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786
한자 眞興王
영어음역 King Jinheu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강민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아우 만호부인(萬呼夫人)|숙흘종(肅訖宗)
시호 진흥(眞興)
생년 534년연표보기
몰년 576년연표보기
본관 경주(慶州)
초명 삼맥종(彡麥宗)|심맥부(深麥夫)
출신지 경주(慶州)
아버지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
어머니 지소부인김씨(只召夫人金氏)
아내 사도부인박씨(思道夫人朴氏)

[정의]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고 청주를 순행한 신라의 제24대 왕.

[개설]

신라의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고, 청주 지역 등 확대된 영토를 순행(巡幸)하였다.

[가계]

지증왕(智證王)의 손자이며, 법흥왕(法興王)의 동생인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 지소부인김씨(只召夫人金氏)이다.

[생애]

재위 기간은 540년~576년이다. 부인은 사도부인(思道夫人) 박씨(朴氏)와 백제왕의 딸을 부인으로 삼았다. 아들은 동륜(銅輪)금륜(金輪)이 있는데 금륜은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진지왕(眞智王)이다.

7세에 왕위에 올라 왕후 지소부인이 섭정하였다. 551년 연호를 개국(開國)이라 하고 친정을 시작, 적극적인 대외 정복활동을 전개하여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고, 576년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진흥왕(眞興王)은 신라의 대외적인 영토 확장을 추진한 왕이다. 550년에 백제와 고구려가 청주 부근의 도살성(道薩城)금현성(金峴城)에서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틈을 타 이듬해 병부령(兵部令)으로 임명된 이사부(異斯夫)로 하여금 두 성을 공격하여 빼앗게 하였다.

이렇게 확보된 한강 하류유역의 전초기지를 기반으로 그 해에 백제성왕과 연합하여 고구려가 점유하고 있던 한강유역을 공격하였다. 그리하여 백제는 고구려로부터 한강 하류유역을 탈환하였으며, 진흥왕거칠부(居柒夫)를 비롯하여 구진(仇珍), 비태(比台), 탐지(耽知), 비서(非西), 노부(奴夫), 서력부(西力夫), 비차부(比次夫), 미진부(未珍夫) 등 여덟 장군에게 명하여 한강 상류유역인 죽령(竹嶺) 이북 고현(高峴) 이남의 10개 군을 고구려로부터 빼앗게 하였다.

이 해 진흥왕낭성(娘城)에 이르러 하림궁(河臨宮)에서 우륵(于勒)[500?~562?]과 제자들에게 연주하게 하였다. 그리고 553년에는 백제가 고구려로부터 탈환한 한강 하류유역의 전략적인 필요성을 절감하고, 동맹관계에 있던 백제를 기습공격하여 이 지역을 점령하였다.

이로써 신라는 한강유역의 전부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 지역의 통치를 위하여 신주(新州)를 설치하고, 아찬(阿飡) 김무력(金武力)을 초대 군주(軍主)로 임명하였다. 신라가 백제로부터 한강 하류유역을 탈취한 사건은 백제와의 사이에 맺어졌던 동맹을 파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백제 성왕은 554년 대가야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다가 관산성(管山城)[지금의 옥천] 전투에서 오히려 신주 군주 김무력에게 붙잡혀 죽음을 당하였으며, 백제군은 거의 전멸되어 지금의 충청북도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신라의 한강유역 점령과 금강 중상류 지역의 확보는 영토의 확장과 함께 대중국 교통로를 확보하였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와 연합하였던 대가야를 562년 멸망시킴으로서 낙동강유역 전부를 차지하여 지금의 경상도 지역 전체를 신라의 영역으로 삼았다.

[묘소]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산 92-2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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