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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마을. 상당산성 안에는 창말과 아랫말이 있다. 아랫말은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동문안이라고도 한다. 아랫말은 성안의 아래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문안은 상당산성의 동쪽 문 안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상당산(上黨山)[419m]의 정상은 492m이며, 상당산성의 주위는 대체로 400여 m의 높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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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 아랫탑골마을에 있었던 원삼국·고려·조선시대의 무덤, 건물지, 가마터 등의 유적. 한국토지공사 충북지사에서 계획한 청주 산남3지구 일원에 대한 택지 조성 공사에 따라 지표조사(1994년) 결과 실시된 발굴조사(2004년)이다. 조사결과 원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덤, 구덩유구, 건물터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절터가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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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과 지동동에 걸쳐 있는 산. 전설에 의하면, 원래 이산은 아양산이라 불렀으나 몽고의 침입 때 이 지방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하였던 바, 이 산은 항상 안개가 끼어 있어 산 밑에서 평지를 노략질하던 적군의 눈에 뜨이지 않아 공격을 받지 않았고 그 결과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성안의 물이 떨어져 사람과 말이 목말라 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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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는 산.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청주 서쪽 5리에 수구(水口)에 사람들이 두 개의 산을 만들어 놓고 야양(爺孃)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써 이 산이 오래 전부터 ‘야양산’으로 불려왔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는 ‘아양산’은 ‘야양산’에서 변한 것이다. ‘아양’은 단독으로 쓰여 마을을 지시할 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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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과 지동동에 걸쳐 있는 산. 전설에 의하면, 원래 이산은 아양산이라 불렀으나 몽고의 침입 때 이 지방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하였던 바, 이 산은 항상 안개가 끼어 있어 산 밑에서 평지를 노략질하던 적군의 눈에 뜨이지 않아 공격을 받지 않았고 그 결과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성안의 물이 떨어져 사람과 말이 목말라 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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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인물. 청주사람으로 궁예(弓裔)가 아첨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같은 고을(청주) 사람인 입전(笠全)과 신방(辛方) 그리고 관서(寬舒) 등을 참소하였다. 이 참소를 해당관리가 심리하였으나, 수년 동안이나 판결이 나지 않자 고려 태조(太祖)가 그 흑백을 분간하여 판결을 내리니 여러 사람들이 그것을 유쾌하게 생각하였다. 태봉의 궁예에게 아첨을 하기 위해 같은 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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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서 활동한 충북민족미술인협회가 기획한 작가중심의 개인 전시회. 2000년 8월 22일 제1회로 시작한 청주미술의 점검과 침체된 미술시장의 생성을 위해 충북민족미술인협회가 기획한 청주지역 최고의 미술축제이다. 청주예술의 전당을 중심으로 개인부스를 만들고 각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는 기획으로 기타 한국의 아트페어와는 성격이 다르다. 아트페어는 미술시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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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14일에 모든 것을 아홉 번 하는 풍속. 동양에서 9라는 숫자는 양구(陽九)라고 하여 매우 귀히 여기는 수다. 그래서 유독 아홉 번을 강조라는 것으로 생각한다. 정월 14일은 우리 속담에 ‘나무 아홉 짐 하고, 밥 아홉 그릇 먹는다’ 는 말처럼 하는 날이다. 이날 남자들은 부지런히 나무도 해오고 종일 일을 하면서 자주 밥을 먹는다. 그러나 실제로 나무 아홉 짐을 하기는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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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과 지동동에 걸쳐 있는 산. 전설에 의하면, 원래 이산은 아양산이라 불렀으나 몽고의 침입 때 이 지방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하였던 바, 이 산은 항상 안개가 끼어 있어 산 밑에서 평지를 노략질하던 적군의 눈에 뜨이지 않아 공격을 받지 않았고 그 결과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성안의 물이 떨어져 사람과 말이 목말라 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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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내곡동에 있는 마을. ‘소래울’은 내곡동을 가르키고 있는 말 인데 ‘안골’ 또는 ‘내곡’이라고도 한다. ‘소래울’은 ‘소래’와 ‘울’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소래’라는 지명은 들, 마을, 산 등의 이름으로 널리 쓰이는 지명이다. ‘소래’에 대해서는 ‘소라처럼 생겨서 붙어진 이름’,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 ‘지형이 좁아서 붙여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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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서촌동에 있는 마을. ‘안그미’는 1차적으로 ‘안’과 ‘그미’로 분석된다. ‘안’은 물론 ‘내(內)’의 뜻이다. ‘그미’는 다시 ‘그’와 ‘미’로 나뉜다. ‘그’는 ‘신(神)’의 뜻인 ‘’에서 기원한 것으로, ‘크다’나 ‘높다’를 뜻한다. 지명에서 ‘감’·‘검’·‘금’·‘가마’·‘가매’·‘고마’·‘가미’·‘가무’·‘개마’·‘개매’ 등으로 다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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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서촌동에 있는 안동김씨 판관공파의 단소(壇所). 같은 마을에 살던 전주이씨(全州李氏) 종의군파(從義君派)와의 산송(山訟) 분쟁에서 패배하여 선조들의 묘소에 있던 석물들이 훼손됨에 따라 묘소가 실전되어 부득이 단소를 마련하게 되었다. 본래의 단소는 김정, 김보린(金寶麟), 김환, 김담수(金聃壽), 김상, 김응생(金應生) 등 여섯 분의 신위를 모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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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하당공(荷堂公) 김첨(金瞻)의 묘역에서 출토된 16~17세기의 복식(服飾)유물. 1985년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지경리 경수부락에 위치한 안동김씨 묘역이 중부고속도로 호법인터체인지부지로 편입됨에 따라 이 묘역을 옮기던 중 3기의 묘에서 복식이 출토되었다. 묘 이장시 미이라화된 시신과 함께 나온 복식들은 묘 이장 후 주변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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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이고, 자는 덕수(德叟)이며, 호는 취성자(醉醒子)이다. 청주가 거주지로 아버지는 안종우(安宗遇)이고, 할아버지는 충현공(忠顯公) 안홍국(安弘國)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안언필(安彦弼), 처부는 강윤겸(姜允謙)이다. 1650년(효종 1)에 증광문과(增廣文科)의 갑과(甲科) 2위로 급제하였고, 이듬해 승정원(承政院)의 가주서(假注書)가 되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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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이고, 자는 덕수(德叟)이며, 호는 취성자(醉醒子)이다. 청주가 거주지로 아버지는 안종우(安宗遇)이고, 할아버지는 충현공(忠顯公) 안홍국(安弘國)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안언필(安彦弼), 처부는 강윤겸(姜允謙)이다. 1650년(효종 1)에 증광문과(增廣文科)의 갑과(甲科) 2위로 급제하였고, 이듬해 승정원(承政院)의 가주서(假注書)가 되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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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남동에 있는 들과 흥덕구 상신동에 있는 마을. ‘안산너머’는 ‘안산’과 ‘너머’로 분석된다. ‘안산(案山)’은 ‘주산(主山)의 책상 혹은 안석(案席)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주로 마을 앞에 있는 산’을 뜻한다. 전국적으로 ‘안산’이란 지명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흔하다. 청주시에서도 ‘안산’은 무려 열아홉 번이나 발견된다. ‘너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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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에 있는 마을. ‘안새비룡’은 ‘새비룡’의 안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마을이름으로 ‘안새부흥’이라 하기도 한다. ‘새비룡’의 ‘비룡(飛龍)’은 ‘비룡봉(飛龍峰)[76m]’ 기슭에 있는 마을에 붙여진 이름으로 파악된다. ‘새’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은데, ‘새’를 사이(間)나 새로운(新)의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새’를 ‘사(沙)’의 변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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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에 있는 마을. ‘안새비룡’은 ‘새비룡’의 안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마을이름으로 ‘안새부흥’이라 하기도 한다. ‘새비룡’의 ‘비룡(飛龍)’은 ‘비룡봉(飛龍峰)[76m]’ 기슭에 있는 마을에 붙여진 이름으로 파악된다. ‘새’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은데, ‘새’를 사이(間)나 새로운(新)의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새’를 ‘사(沙)’의 변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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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하동에 있는 마을. ‘안오곰’은 ‘안’과 ‘오곰’으로 분석된다. ‘안’은 물론 ‘내(內)’의 뜻이다. ‘오곰’은 ‘오금’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안오금’이나 ‘안오그미’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금’은 지명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선행 요소 중 하나로, ‘오그미’나 ‘오구미’로도 보인다. 이들은 ‘오금’에 접미사 ‘-이’가 붙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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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家神)을 대상으로 하는 종합적 제의. 「안택굿」 또는 안택제. 청주지역의 안택은 보통 4~5개의 작은 굿거리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큰 굿이며, 각 거리마다 일정한 역할을 지닌 신격(神格)이 등장한다. 대개 조왕(竈王), 제석(帝釋), 터주(土主), 삼신(三神), 조상(祖上) 등이다. 제일은 정월과 시월을 전후한 시기에 택일된다. 일종의 정기제(定期祭)인 셈이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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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家神)을 대상으로 하는 종합적 제의. 「안택굿」 또는 안택제. 청주지역의 안택은 보통 4~5개의 작은 굿거리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큰 굿이며, 각 거리마다 일정한 역할을 지닌 신격(神格)이 등장한다. 대개 조왕(竈王), 제석(帝釋), 터주(土主), 삼신(三神), 조상(祖上) 등이다. 제일은 정월과 시월을 전후한 시기에 택일된다. 일종의 정기제(定期祭)인 셈이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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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家神)을 대상으로 하는 종합적 제의. 「안택굿」 또는 안택제. 청주지역의 안택은 보통 4~5개의 작은 굿거리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큰 굿이며, 각 거리마다 일정한 역할을 지닌 신격(神格)이 등장한다. 대개 조왕(竈王), 제석(帝釋), 터주(土主), 삼신(三神), 조상(祖上) 등이다. 제일은 정월과 시월을 전후한 시기에 택일된다. 일종의 정기제(定期祭)인 셈이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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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택[특히 성주굿, 제석굿, 조상굿 등]에서 구송(口誦)하는 가신경(家神經)의 일종. ① 天開於子하니 天皇天尊이 나계시고 地闢於丑하니 地皇地尊이 나계시고 人生於寅하니 人皇氏가 나계시고 物生於卯하니 鬼出於辰이라 …… ② 此時에 聖賢大德이 出現하시고 諸位神靈任이 나시어 人間救濟할 때 天帝桓因任이 開天하시고 天山에서 天神祭를 주관하사 拭木視 上通下察하시고 萬百姓의 壽命을 定하사 天地造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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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에 있는 마을. ‘오남(梧南)’이 정북동(井北洞) ‘머긋대’(오동나무) 마을의 남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추정은 오히려 그 마을의 동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잘못된 추정이다. 아마도 새비룡 지역을 일컫는 ‘오동(梧東)’ 마을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오남(梧南)’으로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오남’을 ‘안터’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은 낮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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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북동과 정하동에 있는 들. ‘앞말내’는 1차적으로 ‘앞말’와 ‘내’로 분석된다. ‘앞말’은 다시 ‘앞’과 ‘말’로 나뉘는데, ‘앞’은 ‘전(前)’의 뜻이다. ‘말’은 중세국어 ‘[리(里)]’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명에서 ‘마을’·‘말’·‘마실’·‘물’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앞말’은 ‘앞에 있는 마을’을 뜻한다. ‘내’는 신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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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무신. 청주사람으로 태봉 때 청주에서 무신으로 활동하였다. 그런데 궁예(弓裔)는 참소하는 말을 믿고 사람을 죽이기를 좋아하여 청주의 호걸들이 사변을 일으킬까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궁예는 장차 청주사람을 모조리 없애버릴 목적으로 청주에서 군인으로 있던 애견(愛堅), 윤전(尹全) 등 80여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불러 죽이려고 포박하여 끌고 오게 하였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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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을사늑약(乙巳勒約) 이후 1905년~1910년 사이에 개화자강파(開化自强派)가 전개한 국권회복을 위한 실력양성운동. 한말의 애국계몽운동은 의병운동과 더불어 국권수호운동의 주요한 두 흐름 중 하나이다. 애국계몽운동은 갑신정변과 독립협회 운동으로 대표되는 개화자강 계열의 민족운동을 이은 것이었다.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개화자강 계열의 새 지식인들은 국권회복을 위한 애국계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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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를 어르면서 부르는 노래. 어른들은 어린아이의 몸을 움직여 주거나 또는 무엇을 보여 주거나 들려주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거나 기쁘게 하여 준다. 애기어르는 소리는 주로 어린아이의 몸을 움직여 주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애기어르는 소리에는 아이의 겨드랑이를 잡고 세워서 좌우로 흔들면서 하는 ‘「불무노래」’, 앉은 애기나 선 애기의 손을 붙잡고 앞으로 당겼다 뒤로 밀었다 하면서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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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바위. 애기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조선 중기에 청주 고을에 낙향하여 사는 최참판 내외가 있었다. 최참판은 부부가 화락하고 생활은 어려움이 없는데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부인정씨는 첩이라도 들여서 자녀를 두어 보자고 했으나 최참판이 허락하지 않았다. 부인정씨는 명산대찰을 찾아가 백일기도를 하는 등 온갖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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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상봉고개(상봉재) 근처의 애기바위라고 불리는 부녀상(婦女像) 바위에 얽힌 전설. 명암약수터를 우측으로 내려다보면서 방죽거리(중봉)를 지나 시유림을 따라 상봉 쪽으로 올라가면, 우측으로 용정동저수지를 바라보며 선도산의 낙엽송 계곡을 마주한 곳에 애기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 얽힌 다음과 같은 설화가 있다. 조선 광해군 때 한양에서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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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 쑥골에 위치한 조선시대 제방의 터. 이 제방은 기록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지도서(輿地圖書)』청주목 제언조에 ‘재주남오리주위칠백구십일척수심삼척(在州南五里周圍七百九十一尺水深三尺)’이라 하여 청주 남쪽 5리에 있으며 둘레가 7백 91척, 수심 3척으로 기록되어 있다. 택지개발과 함께 현재 청주 한솔초등학교의 운동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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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는 산.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청주 서쪽 5리에 수구(水口)에 사람들이 두 개의 산을 만들어 놓고 야양(爺孃)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써 이 산이 오래 전부터 ‘야양산’으로 불려왔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는 ‘아양산’은 ‘야양산’에서 변한 것이다. ‘아양’은 단독으로 쓰여 마을을 지시할 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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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 유적 유형을 분류하는데 한정하여 사용하는 말로 강가나 들판에 위치한 유적. 유적(遺蹟)은 과거 인간이나 인간집단의 행동이 이루어진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적 단위로 유구(遺構), 유물(遺物)을 포함하는 일정한 공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유적은 공간적, 지리적 위치 및 자연환경, 출토유물의 시간적 위치, 문화적 전통, 유물군(遺物群)의 내용 및 성격 등 다양한 요소가 합쳐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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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가 양약을 조제하거나 파는 곳. 의료시장의 개방과 가상약국·가상병원 등 인터넷 상거래로 인하여 의료환경이 개방화, 정보화로 변화되고 있다. 또한 재택치료와 자가치료가 발달하고 원격진료, 의료비의 상승 등으로 의료체계도 변화되고 있다. 2000년 7월 의약분업이 실시되면서 약의 주도권이 의사에게 넘어가고 약국이 구조조정됨으로써 체인약국이 진출하게 되었다. 청주시의 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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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과 산성동에 있는 고개. ‘산성재’는 ‘산성’과 ‘재’로 분석된다. ‘산성’은 ‘청주 상당산성’을 가리키고, ‘재’는 ‘고개’를 뜻한다. 따라서 ‘산성재’는 ‘상당산성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해석된다. 이 고개는 달리 ‘산성고개’로도 불리는데, 이는 ‘산성재’에서 ‘재’가 같은 뜻인 ‘고개’로 바뀐 결과이다. 이 고개는 달리 ‘약수터고개’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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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골짜기. ‘가운데골’은 ‘가운데’와 ‘골’로 분석된다. ‘가운데’는 ‘일정한 공간이나 사물의 안쪽 부분’을 뜻한다. ‘골’은 고구려어 ‘忽’(홀·골)과 신라어 ‘’에서 기원한 것으로, ‘골짜기’나 ‘마을’을 뜻한다. 물론 본 예는 ‘골짜기’를 뜻한다. 그렇다면 ‘가운데골’은 ‘가운데에 있는 골짜기’로 해석된다. 전국적으로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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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의 육거리시장 안의 가구점 골목의 옛 이름. ‘약전’은 약을 파는 가게라는 뜻으로 이 골목에는 한약방이 많았고 특히 ‘청주장’이 서는 2일과 7일에는 한약재 매매가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약전’이라는 명칭은 이로써 생겨난 것이고 약전이 특별히 골목 안에 형성되자 ‘약전골목’이라고 한 것이다. 1890년 지방의 발전책으로 청주약령시로 개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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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의 육거리시장 안의 가구점 골목의 옛 이름. ‘약전’은 약을 파는 가게라는 뜻으로 이 골목에는 한약방이 많았고 특히 ‘청주장’이 서는 2일과 7일에는 한약재 매매가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약전’이라는 명칭은 이로써 생겨난 것이고 약전이 특별히 골목 안에 형성되자 ‘약전골목’이라고 한 것이다. 1890년 지방의 발전책으로 청주약령시로 개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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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또는 중매로 만난 두 남녀가 혼인을 하기로 약속하는 것. 전통 혼례에서는 약혼이란 용어는 없다. 다만 양쪽 집안에서 혼인하기로 합의하게 되는 그 자체가 약혼의 의미가 된다. 신식 혹은 현대적 결혼식에 약혼식이 있다. 약혼은 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1973년에 만들어진 가정의례준칙에 의하면 “당사자들의 호적등본과 건강진단서를 첨부한 약혼서를 교환하되 약혼식은 따로 거행하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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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고개. ‘구름다리고개’는 ‘구름다리’와 ‘고개’로 분석된다. ‘구름다리’는 ‘길 위로 공중 높이 놓은 다리’를 뜻하는 바, 전국적으로 매우 흔한 이름이다. 대부분 다리 이름으로 쓰이나, 마을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구름다리고개’는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로 해석된다. 구름다리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고개는 달리 ‘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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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는 마을.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25번 도로인 단재로에서 명암약수터로 가는 방향의 동부우회도로가 가까이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신촌의 양지쪽 왼쪽에 있는 농촌마을로, 동부우회도로가 있어서 몇가구의 전원주택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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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탑동에 있었던 마을. 양지쪽에 있는 마을로 ‘볕이 잘드는 곳’을 가르킨다. ‘말’은 ‘마을’의 뜻이다. 마을이 양지바른 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지말’, ‘양짓말’과 같은 의미라면 ‘음달말’, ‘음지말’, ‘음짓말’은 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상당구 탑동과 금천동 사이를 남북으로 새내길이 지나고 있다. 지금의 현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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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 유적 유형을 분류하는데 한정하여 사용하는 말로 강가나 들판에 위치한 유적. 유적(遺蹟)은 과거 인간이나 인간집단의 행동이 이루어진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적 단위로 유구(遺構), 유물(遺物)을 포함하는 일정한 공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유적은 공간적, 지리적 위치 및 자연환경, 출토유물의 시간적 위치, 문화적 전통, 유물군(遺物群)의 내용 및 성격 등 다양한 요소가 합쳐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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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1728년 무신란(戊申亂) 당시 청주읍성의 비장(裨將)이었는데, 3월 15일 반군이 청주성에 침입하자 문을 열어 준 인물이다. 양덕부(梁德傅)는 이보다 앞선 1720년에 상당산성 앞문 축조 책임자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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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는 산. 흥덕구 운천동 연당리와 신봉동 소생이 간의 고개길을 돌고개, 석령, 석령산고개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진 고개가 있다. ‘석령산’의 이름은 돌이 많은 산이라는 의미에서 붙어진 이름이며, 양병산 장기봉 흥덕산이라고도 한다. ‘양병산’은 이 산에 양병사(梁兵使)의 묘가 있어서 붙어진 이름이다. ‘장기봉’은 장기(長基)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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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에 있는 구룡산(九龍山)[163.6m]의 골짜기. ‘양석골’은 구룡산(九龍山)[163.6m]에 있는 골짜기로서 ‘양소골’이라고도 한다. ‘양석골’의 ‘양석’은 ‘羊石’(양의 모양으로 조각해서 무덤 주위에 세운 돌)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이 지역에 여러 모양의 상석(床石)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석골’은 ‘양석(羊石)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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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중동에 있는 마을. ‘양선이’를 ‘양선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양선’은 ‘햇빛이 빨리 비치는 곳’이라는 의미의 ‘陽先’으로 추정된다. 또한, ‘양선’을 ‘양산(陽山)’의 변형으로서 ‘양지쪽에 있는 산’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양선이’를 ‘양촌’이라고도 하는데, 이를 한자로 쓰면 양지바른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陽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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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중동에 있는 마을. ‘양선이’를 ‘양선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양선’은 ‘햇빛이 빨리 비치는 곳’이라는 의미의 ‘陽先’으로 추정된다. 또한, ‘양선’을 ‘양산(陽山)’의 변형으로서 ‘양지쪽에 있는 산’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양선이’를 ‘양촌’이라고도 하는데, 이를 한자로 쓰면 양지바른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陽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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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에 있는 구룡산(九龍山)[163.6m]의 골짜기. ‘양석골’은 구룡산(九龍山)[163.6m]에 있는 골짜기로서 ‘양소골’이라고도 한다. ‘양석골’의 ‘양석’은 ‘羊石’(양의 모양으로 조각해서 무덤 주위에 세운 돌)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이 지역에 여러 모양의 상석(床石)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석골’은 ‘양석(羊石)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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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백정의 신분으로 어머니를 잘 모시어 이름난 효자였다. 양수척(楊水尺)은 조선 세조~성종 년간에 상당구 운동동 비선거리에서 두 아우들과 함께 살았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무뢰와 횡포를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늙은 어머니에게도 공손치 못하였다. 이에 노모는 항상 이들 형제를 걱정하다 병을 얻어 눕게 되고, 마침내는 누운 채로 배변까지 하게 되었는데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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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는, 효자 양수척(楊水尺)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양수척은 조선 세조~성종 년간에 두 아우와 함께 청주에 살고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무뢰와 횡포를 저질렀을 뿐 아니라 늙은 어머니에게도 공손치 못하였다고 한다. 이에 노모는 항상 이들 형제들을 걱정하다 병이 들어 눕게 되고, 누운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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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 재앙을 막거나 물리치기 위하여 행하는 주술. 개인적 주술로 음식주술과 행위주술이 있다. 음식주술은 정월 보름 아침에 귀가 밝으라고 찬술을 먹는 ‘귀밝이술[耳明酒]’,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딱딱한 과실을 깨물어 뱉는 ‘부름[腫果]’, 동짓날에 먹는 팥죽 등이 있다. 행위주술은 설날 아침 대문에 닭과 호랑이 그림을 붙이는 ‘세화(歲畵)’, 용(龍)·호(虎)를 써 붙이는 ‘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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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정부에서 1898년 이후 전국토지의 정확한 규모와 소재를 파악하여 그에 의해 합리적인 조세 부과와 예산편성을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해 각종의 개혁 사업을 추진하여 근대화를 이루고자 한 사업. 대한제국 정부가 가장 많은 자금과 인력을 투자하여 수행한 것으로서 대한제국의 시책 중 가장 큰 업적이다. 양전사업을 시행한 주요 목적은 전정(田政)을 개혁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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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정부에서 1898년 이후 전국토지의 정확한 규모와 소재를 파악하여 그에 의해 합리적인 조세 부과와 예산편성을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해 각종의 개혁 사업을 추진하여 근대화를 이루고자 한 사업. 대한제국 정부가 가장 많은 자금과 인력을 투자하여 수행한 것으로서 대한제국의 시책 중 가장 큰 업적이다. 양전사업을 시행한 주요 목적은 전정(田政)을 개혁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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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평촌동에 있는 마을. 양지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이 양지바른 곳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2순환로와 목련공원길이 만나는 지북교차로 근처이며, 월운천의 평촌교 아래 무심천(無心川)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월운천을 건너 음달말과는 마주하고 있다. 도시화가 안 되어 있어 주민들은 농업을 하고 있는데, 약간의 공업과 농업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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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중동에 있는 마을. ‘양선이’를 ‘양선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양선’은 ‘햇빛이 빨리 비치는 곳’이라는 의미의 ‘陽先’으로 추정된다. 또한, ‘양선’을 ‘양산(陽山)’의 변형으로서 ‘양지쪽에 있는 산’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양선이’를 ‘양촌’이라고도 하는데, 이를 한자로 쓰면 양지바른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陽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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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남편은 양탁연(楊卓然)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일대에 거주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부인은 선비 양탁연의 아내로 임진왜란 때 딸과 함께 산속으로 피난을 가다가 왜적에게 발견되었다. 왜적이 겁탈을 하려고 하자 화를 내어 욕을 하며 저항하다가 결국 딸과 함께 왜적의 칼에 죽임을 당하였다. 정절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었음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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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전동에 있는 마을. 일명, 양택이(陽宅-)라고도 한다. 양택은 풍수지리에서 마을이나 고을이 자리를 잡은 터를 말한다. 이 마을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햇볕이 잘 드는 지역이어서 붙어진 이름이라고 하고 있다. ‘양택이(陽宅-)’는 ‘양택’에 접미사 ‘-이’가 결함한 어형이다 이 지역일대는 낮은 구릉지로 형성되어 있으며, 구릉지의 계곡에는 석남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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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전동에 있는 마을. 일명, 양택이(陽宅-)라고도 한다. 양택은 풍수지리에서 마을이나 고을이 자리를 잡은 터를 말한다. 이 마을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햇볕이 잘 드는 지역이어서 붙어진 이름이라고 하고 있다. ‘양택이(陽宅-)’는 ‘양택’에 접미사 ‘-이’가 결함한 어형이다 이 지역일대는 낮은 구릉지로 형성되어 있으며, 구릉지의 계곡에는 석남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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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중동에 있는 마을. ‘양선이’를 ‘양선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양선’은 ‘햇빛이 빨리 비치는 곳’이라는 의미의 ‘陽先’으로 추정된다. 또한, ‘양선’을 ‘양산(陽山)’의 변형으로서 ‘양지쪽에 있는 산’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양선이’를 ‘양촌’이라고도 하는데, 이를 한자로 쓰면 양지바른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陽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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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중동에 있는 마을. ‘양선이’를 ‘양선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양선’은 ‘햇빛이 빨리 비치는 곳’이라는 의미의 ‘陽先’으로 추정된다. 또한, ‘양선’을 ‘양산(陽山)’의 변형으로서 ‘양지쪽에 있는 산’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양선이’를 ‘양촌’이라고도 하는데, 이를 한자로 쓰면 양지바른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陽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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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봉동에 있는 마을. ‘어당’은 전국적으로 매우 희귀한 지명이다. 본 예에 더하여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에 ‘어당이’가 있을 뿐이다. 이는 ‘어당’에 접미사 ‘-이’가 붙어 만들어진 이름이다. 본 마을이 ‘어당’으로 불리는 이유는 과거 마을에 ‘어당(魚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당’은 ‘물고기가 노는 연못’을 뜻한다. 흥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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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전문기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충청북도 지역 본부.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정신을 바탕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다양하고 전문적인 보살핌을 펼치어 그들이 참되고 아름답게 자라게 하고 그들의 가정과 지역사회의 구성원이 밝고 따뜻한 삶을 이루도록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6년 7월 기독교아동복리회 청주분실로 충청북도 내 사업을 시작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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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소식이나 정보를 수용자에게 전달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사회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새 소식이나 정보를 전달하고 공유하여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커뮤니케이션 행위이다. 자신의 생각을 말이나 글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표현하거나 공표하는 것을 넓은 의미의 언론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발전하게 되자 개인의 힘으로는 복잡한 사회생활에 대처할 수 있는 소식이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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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언론인 겸 문인. 1932년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서 태어났으며, 2001년 10월 10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1943년 청주사범학교에 입학하였고 195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58년 청주문화원장에 취임하였고 1959년에는 청주여자고등학교 교사 1960년에는 전국 문총 충북지부장, 1962년에 한국예총 충북지부 결성과 함께 초대지부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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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촌동에 있었던 물구덩이. ‘엉망구레’라고도 하는 데 이것은 ‘냉망구레’의 변형에 불과하다. ‘냉망구레’에서 ‘냉망’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냉’은 ‘차다’는 의미로 추정되고, 따라서 ‘찬물’이 많아서 붙어진 이름으라고 해석된다. ‘구레’는 본래 물이 늘 괴어 있는 ‘구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냉망구레‘는 찬물이 많이 나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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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수요관리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재정지원기관 한국에너지공단의 충청북도지사. 에너지의 합리적인 이용과 효율향상을 위해 설립된 한국에너지공단은 불안정한 국제원유 가격과 날로 치열해지는 자원확보 경쟁, 그리고 각종 환경협약으로 세계 에너지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산업과 사회구조를 에너지 저소비형으로 전환시키고 에너지 수요관리정책을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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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정동에 있는 LG그룹의 청주 생산공장. LG그룹은 지리적 이점과 우수한 양질의 노동력 그리고 청주 출신의 전문경영인으로서 LG그룹 창업공신인 박승찬 사장과 윤욱현 사장의 영향으로 청주지역을 주력업종의 생산기지로 택하여 생산공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LG그룹은 1979년부터 연차적으로 청주산업단지 내에 ㈜럭키, 금성계전㈜, 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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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남동에 있는 골짜기. ‘여나동’은 ‘여나’와 ‘동(洞)’으로 분석된다. ‘여나’는 ‘여내’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 ‘여내’라는 지명은 전국 여러 군데에서 발견되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여우내’와 함께 사용된다. 그런데 ‘여우내’에는 한자 지명 ‘건천(乾川)’이 대응되는 예도 있다. 따라서 ‘여우내’는 ‘여위다[乾]’와 관련하여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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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에 크게 기여한 독립운동가. 구한말 계몽운동을 펼치던 중 1905년 을사오조약을 강제 당하자, 이에 분개하여 자결을 기도, 그 여파로 오른쪽 눈을 실명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상해로 망명, 중국의 신해혁명에 참가하여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였다. 1912년 이후 동제사, 신한혁명당 등 각종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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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미술가의 미술전시. 여성미술제는 '여성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미술전으로 개최한다. 충청북도에서 활동하는 30여명의 여성미술작가회 회원들이 모여 '여성과 평화'라는 주제 하에 나름의 다양한 시각들을 제시하려 한다. 2000년 시작한 여성미술제는 무심갤러리 주관으로 기획되어 오다 2003 여성미술가협회가 조직되면서 여성미술주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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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 일찍이 중국에서 주인이 없어 제사를 받지 못하는 외로운 영혼이 사람들을 해친다고 하여 그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냈는데, 특히 청(淸)나라 세조(世祖)가 주현(州縣)마다 주인 없는 영혼을 모신 여단(厲壇)을 세우고 매년 제사케 함으로써 널리 보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에 이르러 1404년(태종 4)에 도성에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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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열녀 김씨(金氏)는 여이현의 부인으로 열행이 있어, 조정에 알려져 정려되었다. 현재 정려는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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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 일찍이 중국에서 주인이 없어 제사를 받지 못하는 외로운 영혼이 사람들을 해친다고 하여 그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냈는데, 특히 청(淸)나라 세조(世祖)가 주현(州縣)마다 주인 없는 영혼을 모신 여단(厲壇)을 세우고 매년 제사케 함으로써 널리 보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에 이르러 1404년(태종 4)에 도성에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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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의 율량천 일부인 율봉역 앞에 있는 개울. 역내는 ‘역’과 ‘내’가 결합된 어형이다. 여기서 역은 구체적으로 ‘율봉역'을 말한다. 율량동에서 골말, 중말, 상말, 양지말, 셋집매를 포함해서 율봉이라 하였으며, 양짓말과 중리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을 역말이라 하였다. 또한, 율봉은 역말, 율봉역이라고도 하였다. 율봉역 앞을 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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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에 있는 내. ‘비끼내’는 ‘비끼’와 ‘내’로 분석된다. ‘비끼-’는 동사 ‘비끼다’의 어간이다. ‘비끼다’는 ‘비스듬히 비치다’를 뜻한다. ‘내’는 신라어 ‘那’(나)·‘川理’(나리ㅎ)에서 기원한 것으로, 일찍부터 지명에 나타난다. 따라서 ‘비끼내’는 ‘비스듬히 흐르는 내’로 해석된다. ‘비끼내’는 지역에 따라서는 ‘빗내’·‘비스내’로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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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과 율량동 사이에 있는 다리. 청주~충주간 국도상의 율량천에 놓인 ‘율량교’는 ‘역내다리’라고도 한다. ‘역내다리’의 ‘역내’에서 ‘역’은 구체적으로 율봉역을 가리키고 ‘역내’는 율봉역 앞을 흐르는 내로 해석되고 ‘역내다리’는 바로 역내에 놓인 다리를 가리킨다. 충청북도에서 발주하고 삼성토건주식회사에서 시행하여 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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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는 마을. ‘역대’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역대(驛垈)’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보는 것은 ‘역대’라는 지명과 함께 ‘역터’(驛-)라는 지명을 쓰는 지역이 존재하고, 또 이 지역의 남쪽 인접한 곳에 ‘율봉역(栗峰驛)'이라는 역(驛)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대’라는 지명은 전국에서 그렇게 많이 발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대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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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북도 청주시의 역사. 선사시대의 청주지역이 어떠한 문화양상을 보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지금까지 학술조사를 거친 곳이나 지표상의 채집된 유물을 통해 알려진 선사유적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청주시의 중앙부를 관통하여 흐르는 무심천(無心川)과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美湖川) 주변은 대단히 완만한 구릉성 산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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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의 전달과 관리의 왕래와 숙박 및 공물진상 등의 관물 수송을 담당한 곳. 역은 참(站)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다가 1597년(선조 30) 통신만을 위주로 하는 파발을 두어서 변서(邊書)의 급한 전달을 임무로 하였던 곳이다. 신라 487년(소지왕 9) 우역(郵驛)을 설치하였고, 그 뒤 통일신라시대 이후 9주(州) 5소경(小京)이 설치되는 등 지방제도가 확립되고 중앙의 관리의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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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남동에 있는 마을. ‘역전(驛前)말’은 역 앞에 조성된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역 앞의 마을은 ‘역전말’ 이외에 ‘역촌마을’, ‘역촌부락’, ‘역촌동’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역전(驛前)’으로 불리기도 하며, 전국에 ‘역전’이라는 마을은 대단히 많다. 이곳은 충북선 오근장역 앞에 조성되어 있으며, 예전에는 술집이 많이 모여 있어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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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남동에 있는 마을. ‘역전(驛前)말’은 역 앞에 조성된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역 앞의 마을은 ‘역전말’ 이외에 ‘역촌마을’, ‘역촌부락’, ‘역촌동’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역전(驛前)’으로 불리기도 하며, 전국에 ‘역전’이라는 마을은 대단히 많다. 이곳은 충북선 오근장역 앞에 조성되어 있으며, 예전에는 술집이 많이 모여 있어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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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과 개신동 사이에 있는 고개 및 옛 마을. ‘배티’의 ‘배’는 이 고갯마루에 배나무들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티’는 고개의 뜻이므로, ‘배고개’라고도 불리웠다. 이현(梨峴)은 ‘배티’를 한자화한 지명이다. 또한 ‘배티’는 배티 밑에 있는 마을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모충동 쪽 배티마을에는 곡산연씨(谷山延氏)가 많이 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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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역의 극적(劇的) 무대예술. 우리나라의 근대극의 개념은 최남선(崔南善)[1890~1957]과 김재철(金在喆)[1907~1933, 충북 괴산 출생] 등에 의해 정리되었다. 1902년 협율사, 1906년 원각사의 설치와 동경유학생들에 의해 1910년대에 일본으로부터 국내로 들여온 신파극의 도입과 1920년의 ‘극예술협회’와 본격적인 전문 극단 활동이라 할 수 있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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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6 잡지 제5 지리3 웅주 에 신라 웅주(熊州) 연산군(燕山郡) 영현(領縣)의 하나였다고 한다. 본래 백제 때 두잉지현(豆仍只縣)으로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연기현으로 고쳐 연산군에 속하게 하였다. 1018년(현종 9) 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이 되었고, 1172년(명종 2) 감무(監務)를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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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곽예(郭預)[1232~1286]의 묘. 곽예는 고려 고종(高宗)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좌승지 등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충렬왕(忠烈王) 때 성절사로 원나라에 가는 도중에 죽었다. 시문에 능했으며 당대의 명필로도 이름이 높았다. 본래 충청북도 청원군 북이면 대율리에 있었는데, 1975년 국토개발지구로 지정됨에 따라 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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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었던 마을. ‘연당(蓮塘)’은 연못의 한자어이며, ‘연당못’이라고도 한다. 이것을 마을이름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연당’이라는 연못이 있는 마을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이곳은 현재의 운천동 청주 흥덕사지(興德寺址) 고인쇄박물관 앞에 있던 마을로서 ‘연당리(蓮塘里)’라고도 한다. 그 마을에는 ‘연당’이라는 연못이 있었다. 연당 북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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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었던 마을. ‘연당(蓮塘)’은 연못의 한자어이며, ‘연당못’이라고도 한다. 이것을 마을이름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연당’이라는 연못이 있는 마을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이곳은 현재의 운천동 청주 흥덕사지(興德寺址) 고인쇄박물관 앞에 있던 마을로서 ‘연당리(蓮塘里)’라고도 한다. 그 마을에는 ‘연당’이라는 연못이 있었다. 연당 북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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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燕山郡)은 지금의 충청북도 청원군(淸原郡) 문의면(文義面)지역으로, 고려 이후 청주목(淸州牧)의 속현(屬縣).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6 잡지 제5 지리3 웅주에 따르면, 본래 백제 때의 일모산군(一牟山郡)으로 경덕왕(景德王)이 연산군으로 고쳐 고려에도 그대로 쓴다고 하였다. 연산군의 영현(領縣)은 연기현(燕岐縣)[지금의 충청남도 연기군]과 매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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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에 청주 상당산성에서 반란군을 토벌한 의병장. 본관은 곡산(谷山)이며, 자는 문거(文擧)이다. 아버지는 1693년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위의 부당성을 상소하여, 심한 국문을 받아 옥사한 감찰 연최적(延最績)이다. 1728년(영조 4)에 영조(英祖) 무신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하여 조지성(趙持誠), 조완담(趙完澹)의 부자를 시켜 의병 40여 인을 모아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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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무신. 청주사람으로 청주령군(淸州領軍)의 장군이었던 견금(堅金)의 부장(副將)으로서 활동하였다. 견금 역시 청주사람으로 청주령군의 장군으로 있었는데, 태조(太祖)가 즉위한 후 “청주사람들은 변심하는 일이 많으니 제때에 방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가 생길 것이다” 생각하고 드디어 그 고을 사람 능달(能達), 문식(文植), 명길(明吉) 등을 보내 엿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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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서촌동에 있는 마을. ‘안그미’는 1차적으로 ‘안’과 ‘그미’로 분석된다. ‘안’은 물론 ‘내(內)’의 뜻이다. ‘그미’는 다시 ‘그’와 ‘미’로 나뉜다. ‘그’는 ‘신(神)’의 뜻인 ‘’에서 기원한 것으로, ‘크다’나 ‘높다’를 뜻한다. 지명에서 ‘감’·‘검’·‘금’·‘가마’·‘가매’·‘고마’·‘가미’·‘가무’·‘개마’·‘개매’ 등으로 다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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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곡산(谷山)이며, 자는 무경(茂卿), 호는 치당(痴堂)이다.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연택로(延宅老)이다. 할아버지는 연재희(延再熙), 증조할아버지는 연응복(延應福)이며, 어머니는 유장(柳莊)의 딸 문화유씨(文化柳氏)이다. 부인은 조양(趙暘)의 딸 평양조씨이다.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에 배속되었다. 사헌부 감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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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에 위치한, 연최적(延最績)의 충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문. 연최적은 사헌부감찰로 재직 중 사직하였다가 다시 기용되었으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파직되었다. 1693년에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위의 부당성과 화를 당한 서인(西人)들의 용서를 구하는 여섯 가지 항목의 상소를 올렸다가 일곱 번의 심한 고문을 받아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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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동 부모산 정상 부근에 있는 사찰. 현재의 연화사는 1928년 금강산 유점사에 주석하던 청암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그러나 1950년대 대웅전 중창불사를 하는 과정에서 ‘蓮月寺 重二斤 貨主○○’이라고 적힌 공양용 불구가 발견됨에 따라 옛 절터임을 알게 됐다. 2대 주지인 보안스님이 1955년부터 보안사에 주석하며 현재의 도량을 일궈냈다.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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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죽은 후 수절하거나 순절한 여인 또는 자신의 정절(貞節)을 지키다 죽은 여성으로서 그 행실이 국가나 사회적으로 공인된 여인. 전통적으로 열녀란 개가(改嫁)할 수 있는데도 개가하지 않은 여인을 의미했으나 시대에 따라 열녀에 대한 인식이 달랐다.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통해 본 고대 열녀의 행실은 남편 또는 약혼한 남성과의 약속 이행, 훼절 거부, 복수, 종사 등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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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를 근거로 활동하는 우리음악과 서양음악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크로스오버 (Crossover), 퓨전(fusion:융합) 음악단체.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어울림 속에서 대중적인 음악, 생활 속의 국악을 보급하고자 설립되었다. 창립 이후 당간음악제, 전주소리축제, 오장환문학제 등에서 초청공연을 가졌다. 2001년 9월, 창단 연주회와 충청북도청 초청 연주회를 가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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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의 충청북도을 대표하는 지역당. 열린우리당 충북도당은 충청북도 도민을 대상으로 열린우리당 설립목적과 정강정책을 기본으로 실천하여 정당의 지지를 넓히고, 열린우리당 소속의 지역정치인 활동을 지원하고 당원을 비롯한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중앙당의 정강정책결정 과정에 가교적 역할을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3년 11월 11일 민주당 탈당파,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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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서 창단하여 전국적으로 공연활동을 하고 있는 종합 연희단체. 우리의 전통 탈춤, 마당극, 풍물과 창작춤극을 결합한 공연활동으로 일반대중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공연예술을 지향하기 위해 1984년에 설립되었다. 1986년에 「창작춤판 춤으로 본 세상」, 1987년에 창작 춤판 「이 가슴 둥둥 북이되어」, 노래시극 「새날은 오리라」, 1988년에 창작춤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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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바위. ‘행상바위’는 ‘행상’과 ‘바위’로 분석된다. ‘행상(行喪)’은 ‘상여(喪輿)’·‘영여(靈輿)’·‘온량거’로도 불리는데, ‘주검을 산소로 나르는 기구’이다. 세는 단위는 ‘틀’이다. ‘행상바위’는 위가 펑퍼짐하여 마치 행상의 지붕 휘장처럼 보이기에 붙은 이름이다. ‘행상바위’는 지역에 따라서는 ‘행상바우’·‘행상방구’·‘행상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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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는 마을. '염통자리’는 ‘염통’과 ‘자리’로 분석된다. ‘염통’은 ‘심장’ 즉, ‘순환기 계통의 중추 기관’을 뜻한다. ‘자리’는 ‘사람이나 물체가 차지하거나 어떤 일을 할 만한, 일정한 넓이의 공간이나 장소’를 가리킨다. 따라서 ‘염통자리’는 ‘심장부’를 가리키는 말이니, ‘중심이 되는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해석된다. 어떤 장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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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성동에 있는 마을. ‘엽촌’은 ‘엽’과 ‘촌’으로 분석된다. 여기서 ‘촌(村)’은 ‘마을’이지만, ‘엽’의 뜻은 분명하지 않다. 전국적으로 ‘엽’이 선행 요소로 붙은 지명이 여럿 발견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엽골’·‘엽동’이역골’과, ‘엽구산’이 ‘역구산’과, ‘엽굴운’이 ‘역구룬’과 함께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엽’은 ‘역’의 변화형으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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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병장.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기허당(騎虛堂)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서 출생하였다. 충청남도 계룡산 갑사 청련암에서 수도할 때 선장(禪杖: 승려의 지팡이)으로 무예를 익혔는데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출중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규대사(靈圭大師)[?~1592]는 승려들의 창의(倡義)를 독려하였지만 따르지 않았다. 영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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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는 영규대사(靈圭大師)[?~1592]의 공적을 기리는 전적비. 임진왜란 때 육상 전투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둔 청주성 전투에서 승군(僧軍)을 이끌었던 영규대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4년에 세운 전적비(戰蹟碑)이다. 청주시 내 중앙공원(中央公園) 동쪽 출입구 오른쪽 화단에 조헌(趙憲)[1544~1592] 전장기적비(戰場紀蹟碑)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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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중앙동에 속하는 법정동. 옛날 청주성 북문 밖에 있어 주로 서민층이 무심천(無心川) 제방 주변에 취락을 형성하여 영원한 마을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영정(榮町)'이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청주군 북주내면의 북리(北里) 및 원리(院里) 각 일부를 분할하여 ‘영정(榮町)’이라 명명하고 청주면에 편입하였다. 1947년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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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에 있는 마을. ‘영오리’는 ‘영오’와 ‘리’로 분석된다. 여기서 ‘리(里)’는 ‘마을’을 뜻하나, ‘영오’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과거 이 마을은 달리 ‘영운(潁雲)’ 또는 ‘영우리’로도 불렸다. 그렇다면 ‘영운’에서 ‘ㄴ’이 탈락하여 ‘영우’가 되었고, ‘영우’에서 ‘영오’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의 어형 ‘영운(潁雲)’에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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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에 있는 마을. ‘영오리’는 ‘영오’와 ‘리’로 분석된다. 여기서 ‘리(里)’는 ‘마을’을 뜻하나, ‘영오’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과거 이 마을은 달리 ‘영운(潁雲)’ 또는 ‘영우리’로도 불렸다. 그렇다면 ‘영운’에서 ‘ㄴ’이 탈락하여 ‘영우’가 되었고, ‘영우’에서 ‘영오’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의 어형 ‘영운(潁雲)’에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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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에 있는 마을. ‘영오리’는 ‘영오’와 ‘리’로 분석된다. 여기서 ‘리(里)’는 ‘마을’을 뜻하나, ‘영오’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과거 이 마을은 달리 ‘영운(潁雲)’ 또는 ‘영우리’로도 불렸다. 그렇다면 ‘영운’에서 ‘ㄴ’이 탈락하여 ‘영우’가 되었고, ‘영우’에서 ‘영오’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의 어형 ‘영운(潁雲)’에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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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과 금천동에 걸쳐 있는 근린공원. 이곳에 영우리라는 옛 지명이 변하여 된 영운동의 이름이 공원이름이 되었다. 1976년 3월 27일에 최초 결정하여 1998년 8월 3일에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현재는 미개발공원으로 되어 있다. 석교육거리에서 단재로를 따라 왼편으로 신라송림아파트와 정화아파트가 가까이 있는데, 뒤편에 있는 산이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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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과 용암동을 연결하는 다리. 1987년 대전지방 국도관리청에서 개통하였다. 총연장 27m, 교폭 35m이며, RC 슬라브 방식이다. 상당구 금천동과 용정동 그리고 영운동과 용암동의 경계를 형성하면서 무심천(無心川)으로 흘러드는 영운천(潁雲川)의 청운중학교 아래 쪽에 건설되었다. 영운교를 지나는 도로는 25번 국도로, 북쪽으로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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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본래 청주군(淸州郡) 동주내면(東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예전에는 영우리 또는 영운(潁雲)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사양리(斜陽里), 산직리(山直里), 방동리(方東里), 방서리(方西里)의 일부를 합하여 영운리(潁雲里)라 명명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하였다가 1935년 청주면에 편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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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청 소속의 성당. 정진석 당시 주교는 청주교구 복음화 사업의 일환으로 2000년까지 교구내에 40개 성당이 세워지기를 강력히 희망했다. 이에따라 금천, 영운, 용암, 방서동, 청원군 남일, 가덕, 문의, 남이면을 관할하는 성당으로 영운동성당 건립 필요성이 제기됐다. 1987년 부지가 확보되자 초대주임 김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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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과 용정동에서 발원하여 무심천(無心川)으로 흘러드는 하천. 상당구 명암동 상봉재의 남서사면에서 발원하여 지형의 특징에 맞추어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용정저수지에 저수된 뒤 이정골마을 앞을 지나 계속 남서쪽으로 흐른다. 한편, 보살사가 있는 낙가산에서 발원한 물은 남서쪽으로 흘러 낙가동 소류지에 모여 용암동쪽으로 계속 남서류한다. 원봉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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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위치한, 송명휘(宋明輝)의 처 영일정씨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각. 여산송씨(礪山宋氏) 송명휘의 부인 영일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41년(헌종 7)에 세운 정려각이다. 흥덕구 강서사거리에서 청주가로수길을 따라 경부고속도로 청주 IC 방향으로 약 3.3㎞ 가량 가면 오른쪽에 수의동 강촌마을이 있는데, 정려각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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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는, 충청병영의 영장을 지낸 정종현(鄭宗鉉)의 치적을 기리는 선정비. 조선 고종대에 충청병영의 영장을 지낸 정종현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1864년(고종 1)에 세운 비석이다. 상당구 우암동 우암산 순환도로 삼일공원에서 청주대학교 쪽으로 가는길 비선거리 7기의 비석 중 왼쪽부터 여섯 번째에 있다. 높이 97㎝, 폭 43㎝,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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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학습과정에 따라 예능과 미술을 가르치는 사설교습소. 학원의 설립 및 운영의 등록은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교육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2007년 11월 30일 기준 청주시 소재의 예능미술학원 수는 총 84곳으로 교육 분야는 미술, 서예 등이다. 등록연도별로 살펴보면 1990년 이전에 등록한 학원 수는 5곳, 1990년부터 1995년까지 등록한 예능미술학원이 16곳,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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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학습과정에 따라 예능과 음악을 가르치는 사설교습소. 학원의 설립 및 운영의 등록은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교육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2007년 11월 30일 기준 청주시 소재의 예능음악학원 수는 총 288곳으로 교육 분야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플롯, 드럼, 기타, 베이스, 성악 등이다. 등록연도별로 살펴보면 1990년 이전에 등록한 학원 수는 22곳, 1990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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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美的)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 청주를 상징하는 우암산(牛岩山)[338m]이나 무심천(無心川)은 청주사람들의 기상을 담고 있으니까 누구나 사랑하는 곳이지만, 겨레의 얼이 깃든 역사와 문화의 터전은 청주사람들의 올곧은 충성심의 발로라고 말할 수 있다. 청주가 역사의 현장으로 삼국시대로부터 각축을 벌였던 지역이었고 내륙에 위치한 요충이었음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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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음악,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을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사람. 청주예술인들은 전통적으로 양반의 고장이라는 충청도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체면을 중시하고 예의를 존중하며, 가문과 씨족의 명예를 자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구전하는 설화와 열녀, 효부, 효자의 미담과 명현들의 시화가 많기도 하다. 고려 때의 문장가와 조선시대에 많은 시조작가들이 있었다. 그 외에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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