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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090
한자 藝術
영어음역 yesul
영어의미역 art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집필자 이현숙

[정의]

미적(美的)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

[개관]

청주를 상징하는 우암산(牛岩山)[338m]이나 무심천(無心川)은 청주사람들의 기상을 담고 있으니까 누구나 사랑하는 곳이지만, 겨레의 얼이 깃든 역사와 문화의 터전은 청주사람들의 올곧은 충성심의 발로라고 말할 수 있다.

청주가 역사의 현장으로 삼국시대로부터 각축을 벌였던 지역이었고 내륙에 위치한 요충이었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아름답고 인심이 순후한 청주사람들이 학문을 이어받고 의열을 앞세워 살아온 것은 기미독립만세에도 7명이나 민족의 지도자로 참여한 것을 보면 알 만하다.

청주의 문화예술이 타 지역만 못하다고 타박하는 사람이 있지만 청주야말로 우리나라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중요한 자리에 놓여있는 도시다. 특히, 교육문화도시로서 청주가 발전해 온 모습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옛날부터 인쇄문화의 요람이었고 학교가 서서 많은 인재가 양성되었다는 사실은 용두사 철당간의 명문에서도 밝혀지고 있다.

[변천]

청주의 문화예술이 잠재역량을 키우며 활동해 오다 각 분야 예술인들의 뜻이 자연스럽게 모아지면서 바람직한 예술인공동체의 형상화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1956년에 들어서면서부터다. 1957년 가칭 충북문학예술협회가 결성되어 청주예술의 시발점을 이룬다. 1961년 군사혁명으로 일단 해체의 운명을 맞으며 활동이 중지되었으나 1962년 문총이 예총으로 다시 통합, 개편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때에 문인, 음악, 미술, 서예, 연극, 사진, 무용 등 9개 예술단체가 구성되어 지역예술 중흥의 거보를 내딛게 되었다. 창립당시 초대지부장은 최병준(문인), 부지부장은 안승각(미술), 이상덕(음악)이 각각 맡았다. 1960년대 청주예술은 문총지부의 조직과 행사를 이어받아 나름대로 틀을 형성했다. 예술제 등 행사의 주관과 지역예술문화의 토대를 다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당초 문총지부의 뼈대를 이어받은 예총지부는 산하 회원단체와 예술제를 주관하는데는 역량이 모자랐으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초창기의 부진을 딛고 문학, 음악, 미술, 연극협회 등을 주축으로 각 분야에 걸쳐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청주의 예술은 청주시민회관의 건립과 청주시립예술단의 발족 등이 가시화되면서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경제성장에 맞물려 고도로 발전하는 청주지역 예술인들의 의식은 자각과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천편일률적인 서울문화를 거부하면서 내 문화, 내 고장 문화가 무엇인가 찾아나서는 조짐들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특히, 공연예술은 서울에만 의존하던 시대를 지나면서 많은 단체들이 청주지역에서 생겨났다. 청주시립교향악단을 시작으로 국악단, 합창단을 비롯해서 연극분야에서는 시민극장, 청년극장, 상당극회 등 서울에만 있는 것으로 생각한 음악회, 전시회 등도 봇물 터지듯 열려 청주에서 활동하는 청주의 음악인, 청주의 미술인들이 생겨났다.

바로 청주문화의 홀로서기이며, 탈 서울문화의 선언이었다. 문학에서도 『내륙문학』, 『뒷목문학』, 『충북수필』 등 수많은 동인지들이 쏟아져 나온 것도 이와 때를 같이한다.

서울에 의존하기 위하여 눈치보던 문화행태가 청주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1960년대에 시행되었던 지방자치제에 힘입어 더욱 활기를 띠다 획일적 군사문화에 위축되었던 시기를 지나 다시 지방자치제에 힘입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문제점]

예로부터 청주는 콧대 높은 양반들이 사는 고장이라고 한다. 양반은 남의 것을 넘보지도 않고 또한 남의 것을 눈여겨 보지도 않는다. 바로 이러한 문화수용형태가 텃세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텃세는 외래문화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청주지역 문화의 발전 속도를 더디게 한다.

문화예술의 적은 텃세다. 전통문화도 외래문화의 유입에서만 발전한다는 논리를 상기할 때, 이제 청주예술인들에게는 새로운 문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편으로

문화의 세계화, 국제화가 제 문화를 없애고 타민족의 문화, 타국의 문화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듯 청주문화도 서울문화에 대칭되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의의와 평가]

고급문화는 수도를 중심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부족사회에서는 힘 있는 사람이나 족장이 통솔하여 문화를 이룩했고, 점차 세월이 흘러 국가형태로 발전해오면서 임금과 벼슬아치들이 중심이 되어 문화를 창조해왔다.

집단으로 모여 사는 곳에서 문화는 발달해 왔다. 이것이 문화의 중심지가 생겨난 동기다. 서울문화가 있으면 지방문화가 있게 마련이다. 서울문화에 비교되고 대치될 수 있는 진정한 지역문화는 우리가 태어나서 살고 있는 이 지역의 문화, 즉 청주문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성립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문화의 홍수 속에서 살아왔다. 잘 발달된 선진문화를 받아들인 서울문화에 익숙해져 문학, 미술, 연극, 음악 등 창작예술은 물론 공연예술까지도 서울에 의존해왔고 서울만 따라가면 청주문화도 발전한다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청주문화가 이런 등식에서 홀로서기를 외친 때가 얼마 되지 않는다.

그게 바로 교육문화 예술도시란 이름으로 청주가 불리는 것이요, 교육도시이기 때문에 각종 문화예술이 꽃을 피우는 터전이 된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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