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
조선 초기인 청주에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김시습(金時習)[1435~1492]의 시문집(詩文集).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의 저자로 유명한 김시습의 각종 시문(詩文)을 모은 것으로, 이 문집에 나타나는 김시습의 사상은 당시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선양(抑佛揚儒)하는 추세와는 달리 유불공존(儒佛共存)적인 태도로 표현되어 있다. 시집 15권 4책(冊),...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계의(季依)이다. 아버지는 판서를 역임한 능성부원군(綾城府院君) 구굉(具宏)이며, 어머니는 사의(司議) 조정(趙玎)의 딸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감찰을 지낸 구순(具淳), 할아버지는 인조의 어머니 인헌왕후(仁獻王后)의 부친이 되는 좌찬성 구사맹(具思孟)이다.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함께 공부하였으며, 인조의 어머니 인헌왕...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회여(晦汝), 호는 수북(水北)이다. 할아버지는 김극효(金克孝)이고, 아버지는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이며, 어머니는 권송(權悚)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생원·진사 양과에 모두 합격했으나, 광해군(光海君)의 어지러운 정치를 비판하며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인재로 뽑혀 연원도 찰방(察訪)을 제...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청주 출신으로 김공예(金公藝)의 현손이다. 어릴 때부터 타고난 얼굴과 모습이 웅위하고 힘이 장사였다. 무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으며, 1624년(인조 2)에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 인조 임금이 공주로 피난 갈 때 왕을 호종(扈從)하였던 공으로 선전관(宣傳官)에 특별히 제배되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하였고, 1637...
-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본관은 교하(交河)이고, 자는 대해(大海)이며, 호는 사지당(四知堂)이다. 경원군파(慶原君派) 인물이다. 거주지는 청주였으며, 아버지는 체화당사(棣華堂祠)의 배향인물인 노일원(盧一元)이며, 형으로 노준(盧浚)과 노척(盧滌)이 있었다. 1606년(선조 39)에 생원시(生員試)에 급제하였으나, 광해군 때에 벼슬을 버리고 청주에서 은거하였다. 인조 대에 음사(...
-
쇠붙이와 돌에 새긴 살아있는 역사기록이며 선조들의 삶과 사건의 생생한 증거 금석문은 크게 금문과 석문으로 나누어진다. 금문은 금속류의 용기·악기·무기·화폐·인장·경감·조상·범종·도량형 등에 주출되었거나 새겨진 문자이며, 석문은 석재의 비·묘지·조상 등에 새겨진 문자이다. 금문의 대표적인 경우는 「칠지도명」·「환두대도명」·「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광배문」·「상원사종명」·「성덕대왕신종...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에 있는 김효성(金孝誠)[1585~1651]의 선정비. 1651년(효종 2)에 조선 인조(仁祖) 대에 청주목사(淸州牧使)를 지낸 김효성의 선정(善政)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상당구 남문로 2가 청주 시내 중심가에 있는 중앙공원(中央公園) 동편 화단에 서향으로 위치해 있다. 높이 128㎝, 폭 72㎝, 두께 19㎝의 하...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조선중기 청주목사 이경여(李敬輿)[1585~1657]의 선정비. 조선 인조(仁祖) 대에 청주 목사 이경여가 청렴결백하게 선정을 베푼 것을 기려 1631년(인조 9)에 세운 비이다. 남문로2가(南門路二街)의 청주시내 중심가에 있는 중앙공원(中央公園) 동편 담장 아래 화단에 서향에 위치해 있다. 거북대좌 위에 높...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응휴(應休), 호는 암수(巖叟)이다. 주부 박인량(朴仁亮)의 손자이며,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의 증손자이다. 1594년(선조 27)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1614년(광해군 6) 장령·동래부사에 제수되었고, 1622년 청주목사가 되었다. 벼슬이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성품이 강개하고 고집이 세어, 공론에 맞지 않으면 권귀(權...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에 있는 박동명(朴東命)[1576~1636]의 정려각. 박동명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아들로 아버지를 따라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웠고, 병자호란 때는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던 중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적을 만나 싸우다 순절하였다. 이러한 박동명의 충절을 기려 1709년(숙종 35)에 세운...
-
조선 후기의 청주지역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이고, 자는 양백(養伯)이며, 호는 사익재(四益齋)이다. 정국공신(靖國功臣) 변준(卞寯)의 현손으로 알려져 있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집안이 매우 가난하였으나 홀어머니를 섬김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의 병환에 여러 차례에 걸쳐 목욕재계하고 정성껏 하늘에 빌었더니 어머니의 병이 쾌차하여 고을사람...
-
조선 전기의 무신, 관료. 무과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이괄(李适)의 난 때 어가를 호종하여 벼슬이 가자되었다. 본관은 초계(草溪), 자(字는) 사눌(士訥)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음직(蔭職)으로 장사랑(將仕郞), 군공(軍功)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장례원(掌隷院判決事)에 증직된 변충남(卞忠男)이고, 할아버지는 청주에 낙향한 변경수(卞景壽)이다....
-
조선 후기의 문신·농학자.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호중(浩仲), 호는 이지당(二知堂)이다. 승지 신경락(申景洛)의 아들이며, 족부 영원군(靈原君) 신경식(申景植)에게 입양되었다. 1624년(인조 2) 진사로서 명경시(明經試)에 응시하여 합격하지 못하였으나 시험관의 천거로 별제(別提)에 제수되고, 이어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호조낭관·옥천현감 등을 역임하였고, 1644년 영주...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숙정(叔正), 호는 졸재(拙齋)·임곡(臨谷)이다. 신식은 영의정 신숙주(申叔舟)의 5대손이며, 현령(縣令) 신중엄(申仲淹)의 아들이다. 이황(李滉)과 성운(成運)의 문인으로, 1576년(선조 9)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지평(持平)·헌납(獻納) 등을 거쳐 1590년 집의(執義)로 있을 때 정여립(...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계달(季達), 계수(季收)이며, 호는 하은(霞隱)이다. 문충공 신숙주(申淑舟)의 후손인 영성군파(靈城君派)의 인물로 신숙주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신중엄(申仲淹), 할아버지는 신서(申漵), 증조할아버지는 신광윤(申光潤)이다. 형으로 신저(申渚)와 신식(申湜)이 있고, 동생으로는 신은(申氵隱)이 있다. 11세에 형 신식과 함께 퇴계(...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덕초, 호는 청매당이다. 사인(舍人) 유자빈(柳自濱)의 증손이며, 상의원 별제 유임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썼으며, 지조가 고결하였다. 선조 때 영릉참봉이 되었다. 광해군 때에 참봉(參奉)에 음제(蔭除)되었다가 폐모론(廢母論)이 일자 벼슬을 버리고 충청북도 청원군으로 내려와 살았다. 효행이 뛰어났었다. 인조 때...
-
조선 후기의 의관.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일숙(一叔), 호는 만취당(晩翠堂)이다. 고려 때 상장군 진강부원군 유정의 후손이고, 청매당 유명원(柳命元)의 아들이다. 나이 일곱 살에 어머니의 병으로 의약을 알기위하여 힘써 노력하여 마침내 의리를 스스로 터득하여 그 신기함을 세상에 알리었다. 그의 의술이 널리 알려져 사족(士族)으로 어의(御醫)가 되었다. 인조대에 천...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이원(而遠), 호는 사정(思亭)이다. 직장 윤영(尹瑛)의 아들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28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을 역임하고, 정언, 지평, 병조좌랑, 교리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공양이 남달랐다. 1634년 인조가 그의 친어버이를 숭봉하려 하자 양사가 이...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유일(幼一), 호는 창주(滄洲)이다. 좌의정 윤개(尹漑)의 증손이며, 도승지 윤담무(尹覃茂)의 아들이다. 1603년(선조 36)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광해군 1년 증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15년 서원현감이 되었고, 1617년(광해군 9) 병조좌랑과 정랑을 거쳐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사로(師魯), 소자(小字)는 여숙(汝淑), 호는 이유당(怡愉堂)이다. 영의정 이유청(李惟淸)의 후손이며 이도(李濤)의 아들로 일족인 현감 이준(李浚)에게 입양되었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선대로부터 청주 북일면 상당산(上黨山)[419m] 아래에 우거(寓居)하였다. 1606년(선조 39) 진사(進士)가 되고 1608년 별시문과(...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춘장(春長)이며, 호는 설해(雪海)이다. 임영대군(臨瀛大君)의 후손으로 이견철(李堅鐵)의 아들이다. 1635년(인조 13)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곧 문한관을 거쳐 감찰이 되어 1636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44년 사헌부 장령이 되어 기성군(杞成君) 유백(兪伯)의 비행을 공격하다 왕의 노여움을 사 치...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창기(昌期), 호는 잠와(潛窩)·진사재(進思齋)이다. 아버지는 청주목사와 병마절도사를 지낸 이제신(李濟臣)이며, 어머니는 목천상씨(木川尙氏)로 상붕남(尙鵬南)의 딸이다. 1601년(선조 34)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어 1603년에 문과정시(文科庭試)에서 장원으로 급제, 성균관전적에 임명되었으며, 1604년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
-
조선 후기의 효자. 나이 10세에 도적을 만나 몸으로 아버지를 막다가 도적이 잔인하게도 어린 천상의 왼손 두 손가락을 칼로 잘라버렸다. 그 뒤 모친의 병환이 급하게 되자, 그는 손가락을 잘라서, 피를 드려서 어머니를 구하였다. 그래서 그의 부친이 울면서 말하기를, “전에는 애비를 위하여 도적에게 두 손가락을 끊기고, 이번에는 에미로 하여 또 한 손가락을 끊으니, 부모로 하여 너는...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자는 흡여(潝如)이다. 교리 조수익(趙守翼)의 아들이다. 광해군 말에 등용되어 승문원 정자가 되고, 1623년(인조 1) 김류(金瑬)·이귀(李貴) 등이 반정을 꾀함을 알고 이에 호응하여 포의(布衣)의 몸으로 이천(利川)으로 가서 방어사 이중로(李重老)와 군병을 모아 인조반정(仁祖反正)에 공을 세웠다. 인조가 즉위하자...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자는 수오(受吾), 호는 뇌봉(雷峯)이다. 부원군 지용기(池湧奇)의 8세손으로 청원군 남일면 은행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지경청(池景淸)이고, 할아버지는 증호조참의 지란(池蘭), 증조할아버지는 지영수(池永洙), 외할아버지는 송수(宋璲)이다. 부인은 윤직방(尹直方)의 딸 파평윤씨(坡平尹氏)이며, 재취한 부인은 성산이씨 이구...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자는 수지(受之)이다. 고려의 명장 충의군(忠義君) 지용기(池涌寄)의 후손으로, 사과(司果) 지경담(池景湛)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영변통판으로 300여 군사를 이끌고 운산의 적을 기습, 패주시켰다. 이 전공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라 용천부사가 되었으나 모함하는 자의 참소로 의주에 충군(充軍)...
-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선여(善餘), 호는 송촌(松村)이다. 아버지는 승지 채낙(蔡洛)이고, 어머니는 찰방 김훈(金壎)의 딸이다. 1610년(광해군 2) 진사가 되었으나 조정에서 폐모론이 일자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청주시의 상당산(上黨山)[419m]아래에 살면서 독서를 하였다. 인조반정 후 천거되어 희릉재랑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여 나아가지 않았고, 16...
-
근대 개항기의 열녀. 본관은 양성(陽城)이며, 아버지는 이한경(李漢敬)이고, 남편은 경주최씨 최성대(崔成大)이다. 족보상에 기재된 남편의 이름은 항렬을 사용하여 지은 최현식(崔顯植)이지만, 호적(戶籍)이나 실제 생활에서 사용되는 이름은 족보에 자(字)로 기재된 최성대이다. 후사(後嗣)가 없어 조카 최원관(崔元寬)으로 대를 잇게 하였다. 부인은 17세에 문의(文義) 오룡리(현, 충청...
-
조선 중기 충청도지역의 정치, 사상적 흐름을 주도했던 지성인 집단. 사림은 주로 15~16세기에 향촌사회를 중심으로 성리학적 교화와 학문적 심화를 주도했던 핵심세력이었다. 사림은 크게 기호사림과 영남사림으로 분류되어 학맥과 학문 성격이 비교되었고, 아직도 호서사림의 특성이 온전하게 정리되지 못한 아쉬움이 많다. 호서사림은 특히 호란이후 산림인사들의 초치와 북벌론의 강조, 예학의 발...
-
부모를 극진하게 잘 섬기는 아들. 왕조사회에서 가정에서의 효도는 국가의 임금님에게 충성하는 데까지 자연스럽게 연장되고, 국왕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지배 이념으로 보아서 적극 장려되었다. 반대로 불효하거나 역적이 나올 경우에는 유교의 강상(綱常)을 범한 죄과로 간주되어, 그 집안이나, 마을, 또는 고을 전체가 처벌받고, 고을의 지위까지 격하되어 주민들은 약 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