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241
한자 褙貼匠
영어음역 Baecheopjang
영어의미역 mounter
분야 정치·경제·사회/과학 기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정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9년 11월 19일연표보기 - 배첩장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7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배첩장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재지정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정의]

서화(書畵)에 종이·비단 등을 붙여 족자·액자·병풍 등을 만드는 기술을 보유한 장인(匠人).

[개설]

배첩(褙貼)이란 오늘날의 표구(表具)와 마찬가지로 서화에 종이·비단 등을 붙여 족자·액자·병풍 등을 만듦으로써 미적 가치는 물론 실용성 및 보존성을 높여주는 전통적인 서화처리 방법이다. 표구는 일제강점시기에 일본인에 의해 들어온 용어인 반면에 배첩장(褙貼匠)은 조선왕조 초기부터 제도화되어 도화서(圖畵署) 소속으로 궁중의 서화처리를 전담하였다. 따라서 배첩은 한국의 전통적인 용어이다.

[연원]

배첩 기술은 중국 한(漢)나라 때부터 기원하여 당대(唐代)에 한층 더 발전되고, 정립단계에 이른다. 그것이 어떤 경로로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는지는 기록에 전하지 않고 있으며, 고구려(高句麗) 고분벽화(古墳壁畵)의 병풍그림은 4세기 중엽 이래 중국의 표장(表裝)기술이 삼국에 전해졌음을 알려준다.

[형태]

배첩의 제작기법 내지 형태는 액자, 병풍, 족자, 장정 및 고서화 처리의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액자는 비단 재단(裁斷)→그림 초배(初褙)→재배(再褙)→건조(乾燥)→액자틀 준비→조립의 작업과정을 거친다.

병풍처리도 한 폭을 처리하는 것은 액자의 처리방법과 비슷하나, 여러 폭을 연결하기 위해 삼베나 비단 또는 광목을 재료로 한 돌쩌귀를 엇물려 가며 단다. 족자의 작업과정은 비단 재단(裁斷)→초배→겹배→건조→삼배(三褙) 또는 총배(總褙)→건조(乾燥)→ 목(軸木) 및 반달 부착으로 이루어진다.

배첩의 재료에는 풀, 한지, 비단, 목재, 축(軸), 축미리, 장식, 등황, 먹 등이다. 풀은 종이와 함께 가장 기본적인 재료이다. 우리나라 배첩에서는 밀가루로 풀을 쑤고 녹말을 완전히 내려 그것을 말려 가루로 보관하고 필요에 따라 꺼내 묽게 풀어 사용하는 독특한 풀 쑤는 방법을 전통적으로 지켜 오고 있다.

[현황]

일제강점기에 청주시 문화동의 윤병세(尹秉世)의 청주표구사는 서화 처리를 잘 하기로 유명하였다. 윤병세의 전통 배첩 기술은 그의 동생인 윤병의(尹秉宜)와 김표영(金杓永)(중요무형문화재 제102호)에게 전수되었으며, 윤병의의 기술은 홍종진(洪鍾鎭)에게 전수되었다. 따라서 윤병세→윤병의→홍종진으로 전통 배첩의 기술이 전수되었으며, 이 계보 상에서 중요무형문화재가 배출되었다.

홍종진은 16세때인 1966년부터 33년 동안 배첩 기술을 배워 청주에서 동신당표구사를 운영하면서 액자·병풍·족자·장정 및 고서화 처리를 해오고 있는 배첩 전문인이다. 소년시절부터 배첩의 일만을 해온 사람으로 현재 숙련된 기능인으로서 장지 만들기에 능하며, 처리하기 어려운 고서화와 손상된 회화작품의 복원에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

1999년 11월 19일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7호 배첩장 기능보유자로 홍종진을 지정하였으며, 현재 청주시에서는 국비를 지원 받아 배첩전수교육관을 건립하여 배첩장 홍종진으로 하여금 전수 교육은 물론 지류문화재 보수 사업을 전념토록 하고 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영문본문]

The Baecheop is a technique to preserve a painting or calligraphy by attaching a piece of paper or silk onto its back to make it into a scroll, frame or folding screen. It enhances the beauty and practical usage of the work as well as preserving them. Baecheop is a name imported during the Japanese rule; it now is called Pyogu. The Baecheopjang was a person who was working in the government office of paintings and calligraphy and responsible for processing art works in the royal palace during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Baecheop techniques were originated in the Han Dynasty of China and further advanced and perfected in the Tang Dynasty. Although how these techniques were introduced to Korea is unknown, the paintings found on the walls of the tombs from the Dynasty, of Goguryeo indicate that they were imported during the Three Dynasties Era when the foundation for Korean Baecheop techniques were laid down. The techniques then continued to improve through the Unified Silla and the Goryeo Dynasty. They flourished in the Joseon Dynasty to the extent that specialists in the field started appear during this period. The production techniques are divided into five groups according to the types of products: frame, folding screen, scroll, cover designing and antique document processing. Framing has several steps: layering silk fabric, first coating of paint, second coating, drying and preparing frame, and assembling. The procedure for making a section of folding screen follows the same step. The production procedure for a scroll is as follows: cutting, first coating, second coating, drying, third coating, drying, preparing a wood framing and attaching the crescent. The cover designing refers to repairing old books with the damaged cover or pages. The restoration of the damaged old paintings requires an expert eye and exquisite skills. The Baecheop is a traditional industrial art that reflects unique characteristics and personalities of the Korean people. It has a high cultural value. It is now kept alive by a repair technician named Hong Jongjin.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관** 디지털청주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도 안됩니다'님의 글은 서비스 정책에 맞지 않아 삭제합니다. 201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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