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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덕빈(金德彬)[1883~?]은 1883년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현북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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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종갑(金鐘甲)[1894~1933]은 1894년 5월 8일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격화되자 김종갑은 3월 6일 창영학교에서 엄창섭(嚴昌燮)·추병갑(秋炳甲)·서삼종(徐三鍾)·고상준(高相俊)·추성배(秋聖培) 등과 함께 강경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세도면 청포리와 강경 포구는 금강을 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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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종학(金鍾學)[1889~1945]은 1889년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가덕리에서 태어났다. 1912년 천도교에 입교하였으며, 1917년 천도교 부여 원홍산 전교사로 임명되었고, 1917년 4월 천도교 부여교구장이 되었다. 3·1 운동 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3월 31일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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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태호(金泰昊)[1880~1919]는 1880년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가산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일 김태호는 이백순(李伯純)과 함께 천도교 논산교구실에서 민영순(閔泳淳)으로부터 「독립선언서」 40매를 수령하여 밤 9시경 부여에 도착하였다. 김태호는 천도교 부여교구실에서 김종석(金鍾錫)·황우열(黃宇烈)·박성요(朴性堯)·이범인(李範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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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재동(文在東)[1868~?]은 1886년 부여군 내산면 지티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 무쇠점마을에 있던 박용화(朴容和)의 집에서 부여 지역 내 전·현직 천도교 간부였던 황우경(黃宇京)·박성요(朴性堯)·황금채(黃金彩)·최용철(崔容澈)·정판동(鄭判同) 등과 함께 합숙하며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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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성요(朴性堯)[1893~1932]는 1893년 3월 15일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에서 태어났다. 부여군에는 1919년 3월 2일 천도교 조직을 통하여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박성요는 김종석(金鍾錫)을 통하여 전달받은 「독립선언서」 5매를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인근의 도로에 배포하였고, 나머지는 부여군 임천면 비정리에 살고 있던 박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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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용화(朴容和)[1881~1953]는 1881년 12월 28일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팔충리 무쇠점마을에 있던 자신의 집에서 부여 지역 내 전·현직 천도교 간부였던 문재동(文載東)·황우경(黃宇京)·박성요(朴性堯)·황금채(黃金彩)·최용철(崔容澈)·정판동(鄭判同) 등과 함께 합숙하며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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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일어난 거족적인 독립 만세 운동. 부여 지역에서 3·1 운동은 초기 단계에서는 「독립선언서」나 유인물을 배포하고 독립 의식을 고취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만세 운동이 점차 확산하면서 폭력 시위 양상이 나타났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부여의 3·1 운동은 천도교구를 통하여 1919년 3월 2일 「독립선언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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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삼종(徐三鍾)[1896~1972]은 1896년 12월 12일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격화되자 서삼종은 3월 6일 창영학교에서 엄창섭(嚴昌燮)·김종갑(金鐘甲)·추병갑(秋炳甲)·고상준(高相俊)·추성배(秋聖培) 등과 함께 강경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세도면 청포리와 강경 포구는 금강을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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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재흥(梁在興)[1884~1959]은 1884년 5월 2일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송기면(宋箕勉)이 주도하여 일으킨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 장터의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29일 오후 1시경 송기면의 주도로 신장리 장터에 모인 2,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하고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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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거주하였던 독립운동가. 엄창섭(嚴昌燮)[1892~1973]은 1892년 12월 12일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대붕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격화되자 당시 부여군 세도면에서 창영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엄창섭은 군산 영명학교 학생인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독립 만세 운동을 펼칠 것을 권유받았고, 3월 6일 창영학교에서 추병갑(秋炳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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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창호(李昌鎬)[1883~1927]는 1883년 12월 26일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부여에서 3·1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으며, 1920년 북로군정서에서 파견된 예산 출신 김영진(金暎鎭)을 만나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결의하고 같은 마을 출신인 김백순(金伯順)·김형제(金亨濟), 노화리 출신 노재철(盧載喆)과 함께 대한건국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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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부여 지역에서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6일 임천면에서 시작되었다. 임천면의 천도교인들은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배포하는 활동을 전개하며, 전국적인 만세 운동을 부여 지역에서도 확산시키고자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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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정판동(鄭判同)[1894~1925]은 1894년 10월 3일 충청남도 서산시 남면 몽산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 무쇠점마을에 있던 박용화(朴容和)의 집에서 부여 지역 내 전·현직 천도교 간부였던 황우경(黃宇京)·박성요(朴性堯)·황금채(黃金彩)·최용철(崔容澈)·문재동(文載東) 등과 함께 합숙하며 만세 시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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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원상(趙元祥)[1858~1925]은 1858년 4월 16일 부여군 부여읍 왕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일 부여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하루 전인 3월 2일 김태호(金泰昊)는 천도교 논산교구에서 「독립선언서」 40매를 받아 와 김종석(金鍾錫)·황우열(黃宇烈)·박성요(朴性堯)·이범인(李範仁)·최규석(崔奎錫) 등과 배포 방법을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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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규석(崔奎錫)[1858~1923]은 1858년 8월 1일 충청남도 보령군 주포면 주교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일 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면 천도교구실에서 김태호(金泰昊)로부터 김종석(金種錫), 박성요(朴性堯), 황우열(黃宇烈), 이범인(李範仁)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배포를 의뢰받고, 10매를 부여면 구교리[현 부여읍 구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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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용철(崔容澈)[1885~1949]은 1885년 2월 7일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 무쇠점마을에 있던 박용화(朴容和)의 집에서 부여 지역 내 전·현직 천도교 간부였던 황우경(黃宇京)·박성요(朴性堯)·황금채(黃金彩)·정판동(鄭判同)·문재동(文載東) 등과 함께 합숙하며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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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추병갑(秋炳甲)[1903~1976]은 1903년 8월 14일 태어났다. 본적은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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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추성배(秋聖培)[1901~1927]는 1901년 2월 11일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격화되자 추성배는 3월 6일 창영학교에서 엄창섭(嚴昌燮)·김종갑(金鐘甲)·서삼종(徐三鍾)·고상준(高相俊)·추병갑(秋炳甲) 등과 함께 강경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세도면 청포리와 강경 포구는 금강을 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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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순대(洪淳大)[1888~1962]는 1888년 3월 14일 부여에서 태어났다. 1906년 3월에 봉기한 뒤 홍주성 전투에서 패배하여 흩어졌던 홍주의진이 5월 9일 홍산(鴻山)[현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일대]에서 재봉기할 때 홍순대는 의진에 가담하여 5월 11일 좌군관에 임명되었다. 이세영(李世永)·채광묵(蔡光默)·이용규(李容珪) 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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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금채(黃金彩)[1889~1949]는 1889년 3월 28일 부여군 임천면 비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 무쇠점마을에 있던 박용화(朴容和)의 집에서 부여 지역 내 전·현직 천도교 간부였던 황우경(黃宇京)·박성요(朴性堯)·최용철(崔容澈)·정판동(鄭判同)·문재동(文載東) 등과 함께 합숙하며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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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우경(黃宇京)[1875~?]은 1875년 부여군 임천면 비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 무쇠점마을에 있던 박용화(朴容和)의 집에서 부여 지역 내 전·현직 천도교 간부였던 황금채(黃金彩)·박성요(朴性堯)·최용철(崔容澈)·정판동(鄭判同)·문재동(文載東) 등과 함께 합숙하며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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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우열(黃宇烈)[1854~?]은 1864년 1월 10일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비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일 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면 천도교구실에서 김태호(金泰昊)로부터 김종석(金種錫), 박성요(朴性堯), 최규석(崔奎錫), 이범인(李範仁)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배포를 의뢰받았다. 「독립선언서」 5매를 받아 3월 3일 새벽 부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