴峻)의 딸 비안박씨이다. 슬하에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정주(鄭澍), 통덕랑에 오른 정린(鄭潾), 상의원정을 지낸 정필(鄭泌), 정섭(鄭涉), 영의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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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상보(相寶). 설곡(雪谷) 정보(鄭保)의 후손이다. 조선 정조(正祖) 때에 사마시(司馬)에 합격하고 용인에 있다가 충주(忠州)에 와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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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옥(群玉). 세종의 12남이자 네 번째 서자로, 어머니는 혜빈 양씨이다. 부인은 예빈녹사 권격(權格)의 딸로,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흥안군(興安君) 이중생(李衆生)이며 손자는 호천군(湖川君) 이옥근(李玉根)과 이인도정(利仁都正) 이숙근(李叔根)이다. 성품이 순수하며 효심과 우애심이 깊고 처신이 단정하고 무거운데다 검약하고 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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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주사록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峰). 봉화호장을 지낸 정공미(鄭公美)의 4세손으로 검교밀직제학을 지낸 아버지 정운경(鄭云敬)과 어머니 단양우씨 사이에서 3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정도전(鄭道傳)은 1337년(충숙왕 복위6) 단양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남한강의 도담삼봉을 좋아해 정자를 짓고 즐겨 찾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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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충신·효자·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건축물. 정문이란 정려(旌閭)라고도 하며, 충신·효자·열녀를 표창하여 그 집이나 마을 앞에 세운 건축물을 말한다. 대개 붉은 살을 두른 사방 한 칸 형식이나 문중 정려를 한 곳에 모아 여러 칸으로 만들거나 가옥의 출입구에 현판을 단 경우도 있다.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하는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건립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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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무기(無己),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 김변(金賆)이며, 장인은 허공(許珙)이다. 1290년(충렬왕 16)에 원의 반적(叛賊) 합단(哈丹)이 수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침범하자 김륜의 가족들도 강화로 피난하였는데, 이때 김륜의 장인 허공(許珙)이 재상의 직무로 인해 함께 가지 못하게 되자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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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신부. 정로베르토는 1928년 10월 19일 메사추세츠주 노스아담스에서 출생하여 1960년 6월 사제서품 후 바로 한국에 왔다. 1961년 청주교구 충주성당 보좌신부를 역임하였으며, 1962년 청주교구 수안보성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아 아버지가 물려준 전 재산을 수안보성당 건축에 희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본당, 사제관, 수녀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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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탁 씨, 그는 배움에 대한 미련은 별로 없어 보인다. 6·25 후 수안보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석 달을 다녔지만, 너무 거리가 멀어 다니다 말았다고 한다. 하기야 산길 왕복 60리 길을 다닌다는 것은 사실 어린아이에게 무리였을 것이다. 그 뒤에 미륵사지의 집 한 채에서 가마니 깔고 글 아는 동네 사람이 가르쳐 주었고 다시 수안보초등학교 김창진 선생님이 ‘정식으로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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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충신·효자·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건축물. 정문이란 정려(旌閭)라고도 하며, 충신·효자·열녀를 표창하여 그 집이나 마을 앞에 세운 건축물을 말한다. 대개 붉은 살을 두른 사방 한 칸 형식이나 문중 정려를 한 곳에 모아 여러 칸으로 만들거나 가옥의 출입구에 현판을 단 경우도 있다.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하는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건립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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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경량(景亮), 호는 한천(寒泉). 아버지는 생원(生員) 허초(許礎)이고 어머니는 임하임씨(臨河林氏)이다. 숙종조 영의정을 지낸 허적의 할아버지이다. 선조 때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등용된 뒤 1587년(선조 20) 선공감 봉사(奉事)가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 왕을 따라 호종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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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경내에 있는 조선 후기 임경업의 처 완산이씨의 정렬을 기린 비. 20세에 임경업의 처가 된 진안대군 7세손인 완산이씨는 시부모에 효를 다하고 남편에게 순종하는 미덕을 보였다. 1637년(인조 15)에 임경업은 의주부윤에서 평안도의 병권을 장악하자 대의를 떨쳐 명나라와 소통을 하였고, 이를 알게 된 청나라에서는 임경업을 잡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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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체육인이자 기업인. 정상희는 노은초등학교와 양정중학교를 거쳐 1930년 중국 상하이교통대학 1년을 수료하고 1935년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1939년 협신산업상사 대표를 지냈으며, 1949년 삼호방직 부사장을 지냈다. 1957년 제일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 사장을 거쳐 1968년 삼호방직무역주식회사 회장에 취임하였다. 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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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성응(聖應), 호는 송월당(松月堂). 증조할아버지는 증좌찬성 정직(鄭溭)이며, 할아버지는 청안현감 증영의정 정경연(鄭慶演)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정주(鄭澍)이고, 외할아버지는 박대항(朴大恒), 장인은 민화중(閔華重), 작은아버지는 정호(鄭澔), 동생은 정장하(鄭章河)이다. 1699년(숙종 25) 증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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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이신(而信)·겸부(兼夫). 아버지는 대제학을 지낸 정척(鄭陟)이고, 슬하에 정주신(鄭舟臣)·정매신(鄭梅臣)을 두었다. 정성근(鄭誠謹)은 김종직(金宗直) 문하에서 수학하고, 1474년(성종 5)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관직에 올랐다. 성균관전적, 사헌부지평 등을 거쳐 1479년 홍문관수찬겸검토관, 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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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정수(正受), 호는 월봉(月峰). 아버지는 사직서령(社稷署令)을 지낸 김광렬(金光烈)이다. 1582년(선조 15) 진사시, 1588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승문원부자정을 지내고 예문관검열 재직 중 사사(史事)로 인하여 파직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근(현 경기도 양평)에 피신해 있다가 왜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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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부. 본관은 전주(全州). 남편은 유생 정수동이다. 정수동 처 전주이씨의 구체적 생애에 관해서는 알 수 없으나 효부로서 칭송이 자자했다고 전해진다. 1743년(영조 19) 전주이씨의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명해지고 정려가 건립되었다.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 맹동에 있는 정려는 남향으로 배치되었고, 정면 1칸, 측면 1칸의 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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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의병. 정시항은 충청북도 음성군의 금광에서 노동자로 일하다가 1907년 여름에 고종이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강제로 물러나고 군대가 해산되었을 때 의병에 투신했다. 이인영이 이끄는 관동의병진에 속했던 정봉준(鄭鳳俊)이 이끄는 의병 부대에 가담한 후 충주의 노은면 전투, 음성의 사장(射場)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이후 정봉준 의병장을 따라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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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공화(公華), 호는 염재(念齋). 송강 정철(鄭澈)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정순하(鄭舜河), 어머니는 김익항의 딸이다. 처 평산신씨와의 사이에 정국옹(鄭菊翁), 정지환(鄭趾煥) 2남을 두었다. 1701년(숙종 27) 충주에서 태어난 정실(鄭宲)은 도암 이재(李縡)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1733년(영조 9) 생원시에 장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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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정심사는 대림산(大林山) 중턱 기슭에 위치해 있는데, 협곡을 끼고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앞에는 달천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건립 연대는 추정하기 어렵지만 고려 후기에는 월은사(月隱寺), 조선시대에는 달암사(達岩寺), 또는 호암사(虎岩寺), 일제강점기 때는 개운사(開雲寺)로 명명되었다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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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신부. 정로베르토는 1928년 10월 19일 메사추세츠주 노스아담스에서 출생하여 1960년 6월 사제서품 후 바로 한국에 왔다. 1961년 청주교구 충주성당 보좌신부를 역임하였으며, 1962년 청주교구 수안보성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아 아버지가 물려준 전 재산을 수안보성당 건축에 희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본당, 사제관, 수녀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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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부인은 윤치호(尹致昊)의 조카이다. 이종훈은 25세 때 동학에 입교하였다. 1894년 9월 18일 북접교주 최시형이 각 지역 접주들을 청산에 소집하고 기포할 것을 지시하자 충주에서 기포하였다. 10월 초순에는 농민군을 이끌고 괴산에서 관군과 충청북도 충주시 가흥면에 주둔해 있던 일본 병참군과 접전하였다. 이후 공주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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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화중(和仲). 아버지는 통훈대부행사헌부감찰(通訓大夫行司憲府監察) 정경연(鄭慶演)이고, 어머니 덕수이씨(德水李氏)는 이직(李稷)의 딸이다. 형은 통덕랑(通德郞) 정주(鄭澍)와 정인(鄭潾), 정비(鄭泌), 정섭(鄭涉)과 영의정을 지낸 장암(丈巖) 정호(鄭澔), 정진(鄭津)이며, 동생은 정영(鄭泳)이다. 어려서부터 품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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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일(迎日). 호는 지산(志山). 아버지는 정운한(鄭雲漢)이다. 정원택은 1911년 김교헌(金敎獻)·김유근(金柳瑾)을 만나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3년 상해로 건너가 신규식(申圭植)이 이끄는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8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할 사절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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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형 씨는 마수리 농요보존회원 중 두 번째로 지남기 선생을 잘 아는 사람이다. 1943년에 중원군 살미면 문화리 2구에서 태어난 유진형 씨는 음악적인 재질이 있는지 어릴 때부터 농악대를 쫓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청년이 되어 꽹과리도 잘 두드리고 장구도 잘 치고 상모도 잘 돌리게 되었다. 그리고 농악놀이나 무당의 푸닥거리에는 빼놓지 않고 구경을 가거나 참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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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일(遺佚). 본관은 연일(延日) 또는 영일(迎日). 자는 미장(美長), 호는 주진처사(注津處士). 아버지는 행사헌부감찰(行司憲府監察) 통훈대부(通訓大夫) 정경연(鄭慶演)이고, 어머니는 덕수이씨(德水李氏) 이직(李稷)의 딸이다. 손위 형으로는 통덕랑(通德郞) 정주(鄭澍)가 있고, 손아래 아우로는 정비(鄭泌)·정섭(鄭涉), 영의정을 지낸 장암(丈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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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구장을 역임한 정인덕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비. 1937년 신니면 용원2구 주민들이 20여 년간 구장직을 역임하며 마을 일을 열심히 수행한 정인덕(鄭寅德)의 공적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세웠다. 구 국도 3호선 변에 위치한 용원저수지 배수구 입구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비좌규수의 형태이며, 상단이 하단에 비하여 약간 넓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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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교육자. 정인보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조선 명종 대의 대제학인 정유길(鄭惟吉)의 후손으로, 철종 대의 영의정 정원용(鄭元容)의 증손인 장례원부경과 호조참판을 역임한 정은조(鄭誾朝)의 아들이다. 30여 년을 대학 강단에서 보내며 실학, 양명학, 역사학 등을 후학들에게 지도하였고, 높은 학덕으로 존경받았던 학자이자 교육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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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육영사업가. 정인시는 1883년 정관조의 3남으로 태어났으며, 1945년 1월 화재로 소실된 주덕초등학교 재건축을 위해 아들 4형제와 함께 15개 교실을 건축할 수 있는 비용을 희사하여 지역의 교육 기반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였다. 1990년 3월 30일 정인시의 향토 사랑과 교육 사랑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주덕면민과 졸업생들이 주덕초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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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자유(子游). 시호는 정장(貞莊). 아버지는 광주목사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어득해(漁得海)이다. 어유소(漁有沼)는 1451년(문종 1) 내금위에 선발되고 1456년(세조 2)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사복시직장, 사헌부감찰을 역임하였다. 1460년 두만강을 건너 조선 백성들의 재산을 약탈하던 여진, 알타이, 골간, 올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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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자유(子游). 시호는 정장(貞莊). 아버지는 광주목사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어득해(漁得海)이다. 어유소(漁有沼)는 1451년(문종 1) 내금위에 선발되고 1456년(세조 2)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사복시직장, 사헌부감찰을 역임하였다. 1460년 두만강을 건너 조선 백성들의 재산을 약탈하던 여진, 알타이, 골간, 올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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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원미(元美), 호는 국옹(菊翁). 송강 정철(鄭澈)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순하(鄭舜河),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정실(鄭宲), 어머니는 평산신씨, 처는 덕수이씨이다. 1730년(영조 6) 충주에서 태어난 정지환(鄭趾煥)은 1763년(영조 40) 진사시에 급제하고, 이어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다. 이후 관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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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영일(迎日). 증조부는 증좌찬성 정직(鄭稷), 조부는 청안현감 정경연(鄭慶演), 아버지는 통덕랑 정린(鄭潾), 어머니는 양주최씨이다. 권상하의 문인으로 기품이 단아하고 은덕이 있었으며,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효우도 돈독하고 청렴결백한 가풍을 이루었다. 유학 경전과 『근사록(近思錄)』을 읽으며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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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대장군 정의(鄭顗)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찬성사 정해(鄭瑎)이며 아들은 정오(鄭䫨)와 정포(鄭誧)이다. 정책은 충주목사를 역임했으며 음보(蔭補)로 여러 차례 천거되어 대호군(大護軍)이 되었다. 충숙왕이 참소를 받아 원(元)에 억류되어 있을 때, 궁궐도감사(宮闕都監使)가 되어 충숙왕의 내탕(內帑)이 이미 탕진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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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음력 1월 1일부터 1월 12일까지 행하는 세시 풍속. 우리 조상들은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열이튿날까지 열두 동물의 간지에 따라 동물과 관계되는 날로 정하고 여러 가지 금기 사항을 정하여 몸을 삼갔다. 십이지일은 상자일(上子日, 쥐날), 상축일(上丑日, 소날), 상인일(上寅日, 범날), 상묘일(上卯日, 토끼날), 상진일(上辰日, 용날), 상사일(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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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충주에서 정치는 비제도적인 정치 영역과 제도적인 정치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비제도적인 정치 영역은 해방 직후 정부 수립 이전 시기, 4월 혁명과 5.16쿠데타 직후의 군부정권 시기, 그리고 유신체제 이후 등장한 권위주의 체제에서의 민주화 운동 시기 등에서 활동한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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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서예가. 1960년대 충주 지역 서예 분야의 경우 타 지역 서예가들이 개인전을 여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 이 시기 정태석은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민사계장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충주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죽사 박충식에게 단체 지도를 요청하여 충주 지역 서예 동호인들과 함께 수년 간 지도를 받고 실력을 쌓아갔다. 그 후에도 정태석은 라이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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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서예가. 정태오는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학과 서예를 배웠는데, 당시부터 서예에 소질이 뛰어나 배일 사상이 강한 유학자였던 효제(曉齊) 최한구(崔翰求)에게 전통적 수련 방법으로 서예를 익히게 되었다. 그 후 청년기에는 농사에 전념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사회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재직하던 검찰청에서 퇴직한 정태오는 서울에 있는 동양문화연구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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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대래(大來). 아버지는 정선교(鄭善敎)이다. 정태호는 1858년(철종 9)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860년에 부교리가 되었고, 1864년(고종 1)에 우부승지를 거쳐 이조참의·남양부사를 지냈다. 1869년 사간원대사간, 1871년 성균관대사성, 1872년 사간원대사간을 역임하였으며, 1874년 경기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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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일(迎日). 호는 계운(桂雲)·백양(白洋). 아버지는 정낙중(鄭洛中)이다. 정태희는 1919년 3·1운동 후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평양에서 동지들과 함께 대한국민총회(大韓國民總會)를 조직하고 임시정부를 지원하며 농민들의 지식을 개발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로 다짐하였다. 그해 12월 상해로 망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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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는 고려 전기 고승 법경대사의 부도탑비. 법경대사는 879년(헌강왕 5)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불법을 배웠고, 20세에 불가에 입문하였다. 906년에는 당나라에 들어가 도건대사에게 가르침을 받다 924년(태조 7)에 귀국하였다. 경애왕이 국사로 대우하며 정토사 주지로 임명하였다. 941년(태조 24) 63세로 입적하자 태조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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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정토사지에 있던 고려 전기 홍법국사 탑비. 홍법국사는 통일신라 선덕왕대에 태어나 12세의 나이에 출가하였고, 당나라를 다녀온 뒤 선(禪)을 크게 일으켜 국사 칭호를 받았다. 시호를 홍법, 탑명을 실상(實相)이라 하였다. 정토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고려 목종이 시호를 홍법, 탑명을 실상(實相)이라 내려주러 탑비를 건립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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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정토사지에는 보물 제17호인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忠州 淨土寺址 法鏡大師塔碑)가 위치하고 있었다. 정토사와 관련된 문헌 기록은 많지 않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 약간의 기록이 남아 있어 사찰의 연혁을 살피는 데 도움을 준다. 『신증동국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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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는 산. 1898년에 편찬된 『충주군읍지(忠州郡邑誌)』의 산천조에서 정토산은 충주군에서 북쪽으로 30리에 떨어져 있는 천등산의 줄기로서 일명 개천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정토산의 고리실(일명 고라곡) 골짜기 주변은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천하명당이라고 한다. 연화부수형은 연못 속에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형상인데 황참의공의 며느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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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와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옥여(玉汝), 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된 정경연(鄭慶演), 어머니는 사간원정언을 지낸 이직(李稷)의 딸이다. 1639년(인조 17) 충주에서 태어난 정필(鄭泌)은 1966년(숙종 25) 경기전참봉이 된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상의원별제를 지냈다. 1708년(숙종 34) 69세의 나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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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면장 정하현의 불망비. 정하현의 출생 및 성장에 관하여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대한제국 시대의 단편적인 기록을 보면, 1902년(고종 39) ‘정하현임내부주사서판임관육등임충청북도관찰부주사서판임관육등(鄭夏鉉任內部主事敍判任官六等任忠淸北道觀察府主事敍判任官六等)’이라는 기록이 『의정부총무국관보』 제2299호에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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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감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성경(成卿)·태성(台城), 호는 정헌(靜軒)·대릉(大陵). 증조할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조태채(趙泰采), 할아버지는 조겸빈(趙謙彬),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조영순(趙榮順), 어머니는 김시눌(金時訥)의 딸이다. 1751년(영조 27) 경기도 장단에서 태어난 조정철(趙貞喆)은 1775년(영조 51) 별시 문과에 급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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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검묵당(儉默堂). 아버지는 조선 정종 이방과(李芳果)이며, 어머니는 대사헌 윤방언(尹邦彦)의 딸 숙의(淑儀) 해평윤씨(海平尹氏)이며, 부인은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연지(金連枝)의 딸 학성군부인(鶴城郡夫人) 원주김씨(原州金氏)이며, 형은 수도군(守道君) 이덕생(李德生)·임언군(林堰君) 이녹생(李祿生)이며, 동생은 장천군(長川君) 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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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했던 승려. 본관은 풍양(豊壤). 속명은 조혼수(趙混脩), 자는 무작(無作), 호는 환암(幻菴), 탑호는 정혜원융(定慧圓融). 풍양조씨 전직공파 조지란(趙之蘭)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조숙령(趙叔鴒), 어머니는 청주경씨이다. 보각국사는 1320년(충숙왕 7) 3월 13일 아버지 조숙령의 임지인 용주(현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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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중순(仲淳), 호는 장암(丈巖). 고조부는 좌의정 송강 정철(鄭澈)이고, 증조부는 강릉부사 정종명(鄭宗溟)이다. 할아버지는 생원 정직(鄭溭), 아버지는 청안현감 정경연(鄭慶演), 어머니는 여흥민씨이다. 장암 정호는 병자호란을 피해 충주로 낙향한 정경연의 아들로 1648년(인조 26) 충주의 노은 고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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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장길(長吉), 호는 탄수(灘叟)·용탄자(龍灘子). 증조할아버지는 광성군 이극감(李克堪)이고, 할아버지는 판중추부사를 지낸 이세좌(李世佐)이다. 아버지는 봉사를 지낸 이수원(李守元), 어머니는 사용(司勇)을 지낸 방의문(房毅文)의 딸 남양방씨이다. 1484년(성종 15) 충주에서 태어난 이연경(李延慶)은 1504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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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행정가. 정희택은 청주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젊은 나이에 관계에 발을 내딛었다. 옥천군수와 진천군수를 거쳐 1952년 충주군수로 부임하였다. 충주군수로 재임할 때 사사로움이 없이 공정하게 공무를 처리하였으며, 청빈한 생활로 타의 모범이 되었다. 문묘와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를 보수하고 탄금대 비를 세우는 등 숭조 사상과 문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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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성서(聖瑞), 호는 취석당(醉石堂). 송강 정철(鄭澈)의 6세손으로 영의정을 지낸 문경공 정호(鄭澔)와 강릉최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1681년(숙종 7) 충주에서 태어난 정희하(鄭羲河)는 1715년(숙종 41) 한성부판관이 된 이후 외직으로 나아가 평안도사, 연풍현감 등을 지냈다. 1747년(영조 2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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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2리 마을회관 맞은편에 ‘목계 풍물방’이 있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아주 낡은 건물이다. 풍물방을 운영하는 변종근 씨와 미리 만날 약속을 한 터라 벌써 나오셔서 기다리고 계셨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무실 겸 작업실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사용하는 분의 성격을 짐작하게 하였다. 찾아온 이유를 말씀드리고 ‘제 머리 마빡’의 유래에 대해서 말씀을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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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10일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실시된 국회의원 총선거.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의에 따라 열린 미소공동위원회가 1947년 8월 12일 완전히 결렬되어 한국 문제가 표류하게 되자, 미국은 9월 17일 유엔 총회에 한국의 독립 문제를 정식 의제로 상정하였다. 9월 21일 유엔 총회 운영위원회가 유엔 총회 의제에 포함시킬 것을 통과시키고, 23일 본회의에서 의제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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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烽燧)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가장 빨리 변방의 소식을 중앙으로 전달하던 통신 수단이었다. 30여 리를 기준으로 서로 잘 보이는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쌓고 횃불과 연기를 올리는 중요한 시설이었다. 봉수제도가 처음 시작된 것은 삼국시대부터 실시되었지만 고려시대에 와서 체계적으로 정비되었고 조선 세종 때에 봉수대 시설과 봉군의 신분, 봉수의 노선을 구분하여 조선 봉수의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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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제내리(일명 방죽안)는 전주이씨 진안대군파의 세거지로 임진왜란 때 이곳으로 피난온 이덕량(李德樑)이 마을을 개척하였다. 『여지도서』에 보면 덕면은 6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6개 리는 상, 중, 천서, 제내, 황금곡, 계막이다. 1898년에 편찬된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는 제내리가 속했던 덕면이 석우, 당우, 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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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풍덕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1906년 풍덕 유지들이 마을 들머리에 숲을 조성하기로 하였다. 먼저 마을 주민 30명이 숲계를 조직하고 숲 조성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집집마다 보리 한 말씩 거두었다. 숲을 관리할 조직을 세우고 기금을 어느 정도 마련하자 마을 수구(水口) 자리의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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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내리는 주덕읍 11개 법정리 중의 하나이며, 성동과 풍덕의 2개의 행정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동이 28통이고 풍덕이 29통이다. 2008년 3월 현재 98가구 258명이 살고 있으며 남자가 139명, 여자가 119명이다. 주덕읍 전체인구가 6,480여명이니 제내리 주민이 차지하는 비율이 5% 정도이다. 제내리의 주민 258명 중 성동에 109명(남자 56명,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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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 사문리에서 미륵리로 넘어가는 고개. 1891년에 편찬된 『연풍현읍지(延豊縣邑誌)』에서는 마골산[640m]의 마골점 봉수(麻骨岾 烽燧)[일명 마골봉수]는 연풍현 북쪽 40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지릅재 남쪽에 마골산 봉수가 있어 마골점(麻骨岾)이라고도 불렸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계립령(鷄立嶺)의 별칭으로 지릅재라는 명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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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간행된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 임연규의 처녀 시집. 『제비는 산으로 깃들지 않는다』는 충주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임연규 시인의 시집으로 「제비는 산으로 깃들지 않는다」를 비롯하여 「설해목」·「수국」·「파도」·「편지」 등 70여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작품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1부는 ‘갈대는 언제지는가’, 2부는 ‘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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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인간의 삶을 주재하는 수복신, 또는 생산신의 내력담. 「제석풀이」는 전국에 걸쳐 30여 종의 이본(異本)이 이미 채록된 바 있다. 충주의 「제석풀이」는 필사본으로서 충청북도 농악무형문화재 이수자 겸 충주국악협회 지부장인 전봉근(남, 1941년생)이 소장하고 있다. 전봉근이 소장하고 있는 「제석풀이」의 필사본의 경우 여느 이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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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있는 축산영농조합법인. 협업적 축산업 경영을 통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공동으로 축산물을 출하 및 가공하여 조합원의 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제일축산영농조합법인은 2003년 11월 26일 법원에 등기함으로써 설립되었다. 2006년 1월 6일 돼지를 축종으로 하는 가축사육업을 충주시에 등록하였다. 2008년 현재 6,290.5㎡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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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권근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광흥창수(廣興倉守)를 지낸 권곤(權鵾)이고, 할아버지는 권심(權深)으로 안동대도호부판관(安東大都護府判官)을 지냈다. 아버지는 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을 지낸 권오(權悟)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1601년(선조 34) 생원이 되었고, 1606년(선조 40) 음보로 광릉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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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치악산 남대봉에서 발원하여 제천시 봉양읍을 지나 충주시 산척면·동량면을 지나 원서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제천시 지역을 흐르는 하천이므로 제천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길이 65㎞이며, 유역 면적은 539.43㎢이다. 강원도 원주 치악산(雉岳山)[1,288m]에서 발원하여 제천시 봉양읍 주포리에 이르러 제천분지에 들어오는 장평천(長坪川)을 합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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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신 윤결이 충주를 노래한 오언율시의 한시. 윤결[1517~1548]은 문신으로, 자는 장원(長源), 호는 취부(醉夫) 혹은 성부(醒夫)로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윤결의 「제충주루헌」은 오언율시로 되어 있다. 중원이라, 예로운 명승지(中原古名勝) 물색마다 박눌재의 제영일세(物色訥齋餘). 나그네 누대에 올라보니(有客登樓處) 상큼한 가을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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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목행동에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소속 교회. 중원을 깨우고 복음화하는 일에 앞장서는 교회, 불우한 이웃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 성도들의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만드는 교회, 세계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는 교회, 예수님의 재림을 전하기 위한 교회를 세운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93년 4월 당시 충주지구장이었던 임동운 목사가 목행동에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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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교현2동에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소속 교회. 안식교는 미국의 밀러(W.Miller)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한 데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905년 필드(F. W. Field) 목사가 내한하여 대동강변에 교회를 세운 것이 처음이며, 1906년 한국선교본부를 평안남도 순안 지역으로 옮겼다. 1938년 삼육학원을 설립하였으나 1941년에 선교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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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10일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실시된 국회의원 총선거.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의에 따라 열린 미소공동위원회가 1947년 8월 12일 완전히 결렬되어 한국 문제가 표류하게 되자, 미국은 9월 17일 유엔 총회에 한국의 독립 문제를 정식 의제로 상정하였다. 9월 21일 유엔 총회 운영위원회가 유엔 총회 의제에 포함시킬 것을 통과시키고, 23일 본회의에서 의제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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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서 조감사 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 박석고개에 묘가 있다. 이 묘는 경상감사를 지낸 조감사의 묘로 묏자리가 와호형이어서 지기가 너무 세기 때문에 후손에게 해를 끼친다고 한다. 후손들이 벌초를 하거나 시사를 지내면 해를 입어 묵묘가 되었는데 마을에서 주민들이 공동으로 보살피고 있다고 한다. 2002년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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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관 스님은 미륵세계사가 처한 환경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 시각을 보이고 있었다.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면 ‘문화재 보호법, 국립공원법, 자연녹지법’ 등의 적용을 받는단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폐사지로 남아 있는 각 곳의 도량 복원이 상당히 어렵기에 신앙의 공간으로 거듭나기가 매우 힘들다고 한다. 폐사지에 남아 있는 불교문화재에 대한 관리도 자연스레 부실할 수밖에 없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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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이름은 종이를 만들던 곳이라 하여 종이골·지동 또는 조골이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앙암면(仰岩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잠리(金岑里)·만지리(晩知里)·무동리(武洞里)·미라실·백석(白石)·사방(絲房)·양아리(兩牙里)·흑목리(黑木里)가 통합되어 지동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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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생.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사휘(士輝), 호는 해동처사(海東處士), 할아버지는 풍안군(豊安君) 조흡(趙潝)이며, 아버지는 풍창군(豊昌君) 조백운(趙伯耘)이다. 동생은 승정원좌부승지 조성보(趙聖輔)와 직장 조명보(趙命輔)[후에 조공보(趙公輔)로 개명]이며, 아들은 조상건(趙尙健)이다. 아들 조상건에 대해서는『하서집(荷棲集)』속의 「조상건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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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경관(景觀), 호는 설죽(雪竹)이다. 참봉 조유백(趙惟白)의 아들이다. 1606년(선조 39)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바로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이 되었다. 1608년(선조 41)에 가주서(假注書)가 되었으며 1610년(광해군 2)에는 황해도사(黃海道事)를 역임하였다. 1615년(광해군 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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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조천리 남한강 변에 있는 습지. 충주분지를 지나 여주 쪽으로 가는 남한강 협곡 내부에서 여울목을 따라 사력퇴가 쌓이면서 발달한 습지이다. 남한강 본류 변에 발달한 구하도성 배후습지로서, 인공제방 안쪽에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습지 지형이다. 하중도에 해당하는 비내섬이 조대늪 주변을 감싸고 있다. 비내섬은 물길이 약간 곡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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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조천리에서 조대마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조대마을은 앙성면 동북부 지역으로 남한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 인근의 남한강 강변에는 조대늪(비내늪)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은 물고기가 아주 많이 서식하는 곳이다. 「조대마을의 유래」는 김익창이 낚시질하던 바위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암석유래담이다. 1981년 중원군에서 간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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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행정가이자 정치인. 조대연은 19세까지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1908년 장예원 전사판위관 5등직에 임명되었다. 신학문에 뜻을 두고 1912년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기업에 종사하였으며, 목계금융조합장·충북엽연초경작조합(현 충주엽연초생산협동조합)장을 역임하면서 낙후된 농촌의 소득증대와 생활개선운동에 앞장섰다. 광복 후 1947년 미소공동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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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정착한 무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사원(士愿). 한성좌윤(漢城左尹) 조승(趙勝)의 둘째 아들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송평동(松坪洞)에서 태어났으나 뒤에 충주시 노은면 수룡리(水龍里)에 옮겨와 살았다. 웅장한 모습에 관대하고 엄격한 기량이 있었으며 글재주에 능했고 글씨도 잘 썼다. 부모에게는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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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충주군 동량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관암(冠岩)·모천리(毛川里)·거무땡이·건지리(乾地里)·장선리(長善里)가 통합되어 조동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게 되었고, 1985년에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조동1구의 전답 일부가 수몰되었다. 1995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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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충주군 동량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관암(冠岩)·모천리(毛川里)·거무땡이·건지리(乾地里)·장선리(長善里)가 통합되어 조동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게 되었고, 1985년에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조동1구의 전답 일부가 수몰되었다. 1995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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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충주군 동량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관암(冠岩)·모천리(毛川里)·거무땡이·건지리(乾地里)·장선리(長善里)가 통합되어 조동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게 되었고, 1985년에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조동1구의 전답 일부가 수몰되었다. 1995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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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관암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마애불상. 관암(冠岩)마을은 우리말로는 ‘갓바우’라고 부르는데 바위의 모양새가 갓을 쓰고 있는 것처럼 자연석 암반 위에 20톤이 넘는 무게의 큰 돌이 올려져 있고, 그 위에 모자처럼 두께 1m 정도의 납작한 돌이 올려 있어 생겨난 이름이다.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위치한 면사무소에서 장선리 쪽으로 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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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대모천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대모천마을은 관암(갓바위)마을 앞, 탑들삼거리에서 산척 방면으로 충북선 굴다리를 지나 1㎞쯤 가다가 오른쪽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매년 음력 7월 보름 이전 경일(庚日)에 산신제를 지내고, 음력 정월 14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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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있는 선사유적 박물관. 충주 조동리 유적은 1996~2000년대까지 총 3차례에 걸쳐 잔토기·연마도구·낚시도구·불땐자리 등 다양한 유적들이 대량 발굴된 곳으로, 조동리 선사유적박물관은 충주 조동리 유적에서 발굴된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을 전시하여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고 충주 지역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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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소모천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예전에는 음력 정월 14일 자시에 수살고사를 지냈다. 마을에 들어서면 조그만 다리 건너 왼쪽에 있던 팽나무를 신목으로 모셨는데, 10여 년 전에 자연적으로 말라죽었다. 그 뒤에도 나무 주위에다 고사를 지냈으나 1990년대 초반부터 지내지 않는다. 지금은 음력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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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조돈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조돈마을에서는 서낭제를 ‘정월 보름 고사’라고 불렀으며, 음력 1월 14일 저녁 해가 지면 지냈다. 장소는 강가 나루터에 있는 느티나무 정자 밑이었는데 1972년 대홍수 후 폐지되었다. 조돈 나루터에 있는 700년 된 느티나무가 정자 구실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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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조돈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조돈마을에서는 서낭제를 ‘정월 보름 고사’라고 불렀으며, 음력 1월 14일 저녁 해가 지면 지냈다. 장소는 강가 나루터에 있는 느티나무 정자 밑이었는데 1972년 대홍수 후 폐지되었다. 조돈 나루터에 있는 700년 된 느티나무가 정자 구실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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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과 경상도를 잇는 주요 교통로였던 고개.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서울과 동래(부산) 사이를 연결하는 교통로였고,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였다. 조령은 제1관문, 제2관문, 제3관문이 있으며, 이들 관문과 성벽은 1708년(숙종 34)에 축조되었다. 이 중 제3관문을 지나면 경상북도이다. 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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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백탄(栢灘). 아버지는 한산군(漢山君) 조인옥(趙仁沃)이다. 아들은 조효생(趙孝生)·조순생(趙順生)·조관생(趙觀生)·조덕생(趙德生)이며 딸은 의장궁주로 세종의 후궁이다. 조뢰는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직위를 거쳐 1413년(태종 13)에는 순금사대호군이 되었다. 1418년 수원부사를 거쳐 순성진첨절제사(蓴城鎭僉節制使)로 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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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에 있는 충주수리조합장을 역임한 조명규의 공덕을 기리는 비. 구체적인 공덕 사항은 알 수 없으나 충주수리조합원 일동 명의로 조합장이던 조명규의 공덕을 기려 1959년 4월 현 위치에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충주시 호암동에 위치한 호암지의 서쪽 언덕, 위령 묘역 내에 박준하 공적비 및 일본인 위령탑, 호암지 건설 성공탑 등과 같이 위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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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유원(孺元), 아버지는 임파현령 조이순(趙頤淳)이며, 어머니는 이조판서 김상휴(金相休)의 딸 광주김씨(廣州金氏)이다. 조병로는 1849년(철종 1) 음관(蔭官)으로 출사하여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시작으로 1858년 보성군수가 되고 1862년 합천군수를 거쳐 공주판관·밀양부사를 역임하였다. 1865년(고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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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 신대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조빈의 묘. 조빈의 후손에 대하여 마을 주민들도 잘 모르고 있다. 다만 조선 중기 활동한 문신 조빈으로 추정할 뿐이다. 조빈의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자는 계언(季彦), 호는 은성(隱星)이다. 『광해군일기』 찬수에 참여하였고, 병자호란 때에는 척화를 부르짖어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인조실록(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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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암행어사로 활약한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자장(子章), 호는 학당(鶴塘). 증조할아버지는 풍안군(豊安君) 조흡(趙潝)이며, 아버지는 도정(都正)을 지낸 조도보(趙道輔)이다. 1710년(숙종 36) 사마시를 거쳐, 1712년 29세로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설서(設書)·정언(正言)·지평(持平)을 지냈다. 1717년(숙종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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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후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전래된 서양의 학문 및 종교. 조선시대 선조 이후 중국을 통해 서양의 과학기술문물과 한역(漢譯)된 서학서가 전래되었다. 이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에서 조선 학자들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때문에 서학이라는 용어는 협의로는 천주교를 가리키기도 하나, 광의로는 서양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경향을 뜻한다. 18세기 이후 서양의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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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충주는 1395년(태조 4) 지방제도가 개편된 후 충청감영의 소재지이면서 목(牧)으로서 대원(大原)·예성(蘂城)으로 불렸다. 관내의 호수는 1,871호이며, 인구는 7,452명에 이르고, 시위군 440명과 선군(船軍) 465명이 있는 대읍이었다. 1458년(세조 4)에 충주진(忠州鎭)이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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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던 조선운수주식회사 산하 출장소. 조선운수주식회사 충주출장소는 사람이나 물건을 실어 나르는 운송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면서도 창고업, 금융업, 물산수출입과 위탁판매업을 담당하였다. 1929년 8월 31일 조선운수주식회사 충주출장소 소속 마차 인부 30여 명이 파업을 단행하였다. 마차 인부들은 충주읍에 있던 전매국 충주출장소에서 충주역까지 황색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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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에서 서식하는 쌍떡잎식물 물푸레나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활엽 관목. 미선나무라는 이름은 열매 모양이 둥그스름한 부채[尾扇]를 닮았다 하여 붙여졌다. 미선나무는 대부분 흰색 꽃을 피우는데, 분홍색 꽃이 피는 것을 분홍미선나무(for.lilacinum), 상아색 꽃이 피는 것을 상아미선나무(for. eburneum), 꽃받침이 연한 녹색인 것을 푸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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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조선총독부 사세국 충주출장소. 1910년 제정된 조선총독부 관제 중 경제 담당 부서는 탁지부(度支部)였는데, 탁지부 안에는 조세를 담당하는 사세국(司稅局)과 예산을 담당하는 사계국(司計局)이 있었다. 조선총독부 사세국 충주출장소는 충주를 중심으로 한 충북 지역의 조세 업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12년 4월 1일 대구, 대전, 개성,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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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했던 의병장.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백기(白旗). 개국공신 조인옥(趙仁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된 조일(趙逸)이다. 충주 출신의 조웅은 1591년(선조 24) 조헌(趙憲)의 천거로 선전관이 되었다가 얼마 후 사직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인 조강(趙綱)을 따라 청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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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중기 의병장 조웅이 받은 공신녹권. 임진왜란 때 충주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의 북상을 저지하다가 순절한 조웅(趙熊) 장군에게 1605년(선조 38)에 내려진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이다. 여기에는 임진왜란 때 충절로 이름이 있던 선무(宣武)·호종공신(扈從功臣) 등 9,000명의 이름이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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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형제. 본관은 임천(林川). 조재의의 자는 치도(致道). 신수재(愼守齋) 조찬(趙璨)의 후손으로 조재의가 형이고 조재미가 동생이다. 조재의와 조재미 형제는 효성이 지극하여 정성으로 아버지를 봉양했다. 매일같이 고기를 잡아 아버지 상에 올렸고, 고기를 잡다 날이 저물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가 나타나 지켜주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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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임천조씨 형제 비각. 조재의(趙在義), 조재미(趙在美) 형제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1803년(순조 3)에 정려를 명하여 건립된 비각으로, 이들은 효성이 지극하여 온 정성으로 부친을 봉양하였으며, 상을 당하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묘를 하였다. 이에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고 정려가 세워졌으며,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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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감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성경(成卿)·태성(台城), 호는 정헌(靜軒)·대릉(大陵). 증조할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조태채(趙泰采), 할아버지는 조겸빈(趙謙彬),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조영순(趙榮順), 어머니는 김시눌(金時訥)의 딸이다. 1751년(영조 27) 경기도 장단에서 태어난 조정철(趙貞喆)은 1775년(영조 51) 별시 문과에 급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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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조대리(釣臺里)와 벌천리(伐川里)에서 ‘조(釣)’자와 ‘천(川)’자를 따 ‘조천(釣川)’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복성면(福城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조대리와 비내리·비내·사기점·청산이골 등이 통합되어 조천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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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조천리 사기점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마을 이름은 그 마을이 형성된 유래나 형상, 살림살이 등을 잘 설명해준다. 예를 들어 원이나 진이 있던 교통로 상의 마을은 광해원·장호원·노량진, 온천이 나던 마을은 온수골, 온정, 서원과 서당이 있던 곳은 서원말, 서당골, 큰 무덤이 있던 곳은 능골, 능말 등의 이름이 붙는다. 조천리 사기점 백자요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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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조천리 사기점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마을 이름은 그 마을이 형성된 유래나 형상, 살림살이 등을 잘 설명해준다. 예를 들어 원이나 진이 있던 교통로 상의 마을은 광해원·장호원·노량진, 온천이 나던 마을은 온수골, 온정, 서원과 서당이 있던 곳은 서원말, 서당골, 큰 무덤이 있던 곳은 능골, 능말 등의 이름이 붙는다. 조천리 사기점 백자요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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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조천리 조터골마을과 비내마을에 있는 선사시대 유물산포지. 남한강에 의해 형성된 늪지와 섬 등은 매우 중요한 환경 자원이다. 특히, 앙성면 조천리에 있는 조대늪이나 비내섬 등은 중앙탑면 장천리의 장자늪이나 뒷섬 등과 더불어 남한강을 유지하는 충주의 귀중한 자산이다. 이러한 곳은 환경적 문제뿐만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서도 비옥한 땅을 제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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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했던 승려. 본관은 풍양(豊壤). 속명은 조혼수(趙混脩), 자는 무작(無作), 호는 환암(幻菴), 탑호는 정혜원융(定慧圓融). 풍양조씨 전직공파 조지란(趙之蘭)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조숙령(趙叔鴒), 어머니는 청주경씨이다. 보각국사는 1320년(충숙왕 7) 3월 13일 아버지 조숙령의 임지인 용주(현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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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토테미즘(Totemism)·애니미즘(Animism)·샤머니즘(Shamanism) 등과 같은 원시신앙 이후 새롭게 등장한 것이 불교·유교·기독교 등과 같은 보편적인 종교였다. 이것들은 인간 중심의 세계관과 평등한 인간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볼 때 종래 신 중심의 무교(巫敎)보다는 더 발전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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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민종리(民宗里)·범동(凡洞)·종당(宗堂)을 합하여 종당과 민종리의 지명을 따서 종민동이라 했다. 본래 충주군 북변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충주군 읍내면에 편입되었다. 1962년부터 안림동과 연합동제를 실시하고 있다. 1998년 9월 30일 교현1동과 안림동이 통합되어 행정동인 교현안림동이 되었고, 종민동은 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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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종민동 계명산 중턱에 있는 절터. 종민동 하종마을에서 계명산 산길을 따라가다 해발 고도 약 300m 지점에 위치한 절터로, 오층석탑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기본적인 변천 사항을 알 수 없다. 다만, 이곳에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많아 옮겼다는 구전(口傳)이 전해지고 있다. 충주시 교현동에 소재한 대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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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안림동 계명산에 있는 조선시대 사찰 터. 계명산 사지는 계명산 등산로 중턱에 위치하며, 오층석탑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확인되지 않는다. 충주 지역 불교 문화를 살피는 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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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 한옥자 씨를 만난 것은 농장에서였다. 첫날 낯선 방문자를 반갑게 맞아주는 부부의 친절함에 넉넉한 인심이 배어 있었다. 취재를 위한 상황을 설명하고 종부로서의 삶과 부녀회장으로서의 어려움을 이야기 해달라는 부탁을 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안하면 안 되냐는 것이었다. 말주변이 없어 안했으면 좋겠단다. 인터뷰를 약속한 그날도 굳이 카메라에 서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취재에 대한 두려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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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 진안대군파 방호지파 13대 종손인 이상하를 처음 만난 것은 그의 농장에서이다. 넓은 축사가 딸린 그의 농장은 풍덕 굴지의 대농가다운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웃음 띤 얼굴에 짙게 구슬린 그의 얼굴은 후덕하면서도 온화함이 가득하였고 반갑게 맞이해 주는 부부의 친절함은 많은 손님을 접하며 살아온 종손으로서의 오랜 경험이 흠뻑 묻어있었다. 한 집안의 종손이기에 어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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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이름은 종이를 만들던 곳이라 하여 종이골·지동 또는 조골이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앙암면(仰岩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잠리(金岑里)·만지리(晩知里)·무동리(武洞里)·미라실·백석(白石)·사방(絲房)·양아리(兩牙里)·흑목리(黑木里)가 통합되어 지동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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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대군파 방호지파의 종회장을 맡고 있는 이복영 씨의 이력은 남달랐다. 제내리 팔체사라 불리는 이성호의 장남으로 태어나 단국대학교 법과를 졸업한 그는 고향에 돌아와 농사일을 도우며 계몽회원으로 농촌계몽에 앞장섰다. 6·25동란이 일어나자 그는 경찰에 투신하여 참전경찰로 활약하였다. 전란이 끝나고 종로경찰서로 전출되어 장면 부통령 경호원과 광화문 파출소장을 역임하였고, 5.16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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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주사록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峰). 봉화호장을 지낸 정공미(鄭公美)의 4세손으로 검교밀직제학을 지낸 아버지 정운경(鄭云敬)과 어머니 단양우씨 사이에서 3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정도전(鄭道傳)은 1337년(충숙왕 복위6) 단양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남한강의 도담삼봉을 좋아해 정자를 짓고 즐겨 찾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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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중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국가관과 공동체 의식이 투철한 자주적인 사람, 개성을 신장하고 소질을 계발하여 실력 있는 사람, 탐구 능력과 세계화 대응력을 갖춘 창의적인 사람, 예절을 존중하고 질서를 잘 지키는 도덕적인 사람, 튼튼한 몸과 강인한 의지력을 갖춘 건강한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열심히 배우자, 바르게 행하자, 참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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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삼청리에 있는 농공단지. 농공단지는 공업 부문에 비하여 생산성이 점차 저하되고 있는 농업 부문과 농어촌 지역의 구조 조정을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1980년대 들어 정부에서는 농업만 가지고서는 농촌 지역 소득 향상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농업 근대화에 의한 농촌소득원 개발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당시 경제기획원과 농림수산부가 농공단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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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과 주덕읍, 이류면에 걸쳐 있는 평야. 주덕들이라는 명칭은 1914년 충주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주덕면이 만들어지면서 생겨났다. 그 전까지 이 지역은 통합된 명칭 없이 지역에 따라 버드내들, 장록개들, 계막들, 망청개들, 음버들 등으로 불렸다. 주덕들은 신니면 문락리 수레의산[678m]에서 발원하는 요도천이 주덕읍 지역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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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양리에 있는 청주교구 소속 천주교 교회. 교현동성당에서 교역하던 보어 신부가 충주 지역의 교세 확장을 위하여 1957년 대지를 사들인 뒤 성당과 사제관을 신축하여 주덕공소를 설립하였다. 1959년 6월 1일 주덕공소가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주덕성당 초대 주임신부로 길리건이 부임하였다. 1984년 10월 사제관과 1985년 6월 성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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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화곡리에 있는 사회 복지 시설. 굶주리는 이웃과 함께 나누고 미워하는 사람에게 용서와 화해로 서로 섬기는 정신을 바탕으로 갈 곳 없는 무의탁 노인이나 장애아들을 보호하여 생명에 대한 경외와 사랑을 실천하고자 설립되었다. 1983년 6월 김은숙 원장이 버려진 빈집에서 우연히 알게 된 장애 노인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1988년 경기도 시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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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양리에 있는 청주교구 소속 천주교 교회. 교현동성당에서 교역하던 보어 신부가 충주 지역의 교세 확장을 위하여 1957년 대지를 사들인 뒤 성당과 사제관을 신축하여 주덕공소를 설립하였다. 1959년 6월 1일 주덕공소가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주덕성당 초대 주임신부로 길리건이 부임하였다. 1984년 10월 사제관과 1985년 6월 성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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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모남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주덕성당 소속 천주교 교회. 신니면 모남리는 충주시의 가장 서쪽에 있는 음성군과의 접경 지역으로 예부터 목고개를 넘어 서울로 가는 충주의 관문이다. 따라서 충주 지역 천주교의 전래 경로를 보면 중부 지역 천주교 본령인 감곡성당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아 천주교 신자들이 생겨난 곳이기도 하다. 1959년 주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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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법동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주덕성당 소속 천주교 교회. 노은면 법동리의 천주교 신자들은 본당인 주덕성당과의 거리가 멀어 신자들이 주일 및 평일 미사에 참여하기 어려웠다. 이에 천주교주덕성당 법동공소를 설립하여 공소예절과 미사를 통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하고자 설립하였다. 노은면 법동리 지역은 중부 지역 천주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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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주덕성당 소속 천주교 교회. 노은면 안락리 지역은 행정구역상 충주시에 속하면서도 지리적으로는 음성군 감곡면과 접경 지역에 있어, 중부 지역 천주교 전파의 시발점이던 감곡성당(일명 매괴성당)의 영향을 받아 일찍이 천주교에 입교한 신자들이 많이 있었다. 이에 따라 노은면 안락리와 가신리 일대의 천주교 신자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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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용원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주덕성당 소속 천주교 교회. 충주시 서부에 있는 신니면 지역은 일찍부터 천주교가 전래하였으며,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가정집에 모여 교리를 공부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통이 불편하던 당시에 약 8㎞ 길을 걸어 성당에 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에 주덕성당과 거리가 멀어 불편한 점이 많은 신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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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양리에 있는 청주교구 소속 천주교 교회. 교현동성당에서 교역하던 보어 신부가 충주 지역의 교세 확장을 위하여 1957년 대지를 사들인 뒤 성당과 사제관을 신축하여 주덕공소를 설립하였다. 1959년 6월 1일 주덕공소가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주덕성당 초대 주임신부로 길리건이 부임하였다. 1984년 10월 사제관과 1985년 6월 성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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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양리에 있는 청주교구 소속 천주교 교회. 교현동성당에서 교역하던 보어 신부가 충주 지역의 교세 확장을 위하여 1957년 대지를 사들인 뒤 성당과 사제관을 신축하여 주덕공소를 설립하였다. 1959년 6월 1일 주덕공소가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주덕성당 초대 주임신부로 길리건이 부임하였다. 1984년 10월 사제관과 1985년 6월 성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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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양리에 있는 충북선 기차역. 충주시에 있는 역 중에서는 충주역과 함께 가장 오래된 역이다. 국도 3호선 변에 있어 도로와 연계가 잘 되는 편이어서 읍면 단위 역으로서는 이용률이 높은 편이다. 주덕역은 충북선이 충주까지 개통되면서 1928년 12월 25일 대소원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당시만 해도 상권이 대소원을 중심으로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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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주덕읍은 남쪽은 과거 주류면 지역이고 북쪽은 과거 덕면 지역이다. 면적에 비해 들이 넓고 교통이 편리해 충주시 읍면 중 인구가 가장 많다. 1914년 지방 행정 조직 개편에 따라 충주군 덕면과 주류면을 통합하여 충주군 주덕면이라 하였다가,1995년 충주시 주덕읍으로 승격되었다. 1872년에 나온 「충주목지도(忠州牧地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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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양리에 있는 재래시장. 주덕장이 서기 시작한 것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이다. 주덕장이 서기 이전에는 전통적으로 원 터였던 인근 대소원면의 대소원장이 크게 열렸다. 대소원장은 4일과 9일에 장이 섰기 때문에 주덕장은 대소원 장날을 피해 3일과 8일에 열리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대소원 지역에서 주덕장으로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대소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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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양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선교 사업을 수행하고,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여 어려운 이웃을 위한 양로, 보육, 아동복지, 장학 사업을 시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48년 11월 24일 최용복 집에서 예배를 드린 것이 모태였다. 1949년 3월 23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회 충북노회에서 설립인가를 받았다. 1960년 2월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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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소속의 교회. 복음 증거와 지역사회를 섬기기 위해 설립되었다. 설립자 강용규(姜龍奎) 목사가 1993년 12월 19일 현재의 교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같은 마을 개인 농가 창고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써 주덕중앙교회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이듬해인 1994년 3월에야 충청노회에서 교회 설립 허락을 받아, 4월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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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중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도덕적으로 참된 사람, 개성과 소질을 계발하는 창조적인 사람, 21세기를 앞서 이끌어 나아갈 실력 있는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열심히 배우자, 바르게 행하자, 참되게 살자’이다. 주덕중학교는 설립 전 지역 독지가의 도움으로 1950년에 고등공민학교로 출발하였으며, 1952년 2월 3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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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양리에 있는 아동 복지 시설. 주덕 지역 내 저소득 가정, 차 상위 가정, 편부모 가정, 조손 가정 아동들을 보육하고 이들의 권익을 보호·대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0년 11월 13일 정대규 목사가 주덕 CMS 공부방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2005년 2월 24일 윤장연 현 센터장이 부임하였으며 3월 31일에 주덕지역아동센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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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양리에 있는 청주교구 소속 천주교 교회. 교현동성당에서 교역하던 보어 신부가 충주 지역의 교세 확장을 위하여 1957년 대지를 사들인 뒤 성당과 사제관을 신축하여 주덕공소를 설립하였다. 1959년 6월 1일 주덕공소가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주덕성당 초대 주임신부로 길리건이 부임하였다. 1984년 10월 사제관과 1985년 6월 성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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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중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내가 아닌 제가로 남을 먼저 생각하며 올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 창의성을 가지고 스스로 탐구·발견·개척하는 창조적인 어린이, 나라·고장·학교의 공동체 발전에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어린이, 굳건한 의지를 갈고 닦아 어려움을 이겨내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자기의 특기와 적성을 슬기롭게 계발하여 앞날을 열어가는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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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과 주덕읍, 이류면에 걸쳐 있는 평야. 주덕들이라는 명칭은 1914년 충주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주덕면이 만들어지면서 생겨났다. 그 전까지 이 지역은 통합된 명칭 없이 지역에 따라 버드내들, 장록개들, 계막들, 망청개들, 음버들 등으로 불렸다. 주덕들은 신니면 문락리 수레의산[678m]에서 발원하는 요도천이 주덕읍 지역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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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의 읍사무소·면사무소·주민센터에 설치된 각종 문화·복지·편의 시설. 주민자치센터는 교통·통신의 발달 등 21세기의 변화된 환경에 맞추어 읍사무소·면사무소·주민센터의 쇠퇴된 기능과 인력을 축소하여 민원·복지 기능 중심으로 개편하고, 이로 인해 남는 유휴 시설을 문화·복지·자치 공간으로 조성, 주민의 복리 증진과 진정한 주민 자치 실현의 장으로 활용하여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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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교현동에 있는 언덕. 산의 모양이 마치 구슬처럼 둥글게 생겼다고 해서 한자로 구슬 주(珠)자를 써서 주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옛날에는 교현동의 고구문거리 서쪽에 있는 봉우리를 말했으나, 현재는 교현동 성당 뒤 충주예성초등학교 서쪽 언덕을 말한다. 대가미에서 충주예성초등학교 쪽으로 넘어갈 때 주봉을 넘거나 우회해야 했다. 주봉 남쪽으로는 야현로가 동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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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서운리에 있는 산. 산을 중심으로 충주호가 3면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정상에 서면 남서쪽으로 계명산, 서쪽으로 부대산·지등산[535m]이 보인다. 주봉산 일대는 옥천계 퇴적변성암류인 황강리층으로 함역천매암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암석 지대는 남서쪽 살미면을 지나 괴산군 칠성면까지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월악산과는 달리 암괴 노출 없이 골고루 수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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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에 있는 산. 이병연(李秉延)이 편찬한 지리서인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서 주산은 충주에서 북쪽으로 50리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안락리 안락골의 주산은 풍수지리형국의 주산(主山)이라서 붙어진 이름으로 안락골의 진산이 되고 있다.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 안락골(일명 안락동)과 신니면 화석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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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문화와 생활 양식이 반영된 주거 유형과 주거 의식. 충주는 고대로부터 지방 행정 중심지로서 오랜 역사를 지닌 성곽 도시였다. 평지 중심부에 관아를 둘러싼 읍성을 비롯하여 주변 남산·대림산 등에 산성이 있다. 전형적인 성곽 도시여서 근대 도시보다 시가의 중심 도로가 불규칙적이며 인도의 폭이 좁은 편이다. 충주읍성은 1277년(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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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에 있는 조립식 텐트하우스 제조업체. 내부 기둥 없이 강풍과 폭설에 견딜 수 있는 고강도이면서 고정과 이동이 가능한 조립식 텐트하우스를 제조, 판매, 시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2년 4월 7일 주원엔지니어링을 설립하여 5월 1일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에서 영업을 시작하였다. 1992년 8월 31일 전문건설업 면허(철물공사업)를 획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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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충주 주정산 봉수는 충청북도 충주의 관광지인 수안보에 인접하고 있는 주정산의 4개 봉우리 중에서 하주정산 정상에 쌓은 봉수이다. 조선시대 전국적인 봉수망에서 제2거(炬)에 소속된 간봉(間烽)으로 마골재 봉수와 대림산 봉수를 연결하였다. 충주 주정산 봉수의 직접적인 건립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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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일(遺佚). 본관은 연일(延日) 또는 영일(迎日). 자는 미장(美長), 호는 주진처사(注津處士). 아버지는 행사헌부감찰(行司憲府監察) 통훈대부(通訓大夫) 정경연(鄭慶演)이고, 어머니는 덕수이씨(德水李氏) 이직(李稷)의 딸이다. 손위 형으로는 통덕랑(通德郞) 정주(鄭澍)가 있고, 손아래 아우로는 정비(鄭泌)·정섭(鄭涉), 영의정을 지낸 장암(丈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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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생.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원숙(元叔), 호는 주천(舟川). 할아버지는 강중진(康仲珍)이며, 아버지는 창원도호부사(昌原都護府使)를 지낸 강의(康顗)이다. 장인은 이연경(李延慶)이며, 역모 사건에 연루된 이홍윤(李洪胤)은 장인 이연경의 재종질(再從姪)이다. 강유선은 1537년(중종 32)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었다.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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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주치리와 오량리를 연결하는 고개. 주치고개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어느 쪽으로 가나 두루 고개를 넘게 된다고 하여 두리티, 또는 주치(周峙)라고 부르게 되었다. 주치리의 은대마을 뒷쪽에 있는 고개로서 동쪽으로는 묵봉산, 서북쪽으로 청계봉이 있으며 그 사이에 주치고개가 있다. 은대마을에서 가장 높은 매봉재가 있고 은대를 둘러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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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충주군 성태양면(省台陽面) 지역으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어느 쪽으로 가나 두루 고개를 넘게 된다고 하여 두리티 또는 주치(周峙)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숯과 사기를 굽던 부동(釜洞), 하남리(河南里), 외촌(外村)을 병합하여 주치동이라 하였다. 주치리는 산간의 협곡과 강변으로 둘러싸인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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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주치리 은대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소태면 주치리는 은대마을·하남마을·야촌마을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곳으로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과 접도를 이루고 있다. 주치리 은대마을에는 백자가마터가 3기 있다. 1호는 묵봉산에서 은대마을로 뻗어 내린 능선 상에 있는 사기장골에 위치한다. 3호는 하남초등학교 자리에서 하남천 상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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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주치리 은대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소태면 주치리는 은대마을·하남마을·야촌마을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곳으로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과 접도를 이루고 있다. 주치리 은대마을에는 백자가마터가 3기 있다. 1호는 묵봉산에서 은대마을로 뻗어 내린 능선 상에 있는 사기장골에 위치한다. 3호는 하남초등학교 자리에서 하남천 상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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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소태면 주치리 외촌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아름드리 소나무 10여 그루를 중심으로 참나무, 돌배나무, 벚나무, 물푸레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당숲에 산신당이 있다. 산신당은 돌로 쌓은 단 위에 높이 1m 정도의 돌벽을 3면으로 둘러 쌓아 만들었다. 지붕은 서쪽으로 경사지게 기와로 덮었다. 안에는 70×10㎝ 크기의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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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고창(高敞). 증조할아버지는 의령현감을 지낸 오석복(吳碩福)이고, 할아버지는 전의현감을 지낸 오언의(吳彦毅)이다. 아버지는 오수정(吳守貞),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안관의 딸이다. 1558년 19세 때 경상남도 김해의 산해정(山海亭)으로 남명 조식(曺植)을 찾아가 학문을 배우고, 1561년(명종 16) 생원시에 합격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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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고창(高敞). 증조할아버지는 의령현감을 지낸 오석복(吳碩福)이고, 할아버지는 전의현감을 지낸 오언의(吳彦毅)이다. 아버지는 오수정(吳守貞),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안관의 딸이다. 1558년 19세 때 경상남도 김해의 산해정(山海亭)으로 남명 조식(曺植)을 찾아가 학문을 배우고, 1561년(명종 16) 생원시에 합격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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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창룡사(蒼龍寺) 옆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죽정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아직 미상이며, 남아 있는 석탑과 주변의 기와로 볼 때 고려시대 창건된 절로 보이며, 1652년(효종 3) 개즙(改葺) 기록이 있는 명문기와로 보아 이때까지도 법등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폐사 시기도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 충주목사였던 조병로(趙秉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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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석종사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충주시에 있는 남산의 산록에 일명 죽정사지(竹精寺址)로 전해지는 사지가 있었다. 사찰은 조선시대인 1870년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에 의하여 폐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실은 알 수 없다. 사지는 과수원으로 경작되고 있었으며 사지 일대에 다량의 기와편을 비롯하여 밭 가운데 파손된 석탑재가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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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무기(無己),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 김변(金賆)이며, 장인은 허공(許珙)이다. 1290년(충렬왕 16)에 원의 반적(叛賊) 합단(哈丹)이 수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침범하자 김륜의 가족들도 강화로 피난하였는데, 이때 김륜의 장인 허공(許珙)이 재상의 직무로 인해 함께 가지 못하게 되자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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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0년(숙종 6) 충주 지역에서 사노 준익이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 준익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죄는 인간의 기본적인 도덕을 저버린 강상죄에 해당하였으므로 삼성추국(三省推鞫)한 뒤에 자백을 받고, 그날 당고개에서 사형에 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천륜을 어긴 강상죄를 엄히 다스려, 죄인의 출생지도 불이익을 받았다. 준익 사건으로 인해 당시 충주목은 충원현으로 강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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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의 노은면 대덕리와 앙성면 지당리에 걸쳐 있는 산. 승대산은 중대산, 성대산이라고도 한다. 중대산은 승대산의 한자를 풀어서 표기한 것이고, 성대산은 승대산이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승대산은 높이 567m이며 서쪽에는 원통산[645m]이 있고 동쪽에는 국망산[770m]이 있다. 원통산과 승대산 간에는 질마루고개, 질마재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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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중례(仲禮), 호는 청사(淸沙)·허주자(虛舟子). 김극형(金克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징(金澄), 아버지는 우의정 김구(金構)이며, 어머니는 돈녕도정을 지낸 이몽석(李夢錫)의 딸이다. 아들 역시 영의정을 지낸 김치인(金致仁)으로 3대 정승에 2대 영상을 배출한 명문이다. 1702년(숙종 28)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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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중부지방산림청 산하 국유림 관리소. 중부지방산림청 충주국유림관리소는 충청북도 충주시·음성군·진천군·괴산군·증평군의 국유림을 관리하는 국가 기관이다. 사유림 매수를 통해 국가 직영 임지를 확대하고 국유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1년 6월 21일 공주영림서 충주관리소로 설립되었으며 1996년 1월 1일 중부지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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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중산은 남쪽으로 적보산, 동쪽으로 대미산, 북쪽으로 대미산 줄기가 뻗어내려 살미면과 경계를 이루는 사이에 형성된 마을로 산 가운데 마을을 뜻한다. 상촌(上村)은 마을 들어오는 입구에 새로운 동네가 생기자 윗동네란 의미로 쓰였고 신대(新垈)는 새로이 형성된 마을이라는 의미이며, 상촌에 속한 마을인 법수(法守)는 글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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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중산리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충주시 수안보면 중산리는 살미삼거리에서 갈마고개를 넘어 수회리 중앙경찰학교 전에 좌회전해서 들어가면 있는 마을로 신대, 상촌, 법수로 이루어져 있다. 적보산(積寶山)[지도에는 첩푸산으로 나온다.]은 산자락으로 아홉 봉우리가 있어서 구봉산(九峰山)이라고도 하는데, 제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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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에 위치한 인문계 사립 고등학교. 충주 중산 고등학교는 바른 인성, 알찬 실력, 강한 체력의 능력과 인성을 겸비한 창의적인 인간을 육성하고자 네 가지 교육 목표를 수립하였다. 첫째, 성실한 민주 시민의 자질을 갖춘 애국인, 둘째 미래 사회를 개척할 수 있는 건전한 능력인, 셋째 인류 번영을 위해 앞장설 지구촌 인재, 탐구 능력 배양으로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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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에 위치한 인문계 사립 고등학교. 충주 중산 고등학교는 바른 인성, 알찬 실력, 강한 체력의 능력과 인성을 겸비한 창의적인 인간을 육성하고자 네 가지 교육 목표를 수립하였다. 첫째, 성실한 민주 시민의 자질을 갖춘 애국인, 둘째 미래 사회를 개척할 수 있는 건전한 능력인, 셋째 인류 번영을 위해 앞장설 지구촌 인재, 탐구 능력 배양으로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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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중산리에 있는 저수지. 수안보면의 중앙부에는 적보산(積寶山)[일명 첩푸산, 689m]이 있고, 동남쪽에 신선봉(神仙峯)[967m]과 포암산(布巖山)[961m] 등이 솟아 있는 평균해발 고도 500m 이상의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다. 수안보면 고운리에서 발원한 고운천이 중산리에서 중산천이 되어 수회리에서 석문천으로 유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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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중순(仲淳), 호는 장암(丈巖). 고조부는 좌의정 송강 정철(鄭澈)이고, 증조부는 강릉부사 정종명(鄭宗溟)이다. 할아버지는 생원 정직(鄭溭), 아버지는 청안현감 정경연(鄭慶演), 어머니는 여흥민씨이다. 장암 정호는 병자호란을 피해 충주로 낙향한 정경연의 아들로 1648년(인조 26) 충주의 노은 고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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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중심(仲深). 내금장(內禁將) 이정(以貞)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인서(李麟瑞)와 더불어 의병을 모아 전력을 다하여 활동하였다. 1615년(광해군 7) 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으며 1617년 11월에는 생원의 대표로 진사 김이일(金以一) 등과 함께 인목대비 폐비 문제를 공론에 따라 처리하여 대의를 밝히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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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탑은 9세기에 접어들면서 옛 백제·고구려 지역에서 등장하는 지방 세력의 반발과 반신라적 민심의 대두를 잠재우고 국가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호국적인 불교의 힘을 빌려 세운 비보적 의미를 지닌 원탑이다. 중앙탑이 충주에 건립된 이유는 그 위치가 신라 영토의 중앙에 해당되어 건탑의 목적을 널리 떨치기에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 그리고 수도 다음가는 소경(小京)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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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에 있는 경찰 양성 학교. 성실 봉사하는 민주경찰 양성, 올바른 공직관과 인권의식 함양, 전문적인 경찰실무능력 배양, 건전한 정신과 강인한 체력연마를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84년 5월 경찰학교 설립 계획이 대통령 재가를 받게 됨에 따라 1987년 9월 대통령령 제12241호로 「중앙경찰학교 직제」가 공포되어, 1987년 9월 학교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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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에 있는 근린공원. 충주시 성내동 154-1번지 일대는 조선시대 충주목의 관아(官衙)가 남아 있는 곳으로, 1981년까지 중원군청 청사의 일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화유산인 충주목 관아의 보호와 함께 시민의 건강·휴양 및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1983년 1월 5일 당시 건설부 고시 제479호로 지정을 받아 「도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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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성서동에 있는 재래시장. 충주중앙공설시장은 충주 지역 유지들이 뜻을 모아 조성된 시장으로, 1950년대 건립되었던 목조 시장 건물을 철거하고 1969년 11월 1일 당시 충주시의 중심부였던 성서동 제1로타리에 충주시민들의 상권 형성에 도움을 주기 위해 개설되었다. 충주중앙공설시장은 개설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충주시의 중심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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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청년 단체. 1933년 12월 9일 충주에 거주하던 청년 40명이 충주읍 사무실에 모여 체육의 연마, 경제생활 향상, 사회봉사, 상호친목을 목적으로 중앙청년회를 발족시켰다. 이날 중앙청년회 규칙을 제정하고 회장에 이상습(李相習), 부회장에 김흥태(金興泰), 평의원에 변석은(卞錫銀) 외 6인, 간사에 민세기(閔世基) 외 6인, 고문에 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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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남한강변에 인접하여 세워졌다. 홍수 등으로 인한 석탑의 붕괴를 막기 위하여 높은 토단을 조성한 다음, 그 위에 대형의 석탑을 건립하였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건립할 때 상당한 관심과 인력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칠층석탑 일원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지표와 발굴 조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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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탑은 9세기에 접어들면서 옛 백제·고구려 지역에서 등장하는 지방 세력의 반발과 반신라적 민심의 대두를 잠재우고 국가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호국적인 불교의 힘을 빌려 세운 비보적 의미를 지닌 원탑이다. 중앙탑이 충주에 건립된 이유는 그 위치가 신라 영토의 중앙에 해당되어 건탑의 목적을 널리 떨치기에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 그리고 수도 다음가는 소경(小京)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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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에 있는 삼국시대 절터. 한국교원대학교 박물관이 1992년과 1993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하였다. 그러나 가람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많은 양의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이 토기들은 생활용 토기로 절대 다수가 신라계 토기로 추정되었는데, 특히 짧은 굽대리 접시[단각고배(短脚高杯)]는 인근 충주 누암리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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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에서 중앙탑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주에서 북쪽으로 약 6㎞ 지점에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이 있다. 이를 ‘중앙탑’이라고 한다. 이 탑의 건탑에 대한 세 종류의 유래담이 전승되고 있다. 첫째 김생이 쌓았다는 설, 둘째 신라 원성왕 때 나라의 중앙을 표시하기 위해 탑을 세우고 중앙탑이라 했다는 설, 셋째 이곳에 왕기가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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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에 있는 사적공원. 중앙탑공원은 1992년 사적공원으로 조성되었다. 2007년 문화재청에서 관리중이던 국보 제6호 중앙탑의 변형을 막기 위해 중앙탑 주변 정리와 보수 공사가 이뤄졌다. 동시에 시민들의 공원으로 자리 잡기 위해 파고라와 조형물, 어린이들을 위한 간이 분수 및 산책로를 조성하였다. 중앙탑공원 내에는 충주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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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생.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중우(仲羽), 호는 목탄(牧灘). 유일(遺逸) 이주(李珠)의 손자이다. 이일(李佾)은 1636년(인조 14) 병조호란이 일어나자 격문을 발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또한 효행으로 이름이 알려져 진사에 추천되었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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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에서 풍년을 기원하며 부르던 노동요. 「중원 마수리 농요」는 조상들이 농사를 지을 때 풍년을 기원하며 불렀던 벼농사노래이다. 일제강점기 말부터 그 자체가 잊혀져가던 것을 지난 1970년대에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 마제마을 사람들에 의해 재현됨으로써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994년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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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마수리 농요보존회는 1995년 1월에 생겨났다. 1994년 12월 30일 마수리 농요가 충북 무형문화재 제5호가 되면서 충청북도로부터 지원금이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관리할 단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1995년 1월9일 처음으로 기능보유자인 지남기 씨에게 30만원, 보존회에 10만원이 지급되었다. 그리고 전수생을 지도 육성하면 그에 맞는 전승 보조금도 지원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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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에 있는 조선 후기 기와가마터. 살미에서 괴산 방향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가다가 오른쪽으로 문강리 문산마을 앞에서 팔봉으로 가는 도로로 접어들면 팔봉마을에 이른다. 충주 문주리 요지는 팔봉마을 입구 오른쪽 달천강변 강안의 경사면에 위치한다. 충주 문주리 요지는 밭을 갈다가 사람이 빠지면서 확인되었다. 1985년 충주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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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에 있는 조선 후기 기와가마터. 살미에서 괴산 방향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가다가 오른쪽으로 문강리 문산마을 앞에서 팔봉으로 가는 도로로 접어들면 팔봉마을에 이른다. 충주 문주리 요지는 팔봉마을 입구 오른쪽 달천강변 강안의 경사면에 위치한다. 충주 문주리 요지는 밭을 갈다가 사람이 빠지면서 확인되었다. 1985년 충주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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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점말에 있는 조선 후기에서 조선 말기에 이르는 백자가마터. 가마는 토기나 자기·기와·항아리 등을 굽는 시설이다. 초기에는 노천에서 구웠기 때문에 굽는 온도가 낮아 그릇이 무르고 거칠며 붉은 색을 띠었다. 그후 점차 기술이 발전하여 야산의 야트막한 경사면을 이용하여 여러 칸의 굴 모양으로 만든 오름칸 가마[등요(登窯)]가 등장하였다. 오름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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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점말에 있는 조선 후기에서 조선 말기에 이르는 백자가마터. 가마는 토기나 자기·기와·항아리 등을 굽는 시설이다. 초기에는 노천에서 구웠기 때문에 굽는 온도가 낮아 그릇이 무르고 거칠며 붉은 색을 띠었다. 그후 점차 기술이 발전하여 야산의 야트막한 경사면을 이용하여 여러 칸의 굴 모양으로 만든 오름칸 가마[등요(登窯)]가 등장하였다. 오름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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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점말에 있는 조선 후기에서 조선 말기에 이르는 백자가마터. 가마는 토기나 자기·기와·항아리 등을 굽는 시설이다. 초기에는 노천에서 구웠기 때문에 굽는 온도가 낮아 그릇이 무르고 거칠며 붉은 색을 띠었다. 그후 점차 기술이 발전하여 야산의 야트막한 경사면을 이용하여 여러 칸의 굴 모양으로 만든 오름칸 가마[등요(登窯)]가 등장하였다. 오름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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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 전기 사각석등. 충주 미륵대원지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사세(寺勢)가 크게 확장된 사찰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의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하여 고려시대 번성한 사찰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사지에서는 대원사(大院寺)라는 명문 기와가 출토되기도 하여 절 이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석불입상을 비롯하여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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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충주 미륵대원지는 1963년에 고고미술사학회(현 한국미술사학회)에 의해 고려 석실[돌방] 사원지로 소개되었고, 1965년에는 경주 석굴암 복원을 위한 자료로 제시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5월 24일에 오층석탑과 석불입상이 각각 국보 제166호와 제167호로 지정되었고, 1963년 1월 21일에 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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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충주 미륵대원지에 있는 고려 전기 석조 불상. 충주 미륵대원지는 고려시대 들어와 크게 번창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현재 사지 일대에 대형 건물지를 비롯하여 많은 고려시대 관련 유적과 유물들이 남아 있다. 이중에서 석불입상과 오층석탑은 고려시대 지방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석불입상은 인공적으로 석축을 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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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충주 미륵대원지에 있는 고려 전기 석조 불상. 충주 미륵대원지는 고려시대 들어와 크게 번창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현재 사지 일대에 대형 건물지를 비롯하여 많은 고려시대 관련 유적과 유물들이 남아 있다. 이중에서 석불입상과 오층석탑은 고려시대 지방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석불입상은 인공적으로 석축을 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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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충주 미륵대원지에 있는 고려 전기 삼층석탑. 충주 미륵대원지 삼층석탑은 충청도에서 경상도 지역으로 넘어가는 하늘재가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바로 옆에는 충주 미륵대원지가 자리하고 있다. 석탑은 주변 지형으로 보아 사찰 경내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특정 목적을 위하여 석탑만 독립적으로 건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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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 전기 석등. 충주 미륵대원지 석등이 세워져 있는 사찰에는 석불입상, 오층석탑, 당간지주, 귀부 등을 비롯하여 고려시대 조성된 많은 유적·유물이 남아 있다. 이 사찰은 미륵신앙과 관련되어 있어 충주 미륵대원지로 불리고 있는데, 창건 시기와 관련된 구체적인 기록이나 유적·유물이 전하지 않아 분명한 것은 알 수 없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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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 전기 석등. 충주 미륵대원지 석등이 세워져 있는 사찰에는 석불입상, 오층석탑, 당간지주, 귀부 등을 비롯하여 고려시대 조성된 많은 유적·유물이 남아 있다. 이 사찰은 미륵신앙과 관련되어 있어 충주 미륵대원지로 불리고 있는데, 창건 시기와 관련된 구체적인 기록이나 유적·유물이 전하지 않아 분명한 것은 알 수 없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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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충주 미륵대원지에 있는 고려 전기 석불입상. 충주 미륵대원지는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교통요지의 역할을 했던 계입령(鷄立嶺)에 위치한 고려시대 석굴사원이다. 충주 미륵대원지는 1977년부터 5차에 걸쳐 발굴을 실시하였는데, ‘명창3년 금당개개와…(明昌三年 金堂改盖瓦…)’, ‘미륵(彌勒)’, ‘미륵당(彌勒堂)’, ‘미륵당사(彌勒堂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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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에 있는 삼국시대 마애불상군. 중앙탑면 봉황리 안골[內洞]을 흐르는 봉황천이 남한강에 합류되기 전 구부러진 곳에 해발 80여 m의 햇골산이 있다. 햇골산은 해가 뜨는 곳 또는 햇살이 제일 먼저 비치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햇골산 중턱에 마애여래좌상 1구가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동쪽으로 50m 떨어진 지점의 가파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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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 선조사지에 있는 고려시대 미륵석불.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은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되었다가 병자호란 때 폐사되었다고 전하는 선조사지(善祖寺址)에 삼층석탑과 함께 나란히 서 있다. 머리에 팔각의 보개를 얹고 있는 석불입상으로, 팔각의 넓은 보개는 석등의 옥개석을 연상하게 한다. 보개의 아랫면 가장자리에는 낙수 홈이 선으로 음각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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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 선조사지에 있는 고려시대 미륵석불.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은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되었다가 병자호란 때 폐사되었다고 전하는 선조사지(善祖寺址)에 삼층석탑과 함께 나란히 서 있다. 머리에 팔각의 보개를 얹고 있는 석불입상으로, 팔각의 넓은 보개는 석등의 옥개석을 연상하게 한다. 보개의 아랫면 가장자리에는 낙수 홈이 선으로 음각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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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충주시 엄정면 용산리와 원곡천을 사이에 두고 미내리 미실마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북향으로 있다. 충주 윤양계 고택은 1865년(고종 2) 병마절제도위, 연길현 감도청부도사, 사헌부감찰을 지낸 윤민걸의 고조부 윤양계가 살았다고 하는 전통 주거 양식이 살아 있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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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 남한강변의 암벽 위에 조각된 고려시대 마애불상. 창동리 남한강변의 암벽 위에 얕은 부조로 조각된 마애불로 동남향을 향하고 있으며 높이는 4m이다. 불상의 중앙 부분이 철 성분으로 인해 붉은색을 띠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왜군과 격전하다 분패·전사한 신립(申砬) 장군의 피눈물이라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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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은 원래 100m 정도 북쪽으로 떨어진 민가에 세워져 있었는데, 1977년경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운 것이라고 한다. 석탑이 있었던 자리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석탑이 건립되었던 것으로 보아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탑이 고려시대 건립된 것으로 보아 원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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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김해김씨 문중에서 전해 오는 민속주. 청명주는 24절기의 하나인 청명일에 사용하기 위해 빚는 민속주로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 김해김씨 문중기록인 『향전록』에 기록되어 있다. 남한강 유역의 순찹쌀과 재래종 통밀로 제조한 누룩만을 사용, 인삼·구기자·갈근·더덕·탱자 등을 가미하여 저온에서 약 100일 동안 발효, 숙성시켜 빚어지므로 알코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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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용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생인 함월 최응성이 거처하던 전통가옥. 충주시에서 남향으로 국도 3호선을 따라 단월을 거쳐 가면 살미면에 이르며, 중앙경찰학교 가기 전 단양과 수안보 방면의 3거리를 지나면 바로 왼쪽 편에 위치해 있음 원래는 충청북도 살미면 무릉리에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인해 수몰선 안쪽에 있어 1983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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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남한강변에 인접하여 세워졌다. 홍수 등으로 인한 석탑의 붕괴를 막기 위하여 높은 토단을 조성한 다음, 그 위에 대형의 석탑을 건립하였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건립할 때 상당한 관심과 인력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칠층석탑 일원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지표와 발굴 조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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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내는 명절의 하나. 음력 1월 보름을 상원(上元), 10월 보름을 하원(下元)이라 불렀다는 데서 중원(中元)이라 부르기도 한다. 백중은 조상을 기리는 날인 동시에 농업 생산 활동과 관련되어 있는 날이다. 불교가 융성하던 시절에는 백가지의 나물과 꽃·과일을 갖추어 절에 가서 죽은 이를 위해 제사를 지내고 불공을 드렸다. 농가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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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6세기경 신라는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었던 충주 지역을 빼앗은 뒤 그곳에 국원소경을 설치하였다. 7세기에 접어들어 한반도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 3국과 중국의 당, 일본까지 관련된 격렬한 전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신라는 백제를 통합하고 한반도의 중남부 지역을 장악했으며, 고구려는 당에 의해 멸망되고 그 땅에서 발해가 건국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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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용전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를 밝힌 비. 중앙탑면은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많은 문화 유적이 있어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던 지역이다. 특히 고대의 왕실이나 최고 지배층을 연상할 수 있는 지명을 상당수 찾아볼 수 있어 주목되는데, 용전리, 봉황리(鳳凰里), 천룡산(天龍山), 을궁산(乙宮山), 태자뜰[太子坪] 등을 예로 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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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 일대에서 매년 11월 열리는 고미술 축제.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에서 음성군 감곡면까지 이어지는 국도 38호선 주변에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고미술품 상가들이 하나 둘 문을 열더니, 어느 새 목공예와 민화·토기·고서 등을 포함한 100여 개 업체가 모여 고미술 거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에 중앙탑면 가흥리 일대는 고미술품 특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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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 일대에서 매년 11월 열리는 고미술 축제.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에서 음성군 감곡면까지 이어지는 국도 38호선 주변에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고미술품 상가들이 하나 둘 문을 열더니, 어느 새 목공예와 민화·토기·고서 등을 포함한 100여 개 업체가 모여 고미술 거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에 중앙탑면 가흥리 일대는 고미술품 특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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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 일대에서 매년 11월 열리는 고미술 축제.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에서 음성군 감곡면까지 이어지는 국도 38호선 주변에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고미술품 상가들이 하나 둘 문을 열더니, 어느 새 목공예와 민화·토기·고서 등을 포함한 100여 개 업체가 모여 고미술 거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에 중앙탑면 가흥리 일대는 고미술품 특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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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영덕리에 있는 골프장. 중원골프클럽은 주식회사 다함넷에서 2005년 5월 13일 등록하여 운영하다가 2008년 1월 2일 중원골프유한회사에서 인수하여 개보수를 거쳐 새로 개장하였다. 중원골프클럽의 부지 면적은 1,179,674㎡이며, 코스 규모는 27홀이다. 코스는 아래코스·중간코스·위코스의 총 3개로 나누어져 있다. 클럽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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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영덕리에 있는 골프장. 중원골프클럽은 주식회사 다함넷에서 2005년 5월 13일 등록하여 운영하다가 2008년 1월 2일 중원골프유한회사에서 인수하여 개보수를 거쳐 새로 개장하였다. 중원골프클럽의 부지 면적은 1,179,674㎡이며, 코스 규모는 27홀이다. 코스는 아래코스·중간코스·위코스의 총 3개로 나누어져 있다. 클럽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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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1995년까지 읍의 외곽 지역 12개 면을 관할했던 행정구역. 중원군의 인구는 충주시와 분리된 1년 후인 1957년 12월 현재 113,114명이었으며, 1966년에는 153,487명으로 충청북도 내에서도 으뜸가는 거대한 군이었다. 그러나 1993년 말 현재는 주민등록상 18,951가구에 67,749명(남 34,531, 여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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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완오리와 만정리를 연결하는 다리. 중부내륙고속국도에 개설된 최대의 교량으로 예부터 충주 지역을 일컫던 대표적 명칭인 중원에서 이름을 따와 중원대교라 하였다. 중원대교는 왕복 4차로로 길이 930m, 폭 12.6m, 유효 폭 11.7m이다. 교량의 높이는 하행선 45.9m, 상행선 45.2m이다. 교량의 상부 구조 형식은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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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년(성종 14)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는 전국을 통일된 국가체제로 다잡기 위하여 지방 행정구역에 대한 일대 개편을 단행하지만 중앙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목민관을 파견하지는 못하였다. 이 후 983년(성종 2) 12목이 설치되어 목사가 파견된 데 이어, 995년 7월에 중앙정부에 의한 실질적인 지방통치를 시행하기 위한 목적에서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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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중리에 있는 도서관. 농촌 지역 주민의 정보 이용과 문화 활동 및 평생 교육의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도서 열람 및 대출, 자료 복사 등을 하고 있다. 초고속 전산망 시설을 갖추어 다양한 분야의 도서 및 DVD·VTR·CD 등을 자료실 내에서 열람하고 대출할 수 있다. 또한 독서 지도 및 정보 제공을 위한 독서 교실 운영으로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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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중원문학회에서 발간하고 있는 문학 동인지. 한국문인협회 충주지부가 창립되었으나 지역에 문예지가 없는 것을 아쉬워하여1980년 3월 1일 중원문학회에서 창간하였다. 신국판(가로 152㎜, 세로 225㎜)이다. 중원문학회 소속 38명 회원들의 시, 수필, 소설을 싣고 특집으로 충주 출신 문인의 유고 작품을 발굴하여 소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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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이 만든 문학 동호회. 중원문학회는 1980년 3월 1일 충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순수 문학동인으로, 문학의 순수성과 문학 인구의 저변 확대를 꾀하며 다른 지역의 문학동인 단체와 교류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초대 회장에 안병찬, 2대 회장에 양채영, 3대 회장에 김재명, 4대 회장에 최종진이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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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부터 충주문화원에서 매년 발행하고 있는 기관지. 『중원문화』는 중원문화권이 간직한 독특한 문화유산을 알뜰히 가꾸고 다듬어 더욱 알찬 내일의 향토문화 창달에 밑거름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1988년 충주문화원에서 창간하였다. 형태는 국판이며, 면수는 약 200면 정도이다. 『중원문화』는 화보, 목차, 간지, 발간사, 특집, 중원논단, 내 고장 소개, 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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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에 있는 문화재 연구기관.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경주(신라)·부여(백제)·창원(가야)·나주(호남)에 이어 대전에 본소를 두고 있는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산하의 다섯 번째 지방문화재연구소이다. 충청북도 및 경기도·강원도 일부 지역에 걸쳐 있는 중원문화권의 문화유산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연구 및 보존·관리를 담당하기 위하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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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매년 중원 문화와 관련하여 열리는 학술 행사. 중원 문화라는 말은 충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원 문화권 지역에 형성되었던 역사·문화·사회·정치·경제 등 모든 상황을 총체적으로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보통 중원이라 하면 중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과거 통일신라시대부터 나라의 중심이라는 개념으로 중원경, 중원소경 등의 지명으로 사용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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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매년 9~10월경 우륵문화제 기간에 열리는 전국 성인 백일장. 한국문인협회 충주지부에서는 2006년 제17회까지 실시한 주부백일장을 중단하고, 새롭게 남녀 모두가 참석하여 문학 인구의 저변을 꾀할 수 있는 성인 백일장을 개최하기로 정관을 개정하였다. 시·산문 부문으로 나누어 2007년 제1회 중원백일장을 개최하였다. 중원백일장은 우륵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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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에 있는 버섯 생산·판매 조합. 새송이버섯은 조직이 치밀하고 육질이 뛰어나다. 맛이 자연산 송이와 거의 비슷하고, 영양학적으로도 비타민C가 풍부하며, 필수아미노산을 함유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기호도가 날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새송이버섯의 수분 함량은 다른 버섯보다 낮아 비교적 저장력이 좋은 편이지만, 중원버섯영농조합은 신선한 버섯을 소비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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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후기와 고려 전기 충주유씨 등 호족이 충주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설치한 관부(官府). 도속이관(道俗二官)의 기록은 보물 제17호로 지정된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의 음기에 나타난다.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의 주인공인 법경대사는 당나라에 가서 구봉산(九峯山) 도건대사(道乾大師)에게 심요(心要)를 받고 10년 동안 각지를 두루 편력하다 924년(태조 7) 46세로 귀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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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당우리에 있는 지방산업단지. 1997년 6월 충주시 주덕읍 당우리 지역이 충청북도로부터 중원지방산업단지로 지정됨에 따라 2003년 5월 실시계획 승인 및 고시를 받았다. 2005년 4월 산업단지 조성 공사를 착공하여 2006년 6월 완료된 중원지방산업단지는 수도권 내의 이전업체 유치 및 지역 내 신설·증설되는 공장을 수용하여 고용 창출로 충주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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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6세기경 신라는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었던 충주 지역을 빼앗은 뒤 그곳에 국원소경을 설치하였다. 7세기에 접어들어 한반도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 3국과 중국의 당, 일본까지 관련된 격렬한 전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신라는 백제를 통합하고 한반도의 중남부 지역을 장악했으며, 고구려는 당에 의해 멸망되고 그 땅에서 발해가 건국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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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화석리에 있는 노인 전문 요양 시설. 1998년 8월 13일 민석기는 충청북도지사로부터 사회복지법인인 보은복지재단 설립 허가를 받았다. 이후 보은복지재단에서는 노인 요양 사업을 시작하여 2003년 6월 29일 충청북도 보은군에 노인 전문 요양 시설을 착공하고, 2004년 6월 29일에는 충청북도 충주시에 노인 전문 요양 시설을 착공하였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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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초 출향인사인 이달영 원장(당시 강릉에서 동인의원 운영)이 고향에 온 기회에 우연히 회관 이전 문제가 화제가 되었다. 마을의 공공건물이 모두 숲거리에 있으나 유독 공회당만이 떨어져 있어 불편을 겪고 있었으므로 마을주민들이 옮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 이전 비용으로 30만원을 희사하겠다고 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상립(충주에서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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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양리에 있는 위탁 영농 업체. 기업적 농업 경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유통 판매를 병행함으로써 농업의 부가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0년 제정된 ‘농어촌 개발 특별조치법’에 5명 이상의 농민이 일정 규모의 시설과 장비를 갖추면 영농 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1991년 3월 9일 설립되었다. 회사 설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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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김현길이 충주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대해 쓴 향토지. 『중원의 역사와 문화유적』은 자라나는 향토의 젊은이들에게 향토의 역사를 올바로 일깨워 주고 향토에 대한 긍지를 심어 주고자 저자가 직접 답사한 내용과 경험을 정리하여 1984년 9월 청지사를 통하여 발간하였다. 1권 1책으로, 가로 12.5㎝, 세로 21㎝ 크기의 소책자 형태이며, 면수는 약 200면이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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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김풍식이 충주 지역의 문화재 현황을 파악하여 발간한 향토지. 충주 지역의 훼손되어 가는 문화재를 보호하고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중원의 향기』를 발간하였다. 판형은 국판으로 모두 132쪽이다. 충주의 역사를 개괄하고 우륵·강수·김생 등 고대 충주에 살던 인물을 조명하였다. 반송산·탑평리 사지·정토사지·중원 미륵리 사지, 탄금대 토성 등을 다루었으며, 부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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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도촌리에 있는 장학회. 충주시를 제외한 주덕읍, 중앙탑면, 금가면, 노은면, 동량면, 산척면, 살미면, 소태면, 수안보면, 신니면, 앙성면, 엄정면, 대소원면 등 13개 읍·면 지역의 고등학교 및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여 인재를 양성하고 지역 사회 및 국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창립되었다. 2008년 현재 충주시가 기금 일부를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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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투철한 국가관을 정립하여 나라와 겨레에 헌신 봉사하는 애국인, 진취적이며 미래지향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력을 갖춘 혁신인, 미래사회를 개척하는 과학 기술 교육의 강화로 창의적인 탐구인, 기초 학력 증진과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계발하는 능력인, 건전한 심신과 강인한 체력으로 더불어 사는 조화로운 건강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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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당우리에 있는 지방산업단지. 1997년 6월 충주시 주덕읍 당우리 지역이 충청북도로부터 중원지방산업단지로 지정됨에 따라 2003년 5월 실시계획 승인 및 고시를 받았다. 2005년 4월 산업단지 조성 공사를 착공하여 2006년 6월 완료된 중원지방산업단지는 수도권 내의 이전업체 유치 및 지역 내 신설·증설되는 공장을 수용하여 고용 창출로 충주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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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에 있는 생활체육공원. 중원체육공원은 충주시가 충주 지역 주민들의 축구 경기장 및 생활 체육 공간을 지원하기 위하여 탄금호(彈琴湖) 내의 고수부지에 1991년 12월 착공하여 이듬해인 1992년 11월 말 건립하였다. 중원체육공원은 부지 면적 14,492㎡에 축구장 1면과 배구장, 농구장, 족구장, 씨름장 등 다양한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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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에 있는 무용 단체. 충주는 진흥왕과 악성 우륵과의 인연으로 충주 탄금대에서 우륵이 세 제자에게 춤과 창과 가야금을 가르쳤다는 문헌상의 기록과 함께 지명도 가야금과 관계있는 가금, 금가, 청금, 탄금, 칠금 등 예향의 고장, 우륵의 고장, 가야금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중원춤학회는 우륵이 세 명의 제자 중 만덕에게는 춤을,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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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영덕리에 있는 골프장. 중원골프클럽은 주식회사 다함넷에서 2005년 5월 13일 등록하여 운영하다가 2008년 1월 2일 중원골프유한회사에서 인수하여 개보수를 거쳐 새로 개장하였다. 중원골프클럽의 부지 면적은 1,179,674㎡이며, 코스 규모는 27홀이다. 코스는 아래코스·중간코스·위코스의 총 3개로 나누어져 있다. 클럽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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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와 음성군 감곡면 지당리 경계에 있는 터널. 중원터널의 중원이란 이름은 충주의 옛 지명인 중원경에서 따 왔다. 중원터널은 왕복 4차선인 중부내륙고속국도에 폭 23.6m, 길이 988m로 만들어진 왕복 6차선 터널이다. 입구는 아치형으로 만들어졌고, 내부에는 전등과 환풍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편도 3차선 왕복 6차선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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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에 있는 학생 야영장. 중원학생야영장은 충주 지역 학생들이 자연과 더불어 심신을 단련하고 진취적 사고와 호연지기의 기상을 함양하며, 올바른 가치관 형성과 더불어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 충청북도 충주교육청 직속 기관으로 건립되었다. 중원학생야영장의 부지 면적은 총 62,491㎡, 건물 면적은 982.3㎡이다.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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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장기덕이 충주 지역 유형·무형의 문화유산을 발굴하여 기록한 향토지. 충주 지역 유형·무형의 문화유산은 사적이나 정사의 기록보다는 민간에 내려오는 비화나 전설 등에 살아 숨 쉬고 있으므로 이를 발굴하여 기록으로 남기고자 『중원향토기(中原鄕土記)』를 발간하였다. 판형은 크라운판으로 쪽수는 1권과 2권 각각 750여 쪽이다. 모두 2권 2책으로 각 권 3편으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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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영덕리에 있는 골프장. 중원골프클럽은 주식회사 다함넷에서 2005년 5월 13일 등록하여 운영하다가 2008년 1월 2일 중원골프유한회사에서 인수하여 개보수를 거쳐 새로 개장하였다. 중원골프클럽의 부지 면적은 1,179,674㎡이며, 코스 규모는 27홀이다. 코스는 아래코스·중간코스·위코스의 총 3개로 나누어져 있다. 클럽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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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중방곡리(中方谷里)와 저전리(楮田里)에서 ‘중(中)’자와 ‘전(田)’자를 따 ‘중전(中田)’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앙암면(仰岩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방곡리·서음리(西音里)·저전리·강정리(江亭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중전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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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의 별칭. 고려시대 금석문인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와 사자빈신사지석탑(師子頻迅寺址石塔)에는 충주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중주(中州)’가 등장한다. 하지만 『고려사(高麗史)』 등의 역사서에는 중주에 대한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인 명칭이라기보다는 민간에서 사용한 별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州)’는 신라 이래의 지방 행정구역 명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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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가장(假葬)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중첨(仲瞻). 충청도관찰사 이덕숭(李德崇)의 현손이다. 할아버지는 성천도호부사(成川都護府使)를 지낸 이감남(李坎男)이며, 아버지는 송화현감松禾縣監)을 지낸 이보인(李寶仁)이다. 이수림은 1592년(선조 25) 고양군수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선조가 북으로 파천(播遷)한다는 소식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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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에 속하는 법정리. 청룡마을의 중간이 되므로, 가운데 청룡 또는 중청룡(中靑龍)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하청동(下靑洞)을 병합하여 중청동이라 하였다. 이 지역은 『여지도서』충원현조에 의하면 성태양면 청룡동리(靑龍洞里) 지역으로 충주 관아로부터 북쪽으로 45리 거리에 위치하였으며, 가구수는 122호에 남자가 34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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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에 속하는 법정리. 청룡마을의 중간이 되므로, 가운데 청룡 또는 중청룡(中靑龍)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하청동(下靑洞)을 병합하여 중청동이라 하였다. 이 지역은 『여지도서』충원현조에 의하면 성태양면 청룡동리(靑龍洞里) 지역으로 충주 관아로부터 북쪽으로 45리 거리에 위치하였으며, 가구수는 122호에 남자가 34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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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중청리 가청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예전에 고목인 느티나무를 신목으로 모셨으나 폭풍으로 넘어져 죽었고, 지금은 그 묘목을 키워 당목으로 모신다. 제일은 음력 정월 14일로 저녁 9시에 지낸다. 제관은 일주일 전에 생기·복덕을 가려 부정하지 않은 사람을 선정하는데 이를 ‘유사’라고 부른다. 유사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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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중청리 가청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예전에 고목인 느티나무를 신목으로 모셨으나 폭풍으로 넘어져 죽었고, 지금은 그 묘목을 키워 당목으로 모신다. 제일은 음력 정월 14일로 저녁 9시에 지낸다. 제관은 일주일 전에 생기·복덕을 가려 부정하지 않은 사람을 선정하는데 이를 ‘유사’라고 부른다. 유사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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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음력 8월 15일에 지내는 명절의 하나. 농경사회에서 유래된 추석은 우리 고유의 명절로 충주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중추절 또는 한가위라고도 한다, 중추절은 가을을 초추(初秋, 7월), 중추(中秋, 8월), 종추(終秋)로 불린 데서 붙여진 이름이고, 한가위란 8월 중에서도 가장 크게 한가운데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추석은 한 해의 농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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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중등 보통 교육 담당 기관. 중학교는 수업 연한이 3년이고 초등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 보통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69년 서울부터 중학교 무시험 입학제가 실시되어 1971년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1980년대 이후 국민교육 이념이 강조되면서 중학교 의무교육제도를 추진하는 바탕이 되었는데 1985년 도서·벽지 지역을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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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중현. 자제 중 첫째 아들 최염은 검교정승·판밀직부사를 지냈고, 셋째 아들 최순은 성절사로 중국에 다녀온 뒤 직제학·대사간을 역임했다. 1374년(공민왕 23) 사헌부지평으로 있을 때 최영(崔瑩)을 비난하다 연안부사로 좌천되었다. 1390년(공양왕 2) 우상시를 거쳐 정몽주(鄭夢周)와 유림의 추천으로 보문각직제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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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활동하는 증산교의 일파. 증산도는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이 창시한 증산교의 일파이다. 안세찬(安世燦)이 1974년부터 충청남도에서 포교하기 시작하여 1978년 대전에서 ‘대법사 증산교’라는 이름으로 창교하였다. 1980년 증산교 대학생포교회를 조직하고 1984년 증산도로 교명을 바꾸었고 증산도대학교를 설립했다. 1990년 증산도 대학생 제3차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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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승려. 속명은 한찬영(韓粲英).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고저(古樗). 호는 목암(木庵)·혜월원명(慧月圓明)·지감원명(智鑑圓明). 아버지는 사복직장에 재직했던 한적이고 어머니는 청주곽씨이다. 대지국사는 1341년 삼각산 중흥사에서 태고화상 보우를 은사로 삭발하고 법을 받았다. 승과에 응시한 23세 전까지 보우에게 5년, 정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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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중원마수리농요」 기능보유자. 지남기는 1926년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웅동리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면 신양리로 이주하였으며, 28세에 다시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농사철에 뛰어난 목청으로 메김소리를 맡아 하다가 주위에 알려지면서 1970년대 당국의 지원을 받아 농요 복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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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신니면 마수리는 현재 중요 민속자료인 중원 농요의 전승지로 유명하다. 이 농요(일명 탄금대 방아타령)는 1972년 제13회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 때 영예의 대통령상을 받았다. 또한 마수리 농요는 1994년 충북 무형문화재 제5호가 되었으며, 이를 원형대로 보존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매년 시연을 하고 있다. 충주 마수리 농요(忠州 馬水里 農謠)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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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지장리(智庄里)와 삼당리(三堂里)에서 ‘지(智)’자와 ‘당(堂)’자를 따 ‘지당(智堂)’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복성면(福城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장리·삼당리·하지장·상지장·벌말이 통합되어 지당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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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지당리에 있는 선사시대 바위 구멍. 바위에 구멍을 파놓은 예는 고인돌의 덮개돌이나 탑의 기단갑석·제단·별자리도 등에서 관찰된다. 바위에 구멍을 쪼거나 갈아서 파는 행위는 많은 노력이 수반되기 때문에 주로 성스러운 의식에 행해지는 것으로 보았다. 바위구멍은 성혈(聖穴) 또는 굼, 컵 마크(cup-mark) 등으로 불린다. 바위구멍은 충주에서 여러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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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지당리에 있는 선사시대 바위 구멍. 바위에 구멍을 파놓은 예는 고인돌의 덮개돌이나 탑의 기단갑석·제단·별자리도 등에서 관찰된다. 바위에 구멍을 쪼거나 갈아서 파는 행위는 많은 노력이 수반되기 때문에 주로 성스러운 의식에 행해지는 것으로 보았다. 바위구멍은 성혈(聖穴) 또는 굼, 컵 마크(cup-mark) 등으로 불린다. 바위구멍은 충주에서 여러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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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지당리 벌말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앙성면은 충주의 북쪽 끝에 위치하며, 경기도 이천 장호원, 강원도 원주 부론면 등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충주의 중심지보다도 사회적 정보나 흐름을 빠르게 접했으며, 경제적인 행위도 비교적 능동적이다. 앙성면 일대에는 용포리·지당리·조천리·모점리·사미리·마련리·영죽리·용대리 등 전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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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지당리 벌말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앙성면은 충주의 북쪽 끝에 위치하며, 경기도 이천 장호원, 강원도 원주 부론면 등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충주의 중심지보다도 사회적 정보나 흐름을 빠르게 접했으며, 경제적인 행위도 비교적 능동적이다. 앙성면 일대에는 용포리·지당리·조천리·모점리·사미리·마련리·영죽리·용대리 등 전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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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지당리에 있는 선사시대 바위 구멍. 바위에 구멍을 파놓은 예는 고인돌의 덮개돌이나 탑의 기단갑석·제단·별자리도 등에서 관찰된다. 바위에 구멍을 쪼거나 갈아서 파는 행위는 많은 노력이 수반되기 때문에 주로 성스러운 의식에 행해지는 것으로 보았다. 바위구멍은 성혈(聖穴) 또는 굼, 컵 마크(cup-mark) 등으로 불린다. 바위구멍은 충주에서 여러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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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지당리에 있는 저수지. 충주시 앙성면 지당리에는 1992년 폐교된 복성국민학교가 있어 지당저수지, 또는 복성저수지라 하였다. 노은면의 가신리와 지당리의 경계에 있는 승대산(僧代山)[567m] 동쪽의 둔티고개와 승대산 서쪽의 질마루고개, 질마루재 등의 고개에서 북류하는 계곡수가 지당리 대촌마을을 거쳐 복성저수지로 유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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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지도(志道). 아버지 이계열(李繼悅)은 일찍 타계하여 출사하지 못하였고, 어머니 연안김씨(延安金氏)는 참봉 김규사(金逵思)의 딸이다. 1572년(선조 5) 중사마(中司馬)를 지내고, 1590년(선조 23) 청단찰방(靑丹察訪)이 되었다. 1597년(선조 30) 상의직장(尙衣直長)으로 옮겼으며, 이듬해 전성주부에 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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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이름은 종이를 만들던 곳이라 하여 종이골·지동 또는 조골이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앙암면(仰岩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잠리(金岑里)·만지리(晩知里)·무동리(武洞里)·미라실·백석(白石)·사방(絲房)·양아리(兩牙里)·흑목리(黑木里)가 통합되어 지동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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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지동리 금잠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지동리 금잠 산신제에서는 서낭제를 함께 지낸다. 산신당은 따로 없고 마을 뒷산 소나무 밑 제단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서낭당도 따로 없으며 논 가운데에 형성된 숲에 있는 고사목 그루터기에서 서낭제를 지낸다. 제일은 음력 7월 7일로 9시경에 올린다. 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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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지동리 미라실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안서낭당(할머니서낭당)과 바깥서낭당(할아버지서낭당)이 있다. 안서낭당은 층층나무, 벚나무, 고무딸기나무(복분자의 일종) 등으로 이루어진 당숲 안에 있다. 1985년경에 지은 안서낭당은 4면 시멘트 블록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단칸 제당이며 출입문이 없다. 바깥서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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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지동리 미라실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안서낭당(할머니서낭당)과 바깥서낭당(할아버지서낭당)이 있다. 안서낭당은 층층나무, 벚나무, 고무딸기나무(복분자의 일종) 등으로 이루어진 당숲 안에 있다. 1985년경에 지은 안서낭당은 4면 시멘트 블록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단칸 제당이며 출입문이 없다. 바깥서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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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지동리 사방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사방(絲房)은 골짜기가 좁아 실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충주댐 공사로 마을 대부분이 수몰되어 일부만 남아있으며 현재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지동리 금잠에 속해 있다. 마을 입구에 서낭당이 있었고 사방마을 큰골에 산제당(山祭堂)이 있었다. 제일은 음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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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지동리 사방마을에서 주민들이 비가 오기를 빌며 지내던 마을 제사. 사방마을 남쪽에 있는 용추(龍湫, 일명 용수꾸미)에 용(龍)이 살고 있다고 믿어 이곳에 제사 지냈다. 심한 가뭄이 들면 부정하지 않은 사람을 제주(祭主)로 선출하고, 각 가정에서 추렴하여 제비를 마련하였다. 제일이 되면 용추에서 돼지를 잡아 돼지머리를 수심 깊은 곳에 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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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지동리 양아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양아는 충주시 동량면 손동리 음양지 삼거리에서 남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동량면 손동리 탄동을 지나 충주호변에 형성된 마을로 주로 밭농사를 짓고 있으며 과수원이 많다. 양아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음력 7월 10일에 양아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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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지동리 원지동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냈던 마을 제사. 원지동은 충주시 동량면 지동리의 중심 마을이었으나 1983년 충주댐 공사로 마을이 수몰되어서 산신제도 폐지되었다. 산지댕이 신다리골(신담)에 있는 세 곳의 선녀탕에서 지냈다. 제일은 음력 7월 중 택일 하였고 자시에 지냈다. 제관은 생기복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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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지동리 원지동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원지동은 지동리의 중심 마을이었는데, 1983년 충주댐 공사로 마을이 수몰되어 서낭제도 폐지되었다. 마을 입구 둘레가 4~5m 정도 되는 소나무 앞에 짚을 한 단씩 추렴하여 당집을 만들고, 서낭제를 지냈다. 제일은 음력 1월 14일로 정해져 있고 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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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지동리 원지동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원지동은 지동리의 중심 마을이었는데, 1983년 충주댐 공사로 마을이 수몰되어 서낭제도 폐지되었다. 마을 입구 둘레가 4~5m 정도 되는 소나무 앞에 짚을 한 단씩 추렴하여 당집을 만들고, 서낭제를 지냈다. 제일은 음력 1월 14일로 정해져 있고 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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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지동리에 있던 신석기시대 에서 초기 철기시대의 유물산포지. 동량면 지동리는 제천과 접한 지역으로 동량면 하천리 정토사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정토사지는 고려 초에 이미 대가람을 이루어 법경대사나 홍법국사가 주석했으며, 고려 말에는 고려의 외사고가 한동안 머물렀던 곳이다. 지동리는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으나, 닥나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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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있는 산. 천등산[807m], 인등산[666m]과 함께 천지인(天地人) 중 지(地)에 해당하는 산이며, 삼태극을 이루는 삼등산의 하나이다. 『정감록(鄭鑑錄)』에 따르면 천등산·인등산·지등산의 흐름이 태극무늬를 이룬다고 하여 삼등산이라 하였다 한다. 지등산이 맨 남쪽에 있는 것은 천지인 삼재(三才)의 끝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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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 사문리에서 미륵리로 넘어가는 고개. 1891년에 편찬된 『연풍현읍지(延豊縣邑誌)』에서는 마골산[640m]의 마골점 봉수(麻骨岾 烽燧)[일명 마골봉수]는 연풍현 북쪽 40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지릅재 남쪽에 마골산 봉수가 있어 마골점(麻骨岾)이라고도 불렸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계립령(鷄立嶺)의 별칭으로 지릅재라는 명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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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 사문리에서 미륵리로 넘어가는 고개. 1891년에 편찬된 『연풍현읍지(延豊縣邑誌)』에서는 마골산[640m]의 마골점 봉수(麻骨岾 烽燧)[일명 마골봉수]는 연풍현 북쪽 40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지릅재 남쪽에 마골산 봉수가 있어 마골점(麻骨岾)이라고도 불렸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계립령(鷄立嶺)의 별칭으로 지릅재라는 명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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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직동에 있는 남산 등에서 발원하여 시가지의 중심부를 지나 탄금대 서쪽에서 달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충주시가의 중심부를 흐르는 하천이어서 충주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길이 10.50㎞이며, 교현천과 함께 충주시가지를 흐르는 중요한 하천이다. 충주분지를 남동~북서로 관통하며 흐르면서 구릉대와 달천평야 곳곳에 충적지를 만들고 있다. 상류는 남산과 대림산 일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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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안림동에 있는 공공 의료기관. 충청북도 북부 지역 주민들의 건강 증진과 지역 보건 의료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37년 도립 청주병원 충주분원으로 설립되어 1940년 도립 충주의원으로 승격되었으며 1952년 도립 충주병원으로 독립하였다. 1983년 충청북도 지방공사 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에 따라 지방공사 충청북도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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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일(迎日). 호는 지산(志山). 아버지는 정운한(鄭雲漢)이다. 정원택은 1911년 김교헌(金敎獻)·김유근(金柳瑾)을 만나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3년 상해로 건너가 신규식(申圭植)이 이끄는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8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할 사절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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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 가운데 하나로 큰 돌을 이용하여 돌상자 모양의 무덤방을 만든 후 그 위에 큰 돌을 덮어 놓은 형태를 말한다. 고인돌이란 명칭은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돌(고임돌)에서 유래되었다. 고인돌을 가리키는 말은 각 나라별로 다양하다.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또는 대석개묘(大石蓋墓)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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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중심(仲深). 내금장(內禁將) 이정(以貞)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인서(李麟瑞)와 더불어 의병을 모아 전력을 다하여 활동하였다. 1615년(광해군 7) 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으며 1617년 11월에는 생원의 대표로 진사 김이일(金以一) 등과 함께 인목대비 폐비 문제를 공론에 따라 처리하여 대의를 밝히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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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수지(受之). 고려의 명장 충의군(忠義君) 지용기(池勇寄)의 후손이며 사과 지경담(池景湛)의 아들이자 우암 송시열의 외조부이다.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공을 세워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라 용천부사가 되었으나 모함을 당해 의주에 충군(充軍)되었다. 배소(配所)에 있을 당시 가도에 주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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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개발 사업은 1958년 10월 이 사업을 추진할 ‘지역사회개발중앙위원회’가 조직되어 각 도 및 군 단위의 지역사회개발위원회가 결성되며 시작되었다. 관 주도로 시작된 지역사회 개발사업은 군수를 위원장으로 하여 군의 관계과장, 교육감, 농사교도소장, 협동조합장 및 중앙위원회에서 파견된 4명의 지도원으로 ‘지역개발군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그 밑에 시범부락의 부락민으로 구성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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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출신의 행정가. 지정환은 충주의 금가공립보통학교(현 금가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국립경찰전문학교를 나왔다. 한국전쟁 중인 1950년 단양경찰서장을 지냈고, 1953년 옥천경찰서장을 역임하였다. 1956년에 민주당 충주시부위원장을 맡다가 제2대 충주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징계자격위원장을 거쳐 의장으로 활동하였다. 1960년 민주당 정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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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의 지각을 구성하는 암석과 지층의 성질 또는 상태. 충주 지역의 거시적인 지형 윤곽은 서부 차령산지, 중앙부 충주분지, 동부 태백산지와 남동부 소백산지로 3분화될 수 있다. 지질은 이러한 지형적 특색과 어느 정도 맞물려 있다. 남동부 지역은 고생대 변성퇴적암류가 분포되어 있고, 중북부 지역은 중생대 화강암류가 분포되어 있고, 북동부와 서부 경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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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광월리와 음성군 생극면 오생리를 연결하는 고개. 옛날 고개 근처에 못이 있어 못고개가 되었다. 못고개가 목고개로 변화되었으며 한자로 지현(池峴)으로 표기되었다. 못고개의 동쪽에 있는 신니면 광월리는 넓은 들이 있어 붙어진 이름인데, 광월리 새터마을 부근의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못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못고개는 낮은 고개로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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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지현동은 1969년 지곡동과 빙현동을 통합해 만든 동이다. 빙현은 현재 용운사 옆의 서낭댕이 동편 일대를 말하는데 대원사 옆의 지하수가 용출해서 겨울이면 빙판을 이루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곡은 고려 중엽 충주목에 낙향한 노관이 이 지역에 터를 닦고 집을 세웠는데 집 구조의 조경을 산수지곡으로 만들었다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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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지현동에 있는 청주교구 소속 천주교 교회. 충주 본당의 제5대 주임신부였던 보어 신부는 지현동에 대지를 사들인 뒤 1959년 12월 임시 성당을 짓고 미사를 집전하였다. 1960년 2월 1일 지현동성당을 설립하였고, 초대 주임신부로 보어가 부임하였다. 처음에는 본당의 이름을 지곡성당이라고 하였으나 1983년 지곡동과 빙현동이 지현동으로 통합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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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지현동에 있는 청주교구 소속 천주교 교회. 충주 본당의 제5대 주임신부였던 보어 신부는 지현동에 대지를 사들인 뒤 1959년 12월 임시 성당을 짓고 미사를 집전하였다. 1960년 2월 1일 지현동성당을 설립하였고, 초대 주임신부로 보어가 부임하였다. 처음에는 본당의 이름을 지곡성당이라고 하였으나 1983년 지곡동과 빙현동이 지현동으로 통합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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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지현동에 있는 청주교구 소속 천주교 교회. 충주 본당의 제5대 주임신부였던 보어 신부는 지현동에 대지를 사들인 뒤 1959년 12월 임시 성당을 짓고 미사를 집전하였다. 1960년 2월 1일 지현동성당을 설립하였고, 초대 주임신부로 보어가 부임하였다. 처음에는 본당의 이름을 지곡성당이라고 하였으나 1983년 지곡동과 빙현동이 지현동으로 통합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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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나타나는 땅의 기복과 형태. 충주는 동부 태백산지, 남동부 소백산지, 서부 차령산지로 둘러싸인 내륙의 산간 분지이다. 이곳은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자리에 형성된 침식 분지로서, 남한강이 좁은 골짜기로 이루어진 상류 유역을 흐르다가 처음으로 하곡이 넓어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구체적인 지점이 바로 충주댐 부근이다. 달천 또한 속리산에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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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이 곧은 골짜기로 되어 있어 곧은골 또는 직곡이라 하였는 데, 1914년 구운리(九雲里)와 발티[發峙]를 병합하여 직동이라 하였다. 1760년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처음으로 동명이 나타나며, 당시에는 충원현의 남변면에 속했다. 1895년 충주군 설치로 충주군 남변면에 속하였고, 1912년 『구한국 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는 충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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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직동에 있는 고려 전기 무덤군.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모두 도굴되고 심하게 파괴된 것을 정리하기 위한 조사를 하였다. 할석으로 축조한 구덩식 돌덧널무덤이며, 내부에서 관정(棺釘)이 나오고 있어 돌덧널 안에 따로 목관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산에서 서남으로 뻗어내린 짧은 두(A. B) 능선에 15기(A지구 9기, B지구 6기)의 고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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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석종사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충주시에 있는 남산의 산록에 일명 죽정사지(竹精寺址)로 전해지는 사지가 있었다. 사찰은 조선시대인 1870년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에 의하여 폐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실은 알 수 없다. 사지는 과수원으로 경작되고 있었으며 사지 일대에 다량의 기와편을 비롯하여 밭 가운데 파손된 석탑재가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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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직동 석종사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충주시에 있는 남산의 산록에 일명 죽정사지(竹精寺址)로 전해지는 사지가 있었다. 사찰은 조선시대인 1870년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에 의하여 폐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실은 알 수 없다. 사지는 과수원으로 경작되고 있었으며 사지 일대에 다량의 기와편을 비롯하여 밭 가운데 파손된 석탑재가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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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직재(直哉). 고려 태조를 도운 공신 최준옹(崔俊邕)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문하시랑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郞中書門下平章事) 최석(崔奭)이다. 최유청은 예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스스로 유자(儒者)는 고학(古學)을 배운 후에 벼슬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문을 닫고 책 읽기에 열중하며 벼슬을 사양했다. 뒤에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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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기주(箕疇), 자는 여구(汝九), 호는 직재(直齋). 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 이숙(李熟)이며, 어머니는 군수(郡守) 송현(宋鉉)의 딸이다. 이기홍은 이지겸(李之謙)·송준길(宋俊吉)·송시열(宋時烈) 등에게 배웠다. 과거에 응시하지 않다가 47세 때인 1687년(숙종 13) 학행으로 효릉참봉에 천거되어 임용되었다. 16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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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 온천리, 고운리, 중산리에 걸쳐 있는 산. 적보산은 일명 직포산, 적포산(積抱山), 첩보산, 첩푸산, 구봉산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산 중턱에 약 100m 간격으로 아홉 개의 소봉이 등고선을 따라 솟아 있어 구봉산(九峰山)이라고도 하는데 구봉 아래에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활만인지지(活萬人之地)의 명당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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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본평리에 있는 장묘 시설. 재단법인 진달래추모공원은 정부 시책에 호응하여 현대적 공원묘지 조성 및 납골당을 건립하여 한국 고유의 미풍양속을 보존하며, 주위 환경의 미화 조성과 유지 관리를 도모하여 국민 복지에 기여하고자 1982년 3월 25일 충청북도로부터 묘지설치허가를 받았다. 1983년 11월부터 1999년 3월까지 9회에 걸쳐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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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본평리에 있는 장묘 시설. 재단법인 진달래추모공원은 정부 시책에 호응하여 현대적 공원묘지 조성 및 납골당을 건립하여 한국 고유의 미풍양속을 보존하며, 주위 환경의 미화 조성과 유지 관리를 도모하여 국민 복지에 기여하고자 1982년 3월 25일 충청북도로부터 묘지설치허가를 받았다. 1983년 11월부터 1999년 3월까지 9회에 걸쳐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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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본평리에 있는 장묘 시설. 재단법인 진달래추모공원은 정부 시책에 호응하여 현대적 공원묘지 조성 및 납골당을 건립하여 한국 고유의 미풍양속을 보존하며, 주위 환경의 미화 조성과 유지 관리를 도모하여 국민 복지에 기여하고자 1982년 3월 25일 충청북도로부터 묘지설치허가를 받았다. 1983년 11월부터 1999년 3월까지 9회에 걸쳐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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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본평리에 있는 장묘 시설. 재단법인 진달래추모공원은 정부 시책에 호응하여 현대적 공원묘지 조성 및 납골당을 건립하여 한국 고유의 미풍양속을 보존하며, 주위 환경의 미화 조성과 유지 관리를 도모하여 국민 복지에 기여하고자 1982년 3월 25일 충청북도로부터 묘지설치허가를 받았다. 1983년 11월부터 1999년 3월까지 9회에 걸쳐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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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에 있는 진상흥의 공덕을 기리는 비. 진상흥은 연하리 대동계장으로 약 10여 년간 봉사하였고, 노인정을 창설하여 15년간 노인회장을 역임하면서 유언으로 연하리 마을회관 부지를 희사함에 따라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89년 9월 24일 진상흥 기공비를 건립하였다. 노은면에서 앙성면으로 가는 구도로 옆의 마을회관 앞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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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화암리에 있는 어린이 보호 시설. 갈 곳이 없거나 가족이 있어도 보호받을 수 없는 아동을 위한 휴식처 마련을 통해 행복한 아동기를 보내면서 성장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5년 3월 15일 조립식 건물의 완공과 더불어 아동들의 입소가 시작되었으며 2000년에는 충청북도 사회복지협의회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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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에 있는 진용학의 공덕을 기리는 비. 연화마을 앞들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로 만든 진용학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연하리 주민들이 1975년 8월 17일 세운 비이다. 노은면 연하리 연화마을 입구 개인 주택 담장 뒤쪽에 세워져 있다. 비좌개석의 형태로 지붕돌은 73×49×46㎝이며, 비신은 44.5×19×120㎝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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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목벌동과 살미면 재오개리 경계에 있는 고개. 목벌동 진의실마을에서 재오개리 재오개마을로 올라가는 고개라서 붙어진 이름이다. 진의실재는 목벌동 진의실마을과 살미면 재오개리 상재오개 안골마을의 중간에 있는 약 350m의 고개이다. 안림동과 목벌동 경계에 남산(636m, 일명 금봉산)이 있고, 남산 서쪽 안림동과 목벌동 경계에 마즈막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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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목벌동과 살미면 재오개리 경계에 있는 고개. 목벌동 진의실마을에서 재오개리 재오개마을로 올라가는 고개라서 붙어진 이름이다. 진의실재는 목벌동 진의실마을과 살미면 재오개리 상재오개 안골마을의 중간에 있는 약 350m의 고개이다. 안림동과 목벌동 경계에 남산(636m, 일명 금봉산)이 있고, 남산 서쪽 안림동과 목벌동 경계에 마즈막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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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진지(鎭之), 이극감(李克堪)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교리를 지낸 이연경(李延慶),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이호약(李好約)이다. 민건(閔健)의 딸 정부인 여흥민씨 사이에서 아들 이근후와 세 딸을 두었다. 1557년(명종 12) 충주에서 태어난 이광악은 1584년(선조 17)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5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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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여양(驪陽). 8세 때 아버지가 냇물을 건너다 물이 불어나서 떠내려가는데 이것을 본 진후는 대성통곡하며 자기도 아버지를 따라 죽겠다고 냇물에 뛰어들었다. 그러자 물결이 잔잔해져 아버지를 구하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경탄했다. 또한 13세 때에는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으며 또한 약을 올리며 대변까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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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은 재위 12년째를 맞은 551년에 나라를 새롭게 열겠다는 의지로 연호를 ‘개국(開國)’으로 고친다. 개국의 의지를 실천하여 신라의 중흥을 이룩한 진흥왕의 일대 사업은 국경 지대의 요충인 낭성(娘城) 순수에서 우륵의 신가(하림조)를 접한 이후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진흥왕과 우륵(于勒)의 만남에는 어떠한 수수께끼가 있음이 분명하다. 다음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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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촌락. 집성촌은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성씨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은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조선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17세기 이후 적장자 중심의 상속제도의 변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보급, 예학(禮學)의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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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내리는 전주이씨 진안대군파의 집성촌으로 번성을 이루어 왔다. 이덕량의 부친인 이식(李軾)을 시조로 방호파를 이룬 것이다. 이처럼 전주이씨가 대종을 이루며 세거하고 있기 때문에 마을의 공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부분의 마을에 존재했던 대동계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대동계의 역할을 종회가 중심이 되어 풀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성동마을의 경우에는 타성의 유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