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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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골짜기. ‘가운데골’은 ‘가운데’와 ‘골’로 분석된다. ‘가운데’는 ‘일정한 공간이나 사물의 안쪽 부분’을 뜻한다. ‘골’은 고구려어 ‘忽’(홀·골)과 신라어 ‘’에서 기원한 것으로, ‘골짜기’나 ‘마을’을 뜻한다. 물론 본 예는 ‘골짜기’를 뜻한다. 그렇다면 ‘가운데골’은 ‘가운데에 있는 골짜기’로 해석된다. 전국적으로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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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들. ‘숨밖에’는 ‘숨’과 ‘밖에’로 분석된다. 전국적으로 ‘숨’은 ‘숨말’, ‘숨머리’, ‘숨바우’, ‘숨박골’, ‘숨방죽’, ‘숨실’ 등에서 발견되는데, 몇 가지로 다르게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숲[수(藪)]’과의 관련인데, 이는 미파화와 비음화의 결과이다. 예컨대 ‘숲말’이 미파화에 의해 ‘숩말’로, ‘숩말’이 비음화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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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성수(聖叟)이고, 밀성군(密城君)의 후예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청주 인근의 친지를 모아 70여인을 얻었다. 종질(從姪) 이태지(李泰之)를 부관(副官)으로 삼고, 당질(堂姪) 이원지(李元之), 이형지(李亨之) 형제를 종사관(從事官)으로 삼고, 삼종(三從) 이희명(李希命)과 이종인(李宗人), 이민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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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정주(貞州)이며, 자는 거실(居實)로 정주이씨의 시조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다방(茶房), 내시 등의 벼슬에 이어, 1217년(고종 4)에는 정융분도원사 조충(趙冲)의 막하로 있다가 그의 천거로 대영서승(大盈暑丞)이 되고, 백령도의 진장이 되어 처음으로 향교를 창설하여 제자를 교육하였다. 임기를 마치고 신호위 녹사에 올라 도병마사를 겸하고, 뒤에 우사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