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1907년 서울의 협성신학교(協成神學校)를 졸업하고 감리교 목사가 되어 서울 수표교교회에서 재임하던 1919년 2월 중순경, 오화영(吳華英)으로부터 3·1운동에 관한 계획을 듣고 동참하기로 결심하였다. 이해 2월 28일, 그는 손병희(孫秉熙)[1861~1922]의 집에서 열린 민족대표의 최종 회합에 참여하였고,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