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105
한자 鄭顗
영어음역 Jeong Ui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이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미상
몰년 1233년연표보기
본관 청주(淸州)
초명 준유(俊儒)
출신지 청주

[정의]

고려 전기의 무신.

[가계]

본관이 청주(淸州)이며, 어릴 때 이름은 준유(俊儒)이다. 그의 아들은 정현(鄭儇)으로 벼슬이 감찰어사에 이르렀으나, 일찍 사망하였다.

[경력]

고종(高宗) 때 서경 어사대리(御史臺吏), 섭중낭장(攝中郞將), 장군, 시랑(侍郞), 대장군(大將軍)을 지냈다.

[활동사항]

청주사람으로 1217년(고종 4) 어사대(御史臺)의 관리로서 서경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거란 병이 침입하여 서경병마사 상장군(西京兵馬使 上將軍) 최유공(崔兪恭)과 판관 예부낭중(判官 禮部郞中) 김성(金成) 등에게 서경의 군사를 거느리고 오군(五軍)을 도와 적을 물리치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 때 최유공이 민간 재물을 빼앗기를 좋아하여 하였으므로 사졸들이 따르지 않았다.

이때 군사 중에 최광수(崔光秀)라는 자가 행군을 거절하고, 서경성에 의거하여 난을 일으켜 고구려 부흥 병마사(興復兵馬使) 금오위섭상장군(金吾衛攝上將軍)을 자칭하고, 부하 막료의 부서를 정비하고, 날쌘 군사를 소집하며, 북계의 모든 성에 격문을 돌려 대사를 일으키려 하였다.

최광수는 본래 정의와는 같은 고향(청주) 친구로 친한 사이였으므로 그의 소행을 괘심하게 여겨 분대녹사(分臺錄事)로서 교위(校尉) 김억(金億), 백유(白儒), 필현보(畢玄甫), 신죽(申竹) 등 10여명을 이끌고 도끼를 소매에 감춘 채 최광수를 찾아가 그와 그 일당 8명을 처단하고, 성중(城中)을 안정시켰다.

고종이 크게 기뻐하여 섭중낭장(攝中郞將)의 관직을 수여하고, 내시(內侍)에 속하게 하였으며, 의관(衣冠)과 안마(鞍馬)를 하사하였다. 후에 장군, 시랑(侍郞)을 역임하고, 대장군(大將軍)에 임명되었다. 1233년(고종 20)에 필현보가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대신들이 안무(安撫)의 방책을 의논하고, 현보는 일찍이 정의가 기용하였으므로 그로 하여금 선유(宣諭)케 하였다.

이때 정의가 대동강에 당도하자 추종자들이 갑자기 서경에 가지 말 것을 말하니, 정의는 “왕명을 받고 나왔는데, 감히 잠시라도 지체해서야 되겠는가? 죽는 것은 본래 분수에 속한 일이다”라 하면서 서경으로 향하였다. 현보는 정의가 온 것을 기뻐하며, 주장(主將)으로 삼고자 달래며 또 협박하였으나, 끝끝내 굴하지 않고 살해당하였다.

[의의와 평가]

국가를 위태롭게 하면 고향친구라 할지라도 대적하였으며, 왕명을 받드는데 있어서는 사심이 없었다. 참으로 충성스럽고 의로운 인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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