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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동 강상마을 - 문화유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515
한자 守儀洞-
이칭/별칭 강상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인구(남) 96명
인구(여) 94명
가구수 76가구

[문화유적]

(1) 동래부사 송상현 충렬사(東萊 府使 宋象賢 忠烈祠)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산 1-5에 위치한다.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순국한 동래부사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을 제향하는 사당이다. 선조 28년(1595) 동래에 있던 묘소를 지금 위치로 이장하고, 광해군 2년(1610)에 창건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980년에 중수하였다.

본전은 정면 3칸, 옆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칸 마루방으로 3개의 분합문을 달고 앞퇴를 두었으며, 충렬묘(忠烈廟)라고 현판을 달고 솟을삼문을 세우고, 돌과 시멘트를 배합하여 담장을 두르고 기와를 얹었다. 입구에는 홍살문을 세우고 3칸으로 구분된 계단을 이중으로 설치하여 단을 구분하였다. 외삼문 왼쪽에는 1983년 정화사업 때 공헌한 후손들의 명단을 새긴 표석이 있다.

1977년 12월 6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천곡(泉谷) 송상현은 1591년(선조 24)부터 동래부사로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민과 더불어 항전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부친에게 [고성월휘열진고침 군신의중부자은경(孤城月暉列陣高枕 君臣義重父子恩輕)]이라는 절명사(絶命辭)를 남기고 성이 함락될 무렵 조복을 갈아입고 단좌한 채 왜병에게 살해되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2) 송의섭묘비(宋毅燮墓碑)

근대 성리학자 송의섭[1865~1944]의 묘비이다. 청주시 수의동 강상마을 강촌교회 뒤편의 산자락 끝에 위치하고 있다.

송의섭의 저술로는『춘계집(春溪集)』이 있다. 그는 강직한 선비의 기개와 지조를 굽히지 않은 채 1944년 7월 21일 81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충북 청원군 강내면 월탄리 동쪽 산기슭에 장사지냈다가, 1983년 현재 위치로 이장했다.

(3) 밀양 박씨 효열각(密陽 朴氏 孝烈閣)

밀양박씨 효열각은 송현기(宋鉉器)의 부인 밀양박씨의 효행을 기려 세운 정려문으로 청주시 수의동 강상마을 충렬문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1855년 창건하였고, 1925년 중수했다. 송석기의 손자인 송상휘(宋尙輝)의 부인 채씨의 열행(烈行)도 함께 기린다.

(4) 송상현·한금섬·이소사 충렬문(宋象賢·韓金蟾·李召史 忠烈門)

임진왜란 때 순국한 송상현의 충절과 그의 두 소실 한금섬(韓金蟾)이소사(李召史)의 정절을 함께 기려 세운 정려문이다. 청주시 수의동 강상마을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이 충렬문은 선조 28년(1595)에 정려되어 숙종 30년(1704)에 청주목 서강내일하면(淸州牧 西江內一下面) 강상리에 세웠고, 1954년에 중수했다.

송상현을 살해한 왜장도 그 절의에 탄복하여 그의 처 한금섬의 시체를 동래성 동문 밖에 안장하고 나무로 표석을 세웠다. 이소사는 일본으로 끌려갔는데 풍신수길의 유혹과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절의를 지켜 돌아왔다. 송상현의 두 소실인 한금섬이소사의 열행에 대해서는『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호서읍지(湖西邑誌)』, 『청주읍지(淸州邑誌)』 등의 지리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5) 연일 정씨 효부각(延日 鄭氏 孝婦閣)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183에 소재한다. 송명휘(宋明輝)의 부인 연일정씨(延日鄭氏)의 효행을 기려 1841년 헌종 7년에 세운 정려각이다. 청주시 수의동 강상마을 송상현 충렬문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6) 송상현 신도비(宋象賢 神道碑)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산 1-1에 소재한다. 1984년 12월 31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로 순국한 송상현의 신도비이다. 신도비는 묘소 아래 진입로 왼쪽에 있으며, 1659년 효종 10년에 세웠다. 비문은 일부분이 훼손되었는데,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송준길(宋浚吉)이 썼으며, 제전(題篆)은 이정영(李正英)의 글씨이다.

(7) 강상마을 보호수

강상마을에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다. 하나는 마을 입구 신도비 앞에 위치하고, 다른 하나는 밀양박씨 효열각 앞에 있다. 앞의 것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1953년 4월 20일 포로 교환 시 이곳을 지나다가 식수한 것이라 전한다. 수고 12m, 밑동 둘레 9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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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7 오자 수정 (6) 송상현 신도비(宋象賢 神道碑)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산 1-1에 소재한다. 1984년 12월 31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로 순국한 송상현의 신도비이다. 신도비는 묘소 아래 진입로 왼쪽에 있으며, 1659년 효종 10년에 세웠다. 비문은 일부분이 훼손되었는데, 송시열(宋詩烈)이 짓고 송준길(宋浚吉)이 썼으며, 제전(題篆)은 이정영(李正英)의 글씨이다. -> (6) 송상현 신도비(宋象賢 神道碑)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산 1-1에 소재한다. 1984년 12월 31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로 순국한 송상현의 신도비이다. 신도비는 묘소 아래 진입로 왼쪽에 있으며, 1659년 효종 10년에 세웠다. 비문은 일부분이 훼손되었는데,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송준길(宋浚吉)이 썼으며, 제전(題篆)은 이정영(李正英)의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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