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 및 직동과 살미면 향산리를 연결하는 고개. 직동(일명 곧은골, 고든골)에서 살미면 향산리 난영이마을(일명 나냉이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나냉이재는 대림산[489m] 동쪽 능선에 있는 고개로, 북쪽으로 남산[636m]과 이웃하고 있다. 발티와 함께 충주시 남동부에서 소백산지로 들어가는 길목이었으며, 마즈막...
-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에 있는 중증 장애인 요양 시설. 「장애인복지법」 제48조 1항의 규정에 의거하여 중증 장애인을 위한 요양 사업과 복지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0년 4월 27일 재단 법인 춘광애육원을 설립하여 1980년 2월 29일 사회 복지 법인 숭덕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85년 1월 1일 숭덕심신장애인요양원을 설립하였으며 초대 김경애 원장...
-
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목벌동은 나무벌[木伐]·요각골[腰角谷]·진의실(眞衣室)·원터[院垈]를 합쳤을 때 목벌리라 하였고, 나무가 많은 지역이어서 나무벌, 목벌이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살미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무음동(元武音洞)이 충주군 읍내면(충주면)의 종민동으로 편입되고 나무벌·요각골·진의실·원터는 합쳐서 목벌리라...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문인이며 서예가인 김구가 지은 평시조. 김구(金絿)[1488~1534]의 자는 대유(大柔), 호는 자암(自庵)이다. 예산이 고향으로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이며, 일찍부터 성리학 연구에 전념해 학문 실력이 조광조(趙光祖)·김식(金湜)과 겨눌 만했다 한다. 글씨에도 뛰어나 조선 전기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서울 인수방(仁壽坊)...
-
2000년 간행된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공직 생활을 한 이철재의 회고록. 『나의 삶 나의 길』은 충주신문사 출판사업부에서 발행한 이철재의 회고록이다. 이철재는 1969년 10월 중원군 농촌지도소에 발령을 받은 후 6년여 동안 근무하였다. 그후 충주시청에서 10여 부서의 계장을 역임하고 행정사무관으로 승진하여 문화공보실장, 사회진흥과장, 문화관광담당관 사회과장, 농업정책...
-
고려 후기 충주판관을 역임한 문신. 이지명은 1144년(인종 22) 18세로 문과에 급제하고 황주서기(黃州書記)을 역임하였다. 충주판관 재직시에는 굶주린 사람들을 구휼하는데 힘썼다. 1170년(의종 24)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고 명종이 즉위한 후 상서우승(尙書右丞)가 되었으며, 1181년(명종 11)에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를 거쳐 우산기상시(右...
-
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낙순(洛淳), 자는 사원(士源), 호는 풍고(楓皐)이다.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4대손으로, 부사 김이중(金履中)의 아들이고, 순조(純祖)의 장인이다. 1785년(정조 9) 약관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8년 규장각대교로 있을 때 시·벽파(時·僻派) 싸움에 중립을 지키며 당쟁을 없앨 것을 주장하였다. 1...
-
고려 후기에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평보(平甫), 호는 낙포(洛圃). 고조할아버지는 첨의중찬을 지낸 상락공 김방경(金方慶), 증조할아버지는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지낸 김순(金恂), 할아버지는 첨의정승을 지낸 상락후 김영후(金永煦), 아버지는 밀직부사를 지낸 김천(金蕆)이다. 슬하에 김승(金陞), 김육(金陸) 2남을 두었고, 손자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김...
-
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서(景西), 호는 난고(蘭皐). 묵재(黙齋) 이귀(李貴)의 후손이다. 충주목사를 역임하였다. 충주목사 재임시 많은 치적을 남겨 1859년(철종10) 선정비가 세워졌다고 하나 지금은 그 소재를 알 수 없다...
-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 및 직동과 살미면 향산리를 연결하는 고개. 직동(일명 곧은골, 고든골)에서 살미면 향산리 난영이마을(일명 나냉이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나냉이재는 대림산[489m] 동쪽 능선에 있는 고개로, 북쪽으로 남산[636m]과 이웃하고 있다. 발티와 함께 충주시 남동부에서 소백산지로 들어가는 길목이었으며, 마즈막...
-
풍덕마을에 사람들이 언제부터 살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난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던 이곳은 폐허가 되었다한다. 그러던 중 1595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장남 진인대군의 후손인 이덕량(李德樑)이 난을 피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덕량[1576~1651]의 자는 하경(厦卿)이고 처음 이름은 덕명이었다....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난정서』 탁본집. 난정(蘭亭)은 동진(東晋)의 서예가인 왕희지(王羲之)가 절강성(浙江省) 회계(會稽)의 산음(山陰)에 지은 정자이다. 353년(목제 9) 왕희지가 내사(內史)로 재직하고 있을 때 난정에서 뭇 인사들이 모여 연회를 열고 굽이굽이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며 시를 지었다. 이때...
-
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남궁외사(南宮外史)·택구거사(澤癯居士). 고조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낸 이행(李荇)이고, 아버지는 좌찬성을 지낸 이안성(李安性)이다. 1609년(광해군 1) 생원이 되고, 다음 해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613년(광해군 5) 설서(設書)를 거쳐, 1616년(광해군 8) 폐모론(...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남로(南老), 호는 농암(聾庵)·농객(聾客). 할아버지는 대사간을 지낸 유상재(柳尙載), 아버지는 통덕랑에 오른 유봉정(柳鳳庭), 어머니는 김징(金徵)의 딸이다. 아들로 유동휘(柳東暉)가 있다. 1694년(숙종 20) 충주에서 태어난 유수원(柳壽垣)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한성(현 서울)의 친척 집에서 자랐다...
-
충청북도 충주시 용산동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충주남부교회는 믿음과 성서, 그리스도 위에 튼튼하게 세워져 흔들리지 않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참된 교회를 세워 충주시민을 구원하며 민족과 세계 인류를 위해 복음을 선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설립되었다. 충주남부교회는 1958년 11월 16일 충주제일감리교회에서 당시 71명(6속)의...
-
충청북도 충주시 지현동에 있는 재래시장. 충주남부시장은 1960년대부터 충주시 지현동에 상인들이 터를 잡고 장사를 시작하면서 재래시장이 형성되었다. 1998년 2월 충주남부시장번영회가 설립되었다. 충주남부시장은 형성 이후 1990년대까지 충주시 남부 지역인 성남동·용산동·지현동·호암동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장세가 활발한 시장이었다. 그러나 2001년 E...
-
충청북도 충주시 용산동·목벌동·직동에 걸쳐 있는 산. 예전에 여기서 봉황이 살았다 하여 금봉산(錦鳳山)이라고도 불린다. 해발고도 636m의 산이다. 소백산지 서쪽의 한 지맥으로서, 계명산-남산-대림산으로 이어지는 남~북 방향의 산줄기 일부에 속한다. 이 산줄기는 동~서 구조선들에 의해 군데군데 잘려나가면서 여러 개의 고개나 골짜기를 만들고 있는데, 충주댐이 있는 남한강,...
-
충청북도 충주시 목벌동과 안림동의 경계인 남산 정상부에 축조된 고대 산성. 충주 남산성은 해발 636m의 남산 정상부에서 동쪽으로 두 개의 계곡 상단을 에워싼 전형적인 신라 양식의 석축 산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보이는 ‘동악성(桐岳城)’으로 추정된다. 1980년 1월 9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되었다. 충주 남산성은 동악성(桐...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자한(子漢), 호는 화은(華隱). 세종 대에 직제학을 지낸 남간(南簡)의 후손으로 생육신(生六臣)의 한명인 남효온(南孝溫)의 조카이다. 명종 대에 여러 관직을 거친 황삼성(黃三省)이 사위이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낙향하여 오랫동안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1540년(중종 35) 호조참판 김...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자성(子省), 호는 남악(南岳)·추담(秋潭). 고려 때의 제학(提學) 최원유(崔原儒)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감찰(監察) 최사공(崔士恭)이며, 아버지는 호조참판 최분(崔汾)이다. 최개국은 이약빙(李若氷)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38년(중종 3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자(正字)를 거쳐 1547년...
-
조선 말기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백경(伯敬), 호는 우당(寓堂). 아버지는 나주목사를 지낸 남병선(南秉善)이다. 1859년(철종 10)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873년(고종 10) 대사성, 1876년(고종 13) 이조참의·성균관대사성을 거쳐, 1878년(고종 15) 예방승지가 되었다. 1879년(고종 16)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다음...
-
한강의 본류로 강원도 삼척시 대덕산에서 발원하여 충청북도 충주시와 경기도 남부를 흘러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드는 강. 본래 명칭은 한강이나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므로 편의상 남한강이라고 부른다. 남한강은 강원도 삼척시 대덕산(大德山)[1,307m]에서 발원하여 골지천, 동강을 따라 남서쪽으로 흐른 뒤 영월읍에서 평창강(平...
-
1972년 충청북도 충주 출신 시인 박재륜이 충주에서의 삶을 노래한 창작시. 남한강 시인이라 불렸던 박재륜의 충주에서의 삶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1972년 시집 『전사통신(田舍通信)』에 수록된 창작시이며, 1993년 충주에 건립된 시비에도 새겨진 작품이다. "그 옛적 고려(高麗)와 남조선(南朝鮮)/뱃길이 발달하였다는 이 물줄기에/오늘은 다만 글자와 화상(畵像 뭉겨진 彫...
-
농요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 의해 불렸고 전승되어 온 구전문학이자 음악이다. 이들 농요는 내용적으로 농사의 어려움, 삶의 애환, 역사적인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일의 동작을 맞추고 노동의 어려움을 잊기 위해 주고받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농요는 입으로 불려 전해지므로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수리 농요는 남한강 유역...
-
1960년대 팔당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서울에서 올라오던 황포돛대를 세운 상선들과 영월, 단양 등지에서 서울로 향하던 뗏목들이 목계나루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 목계의 상경기는 침체의 늪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목계나루에는 남한강을 건너 서울로 가는 손님들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와 찻배가 있어서 목계의 중요한 수입원 구실을 하였다. 이러한 목계마을이 회복 불능의 상태...
-
충주는 남한강의 중류에 위치하여 삼국시대부터 수로 운송을 이용한 교통의 요지로 중시되어 온 지방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의 세곡을 저장하는 12조창을 설치하였는데 충주에 설치한 조창이 덕흥창이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는 덕흥창 이외에 경원창이 설치되어 경상도의 세곡을 받아 경창으로 수송하였다. 1465년(세조 11)에는 금천(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던 덕흥창...
-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세성리에 있는 김치 생산공장. 수안보농업협동조합의 경제사업 분야의 하나로 가동되고 있는 수안보농협남한강김치는 당초 살미농업협동조합의 전통식품 가공공장으로 출발하였다. 우리 농산물의 경쟁력 향상을 위하여 김치 원부재료를 직접 농업인에게 구입함으로써 영농의식 고취 및 소득증대에 기여함은 물론, 꾸준한 연구개발로 고객 요구사항을 만족시키고,...
-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단암리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면소재지를 연결하는 남한강 위에 있는 다리. 충청북도와 강원도를 경계로 흐르는 남한강을 가로지르고 있어서 남한강대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길이는 480m, 폭은 10m, 유효 폭은 9m, 높이는 20m이다. 교량의 경간 수는 10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48m이다. 차선 수는 2차선으로 폭이 넓은 편이고, 난간...
-
충청북도 충주시 성내동 충주문화회관 안에 있는 수석 전시 시설. 충청북도 충주 지역은 예부터 남한강과 달천강을 젖줄 삼아 우리나라의 수석 문화를 꽃피워 온 수석의 본고장이다. 이에 충주시에서 전국 각지의 수석 애호가들이 기증한 수석들을 모아 산수의 온갖 풍경과 기묘한 아름다움이 조화롭게 응축된 자태를 뽐낼 수 있도록 전시하며, 우리나라 수석문화를 한눈에 볼 수...
-
충청북도 충주시와 제천시·서울특별시 등에서 1987년부터 매년 10~11월에 개최되는 미술 작품 전시회. 남한강전은 충청북도 충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남한강 유역의 제천, 단양, 음성, 괴산, 장호원 등에서 활동하는 미술 작가들의 그룹 전시회로, 충주와 제천·서울 등지에서 매년 순회 전시회를 열고 있다. 1986년 가을 조한상, 이인봉, 이성주, 신범승 등 충주 지역 출...
-
충청북도 충주시 문화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르게 행동하고 나라를 사랑할 줄 아는 어린이, 심신이 건강하고 자기를 존중하는 어린이, 바르게 판단하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어린이, 새롭게 생각하고 이치를 탐구하는 어린이, 검소한 생활로 물자를 아낄 줄 아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남한강초등학교는 1964년 8월 7일에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광월리에서 수안보면 화천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 3호선은 남해에서 초산으로 연결되는 국도로 충주시 남부를 동서로 횡단한다. 일명 3번 국도, 남해~초산길이라고도 한다. 충주시 구간의 시점은 신니면 광월리이며, 종점은 수안보면 화천리이다. 고속도로가 건설되기 전 충주와 서울을 잇는 가장 중요한 도로였다. 국도 3호선은 일제강...
-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구룡리에서 살미면 문강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 19호선은 경상남도 남해에서 강원도 홍천으로 연결되는 국도로 충주시 중앙을 남북로 지나간다. 일명 19번 국도, 남해~홍천길이라고도 한다. 충주시 구간의 시점은 소태면 구룡리이며, 종점은 살미면 문강리이다. 충주에서 북쪽으로 원주, 남서쪽으로 괴산을 잇는 중요한 도로이다. 광복 후 강원도...
-
관광지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억척스러움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곱상하기만 하고 여린 모습이다. 그럼에도 한겨울 손님이 없는 미륵가든을 닫지 않고 쉼 없이 움직이며 무언가를 한다. 서두름도 없고 요란스러움도 없이 그렇게 움직이며 미륵가든을 지키고 있었다. 약 20년 전에 ‘바깥 양반(정무후 씨)’의 사업체가 생기는 바람에 같이 들어 왔다가 눌러 앉았다는 이영숙 씨. 그 당시는 음식점...
-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서예가. 권혁창은 1930년 9월 7일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서 출생하였다. 안동권씨(安東權氏) 추밀공파 양촌공계 36세손으로 아버지는 효자상을 받은 권오덕(權五德)이고, 어머니는 백사 정덕영(鄭悳永)의 딸이다. 2005년 1월 29일 타계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내곡리 선영에 있다. 권혁창은 충주 서예...
-
1972년 충청북도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이 지역 문학 발전을 위해 창립한 문학 동호회. 내륙문학동인회는 문학 창작, 문학 활동, 문학 교류, 문인 권익보호, 회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 등을 통해 한국문학 및 향토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71년 동인 활동을 통한 향토문학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자 내륙권(충청북도)의 문인들에 의해 발기되었다. 발기인은...
-
1972년 충청북도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이 지역 문학 발전을 위해 창립한 문학 동호회. 내륙문학동인회는 문학 창작, 문학 활동, 문학 교류, 문인 권익보호, 회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 등을 통해 한국문학 및 향토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71년 동인 활동을 통한 향토문학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자 내륙권(충청북도)의 문인들에 의해 발기되었다. 발기인은...
-
2001년에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근배가 그동안에 쓴 논설을 묶은 책. 『내릴 수 없는 깃발』은 최근배가 20대부터 50대까지 기자 생활을 하면서 쓴 논설문들을 가려 뽑아 2001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발간한 논설집이다. 1권 1책의 국판으로 가로는 15㎝, 세로는 22.5㎝이다. 면수는 총 370여 면이다. 제1장 지방자치 17항목, 제2장 지역개발·발전...
-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내사1리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동막골과 보사골에서 따로 제사를 지내다가 충주댐 건설에 따른 충주·단양 간 도로 개설로 동막골 산신당이 철거되면서 보사골에서만 지낸다. 보사골 큰골에 2001년 컨테이너 박스로 지은 산신당이 있다. 제단이 마련되어 있으며, 신체는 모셔져 있지 않다. 음...
-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내사2리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충주시 살미면 내사2리에는 진말과 절골이 있다. 절골에서 몽선암 가는 길로 올라가면 수몰로 인해 옮겨왔던 살미초등학교 자리에 ‘21세기 서울 성락교회 충주청소년수련원’이 있다. 여기서 비포장길을 따라 300m쯤 올라가다 보면 길 옆 오른쪽에 서낭당이 있다. 이 서낭당에서...
-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내화동과 보사동에서 이름을 따서 내사리라 하였다. 1757~1765년에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내화동은 내화석(乃火石)이라 하였고, 1907년 발간한 『한국 호구표』에 처음으로 내화동과 함께 보사동이 기록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내화동과 보사동을 병합하고 내사리라 하...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석종형 부도. 문화리 석조부도가 원래 있었던 곳은 문화리 사지로,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문화리에 위치한다. 문화리 사지는 문화리 뒷산 계곡에 위치하며, 사지에는 2단의 석축과 기와편들이 널려 있다. 석축의 규모가 작고 기와편들이 좁은 범위에 걸쳐 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작은 규모의 사찰이 있었던...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용산리에 있는 재래시장. 엄정장은 1770년(영조 45) 간행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250여 년 전부터 장이 서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엄정장이 최초 어디에 섰던가는 문헌에 기록된 바가 없으나 지금의 엄정면 괴동리 어느 지역인가에 열렸을 가능성이 높다. 세월이 흐르면서 엄정면의 중심지...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용산리에 있는 재래시장. 엄정장은 1770년(영조 45) 간행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250여 년 전부터 장이 서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엄정장이 최초 어디에 섰던가는 문헌에 기록된 바가 없으나 지금의 엄정면 괴동리 어느 지역인가에 열렸을 가능성이 높다. 세월이 흐르면서 엄정면의 중심지...
-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내화동과 보사동에서 이름을 따서 내사리라 하였다. 1757~1765년에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내화동은 내화석(乃火石)이라 하였고, 1907년 발간한 『한국 호구표』에 처음으로 내화동과 함께 보사동이 기록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내화동과 보사동을 병합하고 내사리라 하...
-
미륵리 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미륵리도요지’ 보호 건물이다. 오름칸 가마와 계단식 가마가 절충된 가마터로 보존 가치가 높다고 판단하여 보호 건물을 지었다. 그러나 미륵리 주민이라면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저 산에 올라가면 널린 게 가마터여” 라고 한다. 어느 골이든 숯골이고 가마골이란다. 미륵리 마을 초입에서 우측으로 산길을 따라 2㎞ 정도...
-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수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논고개는 노은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노은은 본래 충주군 역인 노은현(老隱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논고개의 논은 ‘노은’에서 모음 ‘으’가 탈락함으로써 생긴 어형이다. 논고개의 한자 지명인 노현(老峴)과 노치리(老峙里), 별칭인 노고개가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논고개는 본래...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득지(得之), 호는 노당(盧堂) 또는 허강(虛江). 할아버지는 합문지후(閤門祗侯) 심연(沈淵)이며, 아버지는 전리정랑(典理正郞) 심용(沈龍)이다. 아들이 일곱 명으로 심인봉(沈仁鳳)·심의귀(沈義龜)·심도생(沈道生)·심징(沈澄)·심온(沈溫)·심종(沈淙)·심정이다. 이 중 심온(沈溫)은 세종의 국구가 되었으며, 심종...
-
충청북도 충주시의 노동자 계층이 생활 조건 개선을 위해 전개하는 조직적 활동. 노동 운동은 좁은 의미로는 노동자들의 집합적 운동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 보면 노동자들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상태를 유지·개선하기 위한 모든 노력이 노동 운동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넓은 의미의 노동 운동 관점에서 보면 노동 운동에는 노동 조합 운동뿐만 아니라 노동자...
-
충청북도 충주시 풍동과 살미면 향산리를 연결하는 달천 위에 있는 다리. 달천 변에 있는 마을 이름을 따서 노루목다리가 되었다. 노루목은 달천과 용천이 합류하는 곳에 있는 마을로 산 모양이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노루목이라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길이는 300m, 폭은 19.5m, 유효 폭은 11m, 높이는 11m이다. 경간 수는 6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
1974년 간행된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시인 양채영의 처녀 시집. 양채영은 1965년 『문학춘추』와 『시문학』을 통해 데뷔하였다. 1985년 제3회 도천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2004년 제3회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을 수상(『문학과 창작』, 문학아카데미)하기도 하였다. 양채영은 1977년 시문학사에서 시집 『선(善), 그눈』을, 1984년 문학예술사에서 시집 『...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蘇齋)·이재(伊齋)·암실(暗室)·여봉로인(茹峰老人). 우의정을 지낸 노숭(盧嵩)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활인서별제를 지낸 노홍(盧鴻), 부인은 이연경(李延慶)의 딸이다. 1543년(중종 38) 식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성균관전적, 홍문관수찬을 거쳐 1544년 시강...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하구암리와 노은면 수룡리를 연결하는 고개. 노인이 은거하던 고개라 하여 노은고개라 불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은면의 한포천과 중앙탑면의 구암천 유역의 분수계가 되는 지점이다. 양쪽 하천의 하상 고도가 100m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고개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낮은 편이며 하곡의 폭도 넓다. 보통 고개라 하면 비교적 높고 험한 분수계를 연...
-
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1630년경 영조 때에 청안현감을 지낸 정경연(鄭慶演)[1604~1666]이 산림이 우거진 이 땅에 들어와 외부와의 접촉을 피한 채 노모를 봉양하며 은거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정경연이 살던 곳을 노은고개[老隱峴], 또는 논고개[老峴]라 불렀는데, 이것이 유래가 되어 면의 이름도 노은현면(老隱峴面) 또는 노은면(老隱面)이라 하였다....
-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대덕리에 있는 저수지. 북서쪽에는 원통산(怨慟山)[645m]이 있고 북쪽에는 승대산(僧代山)[567m]이 있으며 원통산과 승대산 사이에는 질마재, 질마루재, 질마루고개 등이 있다. 남서쪽의 노은면 안락리 서쪽에는 안산이 있고 동남쪽에는 은고개가 있다. 원통산 남동사면과 질마재에서 동남류하는 개울과 질마루고개에서 남류하는 상원곡천이 대덕저수지로 유입...
-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문성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자기 주도적인 학습능력 신장으로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인, 창의성 교육을 통한 잠재능력 계발로 정보산업사회에 경쟁력을 지닌 창조인,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참된 인간성 함양으로 사회발전에 이바지하는 민주인, 심신을 연마하고 취미와 소질 계발로 조화롭게 성장하는 건강인,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한 공동체 의식함양...
-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전인교육으로 정서를 발달시키고 다양한 특기를 계발하는 어린이, 질서를 존중하며 서로 돕고 봉사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고 탐구하며 창조적인 미래사회에 대비하는 어린이, 체력을 증진시키고 보건·안전·환경보호를 생활화하는 건강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20년 4월 28일에 노은공립보통학...
-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에 있었던 노은초등학교 수상분교장. 아름다운 마음으로 꿈과 사랑을 키우는 어린이상을 추구한다. 전인 교육으로 정서를 발달시키고 다양한 특기를 계발하는 어린이, 질서를 존중하고 서로 돕고 봉사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고 탐구하며 창조적인 미래 사회에 대비하는 어린이, 체력을 증진시키고 보건과 안전, 환경 보호를 생활화하는 건전...
-
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1630년경 영조 때에 청안현감을 지낸 정경연(鄭慶演)[1604~1666]이 산림이 우거진 이 땅에 들어와 외부와의 접촉을 피한 채 노모를 봉양하며 은거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정경연이 살던 곳을 노은고개[老隱峴], 또는 논고개[老峴]라 불렀는데, 이것이 유래가 되어 면의 이름도 노은현면(老隱峴面) 또는 노은면(老隱面)이라 하였다....
-
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1630년경 영조 때에 청안현감을 지낸 정경연(鄭慶演)[1604~1666]이 산림이 우거진 이 땅에 들어와 외부와의 접촉을 피한 채 노모를 봉양하며 은거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정경연이 살던 곳을 노은고개[老隱峴], 또는 논고개[老峴]라 불렀는데, 이것이 유래가 되어 면의 이름도 노은현면(老隱峴面) 또는 노은면(老隱面)이라 하였다....
-
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노천(老泉) 또는 여용(汝用). 고려 말 고려왕조에 절의를 지킨 원천석(元天錫)의 후손이다. 원급은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 장군과 함께 충주방어전에 참전했으며, 광해군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1627년(인조5)에 전적(典籍)이 되었다가 충주목사(忠州牧使)가 되었다....
-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육영사업가. 노철우는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내사2리 이장을 지냈으며, 1960년에는 제3대 살미면의회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아버지 노병덕이 꿈에 신선을 만나 얘기를 듣고 지었다는 내사리의 몽선암을 관리하였다. 1983년 살미국민학교가 충주댐 수몰로 인하여 내사리로 옮길 때 자신의 소유하고 있던 토지 9,900m²을 학교 부지로 희사...
-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수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논고개는 노은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노은은 본래 충주군 역인 노은현(老隱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논고개의 논은 ‘노은’에서 모음 ‘으’가 탈락함으로써 생긴 어형이다. 논고개의 한자 지명인 노현(老峴)과 노치리(老峙里), 별칭인 노고개가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논고개는 본래...
-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수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논고개는 노은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노은은 본래 충주군 역인 노은현(老隱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논고개의 논은 ‘노은’에서 모음 ‘으’가 탈락함으로써 생긴 어형이다. 논고개의 한자 지명인 노현(老峴)과 노치리(老峙里), 별칭인 노고개가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논고개는 본래...
-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에 있는 환경 단체. 지구 온난화·오존층 파괴·사막화·기후 변화·빈곤·인구 증가 등과 같은 지구를 위협하는 지구촌 공동의 문제에 대한 해결과 관련하여 199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환경 보전 및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의제21(Agenda21)’이 채택되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국가 차원...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논동(論洞)과 강현리(江峴里)에서 ‘논(論)’자와 ‘강(江)’자를 따 ‘논강(論江)’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엄정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강현리 상갈동(上葛洞)·하갈동(下葛洞)·논동이 통합되어 논강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게...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논강리 강현마을에 있는 마애비. 자연암석을 이용하여 비의 윤곽을 만들고 글자를 새긴 마애비이다. 마애비는 일반적으로 경승지에 조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논강리 강월동천은 엄정면 논강리 강현마을 어귀에 위치하여 마을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소태면에서 엄정면소재지로 통하는 중간 강현리 어귀에 강현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논강리에 있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논강리 유물산포지는 엄정면 논강리 동촌마을 앞 동촌들 밭 경작지에 위치한다. 좌우로는 법고개 등의 구릉이 자리하고 있다.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가 충주시의 문화유적분포지도를 발행하기 위해 충주관내 전 지역을 지표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유물은 경질토기류 17여 점...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논강리 왜째마을 앞에서 발원하여 목계리로 흐르는 하천. 엄정면 논강리 차돌고개 부근에서 발원하여 마을 앞을 흐른다고 해서 논강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길이는 약 5㎞의 소하천이다. 엄정면 논강리에서 시작하여 목계리에서 영덕천으로 흘러드는 남~북 방향의 소하천이다. 주변의 원곡천이나 구룡천에 비해 길이나 유역 면적도 상당히 작으며, 배후산...
-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수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논고개는 노은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노은은 본래 충주군 역인 노은현(老隱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논고개의 논은 ‘노은’에서 모음 ‘으’가 탈락함으로써 생긴 어형이다. 논고개의 한자 지명인 노현(老峴)과 노치리(老峙里), 별칭인 노고개가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논고개는 본래...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논강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에 한 처사가 제자인 김명천 통제사(統制使)와 함께 진리를 논하던 곳이어서 논잇골이라 하였다 한다. 논잇골은 이(理)를 논(論)한 곳이라는 뜻의 한자어 ‘논이’에 ‘골’이 결합되면서 사이시옷이 삽입된 것이다. 논잇골의 한자어 표기는 논동(論洞)이다. 논동은 논익골로 불리기도 하는 데 논잇골의 ‘ㅅ’이 ‘골’의 ‘ㄱ’에...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논강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에 한 처사가 제자인 김명천 통제사(統制使)와 함께 진리를 논하던 곳이어서 논잇골이라 하였다 한다. 논잇골은 이(理)를 논(論)한 곳이라는 뜻의 한자어 ‘논이’에 ‘골’이 결합되면서 사이시옷이 삽입된 것이다. 논잇골의 한자어 표기는 논동(論洞)이다. 논동은 논익골로 불리기도 하는 데 논잇골의 ‘ㅅ’이 ‘골’의 ‘ㄱ’에...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남로(南老), 호는 농암(聾庵)·농객(聾客). 할아버지는 대사간을 지낸 유상재(柳尙載), 아버지는 통덕랑에 오른 유봉정(柳鳳庭), 어머니는 김징(金徵)의 딸이다. 아들로 유동휘(柳東暉)가 있다. 1694년(숙종 20) 충주에서 태어난 유수원(柳壽垣)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한성(현 서울)의 친척 집에서 자랐다...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설립된 최초 금융기관. 농공은행은 1906년 농업과 공업의 개량 발달을 위해 설립된 은행이다. 당시 정부에서는 지방 금융의 핍박을 우려하여 전국 주요 도시에 정부 창고를 건설하고 미곡의 담보 대부, 부동산의 담보 대부를 행하였다. 그러나 그 시설이 응급적·과도적인 것에 불과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부 자원도 빈약하여 지방 금융을 완화하는 데...
-
풍덕마을에서는 일찍부터 주민들의 불편을 덜기 위하여 필요한 농기구를 방풍림계에서 구입하여 활용하고 있다. 1953년 11월에는 양곡의 공판 시에 저울이 필요함으로 5개를 구입하여 각 반에 나누어 주었으며, 1958년에는 분무기(배부식)를 5개 구입하여 각 반에 나누어 주었다. 1961년 4월에는 미국 극동개발재단에서 동력 분무기를 기증받기도 하고, 1962년에는 양수기를...
-
1971년 시인 신경림이 충주시 노은면을 배경으로 하여 쓴 창작시. 「농무」는 신경림이1971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발표한 5편의 시 중 하나로, 1973년 월간문학사에서 같은 제목으로 시집 『농무』를 발간하였다. 작가의 출생지인 충주시 노은면이라는 작은 농촌 소재지의 장터를 배경으로 한 시이다. 충주의 작은 시골 장터 이미지와 유랑극 단원, 그리고...
-
1950년 소설가 이무영이 조선 후기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던 충주읍 미륵동을 배경으로 쓴 장편소설. 『농민』은 원래 5부작으로 계획되었으나 1부인 ‘농민’에 이어 2부 ‘농군(農軍)’, 3부 ‘노농(老農)’까지 집필되었다. 조선 후기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의 충주읍 미륵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으며, 등장인물로 김승지·장쇠·박의관·...
-
이상찬 씨는 농민운동가이다. 요즘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하여 촉발된 촛불집회에 참가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는 제내리가 인정하는 육성우 사육농가였다. 농사와 육우 사육은 그의 삶의 터전이자 생명줄이었다. 그러나 육우의 사육과 함께 주기적으로 계속되는 축산업 파동을 겪으며 그는 농촌운동에 눈뜨기 시작하였다.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을 지키기로 한 그는 농업에 종사하며...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양리에 있는 문화 체육 시설. 주덕읍은 전형적인 도농 복합시의 읍 단위 지역으로서 대소원면·노은면·신니면의 3개 면이 접하는 지역이다. 이에 충주시는 접근성과 관리가 용이한 주덕읍 신양리에 낙후된 농촌 지역 주민의 복지 향상을 목적으로 체육 문화 활동 공간인 농민체육센터를 2004년 12월 착공하여 2005년 12월 26일 완공하였다....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670년에 간행된 시집. 신라 말기 학자이자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857~?]을 기리고자 조선시대 문신이며 성리학자인 김수증(金壽增)[1624~1701]이 강원도 화천군에 ‘농수정(籠水亭)’을 짓자, 이를 기념하고 기리기 위하여 김수증의 동생인 김수항(金壽恒)[1629~1689]과 홍자회(洪子晦), 이중주...
-
농악대는 꽹과리를 치는 상쇠가 이끌어간다. 그리고 부쇠가 상쇠의 리듬에 맞춰 박자를 맞춰 간다. 새납으로 불리는 태평소는 농악에서 유일한 관악기로 가락을 담당한다. 최근에는 태평소를 부는 사람이 없어 태평소 없이 농악을 운영하기도 한다. 사물 중 나머지 셋인 장구와 북 그리고 징은 기본이 2명씩이다. 이중 북은 4명이 치는 경우가 많으나, 상황에 따라 3명이 되기도 한다. 농악대:...
-
마수리 농요는 크게 3부로 이루어진다. 1부가 고사덕담이고 2부가 마수리 농요이며 3부가 여성 노작요이다. 1부 고사덕담을 시작하기 위해서 마수리 농악대가 먼저 농요 대원을 이끌고 입장한다. 이때 꽹과리를 두드리며 농악대를 리드하는 상쇠가 바로 유진형 씨이다. 그는 1995년부터 지금까지 마수리 농악대의 상쇠를 맡고 있다. 그는 타고난 악사이다. 두마치 세마치 군악장단...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남로(南老), 호는 농암(聾庵)·농객(聾客). 할아버지는 대사간을 지낸 유상재(柳尙載), 아버지는 통덕랑에 오른 유봉정(柳鳳庭), 어머니는 김징(金徵)의 딸이다. 아들로 유동휘(柳東暉)가 있다. 1694년(숙종 20) 충주에서 태어난 유수원(柳壽垣)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한성(현 서울)의 친척 집에서 자랐다...
-
1952년 당시 농림부장관이 주도하여 사단법인 ‘농촌실행협동조합’을 조직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덕이 이팔영, 이세영 등 10여 명의 회원을 모아 쌀 두말씩을 투자하여 충주책임자에게 전달하였다. 그러나 농업협동조합법의 제정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금융조합연합회와 농민회, 농림부, 국회가 논의를 거듭하였으나 합의에 실패하였다. 그 이유는 협동조합이 금융조합...
-
충청북도 충주시 교현2동에 있는 농업협동조합중앙회의 충주 지역 지부.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충주시지부는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라 기존의 농협과 농업은행을 통합, 전국적으로 조직된 생산자 농민의 협동 조직인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소속으로 충주시 지역을 관할하는 농업협동조합 지부이다.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충주시지부는 충주 농민의 자주적인 협동을 통한 농업 생산력...
-
박기서(초대 마수리 농요보존회장) 씨는 1972년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마수리 농요가 1969년 방송을 탔다면, 1971년부터 1972년까지는 마수리 농요가 공개석상에서 인정을 받는 일이 벌어졌다. 박기서 씨의 기록에 따르면 1971년부터 충북도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1972년 10월에 제13회 전국 민속예...
-
1986/87: 농요전수관의 필요성 제기 1993. 11: 마수리 농요전수관 건립예산 책정 1994. 10: 마수리 농요전수관(한옥 기와집, 40평) 준공 1999: 농요전수관 주변 정비 담장 설치 바닥 정비 연자방아/ 디딜방아 설치 기와 색칠 벽화 설치 2005. 9.7: 제13회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 기념비를...
-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실시한 「농지개혁법」에 따른 농지 분배 정책. 대한민국 제헌헌법 제86조에서 농지개혁의 실시가 규정됨에 따라 1949년 6월 21일 「농지개혁법」이 공포되었으나, 1950년 3월 10일 개정되었다. 1950년 3월 25일 동법 시행령, 4월 28일 동법 시행규칙이 공포되었으나, 4월 15일 농림부는 농지개혁사업을 완료한 것으로 발표하였다. 「농지개혁법...
-
농촌진흥회는 1932년(壬申) 1월 29일 이성호(李誠浩) 외 44명이 벼 한 말(50전)씩 거출하여 종자돈으로 삼아 자력갱생과 저축 증대를 추진하며, 마을에서 혼인이나 상례 시에 반드시 사용하는 차일·교자·상여·남녀의 혼례복 등을 마련하고, 일이 있을 때 불편함이 없도록 상호 협조하며 상호부조(相互扶助)하던 조직이었다. 1954년까지 가입한 회원의 총수는 82명이었다....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서 뇌곡마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뇌곡의 유래」는 수안보면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국도 3호선을 따라 약 3㎞지점에 좌우로 산재한 뇌곡마을의 명칭유래담이다. 「뇌곡의 유래」에는 마을의 명칭이 여실(女室)→뇌실→뇌곡 등의 순으로 바뀌게 된 사연이 담겨 있다. 1994년 충주산업대학교박물관(현 충주대학교박물관)에서 간행...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속하는 법정리. 누암(樓巖)은 다락바위의 한자식 표현이다. 과거 이곳 남한강변에 다락바위가 있고 그 위에 누암서원이 있어 동네 이름을 누암리라 부르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누암리가 법정리 명칭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영조 때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방리, 호구, 인구수가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누암리 산36번지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 고묘군. 누암리 고려 고묘군은 신라시대 유적으로 지정된 충주 누암리 고분군에 포함되어 있다. 이곳에는 모두 230여 기의 고분군이 있는데, 신라 말기에 조성된 신라 고분 외에 7기의 고려시대 돌덧널무덤과 토광묘가 발굴 조사되었다. 누암리 고려 고묘군이 있는 충주 누암리 고분군은 1983년 3월 3...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누암리 소일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소일마을은 지방도 520호선을 따라 창동리를 지나 메주고개를 넘어 150m 쯤 가면 도로 좌우에 있는 마을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서낭제를 지냈다. 소일마을의 제당은 양수장 뒤 야산(서원동산, 해발 98m) 위에 있다. 당집은 기와를 얹...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누암리 소일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소일마을은 지방도 520호선을 따라 창동리를 지나 메주고개를 넘어 150m 쯤 가면 도로 좌우에 있는 마을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서낭제를 지냈다. 소일마을의 제당은 양수장 뒤 야산(서원동산, 해발 98m) 위에 있다. 당집은 기와를 얹...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누암리 신촌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남한강 수운이 이용되던 시기에 강가 주막 옆에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이 느티나무에서 동제(洞祭)를 지내 왔다고 한다. 1998년 이후 지내다 안 지내다를 몇 번 반복했었으며 앞으로 또 언제 지낼지는 알 수 없다. 이런 현상으로 보아 아마도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누암리 신촌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남한강 수운이 이용되던 시기에 강가 주막 옆에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이 느티나무에서 동제(洞祭)를 지내 왔다고 한다. 1998년 이후 지내다 안 지내다를 몇 번 반복했었으며 앞으로 또 언제 지낼지는 알 수 없다. 이런 현상으로 보아 아마도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누암리에 있는 선사시대 유물산포지. 누암리 유물산포지는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제6호)에서 남한강 상류 쪽으로 700~800m 가량 떨어져 있는 강에 면한 지점에 위치한다. 충주에서 중앙탑면 쪽으로 들어오다가 삼거리 못미처 오른쪽 남한강변에 위치한다. 대부분 논으로 경작되던 지역으로 남한강이 범람할 때만 물에 잠기는 충적대지이다....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누암서원은 1695년(숙종 21) 지방 유림의 공의로 송시열, 민정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되었고, 1702년(숙종 28) 사액서원이 되었다. 1724년(경종 4)에는 소론의 공격으로 사액이 취소되었다가 1725년(영조 1) 회복되었다. 이듬해 권상하를 추향하였다. 1795년(정조 19)에...
-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풍류를 즐기고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기능을 가진 다락식의 집 누정(樓亭)이란 누와 정의 합성어로서 『설문』에 의하면 누는 중첩시켜 올린 집이라고 하여 형상에 따라 정의하고 있고, 『석명』에 의하면 정(亭)은 정(停)으로 표기하여 잠시 놀다가는 곳으로 풀이하여 기능에 따라 정의하고 있다. 누정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포괄하는 용어이다. 누...
-
여성 노작요가 생긴 것은 1973년이다. 그해 10월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가 청주에서 열렸는데, 전년도 대통령상 수상팀이 식전 행사로 공연을 하도록 되어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팀의 구성이었다. 1972년에는 마수리 농요팀을 중심으로 국악협회팀과 영동여고팀이 하나의 단체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지남기 선생은 마을의 여자들을 중심으로 여성 노작요팀...
-
문경 주흘산 밑에서 18살 되던 해 섣달 초이렛날(음력 11월 10일) 시집을 오는데 엄청 눈이 많이 왔단다. 새색시가 가마를 타고 새재를 지나 야문(동화원과 지릅재를 연결하는 고개로 성문이 있다)을 거쳐 미륵리로 오는데 가마꾼들이 술에 취해 자꾸 가마를 메다 꽂았단다. 그래서 가마 밑구녁이 빠지기도 하여 배행(陪行: 떠나는 사람을 일정한 곳까지 따라 감)하는 아저씨가...
-
조선 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창세(昌世), 호는 눌재(訥齋), 시호는 문간(文簡). 증조할아버지는 박광리(朴光理), 할아버지는 박소(朴蘇)이다. 아버지는 진사 박지흥(朴智興), 어머니는 생원 서종하(徐宗夏)의 딸이다. 박상은 1496년(연산군 2) 진사시에 급제하고, 1501년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교서관정자(校書館正字)가 되었...
-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영덕리와 명서리를 연결하는 고개. 예전 이곳 일대에 느릅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천등산[807m]과 인등산[666m] 사이의 낮은 능선를 이루는 고개로, 산척면 영덕리와 삼탄 협곡으로 잘 알려진 명서리를 동서로 연결하고 있다. 충주분지 동쪽은 오청산[655m]·천등산·인등산·계명산[775m]·남산[636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
충청북도 충주시의 시목(市木)인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 교목. 충주시에서는 1912년 지현동, 안림동 지역에서 처음으로 사과가 재배되었다. 충주시는 연분홍의 화사한 꽃과 빨갛게 익은 열매가 충주시민의 밝은 마음, 진실함과 인내심을 상징하여 시목으로 정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대표적인 사과 품종으로는 후지, 홍옥, 홍로, 인도 등이 있다. 사과는...
-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천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안동권씨 시조 권행(權幸)은 신라 말 고창(현 안동)의 별장(別將)으로 있다가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웠다. 권행의 성씨는 본래 김씨였으나 삼한벽상공신에 오르고 태조 왕건으로부터 권씨 성을 하사받은 이후 후손들이 권행을 시조로 하고 안동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안동권씨는 고려시대에 문과 급제자...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문숭리와 노은면 법동리를 연결하는 고개. 문숭리 능안골에 위치하고 있는 고개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일명 사기점재, 토막재, 토현(土峴)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충주시 신니면과 음성군의 생극면 경계에 수레의산[679m]이 있으며, 수레의산 동쪽의 신니면과 노은면 경계에는 498고지가 있다. 498고지의 동쪽으로 웃고개, 능안고개...
-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능동(陵洞)과 죽암리(竹岩里)에서 ‘능(陵)’자와 ‘암(岩)’자를 따 ‘능암(陵岩)’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복성면(福城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능동과 죽암리의 일부가 통합되어 능암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게 되었고, 19...
-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능암리 능동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수해를 막고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산제당은 마을 뒤 큰골에 자연석 돌 제단으로 만들어놓았다. 수살거리에는 시멘트 제단이 있고 주변에 느릅나무, 소태나무 등 네 그루가 당숲을 이루고 있다. 당숲에 금줄을 둘렀는데, 왼새끼에 지푸라기를 삐죽하게 내밀고 창호지를 꽂았으며 실타래를 묶어놓았다. 제일은 음력 1...
-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능암리에 있는 하수처리장.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버리는 음식 쓰레기, 세제, 생활 하수와 화장실의 정화조 시설 등으로 수질 오염이 심각해지고, 경제 성장으로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산업 폐수가 수질을 악화시켜 인간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도시 인구 집중에 따른 생활 하수와 쓰레기 발생으로 환경 오염이 심각해짐에 따라 생태계 위협과 마실 물이 고갈될...
-
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에 있는 습지. 습지가 금릉동 능암에 걸쳐 있다고 하여 금릉동 능암습지로 부르고 있다. 금릉동 능암습지는 충주시내에 가까우면서도 남한강 변을 따라 남아 있는 주요 습지이다. 길이 약 800m, 폭 50m 정도의 규모로서 남북으로 긴 장방형이다. 남한강 제방 안쪽에 평행하게 달리는 배후 습지로서 대부분 소택지나 늪(swamp)으로 존재하고...
-
충주시 앙성면 돈산리에 있던 공립 초등학교. 지역 사회의 행사와 봉사 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이웃을 위한 삶을 실천하는 인간상을 추구한다. 1946년 10월 20일 능암국민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동년 11월 1일 1학급으로 개교하였다. 1965년 본관 6개 교실을 준공하였으며, 1985년 3월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다. 2000년 이후 이농 현상으로 지역 인구가 급감하여 2...
-
1969년 간행된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성장기를 보낸 시인 이상화의 첫번째 시집. 이상화(李相和)는 충청북도 음성에서 태어나 성장기를 충주에서 보내고, 줄곧 서울에서 생활하고 시작(詩作) 활동을 하다가 충주에 묻힌 시인이다. 1970년대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이상화 시인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늪의 우화』, 『여름산』, 『석인상(石人像)』 등 3권의 시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