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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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계변무(宗系辨誣)를 축하하는 경하시(慶賀詩)를 모아 인쇄하기 위해 만든 판목(板木). 중국 명나라의 『태조실록(太祖實錄)』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조선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선계(先系)가 고려의 권신인 이인임(李仁任)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어 건국초기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수정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계속 거절당하다가 1584년(선조 17) 5월에 종계변무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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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평장사(平章事) 김방경(金方慶)의 손자이다. 지금의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문장에 능하였으며, 공민왕 초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안렴사(按廉使)에 이르렀다.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1328~1396]과 친교가 두터웠으며 함께 직간(直諫)으로 이름이 높았다. 1365년(공민왕 14) 왕이 신돈(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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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북도 청주시의 역사. 선사시대의 청주지역이 어떠한 문화양상을 보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지금까지 학술조사를 거친 곳이나 지표상의 채집된 유물을 통해 알려진 선사유적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청주시의 중앙부를 관통하여 흐르는 무심천(無心川)과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美湖川) 주변은 대단히 완만한 구릉성 산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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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는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과 부속 강당. 목은영당(牧隱影堂)은 이색의 학덕과 청주에서의 유서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인 한산이씨 이붕해(李鵬海)와 그의 종형 이조해(李朝海)가 주도하여 1714년(숙종 40)에 청주목 산외일면 주성리(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 60번지)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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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만석(曼碩), 호는 복재(復齋)이다. 정당문학(政堂文學) 정추(鄭樞)[일명 公權]의 아들이며, 조선개국공신 정탁(鄭擢)[1363~1423]의 형이다. 1376년(우왕 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19세로 춘추관검열이 되고, 대간·응교·사예를 거쳐 대호군에 이르고, 1389년(공양왕 1) 병조판서에 승진되었으며, 1391년 이조판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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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중앙공원(中央公園) 내에 있는 은행나무. 중앙공원(中央公園) 내에 있는 은행나무인데, 압각수라는 이름은 잎의 모양이 오리류의 발가락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주장과 나무뿌리가 물오리의 발처럼 발가락 사이가 붙어 있어 생겼다는 주장이 있다. 그래서 이 나무를 오리발나무라고도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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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는 신라 헌강왕 때에 시중을 지낸 곽상이다. 4세(世) 곽원(郭元)[?~1029]은 고려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형부상서를 거쳐 참지정사를 지냈으며, 6세 곽상(郭尙)은 추밀원 좌승선을 거쳐 호부상서·참지정사에 오르고 두 아들로 문충공 탄(坦)과 진정공 여(輿)를 두었다. 누전하여 11세인 곽예(郭預)[1232~1286]는 문한학사와 지밀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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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청주를 본관으로 삼은 김정(金錠), 김하통(金夏通), 김사지(金四知)의 세 계통. 청주김씨(淸州金氏)는 신라 56대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으로 본관을 같이 하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세 계통이 있다. 이를 계통별로 분류하면 첫째 계통은 경순왕의 여섯째 아들 김정을 시조로 하고, 10세손인 김보(金甫)를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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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忠淸北道) 청주시(淸州市) 상당구(上堂區) 남문로2가(南門路2街)에 있는 면적 24,800평 규모의 공원. 예로부터 청주는 지세를 따졌을 때 무심천(無心川) 위에 떠있는 배의 형상이라고 해서 주성(舟城)이라고 했다. 청주의 한복판이라 할 남문로 2가에 서있는 용두사지(龍頭寺址) 철당간(鐵幢竿)은 배를 안정시키고자 세운 돛대라고 전해진다. 중앙공원(中央公園)은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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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에 본관을 둔 성씨. 한씨(韓氏)는 기자조선에 연원을 두고 있다. 위만에게 밀려 마한으로 온 준왕(準王)[기자(箕子)의 40대 후손]의 8세손인 원왕(元王)은 3형제를 두었는데, 둘째 아들인 우량(友諒)이 신라의 상당(上黨)[청주의 옛 지명]으로 옮겨 한씨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사적에 의하면 한씨의 시조는 기자의 후예 우량의 32세손 한란(韓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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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신하. 충청지역은 조선시대 한성에 도읍한 이후에 많은 사람이 주거하게 되었다. 특히, 수도에서 낙향하거나, 선조의 묘지를 쓰고 집성촌을 형성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고 충효를 강조하여, 충청지역에서도 충신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 조선 이후에 많이 나타났다. 그런데 청주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죽은 사람은 드물고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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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미산을 벌미산이라고도 한다. 들 복판에 우뚝 서 있다고 해서 통미산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부모산에서 장마비에 떠내려 왔다고도 하고, 이성계(李成桂) 때 소사가 치마에 싸가지고 가다가 자빠져서 거기다가 쏟아 놓고 갔다고 한다. 들 복판에 우뚝 서서 부모산에서 장마 때 떠내려 왔다고도 하지. 그리고 아들하고 딸하고 내기를 하는데 딸이 치마에 싸서 가다가 엎어져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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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한강(韓康)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지낸 한사기(韓謝奇)이고, 아버지는 사숙공(思肅公) 한악(韓渥)이며, 형 한대순(韓大淳), 한공의(韓公義), 한중례(韓仲禮), 아들로는 한휴(韓休), 한안(韓安), 한녕(韓寧), 한열(韓烈)이 있다. 과거에 급제하여 용략이 있어 상장군(上將軍)까지 올랐으며, 여러 관직들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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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숙경(叔敬)·경중(敬仲)이며, 호는 신재(信齋)이다. 호부상서 한공의(韓公義)의 손자로, 판후덕부사 한수(韓脩)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길창군 권적(權適)의 딸이다. 1382년(우왕 8) 문과에 급제하여, 예의좌랑, 우정언, 전리정랑, 예문응교, 공부총랑, 종부영을 거쳐, 1392년(공양왕 4) 밀직사우부대언에 승진하였다.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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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중질(仲質), 호는 죽소(竹所)이다. 호부상서(戶部尙書) 한공의(韓公義)의 손자로 지금의 상당구 방서동에서 태어났다. 판후덕부사 한수(韓脩)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길창군 권적(權適)의 딸이다. 조선의 개국공신 한상경(韓尙敬)이 그의 아우이고, 세조 때 공신 한명회(韓明澮)는 그의 손자이다. 1390년(공양왕 2) 6월 천추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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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도지역의 정치, 사상적 흐름을 주도했던 지성인 집단. 사림은 주로 15~16세기에 향촌사회를 중심으로 성리학적 교화와 학문적 심화를 주도했던 핵심세력이었다. 사림은 크게 기호사림과 영남사림으로 분류되어 학맥과 학문 성격이 비교되었고, 아직도 호서사림의 특성이 온전하게 정리되지 못한 아쉬움이 많다. 호서사림은 특히 호란이후 산림인사들의 초치와 북벌론의 강조, 예학의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