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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846
한자 洪壽一
영어공식명칭 Hong suil
이칭/별칭 오선(五先)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안승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28년연표보기 - 홍수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66년 - 홍수일 진사시 급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75년 4월 1일 - 홍수일이 허목을 비판한 사실을 사관이 기록
출생지 한양 - 서울특별시
거주|이주지 부여 - 충청남도 부여군
성격 문인
성별 남성
본관 남양(南陽)
대표 관직|경력 좌랑

[정의]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가계]

홍수일(洪壽一)[1628~?]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오선(五先)이다. 할아버지는 승지를 역임한 홍준(洪遵)이고, 아버지는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를 역임한 홍여필(洪汝弼)이다.

[활동 사항]

홍수일은 1628년에 한양에서 태어났으나 부여로 이주하여 살았다. 사계 김장생의 문인으로 여러 해 동안 수학하였다. 1666년(현종 7)에 진사시에 급제한 뒤 좌랑을 지냈다. 1675년(숙종 1) 4월 1일 허목(許穆)이 이태서를 추천한 일로 사직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 이때 사관이 허목을 비판하는 글을 실록에 기록하였는데, 홍수일이 허목을 비판한 사실을 아울러 기록하였다.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정동악(鄭東岳)이라는 자가 여종을 허목에게 바쳤다. 정동악의 이웃에 사는 진사 홍수일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허목이 임금께서 주신 털옷을 덮고서 국장(國葬)을 치르기 전에 창녀와 같이 잤으니 이를 어찌 학자라 하겠는가?’ 하였다. 대관(臺官)들이 이 말을 듣고 홍수일을 체포하려 하니 홍수일이 달아나서 이를 모면하였다.”

[학문과 저술]

『사계전서(沙溪全書)』 문인록에 홍수일이 올라와 있어 김장생의 문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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