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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091
한자 藝術人
영어음역 yesulin
영어의미역 artist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집필자 이현숙

[정의]

미술, 음악,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을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사람.

[변천]

청주예술인들은 전통적으로 양반의 고장이라는 충청도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체면을 중시하고 예의를 존중하며, 가문과 씨족의 명예를 자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구전하는 설화와 열녀, 효부, 효자의 미담과 명현들의 시화가 많기도 하다. 고려 때의 문장가와 조선시대에 많은 시조작가들이 있었다. 그 외에도 한문학자들이 많았던 것은 청주가 어쩌지 못할 양반고을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청주예술인들은 자존심이 세고 역사에 대한 책임감이 크다.

청주는 근대에 들어서면서 애국지사와 명문장가를 많이 배출했다.. 1930년대에 활약하기 시작한 목사출신의 시조시인 정기환은 1974년 시조집 『저하늘』을 출간했다. 홍원길(洪元吉)은 1949년 충북문화사를 설립하고 『의병대장 한봉수』를 펴냈다. 또한, 주간 『충청신보(忠淸新報)』를 발간하여 향토문인들의 발표무대로 제공하기도 했다.

문화와 예술을 창조하는 힘은 오직 예술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우리의 풍토와 환경이 한국 역사를 만든 원동력이었다면 청주의 풍토와 환경은 청주지역에 사는 창조자, 예술인들의 힘을 길러준 토대가 되었다.

청주는 교육도시답게 충북대학교청주대학교, 한국교원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예술인들이 큰 활동을 벌여 지역예술계에 신선한 활기를 띠었다. 이들이 대학교재로 펴내는 문학, 예술이론서도 괄목하지만 작품집도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소중한 기록이다.

이런 것들이 예술로 남고 문화유산이 되어 뒷사람들이 그 터전 위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꽃피우게 되었다. 이른바 청주의 예술이고 예술인들이다. 우뚝하고 변변한 역사는 없었어도 그 터전은 옹골찼고 나라가 질곡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도 그 발자취는 뚜렷했다.

[문학]

1959년에 창립한 충북문화인협회의 문학분과는 최병준, 박재용, 오세탁 등이 활동했고 광복후 청주에서 처음 결성된 문인단체라는데 그 의의가 있다. 이 무렵 소설가 김문수, 조장희, 최창희 등이 『문예지』에 당선되어 등단했고 방송작가로 윤혁민, 전창식, 김수현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학생들로 구성된 원탑, 새벽, 청주문학 등의 동인회가 있었다.

1966년으로 접어들자 문단의 대가들을 초청하여 문학강연회를 열고 그 열기를 확산시켰다. 임찬순, 신경득 등이 활약이 컸고 홍해리, 강준형 등이 시집을 출간했다. 홍강리가 『월간문학』에 당선되었고 한편 내륙문학 동인회가 창립되었다.

1980년대 접어들면서 『충북문학전집』의 발간으로 청주지역 출신 문인들의 급속한 결속이 이루어져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저서를 발간하기에 이르렀다.

[미술]

해방 후 청주 현대미술활동은 김종현, 안승각을 위시하여 정창섭, 엄재원, 정진국, 이건옥, 이동호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서예활동으로는 이상복이 명필가로서 명성을 이뤘으며 국전 특선작가로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한 서예계의 원로였다. 이외에도 서예가로는 신집호, 음옥자, 천기녀를 들 수 있다.

1962년 안승각, 정진국, 이설우, 왕철수 등이 중심이 되어 미술협회를 창립, 지역미술 발전의 토대를 갖춰 출발을 하게 되었다.

현재 청주권의 미술은 충북대학교, 청주대학교, 서원대학교 출신 작가 및 청주 출신으로 서울지역에서 대학을 나온 젊은 작가층이 두텁게 형성되면서 화단의 새로운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중견작가로는 김재관, 유해철, 이세훈, 엄기홍, 이완호, 김지택, 정창훈, 손부남 등 다수의 많은 작가들이 있어 오늘의 청주미술을 이끌어가는 주역이다. 청주예술의전당 전시실을 비롯하여 무심갤러리와 우암갤러리 등 상업화랑에서 현대미술 운동을 펼치고 있는 청주미술활동은 실험적인 화단으로 변모되어 가고 있으며, 서울과의 연계는 물론 1990년대 이후 청주화단 사상 최초로 일본과 중국 등 국제교류전까지 여는 등 국제화, 세계화를 지향하고 있다.

[연극]

1957년 김성렬, 이정실, 송주헌 등이 모여 연극협회를 구성하면서 청주에 연극무대가 열렸다. 연극협회가 결성되면서 그뒤 매년 열리는 충북예술제에서 연극공연을 해왔는데 「불모지」, 「가족회의」, 「푸른성인」 등이 공연되었다.

1960년 이후 청주연극의 기둥은 최석하, 최영철, 민병인, 박태련 등으로 이들은 대부분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김은수가 정기적으로 공연하는 극단을 만들자고 제의하여 임해순, 장남수 등이 참여하여 시민극장을 결성하고 대표에 이설우를 선임하였다.

예술제 공연과 시민극장의 정기공연 등을 통해 연극인들이 지속적으로 연극무대에 오를 수 있었고 직업의식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청주연극협회를 맡았던 연극인으로는 김성열, 이정실, 김근수, 최성대, 박진하, 송창화 등이었다.

[음악]

청주의 음악은 다른 시·도와 마찬가지로 양악이 주도하고 있었다. 청주의 양악도 교회음악에서 그 연원을 찾아보아야 하지만 확실한 기록이 없다. 1949년 이상덕이 지도한 청주사범관악대가 문교부 주최 전국남녀고등학교 음악발표회에 출연한 것이 대외활동의 효시였다.

1954년 문총이 결성되면서 음악분과로 이상덕, 박이규, 강대숙, 남상훈, 김순, 정원식 등이 활동했다. 청주대학교서원대학교에 음악학과가 생기면서 본격적인 청주음악의 터전이 마련되어 발전의 기틀을 잡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음악협회는 김태훈(金泰勳)을 중심으로 최종성, 이진호, 오선준, 차갑종, 이원희, 황주복 등이 모여 활동했고 청주시립교향악단, 합창단 등 예술단이 속해 있었다. 때때로 열린 신춘음악회, 초청연주회, 송년음악회 등이 청주음악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1980년대 말부터 충북오페라단이 매년 정기무대를 마련, 오페라 공연의 활성에 기여했다. 이원희를 중심으로 한 실내악단 무심카메라타가 매년 2~3회의 정기연주회를 열어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청주과학대 이강희가 이끄는 충청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활동하고 있다.

[무용]

무용은 공연예술로 다른 예술과 비교하여 기록이나 공연상황의 보존이 극히 어렵다. 광복이후 현대무용이 시작된 것은 파조 이호순이 청주에서 교편을 잡고 무용활동을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1959년 제1회 충북예술제가 열리고 문총에 무용분과가 발족되면서 단체활동이 시작되었다.

현대극장에서 정태경, 이정애, 이경호를 주축으로 한 음악, 무용, 연극의 종합무대가 생기면서 무용이 예술제에 정식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서원대학교청주대학교에 무용과가 개설되면서 무용인을 본격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새암무용단에는 박재희, 이인숙, 박종란, 김형남, 박시종, 전연경, 김미영 등 20명이 활동했고, 강혜숙춤패에는 대표인 강혜숙을 비롯해 김영아, 김영애, 김미경 등 20명이 춤활동을 벌였다. 또한, 윤덕경 무용단은 홍미경, 진현실, 한정선, 김현아, 이상희, 안혜임, 이혜진 등이 창립멤버이며 아브락사스 현대무용단은 송인숙, 오진숙, 홍성희, 유명옥, 박미경, 주미화, 우상미 등이 초창기 단원으로 구성되어 청주무용의 발전을 위해 활동했다.

청주지역 무용계는 최근 10년간 빈약했던 양과 질의 폭발적 확대상승, 춤사위 양상의 다변화, 무용인구의 양적팽창을 보였다. 최근에는 국제무대로 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다.

[사진]

작품전시회의 급증, 사진작가의 부상 등 사진계의 양적 팽창과 함께 사진외적 환경과 여건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전국아마추어 사진작가를 대상으로 한 오랜 전통의 전국사진공모전과 전국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사진공모전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1990년부터 사진인 합동연수회를 개최해 오고 있으며, 회원자격 제도를 엄격히 적용해 사진인의 위상정립과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젊은 사진작가 그룹인 실버포토가 회원전을 열었고 청주영상회를 비롯해 대학가, 공단지역에서 사진 써클들이 정기 회원전을 마련해 창작활동 활성화에 한몫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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