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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012
한자 愛國啓蒙運動
영어음역 Aeguk Gyemong Undong
영어의미역 Campaign for the promotion of patriotism
이칭/별칭 비폭력운동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집필자 김양수

[정의]

구한말 을사늑약(乙巳勒約) 이후 1905년~1910년 사이에 개화자강파(開化自强派)가 전개한 국권회복을 위한 실력양성운동.

[개설]

한말의 애국계몽운동은 의병운동과 더불어 국권수호운동의 주요한 두 흐름 중 하나이다. 애국계몽운동은 갑신정변과 독립협회 운동으로 대표되는 개화자강 계열의 민족운동을 이은 것이었다.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개화자강 계열의 새 지식인들은 국권회복을 위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주도한 전국의 대표적 단체는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와 대한협회(大韓協會), 신민회(新民會) 등이었다.

[애국계몽운동의 실제내용]

당시 개화자강파들은 국권을 회복하는 일과 국민국가의 수립을 다른 강대국들에 의뢰하여서는 안 되고, 국민의 실력을 양성하여 민족사회의 기저층(基底層)에서 부터 전력을 증강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당시 애국계몽운동의 실제 내용은 문화운동 뿐만 아니라 신교육 구국운동, 언론계몽운동, 민족산업 진흥운동, 국채보상운동, 신문화·신문학운동, 국학운동, 민족종교운동, 해외독립군기지 창설운동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한말에 전국 각지에 설치되었던 각종의 학회나 사회단체, 그리고 지방의 유력인사나 특정 문중에 의해 설립되었던 새로운 교육기관은 바로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일제가 결사(結社)의 자유를 박탈한 상태였으므로, 당시에 설립되었던 서북학회 등 지역 학회 등은 겉으로는 학술단체 이름을 걸고, 실제로는 비밀로 애국투쟁을 맹서하고 독립투쟁을 한 단체가 많았다.

[청주에서의 애국계몽운동]

그 중 청주지역에 설립되었던 새로운 교육기관의 특징 있는 사례로 문동학원(文東學院), 덕남사숙(德南私塾), 산동학당(山東學堂), 문동학교(文東學校), 청동학교(淸東學校) 등이 있었다. 이들은 가덕, 낭성, 문의, 미원 등 청원군 일원에 여러 대에 걸쳐 살아 온 고령신씨(高靈申氏) 산동문중에서 설립하였다. 그런데 문동학원(文東學院), 덕남사숙(德南私塾), 산동학당(山東學堂) 등 앞의 세 학원은 한국에서 애국계몽운동이 본격화하기 이전에 한 문중에 의해 설립된 학원으로서는 선구였다.

서울에서 귀향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1880~1936], 예관(睨觀) 신규식(申圭植)[1879~1922] 등은 향리부근 인차리의 문동학원(文東學院) 강사로 계몽운동을 하기도 하였고, 다시 이들은 신백우(申伯雨)[1886~1959] 등과 함께 향리부근에 산동학원(山東學院)을 설립하여 새 교육운동을 펴기도 하였다. 신채호, 신규식, 신홍우는 산동문중의 개화 선구자였고, 신채호, 신규식, 신백우는 일찍이 한학에 뛰어난 자질을 보여 산동 삼재(山東三才)로 불려졌다.

[독립운동에 기여한 고령신씨 가문]

이후 신채호가 민족 독립운동가이자 대표적인 민족주의 사학자로 활동하고, 신규식이 대한제국 군대의 장교 출신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무총장, 외무총장, 국무총리로서 활발히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기타 이 지역의 같은 문중 출신으로 일제하에 독립운동을 했던 인사로는 신건식(申健植)[1885~1963] 등 많아서, 한 지역의 한 가문이 일찍이 개화에 눈을 떠서, 애국계몽운동에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고, 이어 독립운동에 대거 참여한 것은 한국근대사상 보기 드문 사례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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