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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138
영어공식명칭 Ferry
이칭/별칭 도(渡),진(津),포(浦),항(港),진(鎭)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철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의 강이나 냇가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장소.

[개설]

과거의 주요 나루에는 20세기 이후 대체로 다리가 놓였다. 나루는 수운, 곧 물을 이용하는 교통의 요지이므로 시대에 따라 물을 이용하는 교통수단의 변화나 교량 건설 등의 요인에 의하여 나루의 중요성이 변화하고 혹은 사라지기도 하였다. 나루의 쇠퇴는 하상이나 포구에 토사가 쌓여서 얕아지고 좁아진 결과 배가 들어오지 못하게 된 영향도 작용하였다. 한자로는 도(渡)·진(津)이라 하고, 좀 규모가 큰 것을 포(浦), 대규모의 것은 하천과 해안을 막론하고 항(港)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요지(要地)에 군사 시설을 설치하고 군대가 주둔하면서 지키는 것을 진(鎭)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교통의 요지인 나루는 사람과 물품의 이동이 잦았다. 이동 수단은 배이며 배는 사람에 의하여 운행되므로 나루에는 일찍부터 도하(渡河)에 생업 기반을 둔 사람이 사는 도진 취락(渡津 聚落)이 형성되었다. 일반 농가가 토지 경제에 의존도가 높은 것과 대조적으로, 도진 취락의 주민은 교통 기능과 관련된 서비스업에 종사하였다. 나루의 분포 유형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육로의 연결점에서 하천을 횡단하여 도하하는 경우이다. 둘째는 하구에서 수로를 따라 가항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이다. 셋째는 해안의 수로를 따라 항해함으로써 해운의 통과지이거나 도해(渡海)하여 도로망과 연결되는 경우이다.

부여군과 같은 내륙 지방의 나루는 하천을 횡단하는 유형에 해당한다. 부여군에는 금강의 크고 작은 지류가 많아 하천으로 인하여 단절되는 지역을 연결하는 나루의 역할이 필요하였다. 또한 공주-부여-강경-장항-군산으로 이어지는 금강의 수운을 통하여 충청도 내륙의 물자를 운송하기 위한 나루의 역할은 중요하였다.

[부여 지역의 나루]

금강의 나루 가운데 부여군 관내의 것으로는 양화나루와 황산나루, 규암나루, 왕진나루의 4개소가 중요하였다. 모두 감조(感潮) 구간에 해당하여 조차의 영향을 받았다.

양화나루는 부여군 양화면 내성리와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맹산리를 잇는 나루터로서, 웅포대교가 준공되면서 기능을 다하였다. 규암나루는 부여 읍내와 규암면 외리를 잇는 나루터로서, 1968년 백제대교가 준공되면서 원래의 역할은 사라지고 인근의 수북정자온대와 함께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왕진나루금강 감조 구간의 최상류에 해당하는 나루터였다. 부여읍 저석리와 청양군 청남면 중산리를 연결한 나루터로서, 왕진교가 준공되어 왕진나루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황산나루는 부여군 세도면 가회리와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를 연결하는 교통로이다. 강경이 교역장이어서 번영을 누린 나루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나루가 여객과 화물이 집결하는 장소이므로 교역장 구실도 하였던 것이다. 전성기의 강경은 정기 시장이 서면 200여 척의 크고 작은 선박이 금강을 거슬러 올라와 남한강 유역을 제외한 오늘의 충청 지방을 배후지로 두었다. 그러나 황산나루는 호남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내륙 수운이 철도와의 경쟁에서 패배하면서 기능이 쇠퇴하였다. 황산나루 주변은 구시장의 기능만 겨우 유지하였다. 그럼에도 선착장의 하역 작업에 동원되는 100여 호의 노동 가구와 음식점, 상점 등 70여 호의 상업 가구가 존재하였다. 2022년 현재는 황산대교가 준공되어 황산나루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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