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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389
한자 靑銅器 時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이기성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서 민무늬토기와 간석기, 청동기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개설]

청동기 시대는 고고학의 시대 구분 중 하나이다. 한국의 청동기 시대는 용도에 따라 전문화된 간석기와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민무늬토기가 제작 사용되었으며, 청동기 제작 기술이 보급되었다.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의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는 주거지와 분묘, 수혈 유구, 농경 관련 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유적은 구릉 정상부 또는 사면에 있으며, 많은 경우 주거지와 돌널무덤 또는 독널무덤이 함께 발견되었다.

[주거지 유적]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서는 100여 기 이상의 주거지가 확인되는 부여 송국리 유적을 필두로 나복리 유적, 나복리 통실 유적, 증산리 유적, 외리 유적, 산직리 유적, 합정리 유적, 가중리 가좌 유적, 좌홍리 유적, 신안리 유적, 석우리 유적, 송학리 ‘나’ 유적 등 많은 유적에서 청동기 시대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부여 송국리 유적을 제외하고 총 63기의 주거지가 확인되었는데, (타)원형계 36기, 방형계 24기, 불명 3기로 원형계 주거지가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원형계 주거지와 방형계 주거지 대부분은 내부에 타원형 수혈이 있는 전형적인 송국리형 주거지이다. 송국리형 주거지에서 확인되는 내부 타원형 수혈은 대부분 수혈 내부 양단에 주공이 있는 형식이다. 그 외 나복리 유적에서는 타원형 수혈 내부에 4개의 주공이 있는 형태, 주거지 내부에 타원형 수혈이 2개 혹은 3개가 있는 형태, 내부 타원형 수혈과 더불어 4개의 주공이 방형으로 있는 형태 등 다양한 형태가 조사되었다. 나복리 통실 유적에서는 타원형 수혈 외부에 주공이 있는 형태 등도 확인되었다. 특히 부여 송국리 유적은 대표적인 금강 유역 청동기 시대 유적이자, 송국리형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특이한 주거지 형태와 토기 등이 출토되어 의의가 있다.

[무덤 유적]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서는 돌널무덤, 독널무덤, 돌뚜껑움무덤 등의 송국리형 묘제와 고인돌 등 청동기 시대의 모든 분묘 형태가 확인되는데, 가장 많은 수가 조사된 것은 돌널무덤이다. 돌널무덤은 중리산 직리 유적, 나복리 유적, 당산 유적, 가증리 유적, 정동리 유적, 신안리 유적, 대양리 유적, 송학리 ‘나’ 유적, 동남리 유적, 태양리 263-6번지 유적, 외리 유적, 석우리 절골 유적 등에서 확인되었다. 돌널무덤은 대부분 구릉 정상부 또는 사면에서 밀집되어 발견되고 있다. 돌널은 주로 판석을 사용하여 축조되었으며, 일부 판석과 할석을 혼용하고 있기도 하다.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과 할석으로 바닥을 깐 것이 있다. 돌널 내부에서는 간돌검만 출토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독널무덤은 주로 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확인되는데,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서는 정동리 유적, 동남리 유적, 나복리 유적, 석우리 유적에서 각 1기씩 조사되었다. 4기 모두 독을 수직으로 세우는 직치이며 동체부와 별개로 바닥이 출토되어 동일 개체인지 불분명한 석우리 유적 독널무덤을 제외한다면 바닥에 모두 투공이 되어 있다. 정동리 유적동남리 유적의 독널무덤은 는 잔존 상태가 좋아 기형을 파악할 수 있는데 모두 송국리식 토기이다.

돌뚜껑움무덤은 가중리 가좌 유적, 비당리 유적, 나복리 유적 등에서 총 6기가 확인되었다. 가중리 가좌 유적 1호 석개움무덤만이 이단 굴광이며 나머지는 모두 일단 굴광으로 추정되는데, 돌뚜껑은 판석 또는 판석과 할석을 같이 사용하였다. 유물은 매우 적어 비당리 유적 돌뚜겅웅무덤에서만 간돌검이 출토되었다.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 청동기 시대 묘제 중 주목되는 것은 고인돌이다.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은 부여 송국리 유적을 필두로 청동기 시대 중기의 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되는 유적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나, 고인돌 역시 비교적 많은 수가 분포하고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는 33개소, 84기 이상의 고인돌이 확인되며 탁자식, 덮개식, 바둑판식이 모두 있다.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곳은 충화 현미리 고인돌, 남면 내곡리 고인돌, 부여 산직리 지석묘, 석우리 절골 유적 등으로 하부 구조는 두 사례만이 확인되었다. 충화 현미리 5호 고인돌 하부에서 할석 시설이, 석우리 절골 유적 고인돌 1 하부에서 돌널이 조사되었는데 고인돌 1 돌널 내부에서는 의도적으로 부러뜨린 간돌검 1점이 출토되었다. 특히 부여 산직리 지석묘는 덮개돌이 수평을 유지하고 있고 하부에 매장 구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제사를 드리는 제단(祭壇)의 기능을 가졌던 고인돌로 추정되어 의의가 있다.

[농경 관련 유구]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 농경 관련 유구가 확인된 유적은 구봉·노화리 유적, 나복리 통실 유적, 송학리 ‘가’ 유적이 있다. 송학리 ‘가’ 유적에서는 능선 말단부의 곡부와 하단부의 저지대에서 총 12개의 경작면이 조사되었는데, 수전의 전체 형태는 부채꼴이며, 각 경작면은 부정형이다. 그외 수로, 취수구 배수로 등의 관개 시설 등도 확인되었다. 경작면에서 민무늬토기 바닥 조각이 출토되는 점, 인접한 송학리 ‘나’ 유적 등에서 청동기 시대에 해당하는 유구가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청동기 시대로 비정하고 있다. 나복리 통실 유적에서는 곡부 내 청동기 시대 문화층에 해당하는 Ⅲ층에서 인공 수로가 확인되고, 식물규산체 분석에서 재배 벼가 확인되어 경작지로 추정하고 있다. 구봉·노화리 유적에서도 청동기 시대 경작면과 수로가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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