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효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769
한자 王孝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김기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607년 3월 - 왕효린 수나라에 조공
성격 관리
성별
대표 관직 좌평

[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가계]

왕효린(王孝隣)[?~?]의 성은 왕씨(王氏)이며, 중국계 백제 관료로 추정된다.

[활동 사항]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7 백제본기에, 607년(무왕 8) 3월에 한솔 연문진을 수나라에 보내 조공하고, 좌평(佐平) 왕효린을 보내 조공하면서 아울러 고구려를 칠 것을 요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수서(隋書)』 권81 백제전(百濟傳)에도 “607년 무왕이 사신 연문진을 보내 조공하였다. 그해에 또한 사신 왕효린을 보내 공물을 바치고 고구려를 토벌하기를 청하였다”라고 하는 기록이 있다.

왕효린에 앞서 백제에서는 598년(위덕왕 45) 장사(長史) 왕변나(王辯那)를 수나라에 사신으로 보낸 일이 있다. 중국계 백제 관료로 추정되는 왕씨(王氏)가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 대중국 외교에서 사신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특히 왕효린이 제1품 좌평 관등에까지 오른 점에 주목하여, 중국 대륙을 수나라가 통일함으로써 중국 왕조와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지자 중국어와 중국 사정에 밝은 왕씨가 백제 사회에서 급격히 성장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관등이 제1품 좌평임을 볼 때, 왕효린은 중앙의 외교 관련 부서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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