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재수(金在洙)[1876~1909]는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일어난 산남의진(山南義陣)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10월 포항 죽장면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일본군에게 크게 패하자 의성의 박연백(朴淵伯) 의진에 들어가 소모장(召募將)으로 영천, 안동, 신녕 등 여러 지역에서 군자금 확보에 주력하다 체포되어 1909년 4월 교수형으로...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진영(金震榮)[1876~1921]은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장영집사(將營執事)에 이어 군문집사(軍門執事)로 활동하였고, 1908년 청송 동부진 서종락(徐鍾洛) 부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중옥(重玉), 호는 벽초(碧樵), 이명은 김해영(金海榮). 1876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서 출생하였...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구(南錫球)[1875~1911]는 1906년 3월 창의한 산남의진에 참가하였다가 1908년 3월 산남의진의 3대 대장 최세윤 휘하의 청송 서부 지역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응서(應瑞). 1875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에서 아버지 남광하(南光夏)와 어머니 김해김씨(金海金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술(南錫述)[1872~1907]은 1896년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입진하여 감은리 전투를 수행하였고, 1907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들어가 청송·흥해·영덕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웠으나 영덕 유암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경숙(敬叔), 이명은 남경규(南景圭). 1872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에서 아버지 남문철(南...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남석우(南錫佑)[1869~1906]는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의병 해산 이후 각처에서 활동하던 화적(火賊) 토벌에 참여하여 약포장(約砲將)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결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우익장(右翼將)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사망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승하(南昇夏)[1872~1907]는 1896년 청송의진(靑松義陣)과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6년 4월 산남의진 대장 정용기(鄭鏞基)가 체포된 뒤 귀향하였다가, 1907년 4월 정용기가 재기하자 청송 지역에서 의병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우성(禹...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 항일운동. 독립운동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극복하고자 전개한 민족적 항일운동을 말한다. 일제의 침략과 강점에 대항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전개되었다.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독립운동은 청송 출신 인물들이 벌인 활동을 말한다. 독립운동은 한말 의병운동과 계몽운동으로 전개된 구국운동을 선행 단계로 하고...
-
개항기 경상북도 영천, 청송, 영일, 경주 및 경상남도 울산, 밀양 일대에서 활동한 항일 의병부대. 산남의진(山南義陣)은 1906년 3월부터 1910년경까지 경상북도 영천, 청송, 영일 일대를 중심으로 정용기(鄭鏞基), 정환직(鄭煥直), 최세윤(崔世允) 의병장이 이끌던 의병부대였다. 의진은 처음부터 관동(關東)을 향한 북상을 목표로 정하고 활동하다 1907년 9월 입암전...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윤기열(尹基烈)[1878~1917]은 1906년 3월 결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창의 과정에서 지례(知禮)·고령(高靈) 지역의 소모(召募)를 담당하였으며, 그 후 2초장(哨將)·도포장(都砲將) 등을 맡았다. 1908년 1월 이후에는 이세기(李世紀)의 휘하에서 포항 장기읍(長鬐邑)을 공격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파평(坡平)....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이세기(李世紀)[1882~1911]는 1896년 심성지(沈誠之)의 청송의진(靑松義陣)에 들어가 활동하였고, 1906년 정용기(鄭鏞基)의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입진하여 활동하였으며, 1908년 최세윤(崔世允) 대장이 잡힌 뒤부터는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이끌었다. 하지만 1909년 7월 일본군에게 잡혀 3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11년...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임용상(林龍相)[1877~1954]은 1905년 의병을 일으킨 뒤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합류하여 활동하다가 독자적인 의병 부대를 이끌었다. 1908년 이후 청도, 청송, 의성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 잡혀 10여 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출옥 후 의열단(義烈團)과 독립군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나주(羅州)...
-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근백(趙根伯)[1872~1908]은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정용기(鄭鏞基)가 일으킨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참모장(參謀將)이 되어 의진을 이끌었다. 그 뒤 1907년 10월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일본군에게 패하고 은신하였다가 1908년 6월 자택에서 일본군에게 피살당해 순국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이명은 조근백(趙勤伯) 또는...
-
1908년 경상북도 청송군 동부 지역에서 편성된 의병 부대. 청송동부진 서종락부대(靑松東部陣徐鍾洛部隊)는 최세윤(崔世允)의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지대(支隊)로서 1908년 2월부터 1910년경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활동하다 고와실전투(高臥室戰鬪)에서 패하고 해산되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에 반대하는 의병 항쟁이 전국에서 일어났다. 이때...
-
1908년 경상북도 청송군 서부 지역에서 편성된 의병 부대. 청송서부진 남석구부대(靑松西部陣南錫球部隊)는 1908년 3월 철령(鐵嶺)을 근거지로 경상북도 청송 서부 지역을 지키기 위해 편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지역 부대였다. 일본군과 여러 차례 격전을 벌인 뒤 1910년 청송군 안덕면 고와실전투(高臥室戰鬪)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1905년 을사늑약과 1907년 고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