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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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당고개의 지명 유래 전설. 통일신라 때 서원경(西原京)으로 향하는 고갯마루의 양쪽 길가에 객줏집이 마주하고 있었다. 북쪽에 위치하고 있던 객줏집의 주인은 함씨(咸氏)였고, 남쪽에 있던 객줏집의 주인은 원씨(元氏)였다. 추운 어느 겨울밤에 함씨의 객줏집 문을 두드리는 젊은 여인이 있었다. 함씨는 문을 열고 여인을 보았다. 여인의 몸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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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오다이사(東大寺)의 쇼소인(正倉院)에 보관되어 있는 2매의 통일신라시대의 문서 「신라장적(新羅帳籍)」, 「신라민정문서(新羅民政文書)」. 1933년 일본 도오다이사(東大寺)의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된 13매의 경질(經帙) 가운데 파손된 『화엄경론(華嚴經論)』의 포갑(包匣)을 수리할 때 그 내부의 포심(布心)에 덧붙인 휴지 가운데서 발견되었다. 이 문서는 촬영 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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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있는 마을.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신문왕 9년 청주에 서원경을 두고 성을 축조하여 재발 가능성 있는 북방의 내습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 후 혜공왕 6년에 왕이 서원경을 순행하게 되었다. 왕이 순행한다는 전갈을 받은 성주는 왕을 맞을 준비를 해 놓고 요로에 연락군을 파견하여 왕의 행차과정을 파악하고 있었다. 혜공왕이 조항산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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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촌락문서」에 기재된 각 촌락 별 호구의 규모를 나타낸 기준 수치. 「신라촌락문서」의 기재양식은 첫머리에 촌락의 둘레에 이어 공연(孔烟)과 계연(計烟)의 수, 9등호제에 의한 각 등급의 연(烟)의 수의 순서로 되어있다. 공연과 계연, 그리고 각 등급의 연의 수에는 일정한 관계가 있는데, 계연은 각 등급연에 기본수를 설정하여 등급연의 수와 곱한 다음 이를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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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상당산성(上黨山城)에 있었던 석축 산성. 고상당성은 조선 후기에 새로이 고쳐 쌓은 현재의 상당산성보다 앞선 시기에 존재했던 석축 산성이다. 상당(上黨)은 백제 때 청주의 지명인 상당현(上黨縣)에서 유래한 것으로, 삼국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청주의 별칭으로 사용되었다. 고상당성은 조선 후기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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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인 물건에 본래의 기능을 살리면서 조형미를 조화시키는 솜씨, 또는 그 제품. 공예는 인간생활 주변에서 쓰여지고 있는 가구, 그릇, 옷, 주택장식 등 생활용품이며, 이는 공예가 인간생활과 매우 밀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공예는 일반 비품으로부터 장식품, 신앙물, 시설물에 이르기까지 아주 광범위하다. 신앙물은 장승, 신주, 불상, 석등, 석탑, 부도 등이 있으며 시설물은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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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촌락문서」에 보이는 토지의 종류. 「신라촌락문서」에서 토지는 답(畓)과 전(田)으로 나누어 먼저 합계를 기록한 다음 지목별의 토지 면적을 기재하고 있는데, 관모전답(官謨田畓)이 가장 먼저 기록되어 있다. 각 촌락의 관모전답의 면적과 그 비율을 살펴보면 사해점촌은 답 102.024결 중 관모답이 4결, 살하지촌은 답 63.649결 중 관모답이 3.667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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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의 옛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29년(신라 진평왕 51, 고구려 영류왕 12) 가을 8월에 신라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여 크게 깨뜨렸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 제37 잡지 제6 지리4)에는 백제에 속했던 웅천주(熊川州)의 서원(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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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옛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551년(신라 진흥왕 12) 3월 진흥왕(眞興王)은 순행(巡行) 중에 낭성(娘城)에 이르러 우륵(于勒)[500?~562?]과 그의 제자 이문(尼文)이 음악을 잘한다는 말을 듣고 그들을 특별히 불렀다. 왕이 하림궁(河臨宮)에 머무르며 음악을 연주하게 하니, 두 사람이 각각 새로운 노래를 지어 연주하였다’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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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6부의 하나로 왕경과 소경에 있었던 행정구역의 명칭. 사량부(沙梁部)는 사훼부(沙喙部) 또는 사탁부(沙𠸌部·沙𣵠部) 등으로 쓰기도 한다. 여기서 량(梁), 탁(𠸌·𣵠), 훼(喙)는 모두 도(道) 또는 독(督)으로 읽혔으며, '돌'로 발음한다. 그 뜻은 아마도 도랑을 낀 지역, 즉 들판의 뜻으로 여겨진다. 사량부는 梁部(=喙部·𠸌部)에서 분화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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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촌락문서」에 보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촌. 「신라촌락문서」에는 4개의 촌명이 보이는데 그 중 그 이름이 확실한 것은 사해점촌(沙害漸村)과 살하지촌(薩下知村) 둘 뿐이다. 사해점촌의 마을의 규모는 둘레 5,725보(步)이고, 호구수는 11호(戶)에 147명이다. 가축으로는 말이 25마리, 소가 22마리이고, 논은 102결(結) 2부(負) 4속(束), 밭(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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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청주는 전통시대 이래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많은 역사적 유산과 전통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도시이다. 광복이후 시로 승격된 청주는 충청북도의 도청소재지로서 지방행정의 중심지이고, 전자산업 등 첨단산업의 발달로 우리나라의 주요 공업중심지 중 하나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청주는 전통적으로 교육도시로 불릴 만큼 교육인구의 비중이 높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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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동부에 위치한 구. 북서쪽은 청원군 오창면, 북동쪽은 청원군 내수읍, 동쪽은 청원군 낭성면, 동남쪽은 청원군 가덕면, 남쪽은 청원군 남일면, 서쪽은 흥덕구와 접하고 있다. 구청소재지는 상당구 우암동에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백제시대에는 상당현(上黨縣)[낭비성(娘臂城), 낭자곡(娘子谷)]이라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685년(신문왕 5)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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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년(신문왕 5) 충청북도 청주 지방에 설치된 신라시대 5소경(五小京)의 하나 신라는 삼국통일 후 전국을 9주(州)와 5소경(小京)으로 재조직하였다. 전국을 9주로 나누고, 주 밑에 군(郡)·현(縣)을 두었으며, 주에는 총관(摠官:후에 都督으로 개칭), 군에는 군수(郡守), 현에는 현령(縣令)을 두었다. 또한 수도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는 소경을 두었다. 소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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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북도 청주시의 역사. 선사시대의 청주지역이 어떠한 문화양상을 보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지금까지 학술조사를 거친 곳이나 지표상의 채집된 유물을 통해 알려진 선사유적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청주시의 중앙부를 관통하여 흐르는 무심천(無心川)과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美湖川) 주변은 대단히 완만한 구릉성 산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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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상의 인문적 여러 요소를 분석대상으로 지역의 의의를 일반적으로 고찰·연구하는 학문 분야. 인문지리의 아버지는 칼 리터(Carl Ritter)[1779~1859]로, 그는 지리학을 경험과학으로 규정하면서, 공간적 관점에서 지역을 총체적으로 연구하며 현상들간의 상호관련성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것으로 정의를 내렸다. 특히 리터는 지역현상을 파악하는데 역사의식을 고취하며, 자연·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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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문화란 청주와 청원 지역에서 축적되고 존재하는 문화이다. 청주문화는 다른 문화와 비교상대적인 문화 개념이다. 청주문화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문화의 독자적인 완결성을 공간적으로 강조할 때 이런 문화단위 개념이 설정될 수 있다. 이 경우 지역의 독자적 문화문법(文化文法)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의 마모를 견디면서 내재하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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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1가에 있었던 지방자치행정기관. 청원군을 대표하고 지방자치행정을 담당했던 기초자치단체기관으로 군청의 위치는 청주시에 있었다. 청원군청은 기초자치단체로 청원군의회에서 결정된 정책을 집행·관리하는 주체기관이었다. 즉, 청원군정을 운영함에 있어서 부자치단체장 등 보조기관과 소속행정기관, 하부행정기관을 두어 행정의 민주성과 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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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중서부에 위치한 도청소재지. 청주시는 삼한시대에 마한의 땅이었다가 백제시대에 상당현(上黨縣), 일명 낭비성(娘臂城) 또는 낭자곡(娘子谷)이라고도 하였다. 신라시대인 685년(문무왕 5) 서원소경(西原小京)을 두었고 757년 서원경(西原京)으로 승격하였다. 고려시대인 940년(태조 23) 청주(淸州)로 지명을 고쳤고 983년(성종 2) 청주목이 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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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역의 역사와 문화 등이 담겨져 있는 명소 기행. 오늘의 충청도를 호서지방이라 한다. 청주는 그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으며 소백산맥과 차령산맥, 노령산맥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청주의 진산인 우암산(牛岩山)[338m]은 동쪽에 우뚝 솟아 있다. 서쪽으로는 부모산이 마주보고 서 있다. 그 두 산자락 가운데 든 시가지를 동·서로 가르는 물줄기가 바로 무심천(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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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문화의 선진도시로서, 그리고 교육과 문화선도의 장으로서 활용되고 있는 청주지역의 박물관과 전시관. 청주의 진산인 우암산(牛岩山)[338m] 기슭에 자리한 국립청주박물관과 우암어린이회관 전시관에서부터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이면서 세계기록유산인『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을 간행한 청주 흥덕사지(興德寺址)에 건립된 청주고인쇄박물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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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북문(北門) 자리에서 남문(南門) 자리에 이르는 큰길로 충청북도(忠淸北道) 청주시(淸州市)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성안길은 일본식 명칭 본정(本町)[본정통]을 대신하여 최근에 새로 만든 지명이다. 예전으로 치면 청주읍성의 안에 있는 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주읍성은 예로부터 청주의 사회, 경제, 군사,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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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 교조인 석가모니(釋迦牟尼)의 가르침과 그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교리, 법문, 종지(宗旨)의 총칭. 2. 특징 충청북도 청주지역의 불교는 이 지역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여 전개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충청북도 청주는 삼국시대와 후삼국시대의 접경지였고, 통일신라시대에 서원경(西原京)이 설치된 이래로 지방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청주지역의 불교는 이와 같은 지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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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촌락문서」에 보이는 토지의 종류. 「신라촌락문서」에 보이는 4개의 촌락 중에서 사해점촌(沙害漸村)에만 촌주위답이라는 지목의 토지가 보인다. 사해점촌의 전답은 논[畓]이 102결(結) 2부(負) 4속(束)인데, 이 중 관모답(官謨畓)과 내시령답(內視令畓)이 각각 4결이고, 그 나머지 연(烟)이 받은 것이 94결 2부 4속이 된다. 그런데 그 중에 촌주(村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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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공공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분배와 관련된 정부의 제반활동과 상호작용. 행정은 공행정과 사행정으로 나누고 사적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활동인 사행정과 구분하기도 하며 법적으로 공공기관의 제반활동을 대상으로 하거나 정책집행에 대한 행정부의 활동으로 논하기도 한다. 또한 중앙과 지방을 구분하여 지방행정을 구분할 수도 있다. 행정은 또한 국가통치작용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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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행정을 수행함에 있어 주민만족 행정서비스의 증진을 위해 행정계층과 지리적 범위를 조정하는 행위. 자치단체의 구역이란 지방자치단체의 관할권 또는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적 범위를 의미한다. 이러한 구역은 지방자치단체가 존재하는 지리적 공간이며, 지방주민의 일상생활과 지방의 정치·경제·사회·문화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지방행정구역은 그 지역의 역사와 전통, 지방행정을 둘러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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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청주의 사정을 기록한 지리지. 지역사 연구의 기초 자료로서 전근대 시기 중앙집권적 수취체제의 기초로부터 시작하여 최근의 도·시·군지, 마을지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사정을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다. 전근대 시기의 향토지는 주로 중앙의 관 주도로 이루어진 수취를 위한 지방의 사정을 기록한 지리지에서 비롯된다.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지방자치단체 주도의 기획과 편찬이 이루어져 보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