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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562
한자 趙東植
영어음역 Jo Dongsi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박걸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1873년연표보기
몰년 1949년연표보기
경열(慶烈)
출신지 충청북도 청주
상훈 대통령표창[1977년]|건국훈장 애족장[1990년]

[정의]

충청북도 강내면에서 횃불시위를 주도하여 인근지역의 만세시위를 파급시킨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1919년 3월 23일부터 3일간에 걸쳐 밤마다 청원군 강내면 태성리 산위에서 부락민 수십명과 함께 횃불을 올리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첫날인 23일에는 면내의 18개 부락과 인접한 강외·옥산·남이면 등지에서도 호응하여 횃불을 올리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에 일제는 청주와 조치원 등지의 경찰·헌병수비대를 동원시켜 시위행렬을 제지하고 총기를 휘두르며 여러 사람을 잡아 연행하니 새벽 1시경에야 시위가 끝나게 되었으나, 이튿날인 24일과 26일에도 횃불 시위는 계속되어 충청남도 연기군(燕岐郡) 동면(東面) 응암리(應岩里)에서 이에 호응하였고, 27일에도 동면의 예양리(禮養里)와 노송리(老松里) 및 송용리(松龍里) 등지에서 호응했으며, 멀리 경기도까지 횃불 독립만세가 파급되었다.

30일 밤에는 부용면(芙蓉面) 등곡리(登谷里)에서 횃불시위가 전개되었으며, 4월 1일에는 청주·오창·강외·부용면에서 횃불시위가 벌어지고, 또한 북일·북이·강내·옥산면에서도 일어남으로써 도합 8개면, 즉 청주군의 서북쪽 태반이 모두 불바다와 만세소리로 진동케 되었다.

그는 또 그의 집에서 3월 25일 김재형(金在衡)이 보낸 사람으로부터 독립만세운동을 고취시키는 비밀 격문 약 50매를 받아서 허영대(許永大)로 하여금 화정리(華亭里) 일대에 배포시키는 등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묘소]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 태성리 1구 산 13번지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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