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942
한자 社稷祭
영어음역 Sajikje
영어의미역 Sacrificial Rite for Land and Grain Gods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영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시작연도/일시 삼국시대
의례시기/일시 2월|8월

[정의]

땅을 다스리는 사신(社神)과 곡식을 다스리는 직신(稷神)에게 지내는 제사.

[연원]

중국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백성은 땅이 없으면 설 수 없고 곡식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하여 도성 안에 사직을 모신 사직단(社稷壇)을 쌓고 제사를 지냄으로써 시작된 국행제이다. 그 뒤 여러 왕조에서 나라를 세우면 반드시 사직단을 세우고 제사하니 이로부터 사직이 ‘국가’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의 영향을 받아 삼국시대부터 도성 안에 사직단을 세우고 매년 정기적으로 국행제를 지냈는데, 특히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주사(州社)를 모방하여 전국의 주현(州縣) 고을 서쪽에 사직단을 세우고 제사하게 하였다.

[변천]

조선시대 청주에도 서쪽 3리, 즉 지금의 서공원에 사직신을 모신 사직단을 쌓았는데, 이 사직단에는 대지를 지모신(地母神)으로 인식하여 남근(男根)을 바치던 고대의 유풍에 따라 돌기둥을 끝만 내놓고 땅에 묻었다. 그리고 매년 2월과 8월 첫 번 술일(戌日)에 청주목사가 제관이 되어 정기적으로 제물을 차려놓고 예전(禮典)에 따라 관행제를 지냈으며, 또 가뭄이 심하면 청주목사가 사직단에서 비 오기를 비는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기도 하였다.

[현황]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제가 우리나라의 사직제를 폐지하면서 청주의 사직단도 허물어져 지금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고, 다만 사직단이 있던 곳에 ‘사직산(社稷山)[87.4m]’과 ‘사직동’이라는 지명만 남아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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