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723
한자 驛院
영어음역 Yeogwon
영어의미역 Station Guesthous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한주성

[정의]

공문서의 전달과 관리의 왕래와 숙박 및 공물진상 등의 관물 수송을 담당한 곳.

[연원]

역은 참(站)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다가 1597년(선조 30) 통신만을 위주로 하는 파발을 두어서 변서(邊書)의 급한 전달을 임무로 하였던 곳이다. 신라 487년(소지왕 9) 우역(郵驛)을 설치하였고, 그 뒤 통일신라시대 이후 9주(州) 5소경(小京)이 설치되는 등 지방제도가 확립되고 중앙의 관리의 지방출장, 상인 및 여행자의 왕래가 많아짐에 따라 그 기능이 활발해졌다. 역은 고려시대에 오면서 더욱 발달하였다.

[변천]

청주목(淸州牧) 관할지역에 분포한 역의 분포를 보면 율봉역(栗峰驛)(청주읍성 북쪽 7리, 10리는 5.1㎞임), 쌍수역(雙樹驛)(청주읍성 남쪽 16리), 저산역(猪山驛)(청주목 저산 밑), 장명(長命)역[장지(長池)](청주읍성 서쪽 56리)의 4개가 입지하였다.

1530년(중종 25) 발간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된 청주목의 관할지역에 분포한 원을 청주읍성에서 그 위치를 보면 다음과 같다. 율병원(栗餠院)은 동쪽 44리에, 판교원(板橋院)은 동쪽 45리에, 미원(米院)은 동쪽 38리에 각각 분포하였다.

또 작원(鵲院)은 서쪽 20리에, 신원(薪院)은 서쪽 30리에, 장원(場院)은 서쪽 39리에 입지하였으며, 정진원(情盡院)은 남쪽 2리에, 인제원(仁濟院)은 남쪽 6리에, 덕산원(德山院)은 남쪽 20리에 입지하였다. 그리고 북원(北院)은 북쪽 7리에, 금원(金院)은 북쪽 15리에, 포원(蒲院)은 북쪽 37리에, 조풍원(調風院)은 북쪽 40리에, 오근원(吳根院)청주읍성에서 30리에, 초정원(椒井院)은 초수(椒水) 근처에, 장명원(長命院)은 장명역 동쪽 5리에 각각 분포하였다.

[역사적 관련사항]

고려시대의 역참은 6등급[(1과(科)~6과]으로 구분하였으나 조선시대의 역참은 중요도에 따라 3구분[대역(大驛), 중역(中驛), 소역(小驛)]하였다. 청주목의 관할지역에 분포한 4개 역은 역역(驛域)으로서 율봉도(栗峰道)에 3개 역(율봉역·쌍수역·저산역), 성환도(成歡道)에 한 개 역(장명역)이 속했다. 그러나 1632년(인조 10)경에 발간된『호서승람(湖西勝覽)』에 따르면 쌍수역, 저산역, 장명역은 율봉역의 소속이었다. 역의 크기를 보면, 율봉역, 쌍수역은 중역이고, 저산역, 장명역은 소역이었다.

원은 삼국시대 말에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고려 때 역제도(驛制度)에는 원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성종 때에 공무 여행자를 위한 관(館)이 설립되었다. 이 시설은 고려 말까지 존속되었는데, 몽고족과 왜구의 침입으로 조운로(漕運路)가 막히자 육로와 내륙수로를 이용할 때에 사설기관으로 보급되었고 불교식 명칭을 가지고 있어 사찰에서 건립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원이 제도적으로 발전된 시기는 조선 초기이며, 16세기 말부터 점차 황폐화되어 조선 후기에는 대부분 소멸되고 전국에 100여개 만 남아 있었으며, 그 성격도 주점(막)으로 바뀌었다.

[현황]

율봉역: 상당구 율량동 395번지에 위치하며, 율봉역의 역사(驛舍)는 수년 전에 불에 탔다. 율봉역쌍수역, 저산역, 장명역 뿐만 아니라 진천현의 장양역(長楊驛), 태랑역(台郞驛), 청안현의 시화역(時化驛), 문의현의 덕유역(德留驛), 옥천군의 증약역(增若驛), 가화역(嘉和驛), 토파역(土坡驛), 순양역(順陽驛), 화인역(化仁驛), 영동현의 회동역(會同驛), 황간현의 신흥역(新興驛), 보은현의 원암역(原岩驛)(『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상에서는 원암(元岩)으로 기재되어 있음), 함림역(含林驛), 회덕현의 전민역(田民驛)(『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상에는 정민(貞民)역으로 되어 있음) 등 17개 역을 관할하였다. 현재는 대지로 이용되고 있다.

쌍수역: 청원군 남일면 쌍수리에 위치하며, 그곳에 거목이 두 그루 서 있다.『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에 의하면 1396년(태조 5) 청주목 청원지역 3개 대로역 중 하나였다고 한다.

저산역: 청원군 강내면 저산리 저산 또는 은적산(恩積山)[206m]의 남쪽에 위치하는 역으로 역사의 대지면적은 현재 이곳에 거주하는 연대운에 의하면 144평이었다고 한다. 이 역은 현재 강내면, 부용면, 남이면의 경계에 위치하며 대지로 이용되고 있다.

장명역: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에 위치하며, 1895년(고종 32)에 청주군에서 목천군에 편입되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에 의하면 1396년(태조 5)에 역이 설치되었다가 1896년에 폐지되었는데 신라시대에는 장지(長池)라 하였다. 1981년 11월 상당산성 남문 앞에 ‘사량부(沙梁部)’명(銘) 기와편이 발견되었다. 이 기와편에 ‘사량’·‘부속(部屬)’·‘속장지(屬長池)’·속장지일(屬長池馹)’ 등의 명문이 발견되어 이를 조합하면 ‘사량부속장지일’로 통일신라시대 또는 고려 초기의 지방통치와 관련하여 주목해 볼 자료이다. 장명역의 현재 토지이용은 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청주목 역참의 계층구조]

다음으로 1748~1756년(영조 33~41)에 발간된『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나타난 각 역의 인적 구성과 말의 보유 상황으로 역의 계층구조를 살펴보면 아래 표와 같이 율봉역이 상위 계층역이고 나머지는 하위 계층역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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