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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가화면사무소가 있었던 곳이라서 가화리(可化里)라 하였다. 가화면은 갈화면(乫化面)이라고도 불리었는데, ‘갈화면’의 명칭 유래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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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에 있는 백제 시대 고분군. 가화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부여군의 남서쪽에 있는 낮은 구릉 사면에 조성된 가화리 유적과 가화리 샛터 유적 등의 백제 사비 시기 돌방무덤[석실묘] 고분군으로 나뉜다. 현재는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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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에서 해마다 정월 초열흘날 질병 퇴치와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가화리 탑제·요왕제(可化里 塔祭·요왕祭)는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 용골[龍谷] 주민들이 해마다 정월 초열흘날 저녁에 마을 입구의 탑과 마을 앞쪽 저수지 물가에서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이 가운데 탑제가 중심적인 제의이고 요왕제[용왕제]는 부속 제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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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와 양화면 족교리 경계에 있는 산성. 가회리 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에 있는 야산에 축조된 산성이다. 동남쪽은 금강이 조망되고, 남벽은 일부 석축 흔적이 남아 있다. 성 내부는 장대와 건물터 흔적이 있다. 내부에서 회청색토기와 회백색 와질토기가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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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현미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누르개재 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현미리 산2-1번지 일원에 있다. 현미리와 임천면 가신리, 양화면 초왕리에 걸쳐 있는 높이 223m의 무제산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은 산 능선에 ‘누르개재’라는 이름의 고개가 있다. 누르개재 산성은 누르개재의 북쪽에 있는 높이 190m의 산 능선 정상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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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1종 저수지. 덕용저수지(德龍貯水池)는 서천수리조합이 1945년에 축조를 시작하여 10년 만인 1955년에 준공하였다. 저수지 수혜 면적의 약 3분의 2가 서천 지역이기 때문에 서천수리조합이 축조를 담당하였다. 충화면 가화리와 양화면 송정리에 접하여 있으므로 두 마을의 이름을 빌려 가화저수지 또는 송정저수지라고도 부르며, 줄여서 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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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마정리에서 발원하여 장암면, 충화면을 거쳐 장암면 합곡리에서 금천과 합류하여 금강으로 들어가는 하천. ‘마정천(馬井川)’이라는 이름은 마정리에서 유래하였는데, ‘마정(馬井)’이라는 지명은 예전에 부여군 남면 마정리 지역에 큰 우물이 있어서 붙여진 것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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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만지리(晩智里)에는 처음 문화 유씨(文化 柳氏)가 정착하였으며, 이후 영월 신씨(寧越 辛氏)가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이 정착하는 곳이라 하여 만지울 또는 만지동(晩智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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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만지리와 임천면 군사리 경계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만지산성(晩止山城)은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만지리와 임천면 군사리 경계의 산 정상부에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부여 가림성과 함께 사비성의 남쪽 방어를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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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의 말티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말티의 유래」는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의 자연마을인 말티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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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복심리(福深里)의 복(福) 자와 상금리(上金里)의 금(金) 자를 따서 복금리(福金里)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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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복금리와 만지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1종 저수지. 복심저수지(福深貯水池)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 임천군 가화면 복심리에 속하였으므로 ‘복심’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1914년 이후 임천군이 부여군에 합병되면서 복심리와 상금리가 복금리로 합쳐졌으나, 저수지의 이름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복금리와 만지리에 걸쳐 있으므로 충화저수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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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관할 성지. 부여 지석리 성지(扶餘 支石里 聖地)는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하고 1984년 시성(諡聖)된 순교 성인 2위를 기념하기 위하여 천주교 대전교구와 홍산성당에서 순례지로 조성하여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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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에 있는 청소년 수련 시설. 부여군청소년수련원은 청소년이 심신을 단련하고 수련하여 진취적 기상과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도록 설립된 청소년 수련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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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에 있는 드라마 세트장. 서동요 세트장은 백제 무왕 서동과 선화공주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극화한 한국 최초의 백제 역사 SBS 드라마 「서동요」 오픈세트장이다. 2005년 60억 원을 들여 3만 3000㎡[약 1만 평] 규모로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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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 덕용저수지와 서동요 세트장을 연계한 둘레길. 서동요둘레길은 ‘서동요 역사 관광지 둘레길’로 2013년부터 추진되었으며, 2018년 3월 12일 개통으로 1단계 사업을 완료하였다. 앞으로 숙박 및 상가 시설을 개발하는 2단계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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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조의 태실비. 선조대왕태실비(宣祖大王胎室碑)는 조선 제14대 선조(宣祖)의 태함(胎函)을 만든 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태실비(胎室碑)이다. 태함은 왕실에서 출산이 있을 때 탯줄을 묻던 석실을 말한다. 원래는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 장자마을에 있었다. 1570년(선조 3) 충화 선조대왕 태실비를 세웠고, 이후 1747년(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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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재흥(梁在興)[1884~1959]은 1884년 5월 2일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송기면(宋箕勉)이 주도하여 일으킨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 장터의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29일 오후 1시경 송기면의 주도로 신장리 장터에 모인 2,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하고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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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덕리(五德里)는 마을에 있는 오덕사(五德寺)라는 절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오덕사의 유래는 절이 있는 금계산(金鷄山)과 연관이 있는데, 금계(金鷄)는 다섯 가지 덕을 가지고 있는 동물로 알려져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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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 금계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의 말사. 오덕사(五德寺)는 조선 시대에 중종의 장남인 복성군(福城君)[1509~1533]의 원당이 되었다가, 한때 복성군의 양자였던 선조의 태실비를 세우면서 선조의 원찰이 된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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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 오덕사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 오덕사 괘불탱은 화면 하단에 적힌 화기(畵記)에 의하면, 1768년(영조 44) 5월 유행(有幸) 등 10명의 승려 화가가 공동으로 제작하였다. 모두 17폭의 삼베를 이어 가로 560.8㎝, 세로 864㎝의 화면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아미타불·사천왕을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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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상지석리(上支石里)와 하지석리(下支石里)를 병합함에 따라 지석리(支石里)라 하였다. ‘지석’이라는 명칭은 마을에 있는 고인돌, 즉 백제 삼충신이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사비성으로 갈 때 바위를 하나씩 가지고 와서 충성을 맹세하였다고 전하는 표충암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지명총람』에는 고인돌이 있기 때문이라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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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하천리(下天里)의 천(天) 자와 당동리(堂洞里)의 당(堂) 자를 따서 천당리(天堂里)라 하였다고 한다. 『전국 지명 조사철』에 따르면 마을의 서남쪽에 있는 천등산(天燈山)의 천(天) 자와 북쪽에 있는 당골[堂谷]의 당(堂) 자를 따서 천당리라 하였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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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의 천등산과 다섯 장수와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천등산 다섯 장수」는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의 천등산(天燈山)과 백제 시대 공을 세운 다섯 장수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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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청등리(靑燈里)의 청(靑) 자와 시남리(時南里)의 남(南) 자를 따서 청남리(靑南里)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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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 있는 송상인과 송윤선을 모신 사당. 충화 세양사(忠化 世陽祠)는 서곽(西郭) 송상인(宋象仁)[1569~1631]과 신암(愼庵) 송윤선(宋胤先)[1632~1702]을 모신 여산 송씨 지산공파 문중 중심의 사당이다. 송상인은 1605년(선조 38)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에 나아갔다. 중앙에서는 성균관사예, 사헌부장령, 홍문관교리, 사헌부집의 등을 거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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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 있는 손덕조의 정려각. 충화 손덕조 정려(忠化 孫德祚 旌閭)은 손덕조(孫德祚)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효자 정려각이다. 정려각은 국가에서 충신·효자·열녀 등 모범이 되는 사람을 표창하고자 마을이나 집 앞에 세우는 건물이다. 손덕조는 20세에 어머니가 병이 나자 수년간 곁에서 간호하였으며, 어머니의 임종 직전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 넣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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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선조의 어필을 보관하기 위하여 세운 전각. 충화 오덕사 어필각(忠化 五德寺 御筆閣)은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 오덕사(五德寺)에 있다. 선조(宣祖)가 내린 어필을 봉안하기 위하여 오덕사에 세운 전각이다. 오덕사는 중종 때 왕자 복성군(福城君) 이미(李嵋)[1509~1533]의 원당(願堂)이었는데, 1570년(선조 3) 안태사(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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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군. 충화 지석리 고인돌(忠化 支石里 고인돌)은 모두 5기가 확인되는데, 3기와 2기가 약 700m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어 지석리 고인돌1, 지석리 고인돌2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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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 있는 백제 8충신 등을 모신 사당. 충화 팔충사(忠化 八忠祠)는 백제 말의 8충신과 황산벌에서 전몰한 오천결사대를 모신 사당이다. 팔충신은 성충, 흥수, 계백의 3충신과 복신(福信), 도침(道琛), 혜오화상(慧悟和尙), 곡나진수(谷那晉首), 억례복류(憶禮福留)을 말한다.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은 8충신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팔충골’로 불리며, 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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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현미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군. 충화 현미리 고인돌(忠化 玄眉里 고인돌)은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소재지에서 남쪽 부여군 양화면 방면으로 약 3㎞ 떨어진 지점 도로의 서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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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 속하는 법정면.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팔충면(八忠面)의 충(忠) 자와 가화면(可化面)의 화(化) 자를 따서 충화면(忠化面)이 되었다. 팔충면은 백제 시대 성충·계백 등 8명의 충신들이 출생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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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천당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교육 목표는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자주적인 사람을 기른다, 기초·기본 학력을 토대로 창의적인 사람을 기른다,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문화를 즐기는 사람을 기른다,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여 더불어 사는 사람을 기른다’이다. 교훈은 ‘성실[정성스럽고 참된 학생이 되도록 항상 최선을 다합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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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서 발원하여 충화면과 임천면을 거쳐 임천면 칠산리에서 금강에 합류하는 하천. 칠산천(七山川)은 발산을 적시는 냇물이라 하여 발산천(鉢山川) 혹은 오목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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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전국 지명 조사철』 기록에 따르면 ‘팔충’이란 백제 말의 여덟 충신이 팔충리(八忠里) 출신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팔충신이란 성충(成忠), 흥수(興首), 계백(階伯), 복신(福信), 도침(道琛) 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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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천당리에서 계백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표뜸과 계백 장군」은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천당리에서 백제의 장군 계백(階伯)[?~660]과 계백이 태어나서 자란 표뜸마을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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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전국 지명 조사철』 기록에 따르면, 마을 뒤에 있는 산에 선인취하(仙人醉下)형의 명당이 있으며, 마을의 모습이 잠든 선인의 눈썹 같다 하여 선미(仙眉)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현미리(玄眉里)라 불리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마을 앞에 아름다운 산이 외따로 서 있으므로 선미 또는 현미라 하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