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525
한자 扶餘 松菊里 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선사로225번길 54[송국리 산24-1]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이기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4년연표보기 - 부여 송국리 유적 발견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5년 - 부여 송국리 유적 예비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5년~2021년 - 부여 송국리 유적 발굴 조사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12월 31일연표보기 - 부여 송국리 유적 부여송국리선사취락지라는 명칭으로 사적 제249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1년 7월 28일 - 부여 송국리 유적으로 사적명 변경 지정
현 소재지 부여 송국리 유적 -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선사로225번길 54[송국리 산24-1]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6가 168-6]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부여박물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동남리 산16-1]지도보기
성격 마을 유적
면적 535,107㎡
소유자 부여군 등
관리자 부여군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 일대에 있는 청동기 시대 대형 마을 유적.

[개설]

부여 송국리 유적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청동기 시대 취락 유적이다. 1974년 주민의 신고로 수습 조사된 돌널무덤에서 비파형동검을 비롯하여 청동끌[銅鑿], 대롱옥[管玉], 곱은옥[曲玉], 간돌검[磨製石劍], 간돌화살촉 등의 유물이 출토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1975년 송국리를 포함한 소사리산직리 일대의 야산 80만㎡가 농지 확대 개발 사업 지구로 지정되면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부여박물관은 예비 조사를 실시하였다. 1975년부터 1976년까지 실시된 발굴 조사에서 청동기 시대 집자리, 독무덤, 토기 요지 등 선사 시대 유구와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가마와 분묘 등 수십 기에 이르는 역사 시대 유구를 확인하였다.

부여 송국리 유적은 1975년 1차 발굴 조사 이후 2021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공주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고고학연구소 등 여러 기관에 의하여 총 26차에 걸친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국내에서 선사 시대 유적이 수십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는 부여 송국리 유적을 제외하고 찾기 어렵다. 부여 송국리 유적은 1976년 12월 31일 사적 제24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위치]

부여 송국리 유적은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선사로225번길 54[송국리 산24-1]에 있다. 높이 50m 내외의 완만한 구릉상에 있는데, 북쪽으로는 구릉이 계속 이어져 산지와 연결되며 동서남쪽으로는 소하천이 흐르고 있어 넓은 평탄지가 발달하였다. 유구는 남북 방향의 주능선과 파생된 가지 능선에 주로 있다.

[형태]

부여 송국리 유적은 각 지구로 구분되는데 1975년 농지 확대 개발 사업 지구로 지정되었을 당시 계획 지구 명칭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남북 방향의 주능선이 51~57지구에 해당하며, 주능선에서 서쪽으로 뻗은 두 개의 능선이 55·57지구 일부와 54지구, 동남쪽으로 뻗은 가지 능선이 50지구에 해당된다. 주능선에 해당되는 53~57지구에는 방형계 집자리와 목주열(木柱列), 대형건물지 등이 있으며, 주능선의 남단 부분에 해당하는 51·52지구에는 무덤들이 확인된다. 원형 집자리는 가지 능선인 50·55·57지구에 주로 분포하는 등 공간 구분이 확인된다.

송국리 유적에서는 일반적으로 송국리식 토기(松菊里式 土器)로 불리는 축약된 저부에 동체부가 둥글게 부풀다가 좁아지며 구연이 외반되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赤色磨硏土器] 등의 토기류와 돌살촉, 삼각형돌칼, 돌낫, 홈자귀[有溝石斧], 슴베식간돌검[有莖式磨製石劍] 등 다양한 종류의 석기가 출토되었으며, 55-8호 집자리에서는 부채모양청동도끼[扇形銅斧]의 거푸집이 출토되었다. 유구로는 집자리, 구덩이, 대형건물지, 목주열, 울타리[鬱柵] 등과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독널무덤[甕棺墓], 움무덤 등의 무덤 그리고 대지 조성 흔적이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100기 이상이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원형과 방형으로 구분되는데 방형주거지의 수가 조금 더 많다. 흔히 송국리식 집자리[松菊里式住居址]로 불리는 원형 집자리는 주로 사면부에 있는데 지름 3.4~5.3m 내외, 깊이 0.3~1.5m 내외의 규모로 방형계 집자리에 비하여 깊다. 집자리 내부 중앙에 설치된 타원형 구덩이 양쪽에 기둥을 설치한 독특한 구조로, 특별한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으며 화덕자리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이 특징적이다. 방형계 집자리는 평면 형태에 따라 방형, 장방형으로 구분되는데, 구릉 정상부인 54·55·57지구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장축 3m 미만의 소형부터 장축 14m에 이르는 초대형까지 다양한 규모가 확인되는데, 원형 집자리와 달리 화덕 자리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며 깊이 역시 0.3m 미만으로 얕다. 화재로 폐기된 비율이 원형 집자리에 비하여 높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무덤은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독널무덤, 움무덤 등 총 17기가 확인되었는데 대부분 중앙 능선의 51~53지구에 있다.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송국리 취락의 중심 묘역으로 이해된다. 그외 송국리 유적에서 확인된 유구 중 특징적인 것으로 목주열이 있는데, 구릉 정상부의 평탄면상에 2열의 주공이 쌍을 이루며 이어지는 것으로, 매우 드문 사례이다. 또한 송국리 유적에서는 집자리와 구덩이에서 많은 양의 탄화미와 함께 볍씨 자국이 찍힌 토기 등이 출토되었으며, 조·기장·콩·팥·밀 등의 잡곡류도 확인되어 다양한 작물이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부여 송국리 유적의 구릉 정상부 지역은 정비가 이루어져 주거지 5기가 복원되어 있으며, 대형건물지, 무덤유구 등은 조사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표시가 되어 있다. 부여 송국리 유적의 구릉 아래에는 소규모의 전시관이 설치되어 있으며, 출토 유물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부여 송국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 대규모 마을 유적으로 ‘송국리유형(松菊里類型)’은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상으로 이해되며 일본까지 전파되어 일본 야요이 시대[弥生時代]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부여 송국리 유적은 동아시아 청동기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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