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동 돌꼬지 - 통과의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538
한자 井上洞-
이칭/별칭 석화,머굿대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상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가구수 42가구

[출산]

현재 마을에서 출산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출산을 할 연령대의 주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출산 풍속이 바뀌어 조산원이나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 제보자들은 모두 자신의 집에서 출산을 했다.

산모가 진통을 시작하면 방에 미리 추려 놓은 짚을 깔거나 회푸대 종이를 깔아 삼자리를 마련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산파가 탯줄을 자르는데, 아이의 배꼽에서 넉넉하게 한 뼘 되는 곳을 실로 동여매고 소독한 가위로 자른다. 잘린 탯줄과 기타 산후 물질은 왕겨 속에 넣어 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태웠다. 다 태운 재는 소나무 밑에 뿌려 아이가 장수하기를 바랐다.

아이가 태어나면 우선 대문 앞에 금줄을 친다. 왼새끼에 아들일 경우는 고추, 거멍(숯을 말한다)을 걸고 딸일 경우는 솔잎, 거멍을 건다. 딸만 계속 낳거나 손이 귀한 집에서는 딸인 경우에도 금줄에 고추를 달아 아들을 기원하기도 했다.

금줄은 칠일 정도 쳤다가 삽작(대문)에 끼워 놓으면 자연스레 없어진다.

산후 조리도 지금은 한 달씩 하지만 예전에는 살기 어려워 삼날만 지나면 부엌에 나가 일을 해야 했다.

[혼례]

현재 마을의 혼사는 모두 결혼식장에서 이루어진다. 신부 집이 먼 경우는 신부 집이 있는 도시에서 혼사가 치러지지만 대개 신랑부모가 사는 도시에서 혼사를 치르고 혹은 신랑신부 직장이 있는 곳에서 치르는 경우도 간혹 있다.

마을 주민들이 혼사를 치를 때는 모두 중매를 통한 전통혼례였다. 결혼 전에 신부 얼굴이 보고 싶어 신부 집에 찾아가도 신부 얼굴을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대례는 거의 신부집에서 치렀다. 신랑은 집이 멀면 그 전날, 가까우면 그날 신부집으로 가는 데 후객(상객)으로 일가친척 중 한 분이 같이 간다. 신랑이 사모관대를 차리고 초례청에 들어갈 때 신부 마을 청년들이 신랑을 놀리기 위해 멍석 밑에 도토리를 깔아 놓기도 하고, 재를 수수팥떡 만하게 뭉쳐 뿌리기도 한다. 이는 신랑의 성격과 품성을 알아보기 위한 행위이다.

대례의 순서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제보자는 없었는데 그 이유가 옆에서 홀기(笏記)를 부르면 그대로 따라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례를 다 치른 후 신랑 신부는 각자 다른 공간에서 첫날밤을 기다리는데 신랑 상에는 밤과 도토리, 토란을 섞어 안주로 내고 젓가락도 길게 한 자가 넘게 잘라서 신랑에게 줘서 지혜를 시험하기도 했다.

첫날밤은 대개 신부 집에서 치르는데 이때 신부 동네 아낙들이 창호지 문을 뚫어 구경한다. 이것은 신랑 신부의 첫날 의식을 보조해 주기 위한 연장자의 배려이기도 하고, 이날 처음 얼굴을 본 신랑이 도망갈까 염려해서이기도 하다.

짓궂은 신부 집에서는 신부 버선 뒤꿈치를 꿰매서 잘 안 벗겨지게 해놓고 신랑이 신부 버선을 벗기다가 뒤로 넘어가는 것을 보고 웃기도 한다.

다음날 아침 대례상에 올랐던 용떡으로 떡국을 끓여 먹고 신부는 가마를 타고 신랑은 말, 자전거 등을 타고 시댁으로 간다. 이때 혼수도 같이 가는데 이때 당시의 혼수는 버선, 옷 등으로 자신이 시집가서 쓸 물건을 인편에 가지고 가기도 하고 기차 편에 부치기도 했다.

[상례]

마을의 상례는 마을에서 초상을 치르는 경우와 병원 영안실이나 장례식장을 이용하는 경우가 거의 비슷하다.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에서 초상을 치르는 경우가 더 많았는데, 근래에는 영안실을 사용하는 예가 부쩍 늘었다.

예전에는 부고에서부터 산일까지 동네 주민이 모두 합심해서 치렀으나 현재는 농협과 연계된 상포사에서 장례에 관련된 모든 일을 하기 때문에 마을 주민은 조문만 하면 될 정도이다. 상여도 가벼운 일회용 꽃상여를 사용하고 있다. 운구도 장지 초입까지는 버스로 이동하고 산 밑에서만 상여를 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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