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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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용암동, 금천동, 탑동을 흐르는 개울에서 금을 발견하였다는 전설. 조선 후기 철종 때 한 나그네가 걸어서 한양을 가고 있었다. 청원의 쌀안[米院]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에 부지런히 걸어서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무렵 청주성 남문 밖 합수머리에 당도하였다. 개울에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신을 벗고 발을 담갔다.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며칠 동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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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속하는 법정동. 사금을 캐냈다고 하여 쇠내개울, 쇠내 또는 금천이 되었다. 본래 청주군 동주내면(東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탑동리(塔洞里), 문외리(門外里), 구하리(九下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금천리라 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되었다. 1920년 청주읍에 편입되면서 탑동과 금천동으로 분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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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평동에 있었던 마을. ‘쇠내’는 외평동에 있던 마을로 ‘상촌(上村)’, ‘중촌(中村)’, ‘평촌(坪村)’ 지역을 아우르는 큰 마을 이었다. ‘금천(金川)’이라고도 한다. 본래 ‘쇠내’는 멀리 상당산성(上黨山城)에서 발원하여 팔결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쇠내’의 ‘쇠’는 ‘금(金)’, ‘내’는 ‘천(川)’의 뜻이다. 그러니 ‘쇠내’는 ‘금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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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석곡동에 있는 박민준(朴敏俊)[1676~1744]의 묘비.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공적을 세운 박민준의 묘비로 1859년(철종 10)에 세웠다. 청주에서 청원군 부강으로 가는 서부도로의 충북공업고등학교 부근의 오른쪽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186㎝, 폭 63㎝, 두께 37.5㎝이 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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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평동에 있던 들. ‘생치마루’는 1차적으로 ‘생치’와 ‘마루’로 분석된다. ‘생치’는 다시 ‘생’과 ‘치(峙)’로 나뉜다. ‘생’은 ‘사양(斜陽)’의 변화형으로, ‘해질 무렵 비스듬히 비치는 햇볕’을 뜻한다. ‘치’는 ‘티’와 함께 지명의 후행 요소로 자주 사용되는데, 그 뜻은 ‘고개’이다. ‘마루’는 ‘높다’를 뜻하는 백제어 ‘毛良’(모랑)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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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상당구 동편에 위치하는 청주의 진산이며 문화유적의 보고. 청주시의 동편에 위치하는 우암산(牛岩山)[338m]은 청주의 진산(鎭山)으로 청주시의 명암동, 내덕동, 우암동, 수동, 대성동, 문화동, 용암동에 걸쳐 있고 그 지맥이 탑동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해발 338m의 정상을 중심으로 남과 북 3좌의 연봉과 중앙초등학교 동쪽의 당산(唐山)에까지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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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평동에 있었던 마을. ‘쇠내’는 외평동에 있었던 마을로 ‘상촌(上村)’, ‘중촌(中村)’, ‘평촌(坪村)’ 지역을 아우르는 큰 마을 이었다. 일명 ‘금천(金川)’이라고도 한다. 본래 ‘쇠내’는 멀리 상당산성(上黨山城)에서 발원하여 팔결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쇠내’의 ‘쇠’는 ‘金’, ‘내’는 ‘川 ’의 뜻이다. 그러니 ‘쇠내’는 ‘금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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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의 상당산성에서 발원하여 금천동을 지나 무심천(無心川)으로 흘러드는 하천. 쇠내개울, 금천(金川), 명암천(明岩川)이라고도 한다. 쇠내개울은 ‘금이 나는 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지역은 지금도 금과 관련된 지명전설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일제강점기까지도 쇠내개울의 상류에 금광이 있었으며, 내에서 사금을 채취하였고 한다. 또한, 장마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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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었던 들. ‘쇠냇들’은 ‘쇠내’와 ‘들’이 사이시옷을 매개로 결합된 어형이다. ‘쇠내’는 상당산성에서 발원하여 금천동을 지나 무심천(無心川)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 ‘쇠내개울’·‘금천(金川)’·‘명암천(明岩川)’으로도 불린다. ‘쇠내’는 ‘쇠’와 ‘내’로 나뉘는데, 여기서 ‘쇠’는 두 가지로 다르게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금(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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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청 소속의 성당. 정진석 당시 주교는 청주교구 복음화 사업의 일환으로 2000년까지 교구내에 40개 성당이 세워지기를 강력히 희망했다. 이에따라 금천, 영운, 용암, 방서동, 청원군 남일, 가덕, 문의, 남이면을 관할하는 성당으로 영운동성당 건립 필요성이 제기됐다. 1987년 부지가 확보되자 초대주임 김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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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근장동에 속하는 법정동. 외금리와 평리에서 한글자씩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청주군 북강내일면(北江內一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외금리(外金里), 외하리(外下里), 수내리(藪內里), 외상리(外上里), 평리(坪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외평리라 하고 북일면(北一面)에 편입되었으며, 마을이 비행장 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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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관.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일숙(一叔), 호는 만취당(晩翠堂)이다. 고려 때 상장군 진강부원군 유정의 후손이고, 청매당 유명원(柳命元)의 아들이다. 나이 일곱 살에 어머니의 병으로 의약을 알기위하여 힘써 노력하여 마침내 의리를 스스로 터득하여 그 신기함을 세상에 알리었다. 그의 의술이 널리 알려져 사족(士族)으로 어의(御醫)가 되었다. 인조대에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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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청주지역의 유지.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기범(箕範), 호는 한은(翰隱)으로 전서공파(典書公派)의 인물이다. 아버지는 임재천(林在天), 생부는 장예원경(掌隷院卿)에 증직된 임순상(林舜相)이다. 어머니는 성주배씨(星州裵氏), 생모는 경주김씨이다. 세 명의 부인을 얻어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1902년 관직에 나아가 내부주사(內部主事)를 지냈으며, 1910년에는 중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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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주지역의 유지.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영록(永錄), 호는 학초(學樵)이다. 고려말 두문동 72현의 한 분인 전서공(典書公) 채귀하(蔡貴夏)의 후손이며,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낸 채종길(蔡宗吉)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채상학(蔡相學), 어머니는 경주김씨(慶州金氏), 부인은 안동김씨(安東金氏)이다. 아들로는 채기영(蔡基榮)과 채기달(蔡基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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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의 여덟 군데의 명승지.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청주의 형승(形勝)은 동남쪽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고, 땅이 넓고, 인구가 조밀하며, 물이 공(功)자처럼 돌고, 현사(懸寺)가 강에 닿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서원팔경이라 하여 1경은 상당귀운(上黨歸雲: 상당산성에 둘러싸인 구름), 2경은 금천어화(金川漁火: 무심천(無心川) 고기 잡는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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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대성동에 속하는 법정동. ‘탑’이 있어서 ‘탑골’ 또는 ‘탑동리’라 한 것이다. ‘탑골’은 탑동 최초의 마을이다. ‘탑골’의 ‘탑’은 ‘오층석탑’으로써 ‘탑골’의 ‘골’이 ‘동’으로 한자화한 지명이다. 본래 청주군 동주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사주면의 금천리에 병합되었다가 1935년 다시 탑동정(塔洞町)으로 이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