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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1285년(충렬왕 11) 지공거 설공검(薛公儉) 밑에서 문과에 급제해 문한서(文翰署)에 속하였다. 충직하고 문장이 뛰어나다고 인정받았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곽예(郭預)[1232~1286]의 손자이며, 한림원사(翰林院事)를 지낸 곽운룡(郭雲龍)의 아들이다. 아들에 곽지태(郭之泰)가 있고, 손자에 곽충수(郭忠秀)가 있다. 원나라 세조(世祖)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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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곽열(郭說)의 아들이다. 아들에 곽원(郭垣)과 곽여(郭輿)[1058~1130]가 있다. 처음에는 청주의 향리였으나 선종(宣宗)을 잠저 시절에 섬기었는데, 선종이 즉위하면서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감찰어사(監察御使)를 거쳐 추밀원(樞密院) 좌승선(左承宣)에 이르렀다. 1086년(선종 3) 전중소감(殿中少監)으로 요나라에 토산물을 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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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몽득(夢得)으로 곽상(郭尙)의 아들이다. 어려서 꿈에 어떤 사람이 여(輿)라고 명명하였으므로 이름을 삼고 몽득으로 자를 삼았다. 어려서부터 맵고 냄새나는 채소를 먹지 않았으며, 여러 아이들과 함께 놀기를 싫어하고 항상 홀로 한방에 거쳐하여 학문에 힘썼다. 문과에 급제하여 내시부(內侍府)에 속했다가 합문지후(閤門祗侯)를 거쳐 홍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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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선갑(先甲)이며, 호는 연담(蓮潭)이다. 초명은 왕부(王府)이다. 그의 아들에 곽운룡(郭雲龍)과 곽진(郭鎭)이 있는데, 곽운룡은 벼슬이 도진장(都津長)에 이르렀고, 곽진은 등제하여 교서랑(校書郞)이 되었다가 뒤에 관직을 버리고 승려가 되었다. 1255년(고종 4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전주사록(全州司錄)이 되었다. 1263년(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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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996년(성종 15)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여러 번 승진하여 기거사인(起居舍人)이 되었다. 1011년(현종 2) 중추직학사(中樞直學士)를 역임하였고, 1015년 송나라 사신으로 가서 토산물을 바치고, 겸하여 거란이 해마다 내침함을 고하고 위태할 때 구원해 줄 것을 청하였다. 1016년 형부시랑(刑部侍郞)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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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호는 추암(秋巖)이다. 문하평장사 곽침(郭琛)의 아들이다. 1360년(공민왕 9) 23세에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정몽주(鄭夢周), 문익점과 동방(同榜)이었다. 1374년 예문관 직제학이 되었다. 1377년(우왕 3) 5월 곽추가 과거시험을 주관하여 정희(鄭熙) 등 99명을 뽑았다. 1378년 밀직사사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정당문학(政堂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