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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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는 감동관(監董官) 이기상(李基相)의 불망비. 이기상이 근본에 힘써서 백성을 다스린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1901년에 세운 비석이다. 우암산 순환도로 삼일공원에서 청주대학교 가는 길 오른쪽 언덕 비선거리 7기의 비석 중 왼쪽부터 네 번째이다. 높이 142㎝, 폭 46㎝ 두께 27㎝ 비신(碑身) 위에 지붕돌[가첨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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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붙이와 돌에 새긴 살아있는 역사기록이며 선조들의 삶과 사건의 생생한 증거 금석문은 크게 금문과 석문으로 나누어진다. 금문은 금속류의 용기·악기·무기·화폐·인장·경감·조상·범종·도량형 등에 주출되었거나 새겨진 문자이며, 석문은 석재의 비·묘지·조상 등에 새겨진 문자이다. 금문의 대표적인 경우는 「칠지도명」·「환두대도명」·「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광배문」·「상원사종명」·「성덕대왕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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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事蹟)을 기념하기위해 세우는 돌. 비(碑)는 보통 비석 혹은 석비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 까지 석비가 그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전국 곳곳에 많이 남아있다. 석비는 묘비와 탑비·능묘비 외에도 비문의 내용이 알려주는 역사적 사료로서의 금석문의 가치나 서체가 보여주는 서예사적 가치, 그리고 석비의 양식의 변천을 통해 미술사적 가치를 함께 보여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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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무관. 조선후기 철종 때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무관이다. 심의풍(沈宜豊)은 순조 때 선전관(宣傳官)을 지냈으며, 1857년(철종 8)에는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제수되었고, 1862년(철종 13)에는 공충도(충청도) 병마절도사에 제수되었다. 1864년(고종 1) 금위영 기사 별장에 임명되어 중앙으로 이직하게 되자 병마절도사로 재직하면서 군인과 백성들을 잘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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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백정의 신분으로 어머니를 잘 모시어 이름난 효자였다. 양수척(楊水尺)은 조선 세조~성종 년간에 상당구 운동동 비선거리에서 두 아우들과 함께 살았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무뢰와 횡포를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늙은 어머니에게도 공손치 못하였다. 이에 노모는 항상 이들 형제를 걱정하다 병을 얻어 눕게 되고, 마침내는 누운 채로 배변까지 하게 되었는데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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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는, 충청병영의 영장을 지낸 정종현(鄭宗鉉)의 치적을 기리는 선정비. 조선 고종대에 충청병영의 영장을 지낸 정종현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1864년(고종 1)에 세운 비석이다. 상당구 우암동 우암산 순환도로 삼일공원에서 청주대학교 쪽으로 가는길 비선거리 7기의 비석 중 왼쪽부터 여섯 번째에 있다. 높이 97㎝, 폭 43㎝,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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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2동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남일하면(南一下面) 방동리(方東里), 방서리(方西里), 백운리(白雲里) 각 일부와 산내이하면(山內二下面)의 하월리(下月里) 일부를 병합하여 백운과 방동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운동리라고 명명하였다. 본래 청주군 남일하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방동리, 방서리, 백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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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의 문신. 대한제국 시기 청주군수(淸州郡守)를 지냈다. 청주군수로 재직하면서 그는 백성들의 구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규범을 정착시켰으며, 공평무사하게 일처리를 하며 농업 장려에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그의 선정(善政)에 감복한 청주의 사음(舍音)인 전주사(前主事) 김형식(金衡植)과 도감관(都監官) 나성희(羅聖凞), 김영주(金英柱) 등이 1901년에 선정비를 세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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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는 구완식의 비석. 조선 고종대에 충청절도사(忠淸節度使)를 지낸 구완식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1893년에 세운 비석이다. 상당구 우암동 우암산 순회도로 청주대학교 부근의 속칭 비선거리에 있는 8기의 비석 중 왼쪽부터 세 번째에 있다. 사각의 화강암 받침돌 위에, 높이 132㎝, 폭 45㎝, 두께 25㎝의 비신을 세우고 그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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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조선 후기 충청병영의 영장을 지낸 무관이다. 정종현(鄭宗鉉)은 고종 때 충청병영(忠淸兵營)의 영장(營將)을 지냈다. 그는 성품이 온화하고 청렴하였으며 공평하게 일처리를 하여 청주 백성들의 신망을 많이 받았다. 그가 다른 곳으로 이임할 때는 청주의 백성들이 매우 애석하게 여겨 가는 길을 막기까지 하였다. 그의 선정(善政)을 기리기 위해 1864년에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