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849
한자 韓渥
영어음역 Han Ak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이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본관 청주(淸州)
아버지 한사기(韓謝奇)
한영(韓永)
시호 사숙(思肅)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문혜공(文惠公) 한강(韓康)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사기(韓謝奇)이며, 형은 한영(韓永)이다. 한악(韓渥)의 아들은 한대순(韓大淳), 한공의(韓公義), 한중례(韓仲禮), 한방신(韓方信)이다. 한대순은 관직이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司事에) 이르렀다가 충정왕 말년에 기장감무(機張監務)로 강직되었다. 한공의는 청성군(淸城君)으로 책봉되었고, 평간(平簡)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의 아들은 한수(韓脩)이다. 한중례는 관직이 정당문학(政堂文學)에까지 올랐으며, 계성군(繼城君)으로 봉해졌다.

[활동사항]

충선왕 때에 우대언(右代言)으로 임명되었으며, 1320년에는 선부전서(選部典書)를 지냈으며, 이듬해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를 제수하였다. 이때 원에서 조서를 내려 왕이 입조(入朝)하게 되자 한악은 왕을 호종을 하였다. 당시 심양왕 고(暠)가 왕위를 노리어 일들을 꾸며서 왕을 참소하니, 한악이 기묘한 계책을 써서 왕의 화를 모면하도록 하였다.

그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찬성사(贊成事)로 되었고, 1327년에는 원에서의 공으로 1등 공신이 되었고, 그에게 철권(鐵券)을 주고 그의 초상화를 벽상(壁上)에 그리게 하였으며,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으로 봉하고, 선력좌리공신(宣力佐理功臣)의 칭호를 받았다. 1340년에는 중찬(中贊)으로 승진하였으며, 다시 우정승이 되었다.

[상훈과 추모]

그가 죽으니 사숙(思肅)이라는 시호를 주었으며, 1346년(충목왕 2)에 충혜왕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

[의의와 평가]

한악은 성품이 근면하고 신중하였으며, 능력과 도량이 있었다. 또 매양 무슨 일을 할 때면 세 번 생각해 보고서야 실제 행동에 옮겼으며, 몽고어와 중국어를 상당히 잘 하였다. 또한, 지략으로서 왕을 위기에서 구원하였으니 참으로 충성스러운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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